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수한 숯덩이를 낚싯줄로 매달아 공중에 그리스 신전의 아치, 기둥, 계단을 띄운 작가 박선기 씨. 허공에 농담이 풍부한 수묵화를 일필휘지 한 듯한 ‘집합체(Aggregate)’ 시리즈는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간다는 순환의 이치를 칠흑 같은 구조물로 보여준 그가, 몇 년 전부터 순백의 회화적인 조각 작업을 시작했다.
표지 작품 ‘시점 놀이 07-033’은 정면에서 볼 때와 옆에서 볼 때의 모습이 다른 조각이다. 정면에서 볼 때는 안정적이지만 측면에서 볼 때는 기우뚱하고 변형되어 보인다. “재미있는 건 관람객의 반응입니다. 제 작품을 정면에서 감상하다가 측면으로 시점을 옮기자마자, 금방 다시 정면으로 돌아와 바라봅니다. 옆에서 본 테이블이 우스꽝스럽고 불편한 거죠. 우리는 은연중에 관념이 만들어낸 테이블이 진짜이고, 관념에 어긋나게 기울어진 테이블은 진짜가 아니라고 믿어요.” 어른들에게 집이나 사과 따위를 그려보라고 하자. 대부분의 사람이 ‘집’ 하면 네모난 몸체 위에 세모난(혹은 사다리꼴) 지붕을 얹고, ‘사과’ 하면 동그라미 위쪽에 꼭지를 그린다. 실제 사람의 눈높이에서 올려다본 형태의 집이랄지, 반 자른 사과를 그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관념 속에는 정형화된 사물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시점을 바꿔가며 유희해보라’며 ‘시점 놀이’ 시리즈를 만들었다. 시점이란 주제에 집중하도록 하려고 색상과 재질을 감췄다. 하얗게 탈색시키고 재질을 알 수 없게 맨들맨들한 도료를 칠했다. 그는 이렇게 말하며 빙긋이 윙크한다. 사물을 익숙한 대로만 보지 말고, 세상에는 다양한 시점이 있으니 각각의 맛을 즐기라고.
(왼쪽) 박선기 씨가 들고 있는 우산 조각품과 오른쪽의 작품은 ‘시점 놀이 08-07’(2008).
뒤쪽에 있는 흰색 작품은 ‘시점 놀이 08-08’(2008)과 ‘시점 놀이 08-09’(2008).(왼쪽) ‘시점 놀이 08-11’, 2008
(오른쪽) ‘시점 놀이 05-03’, 2005박선기 씨는 다작多作하는 작가로도 유명하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이탈리아, 독일, 미국, 스페인 등지에서 분주히 소개하는 엄청난 양의 작품을 만들지만 그는 늘 여유롭다. 때론 스트레스를 받는다거나 영감이 고갈되었다고 느끼지는 않을까? “작업이 풀리지 않을 때가 있긴 하죠. 하지만 손을 놓아본 적이 없습니다. 계속 만듭니다. 작업은 한 걸음씩, 끈질기게, 죽을 때까지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영감이라는 걸 받으려고 기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여느 작가들이 휴식으로 삼는 여행도 그는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굳이 지친 심신을 보듬을 영감의 샘물을 꼽으라면 자연, 그중에서도 바람이다. 대숲에 이는 바람, 구름을 휘젓는 바람, 그의 얼굴을 스치는 바람에서 안식을 찾는다. 그는 단 몇 가구가 모여 사는 작은 산촌 마을인 경북 선산에서 나고 자랐다. 그래서 때때로 바람이 그리운가 보다.
2005년 12월 <행복> 표지에서도 작품을 선보인 박선기 씨. 그후 그는 요즘 시점 놀이 시리즈의 폭을 넓히고 있다. 오브제의 시점뿐 아니라 ‘공간의 시점 변화’를 시도한다. 이젤 위에 뻥 뚫린 캔버스 프레임을 얹은 나무 조각을 예로 들었다. “프레임 속에 또다시 이젤과 빈 캔버스 프레임이 반복되고 또 반복됩니다. 평면에 가까운 납작한 조각이지만, 보는 사람은 마치 캔버스 프레임 속에 새로운 공간이 열리고 있다는 착각을 합니다.” 시점이 달라지면 평평하고 막힌 공간도 끝없이 넓은 공간으로 보인다.
관찰자의 위치에 따라 소설이나 미술을, 그리고 인생을 얼마나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지. 감흥은 또 얼마나 다른지.“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찰리 채플린의 명언처럼, 예술을 유희하고 인생을 살아갈 때 시점을 바꿔보면 새로운 장면이 펼쳐진다. 그의 작품을 볼 때처럼, 오늘의 일상도 우선 딱 한 발자국만 움직여서 바라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