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청담동 PKM 트리니티 갤러리에서 열린 전시차 내한한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은 은발의 신사였다. 오늘날 세계적인 스타로 부상한 데미안 허스트를 비롯한 영국의 젊은 예술가 그룹 yBa(Young British Artist)를 지도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경쾌한 색감과 흔한 공산품이라는 소재 덕분에 팝아티스트로 불리기도 한다. “전 스스로를 팝아티스트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팝아트는 광고나 상표, 영화 등 이미 만들어진 이미지를 다시 사용하는데 이런 작업과는 거리가 멉니다. 저는 이미지가 아닌 오브제에 관심이 있지요. 그래서 우리 시대의 풍경을 대변할 오브제를 찾는 일에 주력합니다.” 그는 작품이 팝아트와 성격이 다르지만 팝아트처럼 대중과 가까운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고민했다. 앤디 워홀이 그린 매릴린 먼로보다 유명하고 호소력 있는 소재가 무엇일지 말이다. “제 결론은 의자, 신발, 탁자 같은 일상의 오브제였습니다. 이런 평범하고 단순한 물건이 요즘 세상을 명쾌하게 표현할 수 있다고 봅니다. 현대인은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으니 국제적인 언어이고요.”
(왼쪽) 청담동 PKM 트리니티 갤러리에서 열린 전시차 내한한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 뒤에 보이는 작품은 ‘무제(양동이)’(2009)다. 그의 전시는 3월 31일까지 열린다.
(왼쪽) ‘무제(블루)’(2009)‘ (오른쪽) 무제(컵/전구)’(2007)그의 작품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물건을 컴퍼스와 자를 대고 그린 듯 개성 없는 선으로 표현되어 있다. 크레이그 마틴은 두께가 일정한 윤곽선은 공산품의 ‘대량생산’이라는 특징과 잘 어울린다고 설명한다. 일부러 밋밋하게 드로잉한 뒤, 독특한 색상을 입힌다. 그러자 오브제가 일순 특별해졌다. 더 이상 흔치 않은, 유일무이한 존재가 되었다. “의자의 이미지를 그리는 것이지 의자 자체를 그리는 게 아닙니다. 제목이 ‘의자’가 아닌 ‘무제’인 이유도 그 때문이죠. 작가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의자의 이미지’를 묘사하기 마련인데, 제게는 컬러가 그런 역할을 합니다.” 일견 똑같아 보이는 대량생산품이지만 예술가가 재해석하고 새로운 색을 입히자 작품이 되었다. 일찍이 시인 김춘수도 읊지 않았던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
보기와 달리 그의 작업은 손이 많이 간다. 우선 컴퓨터로 밑그림을 드로잉한 뒤, 바탕색을 칠한 알루미늄 판에 이 밑그림대로 테이프를 붙인다. 붓 대신 롤러로 원하는 색상을 채운 뒤 테이프를 떼어내 완성한다. 강렬한 느낌을 살리고자 물감을 가급적 섞지 않고 원색을 쓴다. 물감이 마른 뒤 테이프를 떼어내면 아찔한 원색을 덧입은 오브제가 탄생하는데, 작가는 이 순간이 예상치 못한 기쁨을 준다고 고백한다.
지루한 대량생산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회색빛 현대인. 크레이그 마틴의 작품은 단조로운 일상을 깨뜨릴 힌트 같다. 주위 환경을 탓할 게 아니라 우리 자신이 고유한 색을 지닌 특별한 사람임을 깨달을 일이라고. 사랑하는 이의 속살에서 나오는 빛을 찾아 그 이름을 불러주라고. 
*화가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은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나 미국 예일 대학에서 순수미술을 전공, 1960년경부터 유럽에서 활동했다. 특히 1974년부터 1988년, 1994년부터 2000년까지 영국 골드스미스 대학 교수로 재임하는 동안 yBa 그룹 작가들을 지도했다. 영국 현대미술의 비약적인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1년 영국 여왕에게 대영제국 훈장을 받았다. 그의 작품은 뉴욕 MoMA, 런던 테이트 갤러리, 더블린 IMMA, 오스트리아 국립 미술관을 비롯한 세계 유수의 미술관과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