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센트럴 페리 선착장에 자리 잡은 샤넬 모바일 아트 파빌리온. 세계적인 건축가 자하 하디드 디자인으로 설계한 ‘조립식’ 전시장으로 2월 말 홍콩을 시작으로 세계 7개 도시를 순례한다.
영화배우 장국영의 투신 장소로 유명세를 치렀던 홍콩 최고의 호텔,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이 또 한 번 이목을 끌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에 인근한, 기이하고도 거대한 건축물 ‘모바일 아트 파빌리온’이 시선 집중 대상이다. 마치 UFO를 닮은 이 건축물은‘샤넬’에서 샤넬의 전설적인 아이템인 ‘퀼팅백’(누빔 패턴) 디자인에서 모티프를 얻어 만든 것이란다. ‘샤넬의 칼 라거펠트 기획, 건축가 자하 하디드(현재 가장 주목받는 세계적인 디자이너로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의 설계자) 디자인’이라는 메가톤급 프리미엄까지 겸비했으니 해외 토픽 반열에 오르는 것은 지당하다.
게다가 4월말까지만 이곳에 정착, 정말 비행접시라도 되는 듯 도쿄로 공간 이동을 한다고 하니 마음 급한 인파가 몰려들기 시작한다. 최근 들어 이곳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역시 덩달아 투숙객이 줄을 잇는다. 샤넬의 모바일 아트 파빌리온을 처음 본 것은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1622호에서다.
홍콩 오리엔탈 만다린 호텔에서 바라본 파빌리온 전경. ‘ 도시에 내려온 UFO 같은 선물’이라는 말이 제격일 정도로 인상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1 타바이모의 비디오 아트 작품.
2 윔 델보에 작품, ‘주님, 사랑 그리고 2 샤넬 가방’.
홍콩 시내 한복판에 ‘상륙’하듯 세워진 모바일 아트 파빌리온은 하늘 세상에 있는 코코 샤넬이 지구인들에게 보내온 선물이다. 그 선물의 연유를 알기 위해서는 1955년으로 시간 이동을 해야 한다. 트위드 재킷과 더불어 샤넬이 만들어낸 샤넬 스타일 중 하나로, 만들어진 시점이 바로 1955년 2월이라 해서 이름 붙여진 2.55백bag(마름모꼴로 누빔 처리한 퀼팅백)이 그‘선물’의 씨앗이 되었던 것이다.
브랜드 샤넬은 이 전설의 2.55백을 좀 더 흥미롭게 홍보하자는 취지에서 이를 모티프를 삼은 프로젝트를 기획한 것.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만들어낸 것이 바로 ‘파빌리온’. 5백 개의 패널로 이어 붙인 조립식 건물이 마름모꼴로 정교하게 누빈 퀼팅백을 닮았다. 겉모습뿐만 아니다. 홍콩을 시작으로 도쿄, 뉴욕, 런던, 모스크바, 파리 등 전 세계 7개 도시를 마치 유목민처럼 순회하는 대장정 역시 2.55백의 ‘맥락’과 맞닿아 있다. 2.55백은 최초로 어깨에 메도록 만든 핸드백(금속 체인에 가죽 꼬임의 줄을 달았다). 이는 당시 가방을 손에 쥐고 옴싹달싹 못하던 여자들에게 마치 수갑이라도 풀어준 듯 파격이었다. 샤넬의 이러한 시도는 손을 풀어줄 테니 몸도 마음도 홀가분해지라는, 손이 가방에 매여 있듯 그리하지 말고 자유를 찾아 나서라는 응원과도 같았다. 퀼팅백의 겉태를 닮은 파빌리온은 속내 역시 그것의 자유심自由心이라는 원형질을 안고 태어난 것이다.
3 피에르&질의 작품.
4 파빌리온 전시장은 50분 동안 산책하며 체험하게 된다.
5 샤넬의 2.55백을 길이 4m, 높이 1.2m로 대형화시킨 실비 플러리의 ‘크리스털 코스튬 코만도’.
6 샤넬을 향한 여자들의 욕망을 익살스럽게 표현한 블루 노우즈의 비디오 아트.
여자들에게 자유를 가져다준, 출신성분부터 선물이었던 2.55 퀼팅백에 대한 오마주로 탄생한 ‘샤넬 모바일 아트 파빌리온’ 역시 지구인에게 파격적인 선물이라 할 수 있다. ‘예술적인’ ‘자유로운’ ‘도전적인’ 등과 같은 형용사로는 부족한, 그 앞에 ‘너무도’라는 부사를 붙인다 해도 흡족하지 않은 샤넬의 정신과 철학에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적인 브랜드로서의 자신감과 파워로 발효된 거대한 조형물을 ‘누군가’만이 아닌 ‘누구라도’ 즐기도록 했다.
모바일 아트 파빌리온이 거대한 선물 상자라면 이곳에서 20명(소주 타오는 별도의 매장에서 전시)의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빚어낸 작품은 상자 속에서 반짝이는 보석과도 같다. 마이클 린, 로리스 체키니, 타바이모, 다니엘 뷔렌, 레안드로 에클리히, 실비 플러리, 블루 노우즈, 아라키, 양 푸동, 데이비드 레벤탈, 윔 델보에, 파브리스 이베르, 이불, 수보드 굽타, 소피 칼, 카미, 스테판 쇼어, 오노 요코 등 그 이름만으로도 찬란하게 빛나는 아티스트들이 저마다의 작품을 이곳에 풀어놓은 것. 자하 하디드가 그러했던 것처럼 이들 역시 퀼팅백을 자유롭게 해석했다. 세로 29m, 가로 45m에 700m2가 되는 파빌리온 전시장을 따라가면서 이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이들을 한데 모은 것만으로도 ‘기적’적인 이 전시는 그것을 체험하는 방식 역시 혁신적이다. 단순히 조형물의 나열이 아닌 이야기의 줄거리를 따라 서 있는 작품들을 관람하는 데 꼼짝없이 50분이 소요된다. 전시장 입구에서 나누어준 MP3 플레이어에서 흘러나오는 사운드워크Soundwalk에 인도되어 마치 유람하듯 관람의 길을 떠나게 된다. 프랑스 아티스트 스테판 크라스니안스키가 만든 사운드워크는 샤넬 모바일 아트 파빌리온 전시의 또 다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전시를 관람한 이들의 한결같은 감상평에 사운드워크에 대한 칭송이 빠지지 않는다. 중저음의 신비로운 음성(프랑스 여배우 잔 모르의 음성으로 녹음, 한국어로 된 사운드의 경우 그와 가장 비슷한 음성을 찾은 것이라고)은 마치 한 편의 영화를 타고 흐르는, 그래서 그 메시지가 더욱 분명해지게 하는 음악과도 같았다. 보이진 않아도 그 향기만으로 충분한 샤넬의 향수에도 소리가 있다면 바로 그렇지 않았을까.
1 로리스 체키니의 ‘유동 크리스털’. 2만5천 개의 크리스털을 이용, 샤넬 2.55 퀼팅백의 다이아몬드 모양을 재현.
2 홍콩 로드숍에서 전시된 소주 타오의 작품.
3, 4 전시 작품 중 가장 주목을 받았던 한국 작가 이불 씨와 그의 작품 ‘광년’. 당대의 이불과 희대의 샤넬이 조우하는 현장이었다.
interview
샤넬 모바일 아트 전시에 참가한 아티스트 중 가장 주목받은 작가 중 하나는 다름아닌 한국인 아티스트 이불 씨.‘광년(Light Year)’이라는 제목으로 다양한 색상의 여러 가지 샤넬 가방의 집합으로 이루어진 왕관을 쓰고 있는 작품으로, 그의 아틀리에가 있었던 캉봉 31가의 유명한 계단을 재현, 샤넬에 대한 찬사를 대신했다.
당신과 샤넬의 조화는 당대의 아티스트와 희대의 디자이너의 만남이라 생각한다. 당신의 이번 전시 참여가 흥미롭다.
누군가의 인생에 접근하는 것으로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너무도 유명한 사람이기에 오히려 더 잘 몰랐던 거 같다. 이 작업은 샤넬을 해석했다기보다는 오히려 샤넬이라는 여자를 만나는 과정이었다.
18명의 작가들이 ‘샤넬’이라는 공통된 주제를 가지고 만났다. 이번 전시 참여 아티스트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누군가와의 공통점을 좀처럼 찾기 힘들다는 것이 공통점이 아닐까? 이 전시가 나로 하여금 더 설레게 했던 것은 그 어떤 제한도 없었다는 것이다. 온전히 이불이라는 사람, 나의 작업을 보여줄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었기에 자유로웠다.
만약 마드무아젤 샤넬이 이 전시를 봤다면 어떤 이야기를 했을까?
이 전시의 가장 큰 매력은 자유롭다는 것과 새로운 도전이었다는 것이다. 그의 가장 큰 위대함이 바로 그것 아니던가. 글쎄,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그건 그의 자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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