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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최수인 드러내지 못한 마음
미심쩍다. 그의 그림을 보고 떠올린 첫 단어다. “관계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감정을 연극처럼 캔버스에 풀어놓으며”라는 작품 설명이 무색하게 화면은 이다지도 밝고 우스꽝스러운데 말이다! 찬찬히 뜯어보면 밝지만 어둡고, 우스꽝스러운데 슬픈 그림.

최수인 작가는 1987년 서울 출생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조형예술을 전공했다. 2012년 개인전 <파랑>(이목갤러리)을 시작으로 <그것은 나타나지 않을 것-No Show>(금호미술관), <신의 자리와 거짓말>(공간시은), <니가 마음에 뿔이 났구나>(갤러리가비), <날 보고 춤춰줘>(갤러리조선), <팡팡>(63미술관), <날 보고 춤춰줘-Be stubborn>(킵인터치서울), (아트사이드 갤러리), <너의 빌런>(아트사이드 갤러리) 등을 열었다. 올 9월 아트사이드 갤러리에서 또 한 번의 개인전을 개최할 예정이다.
FIFA 공식 축구장 네 배 크기의 광막한 아트부산 전시홀, 작품 수백 점 속에서 그의 그림을 처음 만났다. 80호 캔버스 그림은,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딱 관찰할 만큼의 거리에서 ‘보편의 눈’으로 바라본 바다 형상인 듯했다. 한 데 좀 이상하다. 바다는 성난 황소처럼 고래 몸뚱이를 치받고, 고래는 으르렁대는데, 그 옆의 나무는 홀로 유유자적인채 나풀나풀 춤춘다. 이 푸른빛 그림에 맴도는 우스꽝스럽고도 기이한 ‘조짐’은 무얼까? 종종 전시 평론이 우리를 더 미궁에 빠뜨리지만 이 글은 업어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미시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은 ‘우리는 모두 극장 위의 배우다. 우리의 일상적 삶은 연극 무대와 같고, 우리는 그 무대에서 연기를 펼친다’고 논했다. 마치 이에 화답하는 듯한 최수인의 작품 세계는 타인을 의식하면서 상황적 자아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대인의 표상이기도 하고, 작가 자신의 페르소나이기도 하기에 관람자에게 공감과 여운을 남긴다.”(2021년 개인전 <너의 빌런> 전시 평론 중)

짐짓 평화로운 푸른빛 캔버스가 감춘 ‘상황적 자아’ ‘타인과의 상호작용’ ‘가면’ ‘연극’ ‘무대’…. 그의 그림이 간단치만은 않겠다는 걸 직감했다. 그리고 작업실에서 만난 그의 손에는 <한국민간신앙의 연구>라는 책이 들려 있었다.


‘Shivers(사랑)’, oil on canvas, 193.9×97cm, 2023. 오른쪽 작품은 9월에 아트사이드 갤러리에서 개최할 개인전을 위해 한창 작업 중인 그림이다.
우리는 오늘 이 문장으로 이야기를 풀어갈 겁니다. 소속 갤러리 홈페이지에 올라온 작품 설명 중 인상적이어서 제가 Ctrl+V 해온 바로 이 문장. “사람과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많은 감정을 연극처럼 캔버스에 풀어놓으며.” 그런데 맨눈으로 보면 바다와 동물과 나무가 먼저 다가오지, 그림에서 ‘많은 감정’은 잘 안 보인단 말이죠.
전부터 인간이 만든 물건은 그리지 않기로 했고, 그러다 보니 자연물이 답이었죠. 누구든 나무를 보면 “나무잖아!” 이렇게 사고가 전개되잖아요. 오해와 거부감 없이 누구에게나 같은 무게로 다가가는 존재가 자연물이니까요. 그래서 제 배우로 삼기 좋죠. 가볍게 제 이야기를 안아줄 것 같고요. 그래서 캔버스 속 자연물은 제가 말하고 싶은 불편한 관계의 주인공이 됐죠. 진실하지 못해 발생하는 불편한 관계요. 제가 말하려는 이야기가 밝지 않기 때문에 그들을 우울한 색깔과 무서운 붓질로 그리고 싶지 않았어요.

본격적으로 감정 이야기를 해볼게요. ‘2015 금호영아티스트’ 개인전 <그것은 나타나지 않을 것>에서 이미 감정의 왜곡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심리를 탐구했고요. 이후 이어진 여러 번의 개인전, 2인전, 기획전에서 심리적 마찰이 화두였던데요. 왜 ‘감정’이라는 테마에 몰두하나요?
누구나 관계 안에서 드러내지 못하는 마음이 있잖아요. 그 순간을 보여주고 싶은 거예요. 다른 꿍꿍이가 있는 대상을 계속 그림으로 보여주는 거예요. ‘아, 내가 진실하지 못하게 살았지. 그런데 진실하지 못하게 살았다는 그 순간조차 진짜인가, 가짜인가?’ 그렇게 그림을 보면서 뭔가 이상한 조짐을 느끼고, 제가 의인화해놓은 대상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면 좋겠다는 바람인 거죠. 저렇게 푸른빛 속에서, 저렇게 즐거운 상황에서 나 혼자 속으로 그르렁대던 적은 없나, 이런 생각을 해볼 수 있잖아요. 간단히 말하면 그런 시간을 제공해보는 거죠. 제가 대학교 3학년 때까지 심사도 제대로 못 받고 뒤처지는 학생이었어요. 사람들 등산하는 구상화만 그려댔는데, 교수님이 지나가는 말투로 그러시더라고요. “네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작업을 해야지.” 그때부터 계속 써온 문장이 이거예요. “드러내지 못하는 마음을 넌 알고 있니?” 그 후로 사람들에게도 묻고 싶었고, 그게 제 작업이 됐죠.


‘Fake Dreamer’, oil on canvas 90.9×65.1cm, 2023.
자, 그러면 “감정을 연극처럼”이라는 설명으로 넘어가볼까요? 감정이 연극처럼 연출될 수 있다는 말이잖아요.
제가 실제로 경험한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캔버스라는 무대 위에 하나의 신scene으로 연출해내는 거죠. 서사를 만드는 게 아니라 신, 미장센을 만드는 것에 가까워요. 어떤 대상을 넣고 상황을 만드는 것이니까요. 사실 제가 작품을 설명할 때 ‘연극’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지만, 제가 만든 캔버스 무대 위에 장소를 구성하는 거니까 ‘연극적’이란 표현도 얼추 맞겠어요. 제 캔버스에는 대개 세 가지 대상이 등장해요. 주인공, 갈등을 일으키는 누군가, 이들을 바라보는 제삼자. 마지막 등장인물인 제삼자는 예를 들면 마을 입구에 선 장승 같은 거예요. 관찰자이면서 중립자이지만 때론 오해 유발자가 될 수도 있죠.

우리나라 민속신앙에서는 도깨비가 주로 그런 역할을 해요. 이걸 우리 삶으로 끌어오면 이렇죠. 나, 나의 주변, 그리고 그 관계를 관조하는 외부 세계. 사실 살다 보면 이 세 가지 대상의 위치가 서로 바뀔 수도 있잖아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의인화된 이 자연물이 감정을 ‘연극처럼’ 풀어놓게 했어요. 아, 이 책요? 우리나라에 민속극이나 샤머니즘적 퍼포먼스가 많잖아요. 마당극 같은 거요. 스토리가 심플하고, 해학적이고, 슬픈데 웃기고, 웃긴데 슬프고, 구복적이고…. 감정의 모티프라든지 모형의 배치라든지 재미를 느껴서 요즘 <한국민간신앙의 연구>를 읽고 있어요.



“드로잉은 누군가에게 보여줄 목적으로 그린 게아닌, 제 손에서 자동으로 나오는 심리적 붓질 같은 것이죠. 어쩌면 제겐 초기 회화가 드로잉 같았어요. 지금은 좀 더 덜어내고, 걷어내고, 더 잘 그린 회화로 내가 말하고 싶은 바를 전달했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이 작가 혼자 일기썼네!’라고 느낀다면 너무 슬프잖아요.”
다시 “사람과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많은 감정을”이라는 표현으로 되돌아가보죠. 최수인의 캔버스 속 자연물은 죄다 화나 보여요. 파도는 으르렁거리고, 구름은 공격적이죠. 나무는 춤추듯 움직이다 멈칫한 순간을 포착한 것 같고요. 저 형상이 작가의 페르소나라고요?
맞아요. 제 작업을 정말 오래 봐온 미술계 종사자가 그러더라고요. “그럼 너는 갈등이 없고 화가 안 나면 그림을 못 그리니?” 진짜 그럴지도 모르죠. 저는 불편한 관계가 좀 많고 갈등도 많은 편이에요. 제가 경험하는 불편한 관계, 그걸 경험하는 제 삶이 좋아요. 좀 과하게 표현하면 생동감 있다고 할까요. 2021년 개인전 작가 노트에도 썼듯이 ‘관계는 회복될 일이 없다’고 믿고 있고요.

하지만 그걸 그림에서만큼은 우스꽝스럽게 표현하고 싶어요. 안정적 구도와 밝은 화면으로요. 물론 화면을 확대해보면 불편한 색도 있고, 의외의 지점에서 슬픔을 느낄 때도 있겠죠. 하지만 일단 거리감을 만들어주고 천천히 들어와보게, 이상하고 불편한 기미를 느끼고 문 열고 들어와보게 하고 싶어요. 어떤 발화점을 만들어주고 싶지, 서사의 흐름은 중요하지 않아요. 제가 무슨 동화를 그리는 건 아니니까요. 정교하게 짠 미장센을 찾아나가는 게 제 목표니까요. 딱 요거 요거 배치해서 사람들이 어느 지점에서 불편한 감정을 느끼면서 동시에 진실함을 체험하게 하고 싶다, 그런 욕구가 있는 것 같아요. 가짜 상황을 연출해주고, 더 가짜처럼 그린 다음, 각자 진실한 순간을 경험하도록 건드려주자 그런 거죠.


타투이스트인 남편과 함께 작업하기도 하는 타투 도안.
6월호 표지 작품 ‘I’m stable’은 제목처럼 안정적으로 보였는데, 자세히 보니 미심쩍은 상황이더군요. 폭포 사이에 개여울을 가장한 말이 보이고, 뇌우가 몰아칠 것 같고요.
앞서 말한 장승 같은 존재가 주인공이면 좋겠다 싶었어요. 우리를 지켜주는 것 같기도, 관찰하는 것 같기도 하잖아요. 폭포 사이 동물이 장승 역할을 하는 대상인데, 말과 사자를 보고 그렸어요. 묘사를 한 게 아니라 우리가 편안하게 느끼는 동물 이미지를 생각한 거죠. 이거 좀 평화롭다, 멋있다 생각하며 들여다보면 이를 드러내고 그르렁대는 상황이고요. 물은 폭포 같지만 가랑이 사이에서 흐르는 오줌 줄기이기도 해요. 사람이 이완될 때 ‘쉬’를 하잖아요. 엄청난 이완과 긴장이 오가는 극과 극의 상황인 거죠. 그래서 색도 일부러 많이 따뜻한 느낌으로 택했고요.


취재 협조 및 작품 문의 아트사이드 갤러리(02-725-1020)

글 최혜경 | 사진 이우경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3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