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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연 이혜순, 한복으로 삶을 짓다
우리의 전통 한복이 단순한 의복이 아닌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갤러리에 전시됐다. 배냇저고리부터 백일복, 돌복, 혼례복, 수의까지 한복은 우리의 삶과 생명을 지탱해주는 생활이었다.


담연의 컬러 매치가 돋보이는 ‘색과 선의 향연’.

몇 달 전 나의 SNS에는 한 장의 인물 사진이 회자되었다. 절친한 나의 S선배가 명절도, 결혼식도 아닌 평범한 날에 한복을 차려입고 외출한 것이 화제가 된 것. 선배는 외출용 한복을 지어 입기로 맘먹고 평소 알고 지내던 한복 디자이너를 찾아갔고, 그는 선배에게 어울리는 색을 골라 노랑 치마와 옥색 고름이 달린 흰색 저고리를 지어줬다. 바로 그 한복을 입고 외출한 첫날 찍어 올린 인증샷은 “멋지다” “단아하다” “곱기가 천생 귀부인이다” 등등 찬사의 댓글로 도배가 된 것이다. 예쁜 건 알겠고 때론 입고 싶기도 한데 정작 외출할 때 입자니 용기가 필요한 옷, 바로 요즘의 한복이다. 내 선배에게 이런 두려움을 깰 수 있게 해준, 일상 한복에 대해 실천 내지는 도전하게 해준 이가 바로 한복 디자이너 담연 이혜순 씨다. 20년 넘게 매일 한복을 입고 ‘연꽃이 핀 못(담연)’이라는 이름처럼 잔잔하되 향기 있게 살아온 그이기에 그와 가까이해온 주변 사람들이 한복을 탐미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것이다. 그는 끊임없는 고증과 탐구로 한복을 지어왔고,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쌍화점> 등의 영화 의상 제작, 2010년 G20 정상회의에서 한복 패션쇼 등 다양한 활동으로 2011년 문화체육관 광부 장관 표창을 받은 국내 최고의 한복 디자이너 중 한 명이다. 전통의 선과 형태를 현대적이고 예술적인 디자인으로 풀어낸다고 평가받아온 그가 최근 한복을 아트의 영역으로 끌어올려 다시 한 번 주목받았다.


웨딩 한복 ‘봄날의 신부’.

지난 11월 30일부터 12월 9일까지 평창동 가나아트에서는 이혜순 씨의 한복을 통해 인간의 일생을 이야기하는 전시가 열렸다. 가나아트 30년 역사상 그림이 아닌 ‘옷’, 그리고 대관이 아닌 ‘초대’로 전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 옷은 사람에게 입힐 때 최상의 가치를 지니지만, 파인 아트의 한 장르로 당 당히 인정받은 것은 분명 특별한 일이다. 사람이 태어나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세상을 뜰 때까지 의복은 그의 삶과 뗄 수 없는 관계를 유지한다. 이혜순 씨는 전통을 재현한 신생아 배냇저고리부터 백일복, 돌복 등의 유아 한복, 혼례식에 입는 활옷과 현대성을 가미한 한복 드레스, 수의 등 인생에서 중요한 시기를 통과할 때 입는 아름다운 한복들을 지어 전시했다. 전시장 입구에 그는 “나는 1900년대 어느 지점에 서 있기를 좋아한다. 무명 싸개와 웃고 있는 아기 소리, 원삼으로 치장한 전통 혼례식장, 제주 해녀들의 물소중이까지…. 한복은 아기의 탄생과 함께 시작되었고, 특별함을 상징하는 의식이었으며, 삶과 생명을 지탱해주는 생활이었다. 역사의 현장을 관찰하면서,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들의 가치를 발견한다. 한복의 발걸음이 여유라는 시간을 만들어냈고, 여유는 곧 문화가 된다.

0.1cm, 0.2cm, 0.3cm 바느질의 차이가 옷의 무게를 달리 만들고, 달라진 옷의 무게는 한복의 움직임을 창조한다. (중략) 한복을 입는다. 자세가 자태가 된다”라고 적었다. 사람 대신 마네킹이 입고 있고, 대나무에 걸려 있고, 고재로 만든 나무 액자 안에 들어 있지만 한복에서는 그 옷을 입었을 이의 느린 움직임이 느껴지고 선 고운 자태가 스친다.

국내 전시와 더불어 지난 12월 초에는 북미 최대의 현대 미술 페어인 아트 마이애미Art Miami 오프닝 퍼포먼스에 초대받았다. 패션으로서는 처음이다. 미국의 유명 큐레이터이자 이번 아트 마이애미의 총괄 디렉터인 버니스 스테인바움Bernice Steinbaum의 초청과 기획으로 진행됐다. 버니스 스테인바움이 직접 고른 열두 벌의 한복을 한 시간 동안 퍼포먼스로 선보임으로써 ‘코리안 아트’를 전 세계에 알리고 미술 컬렉터들의 찬사를 받았다.

이미 화려하면서도 절제미가 돋보이는 한복으로 의복보다는 예술 작품으로 인정받아왔지만, 이번에 아트 마이애미에 다녀온 이후 “가야 할 방향을 확실히 찾았다. 해야 할 일이 더 많다”고 말하는 이혜순 씨. 외국인들에게는 코리안 아트의 파워를 알리고, 내국인들에게는 한복을 한층 더 가깝게 하는 일이 바로 그것일 터. 전시를 둘러보고 나오는 길, 가슴에 두 가지 감정이 일렁인다. 우리 전통 의복의 미적 가치를 다시 한 번 확인한 진한 감동, 그리고 ‘한복을 입는다’는 것에 관한 깊은 생각.

1 소색消色의 완성 ‘설화雪花’.
2 솜 누비 장옷과 풍차를 쓴 여인의 외출.

3
 한복의 지혜를 담아 지은 신생아 옷 ‘담연아’.
4 아트 마이애미 디렉터 버니스 스테인바움 씨가 한복을 입고 이혜순 씨와 함께했다.

사진 제공 담연 



글 구선숙 편집장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3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