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개를 모티프로 작업해온 덕분에‘멍멍 작가’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화가 곽수연 씨와 작품 ‘Love Is’(2007).
(오른쪽) <행복> 표지의 원작 ‘다도’(2008).
슬플 때, 강아지만큼 충직하게 주인을 위로해주는 친구가 있을까.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돌아온 날, 베개를 껴안은 채 울고 있으면 강아지가 할짝할짝 눈물을 핥아준다. 토라지는 적도 없다. ‘지금은 바빠서 놀아줄 수 없다’며 눈길을 피해도 조금 지나면 강아지는 언제 거절당했냐는 듯 다시 다가와 볼을 부빈다.
이렇듯 사람과 절친한 동물 개를 주인공으로 삼은 그림은 왜 없을까? 한국화가 곽수연 씨는 대학을 졸업할 무렵 키우던 개 ‘봄이’를 쓰다듬다가 문득 의문이 들었다. 직접 만지면서 골격도 제대로 파악할 수 있고 눈빛도 교환하며 서로 통하는 점도 많은데 말이다. 그날로 도서관에서 개 그림에 대한 자료를 찾았다. 조선시대에도 기르던 개를 그린 그림이 꽤 많았고, 중세시대 화가 반 야크의 대표작인 부부가 손잡고 서 있는 그림에도 중앙에 앙증맞은 애완견이 있다. 이유는 모르지만 언제부턴가 자취를 감추었던 것이다.
곽수연 씨는 그 후 10여 년간 개를 모델 삼아 그림을 그려왔다. 과연 그가 화폭에 담은, 현대 사회를 살고 있는 멍멍이는 어떤 얼굴일까. “크게 두 가지예요. 우리네 심정을 절절하게 담은 개, 그리고 현대인이 처한 현실을 대변하는 개입니다.” 가령 ‘Love Is’라는 작품에서 강아지는 가시투성이 선인장을 꼬옥 끌어안았다. 꼬옥 감은 눈이며 포즈가 꼭 사람이다. 본지 표지 작품 ‘다도’는 작가가 누군가에게 따뜻한 차 한 잔 받고 싶어서 프렌치 불도그 앞에 찻상을 차려준 장면이다. 한편 앤디 워홀 작품이 걸린 기와집, 명품 구두와 백 등이 진열된 배경에 놓인 개는 현대인의 욕망을 상징한다. 명품 소비로는 소금물 거푸 들이키듯 기갈을 해소할 수 없음을 전하는 독특한 민화다.
어떤 주제의 작품이든 곽수연 씨 그림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개의 생동감 있는 표정이다. “개도 감정이 풍부한 동물이라, 함께 살다 보면 정말 다양한 표정을 마주해요. 순간 포착되는 개의 표정을 짧은 글로 메모하거나 크로키를 해둬요. 예컨대 떨떠름한 감을 먹었을 때의 표정, 고개를 외로 꼬고 새침한 표정 등으로요.” 각기 다른 개의 품종으로 캐릭터를 표현하기도 한다. 가령 불도그는 ‘담배 냄새 심하게 나는 돈 많은 중년 아저씨’, 표지에 실린 프렌치 불도그는 ‘눈이 살짝 사시인, 좀 멍한 30대 후반의 젊은이’, 푸들과 치와와는 ‘작고 바들바들 떨어서 보호 본능 일으키는 캐릭터’ 하는 식이다. “사람 사이에는 섬이 있어서 쉬이 다가갈 수 없어요. 그래서 외로울 때 사람을 아무나 덥석 안을 수는 없지만 개는 꼭 끌어안을 수 있죠. 개는 마음을 무장해제시키는 역할을 해요. 또 화폭에 사람 얼굴을 그리면 ‘그가 누구인가?’를 궁금해하지만, 개를 그리면 ‘인간과 마음’을 대입시켜보게 됩니다. 그러니까 개는 사람을 정말 사람답게, 가감 없이 그리게 해주는 고마운 친구예요.”
* 화가 곽수연 씨는 한성대학교 회화과 및 동대학원 한국화과를 졸업했다. 2002년 인사 갤러리에서의 개인전을 비롯, 지금까지 다섯 번의 개인전 및 20여 회의 단체전을 열었다.
* <행복> 10월호 표지 작품 선정은 갤러리 얼의 도움으로 진행했습니다. 이곳에서 지난 9월 9일부터 30일까지 곽수연 씨의 개인전 <개 가라사대>이 열렸습니다. 문의 02-516-75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