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해주세요.
본문 바로가기
바로 지금, 이 땅 위의 건축을 고민하는 건축가
건축가 조민석이 이끄는 매스스터디스가 지난 1월 영국 서펜타인 파빌리온의 설계자로 선정됐다. 한국 건축가로는 최초다. 영국과 한국을 오가며 막바지 준비에 한창이던 그를 이태원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태원에 위치한 매스스터디스 사무실에서 만난 건축가 조민석. 매년 한 번씩 창고로 가져다 두는 데도 사무실에는 모형과 패널이 가득하다.

조민석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와 뉴욕 컬럼비아 대학교 건축대학원을 졸업했다. 뉴욕과 렘 콜하스의 설계 사무소 OMA에서 일하며 건축가로 기반을 닦았고, 2003년 한국에 돌아와 매스스터디스를 열었다. 이후 픽셀 하우스, 상하이 엑스포 2010: 한국관, 다음 스페이스 닷 원(현 카카오 본사), 스페이스K 서울, 원불교 원남교당, 초루 등 수많은 대표작을 완성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로 자리매김했다. 2014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커미셔너와 공동 큐레이터로 참여해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건축가는 작품이 쌓이면서 일련의 디자인 언어가 생긴다. 금속이 매끈하게 이어진 비정형 건물을 보고 자하 하디드의 설계임을 짐작하고, 정갈한 그리드와 새하얀 파사드를 보고 리처드 마이어를 떠올리는 것처럼. 그러나 매스스터디스의 건축은 선뜻 하나의 장면으로 수렴되지 않는다. 곳곳에 보이드가 뚫린 부티크 모나코의 거대한 볼륨감과 상하이 엑스포 2010: 한국관의 언어가 겹치나 싶다가도 클레이로 빚은 듯한 다음 스페이스 닷 원을 보면 조형성이 더 드러나 보이고, 원불교 원남교당과 스페이스K 서울을 보면서 콘크리트 물성을 아이코닉하게 살리는구나 생각하고 나니, 까만 벽돌 파사드의 페이스 갤러리 서울이 이태원 골목에 배경처럼 녹아든 모습으로 고개를 가로젓는다.

“저는 몇 가지 단어를 화두로 삼고 고수하는 건축가는 아니에요. 28평 규모의 주택부터 3천4백 평 규모의 복합 상업 시설까지 넓은 스펙트럼의 작업이 동시에 공전하죠.” 그는 하나의 프레임에 영속하는 대신 끊임없이 자유로워지기를 택했다. 한국에서만, 이 대지에서만, 그리고 매스스터디스만 해낼 수 있는 것을 언제나 고민한다. 20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그가 비슷한 업역을 지닌 건축가보다 젊게 느껴지고, 시대에 발맞춰간다고 여기는 이유다. 그런 그가 올해 서펜타인 파빌리온의 주인공이 됐다. 서펜타인 갤러리는 매년 영국에 건물을 지어본 적 없는 건축가를 선정해 갤러리 마당에 파빌리온을 짓는다. 올해 파빌리온의 주제는 ‘군도의 여백’. 한옥 마당, 기둥과 주춧돌, 주변과 유기적 관계를 맺는 방식과 같이 한국 건축의 언어에서 비롯한 파빌리온으로 지금 건축이 해낼 수 있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전 세계에서 모인 관람객이 한국의 공간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즐기게 될 스물세 번째 서펜타인 파빌리온이 이제 곧 시작된다.


© 김용관
오설록 농장 티팩토리(2023)
녹차 원재료의 유기농 재배부터 가공, 포장까지 전 공정이 집약된 생산 시스템을 갖춘 장소다. 165m 길이, 2층 규모의 건물은 한라산 정상부터 바다까지 연결되는 경사지에 수평선처럼 조용히 대응한다. 진입부에서는 단층 건물이 단출하게 방문자를 맞이하지만, 바다를 향해 지형이 낮아지며 서서히 전체 볼륨의 위용이 드러난다. 제주 화산암 벽돌의 시멘트와 송이석 골재 비율을 조절해 회색과 붉은색 사이 다양한 색과 질감의 벽돌로 ‘지질적’ 외벽을 시도했다.


Serpentine Pavilion 2024 designed by Minsuk Cho, Mass Studies. Design render, exterior view. Photo © Mass Studies Courtesy: Serpentine
서펜타인 파빌리온 2024: 군도의 여백
‘군도의 여백(Archipelagic Void)’으로 명명한 이번 파빌리온 구조물은 한국의 전통적인 마당에서 연상되는, 지붕이 덮이지 않은 열린 공간을 중심으로 디자인한 다섯 개의 ‘섬’으로 구성된다. 친밀하며 융통성 있는 일련의 구조물이 둘러싸며 정의하는 원형의 빈 공간을 통해 공원의 자연과 생태, 시간과 상호작용한다. 이 다면적인 파빌리온의 개별 구조물은 중앙의 마당 주변에서 갤러리와 강당, 도서관, 티 하우스, 놀이터 등 각각의 목적을 담당하는 콘텐츠 기계다. 이들과 그 사이사이의 외부 공간은 공원과 파빌리온 프로그램의 문턱으로 역할한다. 파빌리온은 6월 7일 공개해 10월 27일까지 전시할 예정이다.


© 신경섭
스페이스K 서울(2020)
마곡 신도시의 그리드 도심에 문을 연, 공원과 곡선으로 이루어진 조형적 미술관. 도심을 가로지르는 녹지 보행로의 결절점에 위치한 도시의 맥락에 맞춰 건물을 둔덕처럼 디자인하고, 옥상까지 공원처럼 조성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자연광이 들어오고 천장이 3m에서 9m까지 점차 높아지는 입체적 전시장으로, 자연과 문화가 공존하는 새로운 공공장소로서의 미술관이다.


© 김용관
주한 프랑스 대사관신축 및 레노베이션(2023)
건축가 김중업이 설계한 프랑스 대사관 건축물에서 대사 집무실(파빌리온)은 원작 설계 대로 충실하게 복원해 다목적 홀로 만들고, 직원 공간은 새로운 규모와 프로그램에 맞추어 증축한 프로젝트. 새로 들어선 건물은 10층 규모의 오피스 타워와 공공 기능을 담당하는 2층 규모, 길이 55m의 수평적 건물의 조합으로 이루어진다. 잿빛 격자형 철골 구조 파사드는 밝고 조형성 있는 본래의 노출 콘크리트 건물이 잘 드러나도록 해준다. 한국계 프랑스인 건축가 윤태훈 소장이 이끄는 사티SATHY와 협력했다.


© 신경섭
© 매스스터디스
원불교 원남교당(2022)
원불교 원남교당은 서울의 복잡한 구도심 속에 위치해 있다.대로변에서 맞이하는 별관과 골목 안쪽의 종교관·훈련관 등 세 동을 신축하면서 건물 사이에 다양한 외부 공간을 조성하고, 여러 통로를 열어주어 도시와 적극적으로 연결함으로써 원불교의 개방적 태도를 구현했다. 한편으로는 대각전과 인혜원 사이의 마당을 잇는 강력한 축을 형성하고, 수행을 위한 정적인 환경을 조성해 불협화음을 이루는 주변을 건축을 통해 적절히 단절했다.


Exterior View of Lawrence Weiner, PEELED PAST THE CORE, 2016, Language + the materials referred to, Dimensions variable © Lawrence Weiner, Courtesy Pace Gallery 사진 © 김용관
Installation View of Robert Nava, Pace Gallery, Seoul, 2023 © Robert Nava, Courtesy Pace Gallery 사진 © 김용관
페이스 갤러리 서울(2022)
이태원과 남산의 접점이자 리움미술관 입구에 위치한 건물 ‘네 개의 중정(Four Courtyards)’을 설계하고, 10년 후 페이스 갤러리에서 인테리어를 의뢰하며 다시 작업한 프로젝트. 벽돌과 유리, 컬러 콘크리트, 금속판 등 다양한 검은색 소재와 덱이 만드는 건물 외부의 공간적 특성을 실내로 들여오고 갤러리가 건물 각 층의 외부 공간으로 확장되도록 했다. 자연광이 비추는 갤러리 공간은 전시 경험을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


“건축은 시작 단계에서 생각한 좋은 의도를 마음에 품고 오래가야 하는 일입니다.”


서펜타인 파빌리온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계시겠어요. 곧 공개를 앞두고 있죠.
사무실에서 디테일을 설계하면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짓는 식으로 굉장히 바쁘게 진행되고 있어요. 멈출 수도, 내릴 수도 없는 폭주 기관차에 타고 있는 기분이에요. 안 피우던 담배도 피우고 나름 초조합니다.(웃음) 그럼에도 ‘아, 이거 언제 해봐’ 하면서 감사한 마음으로 하고 있습니다.

어떤 공간이 들어설 예정인지 소개를 부탁드려요.
군도의 여백이라는 제목처럼 강당과 도서관, 놀이터, 티 하우스 등 각각의 용도가 있는 다섯 개의 아일랜드가 있고 그 사이로 생겨난 외부 공간이 다섯 개, 그리고 가운데에 비워진 마당까지 총 열한 개 공간이 있어요. 여러 사람이 다양한 목적으로 머무르며 편안하게 즐기고 그때그때 시간과 계절에 반응해서 변하는 장소가 되고자 했습니다. 어찌 보면 제가 꿈꿔온 사회예요. 서펜타인 파빌리온이 시작된 2000년 즈음에는 인터넷이나 IT 기술이 세상을 연결하고 서로를 이어준다고 믿었죠. 그러나 지금은 세상을 편리하게 하는 만큼 특정 주의를 구분하고 분열시키기도 합니다. 흩어진 이들을 연결하고 다시 만나도록 하는 것이 지금 건축이 해야 할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조감도를 보면 한국적 모습이 곳곳에서 눈에 띕니다.
지금까지의 서펜타인 파빌리온은 그 자체로 오브제이고, 주변의 숲과 땅은 배경으로만 존재했습니다. 그런데 건축가에게 틀은 땅이잖아요. 우리는 이 땅과 주변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건물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멋진 경치를 바라보기 위해 좋은 위치에 짓는 한국의 정자처럼요. 그래서 최대한 주어진 대지의 끝까지 파빌리온이 뻗어나가도록 하고, 대신 중심을 비웠어요. 오브제 역할을 하던 파빌리온을 한국적 방식으로 해체한 거죠.

이제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 매스스터디스의 시작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요. 사무실을 열 당시에는 어떤 건축을 하고 싶었나요?
그 당시 한국은 서구와는 전혀 다른 평행 우주가 펼쳐지고 있었어요. 계속 커지기만 하던 도시가 정체되거나 쇠퇴하고, 제주도 같은 지역이 갑자기 뜨기도 하면서 춘추전국시대처럼 다양한 방향으로 뻗어가던 때였습니다. 도시의 위상이 어느 하나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 도전 정신을 불러일으켰어요. 해외에서 흡수한 것을 바탕으로 조금 다른 것, 한국에서만 가능한 건축을 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공공 건축을 많이 작업하게 된 계기가 되었겠네요.
제가 커리어를 시작하던 때는 프랭크 게리의 빌바오처럼 화려한 스타 건축가가 온 세상을 아이코닉한 건물로 물들이던 시대였어요. 그런데 저는 그런 것보다 공동주택이나 학교 및 동사무소처럼 눈에 쉽게 띄지 않지만 품질 좋은 건물, 또 대도시의 중심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 있는 건축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래서 초반부터 공공 프로젝트를 꾸준히 해왔어요. 당선이 잘되지 않아서 그렇지.(웃음) 함께 사는 것에 관심이 많아요. 대전대 기숙사, 사우스케이프 직원동도 그런 관심이 바탕이 됐고요.

함께 사는 공공 건축처럼 건축도 수많은 협업으로 완성됩니다. 조경설계 서안, 스탠다드에이 같은 분들과 꾸준히 작업하고 있어요. 이렇게 팀처럼 일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시간이 가면서 쌓이는 장점 중 하나입니다. 각자의 분야를 존경하면서도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고 넘나들면서 편하게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들과 계속 함께 작업하게 돼요. 뭔가 이야기했을 때 “하, 이거 내 영역인데”라고 말하는 사람은 하수예요. 누구나 아이디어는 낼 수 있으니까요.

건축을 해오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동기부여가 되는 요소는 무엇이었나요?
솔직히 말하면 결국은 즐거움 같아요. 가수나 무용가는 공연 당일 모든 것을 터트리잖아요. 건축은 클라이맥스가 반대예요. 처음에 그리고 싶은 모습을 상상할 때 가장 즐겁고 행복했다가, 이후 수년 동안 온갖 고초를 겪으며 그 우주선을 착륙시키죠. 그 과정에서 타협도 하고 만신창이가 되지만, 그럼에도 시작할 때 품은 좋은 의도가 덜 망가진 채로 구현되면 기쁘고, 사람들이 좋다고 박수 쳐주면 또 즐겁고요.

그럼 완성된 건축이 어떤 모습을 보여줄 때 특히 즐거운가요?
건축 안에 건축가의 퍼포먼스가 있는 것처럼 건축 자체도 사물이지만 퍼포먼스를 합니다. 예를 들어 원불교 원남교당은 예배 공간이라 음향 설계를 신경 써서 했는데, 얼마 전부터 공연을 열고 있어요. 의도하지 않은 쓰임새가 생긴 거죠. 이런 것이 기쁨 중 하나입니다. 의도를 엄청 했는데 생각처럼 쓰이지 않아서 섭섭할 때도 있지만, 대신 건축은 시간이 있어요. 페이스 갤러리 건물은 2012년에 완공됐어요. 동네 초입에 위치한 건물이라 중정에서 커피도 마시고 동네와 연결되는 그림을 상상하며 설계했는데, 웬일인지 처음에는 그런 모습이 구현되지 않았어요. 그러다 10년이 지나고 페이스 갤러리가 들어오면서 인테리어를 다시 한번 맡게 됐고, 이후 카페와 갤러리가 제자리를 찾으면서 동네 길목에서 환대하는 공간이 됐어요. 제가 상상하던 모습으로 건축이 두 번째 인생을 살게 된 기분이랄까요. 길 건너에도 건물을 또 하나 짓고 있는데, 별자리처럼 연결돼서 잘 역할하면 좋겠습니다.

아까 한국에서만 가능한 것을 해보겠다는 마음으로 매스스터디스를 시작했다고 이야기했어요. 20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가요? 여전히 그때와 같나요?
지금도 그 마음은 지니고 있어요. 이제는 주변국으로 여기던 남미나 아시아가 조명받고 있습니다. 담론의 변화, 서구의 반성 등 여러 요인이 작용한 거겠죠. 제가 서펜타인 파빌리온을 맡게 된 것도 그런 흐름의 일환일 수 있어요. 꼭 거기에 장단을 맞춘다기보다는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일지 고민하고, 특정 문화 상황에서 또 한국에서 할 수 있는 건축을 정직하게, 진지하게 꾸준히 해나갈 생각입니다. 

글 정경화 기자 | 사진 이우경 기자(인물), 김용관, 신경섭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4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