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두 번째 개인전을 마치고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다는 것이 부담으로 다가왔어요. 기대만큼 해내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에 빠져 있었죠. 그때 <행복>에서 내 작품을 표지 이미지로 쓰겠다는 전화를 받았어요. 조금 속된 표현일지 모르지만 ‘빵 터뜨렸다’ 싶었지요. 그 전화를받고 나서, 뭔가 잘 풀리구나, 더 열심히 해야지 하고 마음을 다잡았어요.” ‘운수대통’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겠다. 스물여섯 살의 서보람 작가는 일년 전 고향 대구에서 짐을 챙겨 서울로 올라오던 날, 아니 그 훨씬 전부터 자신의 작품이 <행복> 표지가 됐으면 좋겠다는 꿈을 가졌다. 누빔 하나하나 섬세한 음양을 넣고 앙증맞은 털 방울과 리본을 달아 곱디곱게 그려낸 하얀 버선. 처음 마주쳤을 때는 선명한 사진 같기도, 세밀한 데생 같기도 하다. 팝 아트인가 싶다가도 민화인가 싶기도 한, 서보람 작가의 1월호 표지 작품 ‘버선’은
전시 시리즈의 한 작품으로 그렇게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신선함이 있었다. 그의 작업실을 둘러보니 어디선가 그림과 똑같은 버선이 등장한다. 그러고 보니 작품으로 보았던 빨간 배자도 침대 옆에 살포시 걸려 있다.
“언니도 미술을 전공하고 진로를 바꿔 규방 공예를 했어요. 대학 시절 언니가 만든 전통 소품들을 보는데 갑자기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때부터였어요. 동양화를 전공하면서도 전통이라는 것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적이 없었는데, 그때 그 버선이 저를 밤새 설레게 했지요. 스무 살, 우리 것의 아름다움에 눈뜨게 한 첫 명품이었어요.” 단지 예뻐서 언니처럼 버선을 짓다 문득 다른 요소를 넣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먼저 버선을 그리고, 그다음 좀 더 욕심내어 붓을 바늘 삼아 모란꽃과 나비 수를 놓았다. 바로 그것이 그의 첫 번째 개인전 의 모티브가 된다. 그의 상상력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명품에 열광하는 사람들에게 명품의 상표가 붙은 옛것을 보여주면 과연 어떨까 생각했지요. ‘우리의 옛것 또한 명품만큼의 가치가 충분하지 않는가?’ 라고 되묻고 싶었어요.” 눈앞에 보이는 화려한 상표에 열광하기보다는 그 속에 담긴 정성과 진정성을 조금이라도 깨닫고 나면, 명품이라면 무조건 선호하는 사고를 조금은 버리게 되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전의 시리즈는 이름 그대로 ‘상상의 수집’을 선보이는 것이다. 엄마가 만들어준 색동저고리, 한 땀 한 땀 지은 배자와 버선, 황학동을 뒤져 찾아낸 고재 목가구는 작가의 머릿속에 고이 모아오던 상상들을 현실화시킨 ‘상상의 집합소’다. 우리 옛것이 잊혀지지 않고 그 아름다움을 오래 간직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그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와도 일맥상통한다. 비록 작고 하찮은 작업일지라도 무언가를 ‘창조’해 나라는 존재가 사라져도 이야기와 흔적을 남길 수 있는, 오래된 물건처럼 말이다.
(왼쪽) 표지의 원본 이미지. ‘상상, 그녀의 컬렉션-버선’, 30×30cm, 장지에 채색, 2008‘
(오른쪽) 보물찾기 3’, 50×50cm, 장지에 채색, 2009
오늘도 한 땀 한 땀, 버선을 짓지요
그의 작품은 하이퍼리얼리즘 hyperrealism(극사실주의)의 일종이다. 하이퍼리얼리즘은 일상 속, 눈앞의 생생한 이미지를 사실화한 것으로 특히 팝아트의 강력한 영향으로 일어난 운동이다. 동양화 재료를 쓰지만 현대적인 소재나 주제를 묘사한 서보람 씨의 작품은 세필을 사용해 무척 정교하다. 마치 사진처럼, 팝아트처럼 느껴지는 사실적인 작품으로 동서양화의 구분조차 모호하다. 가루의 성질을 띠는 분채 물감을 사용하는데, 분채에 아교를 섞어 개면 마치 아이섀도처럼 고체화되어 종이에 그려도 색이 분명하게 나온다. 맑은 색감을 좋아해 동화책을 즐겨 보는 그는 동화책에서 작업 영감을 받곤 한다. 그림으로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데이비드 위즈너, 색채의 마술사라 불리는 브라이언 와일드 스미스의 작품을 보며 언젠간 꼭 동화책을 써보고 싶다는 여문 꿈을 보탠다. 그러고 보니 작품이 참 맑다. 또 작품을 구매하는 컬렉터도 상당히 다양하다. 어떤 이는 아이 방에 둘 거라 말하며 ‘곰돌이’를, 어떤 이는 아내에게 선물하고 싶다며 ‘서랍’을 보자고 말한다. ‘그 샤넬 고무신’ ‘그 구찌 버선’ 이렇게 브랜드명으로 부를 때도 있다. 지난 10월 두 번째 개인전 <보물찾기>전에서 선보인 최근 작품들은 낡고 오래된 전통 가구에서 비밀의 공간을 찾아낸다. 앨리스의 비밀의 통로와 같은 ‘서랍’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밖으로 터져 나오는 꿈만 같은 상상의 찰나. 역사와 전통이 깊은 것일수록 지니고 있는 이야기가 가득할 것이라는 상상에서 비롯된다. “우리 전통은 시각적인 것, 색감도 예쁘지만 그것 못지않게 이야기도 채워져 있어요. 복주머니라니요!” 주머니 안에떻게 ‘복’이 들어 있을까 한동안 상상했다는 그녀. 시리즈 중 ‘오늘밤 꿈에’는 선홍빛 복주머니에서 고흐 자서전과 붓, 곰돌이 인형, 그리고 감자칩, 아이스크림이 쏟아져 나온다. 현재의 소중함, 일상의 의미를 중요시한다는 뜻이 담겨 있는 것. 어찌 보면 크리스마스 양말 같기도 한 그 버선 안에는 또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지, 작가 서보람 안에 내재되어 있는 폭발적인 무언가도 함께 궁금해진다.
동네를 뛰어다니며 고무줄놀이 대신 벽화를 그렸던 꼬마 서보람. 어느새 시간의 벽은 허물어지고 수백 년을 거슬러 올라가 과거의 연인이 되어 한 땀 한 땀 예쁘게 수를 놓고 있다. 아직도 수줍은 소녀 같은 그가 맑은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2010년은 왠지 시작부터 큰 복이 들어올 것 같아요. 새해부터 ‘운수대통’ 입니다” 
화가 서보람 씨는 영남대학교 동양화과를 졸업했다. 2007년 대구 미술대전 특선을 수상. 2008년 첫 개인전 전을 비롯, 다수의 그룹전에 이어 지난 10월 두 번째 개인전 <보물찾기>전을 가졌다.
문의 오엠아트(070-8157-6280, omarthous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