초대전이 열리고 있는 소연 갤러리에서. 작가가 걸터 서 있는 작품은 ‘따로, 또, 같이-바람개비’, 6.8×72.7cm,
캔버스에 유채, 2009. 벽에 걸린 작품은 ‘따로, 또, 같이-구름’, 130.3×193.9cm, 캔버스에 유채, 2009들판엔 풀어놓은 햇살이 서성거리고 바람결에 구름이 춤추는 6월의 오후. 풍선 달린 자전거에 냉큼 올라타고 어지러운 세상을 떠나 창공으로 날아오르고 싶다. 6월호 표지 작품인 ‘따로, 또, 같이-한강으로 산책’을 보고 나와 똑같은 상상을 했다면 당신의 마음에도 피로 회복제가 필요하다.
청량한 상상을 안겨주는 이 그림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두 개의 공간, 두 개의 차원이 오버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는 나무와 하늘과 강물이 한 폭에 담기는 한강 공원, 또 하나는 러닝셔츠 위에 그려진 그림 속 공간. 이 두 개의 공간은 자전거라는 ‘메신저’를 통해 하나로 이어진다. “옷 위에 그려진 문양을 자연스레 옷 밖으로 나오게 해 경계 없이 자유로워진 상태, 공간과 공간 사이의 자연스러운 소통을 말하고 싶었어요. 사람과 사람 사이도 마찬가지겠지요. 이 그림처럼 넘나들며 ‘따로 또 같이’, 외로움과 공존도 따로 또 같이.”
화가 김진성 씨는 한남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첫 번째 개인전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서부터 ‘바라봄’에 대해 탐구하기 시작한 그의 작업은 네 번의 개인전으로 연이어졌다. 얼마 전 결혼한 후 대전에 정착해 창작에 전념하고 있다. 6월 말까지 대전에 위치한 소연 갤러리에서 그의 초대전이 열린다. 문의 042-528-6985나는 바라본다, 고로 존재한다
서른여덟의 그는 열혈 청춘 시절부터 ‘바라봄’이라는 문제에 골몰했다. 첫 개인전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서는 몸의 일부분만을 골라 세밀하게 그려나갔다. 배꼽 아래에서 음모로 이어지는 부분을 털 하나하나까지 세밀하게 그렸는데, 보는 이로 하여금 몸이 아니라 마른 잎사귀 흩날리는 들판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그림이 탄생했다. 어떤 그림은 산맥 같기도 하고, 어떤 그림은 추상 회화 같기도 해서 그 작품이 몸을 그린 것이라고 깨닫기까지 약간의 시간이 필요한 그림이다. 두 번째 개인전 <테오리아 Theoria>에서는 서정적인 풍경 위에 흩날리는 머리카락의 일부분을 그려 넣었는데, 그게 머리카락이라고 깨닫는 데도 마음에 뜸이 좀 들어야 한다. 그는 이 두 번째 개인전을 위해 이렇게 썼다. “‘관 觀’은 ‘견 見’이 아니다. ‘견’이 보여지는 것을 보는 것이라면 ‘관’은 보여지는 것 때문에 감추어져서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을 보고자 함이다. 그렇다면 보여지는 것을 보는 나와, 그것을 넘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 하는 나는 같은 나일까? 만약 보는 주체인 내가 둘이라면 마땅히 그에 따라 대상도 둘이어야 할 것이다.”한 자씩 차곡차곡 마음에 담아보시라. 그는 보여지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모두를 보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그림 안에 풀어내려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그림에 두 가지 대상(보여지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두 개의 공간과 차원이 등장하는 것이다. 재미난 건 그의 두 번째 전시명 <테오리아>다. 테오리아 Theoria. 인간의 영혼이 모든 편견을 없앤 순수한 상태에서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관조 정신을 지칭하기 위해 피타고라스가 사용한 용어다. 테오리아의 상태가 되면 우리도 그처럼 한강 공원 위 푸른 창공에서 풍선 타고 두둥실 날아다니는 러닝셔츠를 보게 될까.
기억 속으로 그는 요즘 주로 옷을 그린다. 알큰한 꽃향기 진동하는 고향 마을과 어린아이의 때때옷을 겹쳐 그리고, 시골집과 할아버지의 황톳빛 모시옷을 오버랩한다. “사람들이 이 그림을 보면서 그 옷을 입고 놀던 과거로 회귀하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고들 해요. 이번 표지 작품도 보고 있으면 강가로 자전거를 끌고 나가던 유년 시절을 맞닥뜨리게 되잖아요. 숨은 기억을 끌어내는 작업이었으면 했는데 반 이상은 성공한 거네요.” 기억이라는 것의 온도 때문일까. 그의 그림은 말간 서정으로 마음을 데운다.
그의 신작 ‘따로, 또, 같이-구름’을 바라보며 나는 또 한번 상상에 빠진다. 작열하는 태양마저 축복으로 느껴지는 초여름 오후, 툇마루에 배 깔고 누워 마당을 내다본다. 구름무늬가 뭉게구름처럼 박힌 이불이 빨랫줄에 걸려 펄럭인다. 이불 속의 구름은 공간 이동, 차원 이동을 감행해 어느새 하늘 위로 둥실 떠오른다. 그 풍경에 취한 내게 어느새 엷은 졸음이 찾아온다.
(왼쪽) ‘따로, 또, 같이-시골집’,117×91cm,캔버스에 유채,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