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코튼 재고 셔츠를 패치워크해 만든 디자이너 박기수 씨의 드레스 셔츠.
패션, 문화 그리고 래코드 더 이상 입지 않는 유행 지난 옷들이 옷장 가득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아까워서 버리지도 못하는 심정, 여자라면 누구나 이해할 것이다. 이런 상황은 패션 회사도 마찬가지여서 시즌이 끝나도록 팔리지 않고 재고로 남은 제품만 연간 40억 원어치가 넘는 실정이다. 산더미처럼 쌓인 재고 상품은 대부분 소각되는데, 이는 단순히 비용만의 문제가 아니다. 불필요한 생산과 소비, 환경 오염 등의 문제를 야기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낭비에 대해 고심해야 하지 않을까? 래코드RE;CODE는 바로 이런 의문에서 시작한 브랜드다. 버려지는 옷을 새로운 패션으로 재탄생시키고, 최대한 많은 사람과 그 과정을 공유하는 ‘환경을 위한 디자인의 전환’이 래코드의 출발점이다.
지나간 유행은 돌고 돌아 언젠가 다시 오지만, 한번 소비된 옷은 그대로 버려지기 일쑤다. 하지만 래코드는 버려지는 옷에서 새로운 문화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소각되는 재고품을 활용한 리디자인 브랜드 래코드는 매년 40~60억 원어치의 재고 상품을 재구성해 가치 있는 소비를 제안한다. 래코드가 기존 브랜드와 구분되는 점은 환경을 위한 재활용만이 아니다. 옷의 디자인부터 생산, 유통까지 대부분의 공정을 독립 디자이너들과 해외 패션 매장, 나눔 공동체 등 여러 직종의 사람과 협업해 다양한 생각을 공유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래코드의 첫 재활용 프로젝트는 다섯 명의 디자이너가 함께 시작했다. 래코드에 속한 디자이너 팀이 아닌 각자 자신의 레이블을 갖고 활동하는 독립 디자이너들이 참여했는데, 디자이너 박기수와 박윤희 씨, 액세서리 디자이너 이승예 씨와 티셔츠 브랜드 DBSW의 박진 씨, 헨리코튼의 박선주 씨가 첫 프로젝트에 동참했다. 가방 브랜드 쿠론의 윤현주 씨와 영국의 부티크 디자인 회사 정키스타일링은 재능 기부를 했다. 래코드는 이들에게 슈트부터 텐트에 이르기까지 코오롱 창고에 쌓여 있던 옷과 소품을 재료로 주었고, 그 결과 정장 슈트에 아웃도어 점퍼 소재를 포인트로 활용한 외투부터 남성 슈트를 재활용한 우아한 드레스, 여러 개의 주머니로 만든 재미 있는 티셔츠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반영된 개성 넘치는 작품이 탄생했다. 이렇게 해체와 재조립을 거쳐 완성한 옷과 액세서리는 디자이너 개개인의 감성이 명확히 드러나면서도 공통적으로 나눔과 공생의 가치를 담고 있다.
(왼쪽) 스포츠웨어 헤드 재킷의 안감과 가방에서 해체한 소재를 조합해 만든 티셔츠는 디자이너 박진 씨의 작품이다.
(오른쪽) 남성복 캐임브리지의 셔츠와 재킷으로 여성복을 만들었다. 자세히 보면 남성 셔츠의 요소가 담겨 있다.
이러한 협업이 디자인 과정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기존의 옷을 해체해 소재를 추출하고 그것을 가공하는 작업은 일일이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하는 데다 디자이너와 긴밀하게 의견을 주고받아야 완성할 수 있다. 그래서 래코드는 공장에서 대량 생산하는 대신 장 애인과 미혼모 등 사회 소외 계층을 해체 작업에 참여시키고, 뛰어난 기술과 장인 정신을 가진 재봉사들과 함께 완성도 높은 제품을 만드는 방식을 선택했다. 독립 디자이너에 대한 지원과 소외 계층의 일자리 창출, 국내 재봉 기술에 대한 재조명 등 하나의 작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효과는 무궁무진했다. 그리고 그들이 남긴 족적은 그 자체로 하나의 문화를 이룩했다. 낭비가 아닌 가치 있는 소비를 지향하는 래코드는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두려 한다. 건축가나 인테리어 디자이너, 조각가와 일러스트레이터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과 함께 래코드의 아이디어가 재미있게 활용될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또 이러한 협업을 통해 패션과 트렌드에 대한 기존 인식을 바꾸려는 노력이 소수의 사람들에게 국한된 것이 아닌, 사회 곳곳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 함께하는 새로운 문화 운동으로 발전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사진작가 조남룡 씨가 조각가 최영관 씨와 도자 공예가 이택민 씨의 작업실, 그리고 가구 공방 밀로드에서 촬영한 디자이너의 작품들. 모든 공정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진 래코드의 옷은 공방 분위기와 자연스레 어울린다. 코오롱 스포츠의 텐트 천과 고리를 응용한 쇼퍼백은 물론 코오롱이 수입하는 마크 제이콥스의 재고 아이템을 이용해 만든 오트 쿠튀르 드레스 등은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와 상상력이 돋보인다.
새것이 아닌 새로움 매 시즌 새로움을 강조한 트렌드는 자칫 무분별한 낭비를 조장할 수 있다. 우리는 숨 가쁘게 유행을 좇는다. 그 결과 버려지는 옷이 생기고, 그것은 환경을 오염시킨다. 언제나 신상품을 찾으며 새것에 대한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것처럼 무분별한 소비 습관을 가진 탓인지도 모른다.
“환경과 나눔을 생각하는 새로운 가치를 옷에 담고 싶었어요. 패션 브랜드를 넘어 ‘문화를 만드는 옷’이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거지요. 좋은 문화를 자꾸자꾸 만들어나가면서 그것을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싶었거든요. 독립 디자이너들과 협업을 통해 가능성 있는 디자이너를 후원하고, 사회 소외 계층을 제작 과정에 참여시켜 일자리를 창출하며, 그동안 저평가된 국내 재봉사들의 기술력을 세상에 알리는 것도 이제는 패션 기업에서 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해요.작은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이제는 정말 많은 사람이 함께하는 큰 프로젝트가 된 거지요.” 래코드를 기획한 코오롱 인더스트리 FnC의 한경애 이사는 자원을 낭비하지 않는 새로운 디자인, 리폼이 아닌 패션의 재해석, 소외 계층을 참여시키는 생산, 환경을 생각하는 기업, 창의적이고 개성 뚜렷한 독립 디자이너들, 오랜 시간에 걸쳐 쌓은 장인들의 솜씨라는 중요한 키워드를 떠올렸고, 그로부터 발전시킨 생각을 실행에 옮겼다.
1 ‘환경과 나눔의 가치를 공유하는 옷’을 목표로 래코드를 기획한 코오롱 인더스트리 FnC의 한경애 이사.
2, 3, 4 헨리코튼의 재킷, 시리즈의 티셔츠 등 각기 다른 속성의 재료를 조합해 만든 래코드의 옷은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특별한 옷으로 탈바꿈한다.
”회사의 이익이 사회로 다시 순환되는 것은 참 중요한 과정이에요. 래코드가 추구하는 사회 환원은 매출의 몇 퍼 센트를 기부하는 자선 방식이 아니라, 기회를 나누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수혜 대상이 아닌 래코드의 일원으로 참여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굿윌스토어를 통해 장애우들과 소통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시도를 했어요. 또 미혼모, 북한 이주민 등 좀 더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그 관심을 넓혀가고 있지요. 래코드는 이번 작업을 시작으로 그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그 혜택을 폭넓게 나누려고 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착한 일은 재미없고 실천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한편 기업들은 애먼 곳에 돈을 낭비하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사치가 아닌 가치 있는 소비, 기업의 사회적 책임, 환경을 위한 생산처럼 딱딱한 말 대신 이왕 쓰는 돈이라면 착하고 의미 있는 곳으로 흐르면 좋겠다는 말이 래코드란 브랜드를 설명하기에 더 적절한 것 같다.
자료 제공 래코드(1588-7667)
- 아름다운 옷 버려지는 옷에 날개를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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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은 순식간에 바뀌고 우리는 그것을 따라가기 바쁩니다. 넘쳐나는 옷, 유행 지난 옷, 유행에 맞춰 너무 많이 생산한 옷 ….이런 옷은 쌓이고 쌓여 결국 버려지는 안타까운 현실에 처합니다. 나눔의 실천, 환경을 고려한 생산, 낭비가 아닌 가치 있는 소비, ‘래코드’를 소개합니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2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