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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슬가슬 고운 빛깔을 입다 한산모시
누군가가 일러주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법한 초록 잎사위, 깻잎처럼 생긴 모시풀은 여름이면 더욱 싱그러운 푸른빛을 뿜는다. 예부터 모시는 ‘모시고 입는 옷’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귀한 옷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밭에서부터 베틀까지 한산 모시가 태어나는 전 공정은 오로지 사람 손으로 작업한다. 모시 껍질을 벗기고 찢어 실 원료를 만드는 태모시부터 실을 만드는 군모시, 천을 짜는 필모시까지 ‘모시’의 우수성과 가치를 잇는 여인들을 만났다. 전통 소재에 경외심을 지니고 있는 디자이너 아홉 명과 서천 한산을 대표하는 모시 짜기 기능 전수자들이 협업해 선보인 ‘한산모시명품’. 새하얀 모시옷 한 벌, 이불 한 채, 장신구 한 점에서 모시의 미래를 보았다.



디자인 차이 김영진
가장 행복한 오늘, 한산 모시 혼례복

한산 모시는 품질이 우수하고 섬세하기로 유명해 “밥그릇 하나에 모시 한 필이 다 들어간다”고 할 정도로 결이 가늘고 고운 것이 특징이다. 특히 깨끼저고리의 정갈한 맵시는 다른 나라에서 찾아볼 수 없는 아름다움을 지녀 혼례복으로도 손색없다. 한복 디자이너 김영진 씨가 한산 세모시로 지은 혼례복은 16세기 양반들의 대례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 속적삼을 겉으로 입고 단속곳, 홍화와 치자로 염색한 무지기 치마, 거들 치마를 덧입어 볼륨감을 주는 등 자유롭게 믹스 매치해 드라마틱한 효과를 냈다. 저고리는 평소 심플한 디자인의 원피스나 하이웨이스트 팬츠에 매치하면 멋스럽다.

디자인 김인자, 깨끼 바느질 허미희
자연을 담은 옷, 모시 한복

전통 무관의 의복인 방령포를 재현한 한복 디자이너 김인자 씨. 17세기 옷임에도 현대적 감각을 느낄 수 있는 방령포는 소매길이를 짧게 하고 길이를 줄여 활동성을 높인 것이 특징. 소목을 삶은 물로 염색해 은은한 광택과 전통미를 더했다. 격식대로 저고리 위에 덧입었지만 바람이 잘 통해 전혀 답답하지 않고 시원하다.

디자인 김옥현, 모시 짜기 방연옥
일상에 운치를 더하다, 색동 모시 발

모시가 더욱 매력적인 것은 거칠고 성긴 표면 사이로 살랑살랑 바람도, 풍경도 통하기 때문이 아닐까? 천을 짜는 과정부터 디자이너와 장인이 협업해 완성한 색동 모시 발은 중간중간 태모시를 성글게 배열하거나 비워 모시의 천연 질감을 살린 작품. 필모시를 짤 때부터 부분 부분 색동 실을 넣어 다이내믹한 한국의 색이 돋보이게 했다. 동덕여자대학교 디지털공예과 김옥현 교수는 공간을 분리하고 싶지만 답답한 느낌이 싫을 때 이 모시 발을 활용해보라고 조언한다.

디자인과 날염 박영란, 김옥현
하늘을 덮다, 구름무늬 모시 이불

‘마치 구름에 누워 자는 것 같은 이불을 만들어보자’는 디자인의 출발은 명확했다. 다만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구름 패턴을 모시와 어떻게 접목할까 고민한 섬유 작가 박영란 씨는 구름과 모시의 간극을 줄이는 데 ‘색동’을 활용했다. 김옥현 씨의 색동 라인을 더해 만든 구름무늬를 합성 섬유에 디지털 프린트하고, 이 원단을 모시 이불 상단에 장식한 이불은 마치 하늘을 나는 듯 가볍고 시각적으로 시원한 개방감을 주는 작품. 아이 방 이불은 물론 커튼으로 사용해도 좋다.

디자인 채옥희
손목에 쓴 시, 모시 팔찌

금속과 섬유는 전혀 다른 물성을 지니고 있다. 금속은 형태를 잡기 쉽지만 색의 범주가 한정적이며, 섬유는 다양한 색상을 표현할 수 있지만 특정 형태를 잡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섬유 작가 채옥희 씨는 팔찌, 목걸이, 브로치 등의 액세서리를 금속이 아닌 모시 소재로 구현했다. 모시 특유의 빳빳한 소재감을 이용해 구조적 형태를 살린 작품은 그 자체로 조형미가 느껴진다. 한산 모시에 원색 컬러를 천연 염색한 후 입체 장식을 더하니 하나만으로 여름 패션에 포인트를 주기 제격이다.

디자인 이광희, 깨끼 바느질 김효중
반전의 미학, 모시 블라우스

우아하고 기품이 느껴지는 한편 속이 은은하게 비치니 묘한 분위기를 연출해주는 모시. “아무리 못생긴 여자도 모시옷을 입으면 뒤돌아 쳐다보게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모시는 반전의 미학이 느껴지는 소재다. 패션 디자이너 이광희 씨는 모시의 투명한 질감을 살리되 핀턱 주름과 퍼프소매 등 현대적 디자인을 가미한 블라우스를 선보여 로맨틱하면서도 단아한 아름다움을 전했다. 땀 나도 몸에 붙지 않고 바람이 솔솔 통하니 일상복으로도 제격일 듯. 

디자인 김연진, 깨끼 바느질 허미희
시원한 여름 쪽빛, 한산 모시 조명등

등 작가 김연진 씨는 모시가 따뜻한 소재라는 색다른 발상으로 조명등을 제작했다. 은은한 간접 조명을 만들어주는 모시로 제작한 갓을 씌운 펜던트 조명등은 사용자가 자유자재로 형태를 잡는 제품. 나무로 감싼 알전구에 자석을 내장하고, 모시 천으로 감싼 후 자석을 내장한 작은 오브제(나뭇가지 장식 등)로 고정해 연출한다.

디자인 강금성, 깨끼 바느질 김기자
고슬고슬 여름 촉감, 모시 이불

깨끼 장인 김기자 씨의 모시 조각보를 장식한 모시 이불은 빈콜렉션 대표 강금성 씨의 작품. 이불 모서리에 고리가 달려 있어 끈으로 묶어 쓰는 제품으로, 여름에는 모시와 누비이불(상주 명주를 0.5mm 굵기로 누빔)을 고리로 묶어 사용하고 가을에는 모시 대신 명주로 교체, 겨울에는 두 면 사이에 솜을 끼워 쓰는 등 활용도가 무궁무진하다. 특히 조각보를 장식한 모시 이불은 다른 계절에는 커튼이나 발로도 사용할 수 있으니 사계절 유용한 아이템.

디자인 김윤선, 깨끼 바느질 김기자
화려하면서도 담백하다, 색실 누비 장식 손가방과 블라우스

시원하고 편안한 모시옷 한 벌 장만했다면 격에 맞는 소품이 필요할 터. 모시옷에 어울리는 색실 단추를 개발해 큰 호응을 얻은 색실 누비 장인 김윤선 씨는 생모시와 반저 모시 조각을 이어 만든 작은 손가방을 선보여 여심을 자극했다. 세모시의 섬세한 조직을 닮은 색실 누비의 소박하면서도 다채로운 매력을 즐겨보자.


스타일링 서영희 캘리그래피 강병인 모델 현지은 헤어&메이크업 김수경 작품 문의 서천군청(041-950-4431), 한산모시문화관(www.hansanmosi.kr) 

진행 이지현 기자 | 사진 김정한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3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