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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의 아름다운 집 밀라노에 피어난 오리엔탈 무드
1930년대 밀라노의 고전적 건축에 두 크리에이터의 감각이 스며들었다. 동양의 온도와 유럽의 질서가 공존하는 집. 향과 빛, 재료와 기억으로 완성된 이들의 프로젝트를 소개한다.

크리스티안 프라스카로(왼쪽)와 프란체스코 크리스티아노는 이탈리아 기반의 크리에이티브 컨설턴트이자 인플루언서다. 패션과 인테리어디자인 작업을 한다. 주방에는 특히 오리엔탈 무드가 가득 담겼는데, 이는 둘의 첫 만남 장소인 밀라노의 한 아시안 레스토랑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밀라노 중앙역 인근에 자리한 한 아파트의 문을 열면 도시의 정제된 공기와는 다른 결의 공간이 펼쳐진다. 가죽과 담배, 다크 럼이 뒤섞인 시르 트루동 향초의 짙은 향이 공간을 감싸고, 멀리서 들려오는 보사노바가 여유로운 리듬을 더한다. 조명이 대리석과 오닉스 바닥에 부드럽게 반사되면서, 빛과 그림자가 맞물린 고요하고 관능적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이곳은 패션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프리랜스 크리에이티브 컨설턴트 크리스티안 프라스카로와 프란체스코 크리스티아노의 집이다. 시각과 후각, 촉각이 동시에 깨어나는 이 공간에서는 ‘감각의 조화’라는 표현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1967년 안젤로 만자로티Angelo Mangiarotti가 아르테미데를 위해 제작한 레스보 램프, 그리고 1960년대 금박을 입힌 쌀 종이에 수작업으로 그린 중국 병풍이 눈길을 끄는 침실.
거실에서 바라본 다이닝 공간 전경. 카를로 스카르파가 디자인한 카시나의 테이블, 파올로 곤자토Paolo Gonzato의 2014년 작 게이샤의 페인팅, NM3의 NM07 스툴, 그리고 다카하마 가즈히데의 카시나 체어 가야가 놓여 특유의 오라를 자아낸다.

 

“이 집은 건축가 주세페 마르티넨기Giuseppe Martinenghi가 설계한 1930년대 건물 안에 있어요. 그는 밀라노에서만 건물 1백여 채를 설계한 인물로, 특히 ‘팔라초 보르게세palazzo borghese’ 스타일(상류층과 중산층을 위한 고급 주거 건물)로 잘 알려져 있죠. 우리는 그 시대 건축이 지닌 품격과 역사를 존중하면서도 우리만의 감각을 더하면 더 매력적인 공간이 될 거라 생각해왔어요. 그래서 이곳을 처음 본 순간 반했습니다.”


풀리아 출신의 크리스티안과 나폴리 출신의 프란체스코의 인연은 약 10년 전 우연한 만남에서 시작됐다. “처음부터 이상할 만큼 잘 통했어요. 먹고 싶은 음식도, 듣는 음악도, 좋아하는 집의 분위기도 비슷했죠. 같은 방향을 그린다는 걸 자연스럽게 느꼈어요.” 크리스티안은 함께 살게 된 계기를 이렇게 회상했다.

 

프라마의 월 북셸프 라이브러리로 모던함을 더한 거실. 잔프랑코 프라티니가 1970년대에 디자인하고 타키니Tacchini가 2015년에 리에디션한 소파 세산, 데다Dedar의 패브릭 아모이르 리브레Amoir Libre로 마감한 1950년대 이코 파리시 디자인의 암체어, 그 옆의 주세페 키조티의 핑 II 사이드 테이블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두 사람은 자신의 취향을 그대로 담기 위해 건축가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 직접 도면을 그리고, 재료를 고르고, 구조를 짜며 공간을 완성했다. 전 과정이 이들의 손끝에서 만들어졌다. “함께 살던 첫 번째 아파트도 셀프 인테리어였지만, 이번 공간은 더 넓고 우리의 감각을 좀 더 분명히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집을 처음 본 순간, 크리스티안의 머릿속에는 이미 완성된 그림이 떠올랐다. 20세기 건축가 조 폰티Gio Ponti의 미학에서 영감을 받은 대리석과 오닉스의 패치워크 바닥, 복도를 중심으로 펼쳐질 일명 ‘와우 효과(Wow effect)’까지 머릿속에 그려졌다. “복도는 보통 무심히 지나치는 공간이지만, 우리는 여기를 ‘놀라움이 시작되는 곳’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그는 수십 가지 대리석의 색과 패턴을 조합해 자신들만의 완벽한 구성을 찾아냈다. 덕분에 현관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감각이 깨어나는 듯한 경험이 시작된다.

 

조 폰티가 1953년에 디자인한 수전, 그리고 데다의 패브릭 마가리타스 커튼이 하이라이트인 화장실. 


거실은 영화감독 웨스 앤더슨Wes Anderson의 색감과 건축가 카를로 몰리노Carlo Mollino의 유려한 곡선미가 교차하는 듯한 분위기다. 독창적 가구와 오브제를 섬세하게 큐레이션해 고전과 현대가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공간으로 완성했다. 중심에는 프라마Frama의 월 붃북셸프 라이브러리Book shelf Library 서가가 있고, 잔프랑코 프라티니의 세산Sesann 소파와 이코 파리시Ico Parisi풍 암체어가 마주 보고 있다. 그 사이에는 주세페 키조티Giuseppe Chigiotti의 핑 IIPing II 사이드 테이블과 NM3의 커피 테이블, 벤치가 자리한다. 곳곳에는 아르마니/카사Armani/Casa의 오브제와 무라노 유리 화병이 빈티지 조명과 어우러져 시선을 끈다. 벼룩시장에서 구매한 1960년대 안토니아 캄피Antonia Campi의 도자기는 두 사람이 특히 사랑하는 오브제다. “대부분의 가구는 1930~1970년대 디자인으로, 그 시대의 온도를 그대로 이어갑니다. 즉, 우리는 ‘시간을 초월한 아름다움’에 집중한 거죠. 유행을 따르기보다 오래 머무는 감각을 찾고 싶었습니다.”

 

다이닝룸은 크리스티안과 프란체스코, 그리고 그들 친구들의 아지트 같은 공간이다.
아시안 레스토랑을 닮은 인테리어
이 집에서 가장 돋보이는 점은 공간 전체에 자연스럽게 배어 있는 동양적 감각이다. 그 분위기는 특히 집의 중심인 다이닝룸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두 사람은 이곳을 ‘엔터테인먼트 룸’이라고 부른다). “처음 만난 아시안 레스토랑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그곳은 우리 관계의 시작점이자 상징적 장소였죠. 그날의 공기와 조명 및 온도까지 또렷이 기억에 남았고, 훗날 집을 설계할 때 중요한 단서가 되었어요. 다이닝룸 벽을 라피아와 리넨으로 마감한 것도 그때의 기억을 담은 오마주예요. ‘오리엔탈’은 장식이 아니라, 그 시절의 공기와 질감, 친밀한 분위기를 떠올리게 하는 감각적 연결이죠.”

 

입구와 복도는 크리스티안과 프란체스코가 조 폰티에게 영감을 받아 디자인한 맞춤형 대리석과 오닉스 바닥으로 마감했으며, 찰스 레니 매킨토시Charles Rennie Mackintosh의 힐 하우스 의자(카시나)와 니콜라에 프리삭Nicolae Prisac의 2023년 작 유화 ‘I don’t Know’가 함께 배치되어 있다.


붉은색 카를로 스카르파Carlo Scarpa의 오르세올로Orseolo 테이블은 예산을 초과했지만, 포기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식탁 없이 몇 달을 지내더라도 이 테이블을 기다릴 만한 가치는 있었어요.” NM3의 스툴, 다카하마 가즈히데Kazuhide Takahama의 가야Gaja 체어, 다미아노 그로피Damiano Groppi의 테라코타 컵, 찰리스Charlis의 가니메데Ganimede 조명까지. 서로 다른 개성이 한 장면처럼 조화를 이룬다. 동시에 이곳은 두 사람이 가장 오래 머무는 공간이자, 손님을 초대해 칵테일과 안주를 나누며 밤이 깊도록 이야기를 이어가는 장소다.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즐겨요. 편안하지만, 모든 순간이 세심하게 연출된 저녁이죠. 공간 자체가 하나의 경험이에요. 이곳이야말로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을 가장 솔직하게 보여주는 공간이에요.”


한편 주방은 한결 밝은 크리미 옐로 컬러로 변주한다. 스포티 키친 밀라노Spotti Kitchen Milano가 제작한 브러시드 스테인리스 수납장, 아르마니/카사의 월넛 스툴 레미Remy, 세르조 마차Sergio Mazza의 1960년대 조명, 그리고 USM 할러Haller 서빙 카트가 정제된 질서를 만들어낸다. “우리 집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정돈이에요. 모카 포트나 전자 기기는 절대 밖에 두지 않아요. 사용 후엔 바로 수납장에 넣죠.” 크리스티안의 말이다. 덕분에 주방조차도 언제나 사진처럼 정돈된 모습을 유지한다.

 

래리 스탠턴Larry Stanton이 그린 ‘BOY EARLY 80S’.

 

주방과 이어지는 복도 끝에는 전혀 다른 세계가 숨어 있다. 초콜릿색 벽과 같은 톤으로 처리한 문을 열면 올리브그린으로 통일한 침실이 나타난다. 침대와 커튼의 원단 색에 맞춰 벽 페인트를 조색했고, 맞은편의 거울장은 공간을 끝없이 확장한다. 밤이 되면 세르조 마차의 벽등이 여러 겹으로 빛을 퍼뜨려 몽환적 분위기를 만든다. 금박으로 섬세하게 채색된 1960년대 중국 스크린이 공간의 중심을 잡는다. 욕실은 크리미한 버터 톤 레진으로 마감해 침실의 온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1960년대 안토니아 캄피의 세라믹 세면대 체르비노Cervino, 세르조 마차의 나르치소Narciso 거울 등이 어우러진다. 조 폰티의 1953년 수도꼭지, 샤를로트 페리앙Charlotte Perriand의 라탄 스툴 9 타부레9 Tabouret, 월넛 무늬목 수납장도 고전과 현대의 균형을 매끄럽게 완성한다.

 

안젤로 망자로티의 카라라 대리석 콘솔 에로스, 카차 도미니오니Caccia Dominioni의 램프 포르치노, 필리포 살레르니Filippo Salerni의 벽 조각 폴림파토가 자리한 복도는 마치 갤러리 같다.


“서로 다른 풍경이지만, 한 사람의 옷차림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집이죠. 마치 아버지의 재킷에 어머니의 드레스를 매치하듯요. 이 집을 꾸미면서 인테리어에 대한 열정이 생겼어요. 어쩌면 앞으로 우리의 직업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웃음) 지금의 모습이 완성형처럼 보이지만, 우리와 마찬가지로 이 집도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변하겠죠. 새로운 오브제가 더해지고, 이야기가 쌓이면서 더욱 풍성해질 거예요. 일시적 공간이 아니라 오래 지속될 프로젝트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래된 건물의 품 안에서 시간과 감각, 기억이 켜켜이 쌓여 완성된 이 집은 그들에게 둘도 없는 창작의 캔버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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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백세리 기자 | 사진 Helenio Barbetta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5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