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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맛있다 채소 도시락
예로부터 풍부한 채소 문화를 향유하던 선조들의 채소 사랑은 지극하기 그지없었다. 한 폭의 민화처럼 아름다운 채소 도시락을 손에 들고 봄나들이 가자.

보랏빛 향기, 가지
삼국시대부터 현재까지 오랜 세월 우리와 함께해온 채소. 신라산 가지는 맛이 달다고 중국에서도 유명했을 정도다. 고려 중기 문인 이규보가 <가포육영>에서 여섯 가지 채소 중 으뜸으로 꼽은 것이 바로 가지였다. “자색 바탕에 홍조를 지녔으니 어찌 늙었다 할 수 있는가. 꽃과 과일을 같이 즐기기는 가지만 한 것이 어디 있는가. 생으로도 먹고 익혀서도 참으로 좋구나.” 여러 가지 조리법으로 즐긴 가지의 매력은 생각 이상으로 다채롭다.

성광명 작가의 1단 합 원형 도시락은 조은숙갤러리(02-541-8484) 판매.
매실청염장가지볶음
가지(1개)는 한 입 크기로 썰어 천일염에 15분간 절인다. 절인 가지는 흐르는 물에 헹군 후 키친타월로 가볍게 닦으며 물기를 제거한다. 달군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가지와 꽈리고추를 넣고 볶다가 멸치 액젓(1큰술)과 매실청(1큰술)으로 간해 완성한다.


진미 끝의 맛, 오이
아삭아삭한 식감으로 여름철에 더 맛있는 채소, 오이. 우리나라에는 1천5백여 년 전 삼국시대에 중국에서 들어온 것으로 추측한다. 조선 시대 최고의 서예가 추사 김정희는 세상의 모든 진미를 맛보고 난 후에 찾는 가장 맛있는 음식으로 꼽은 바 있다. 그는 시에서 자신을 ‘식탐 낳은 노인’이라고 칭할 정도로 까다로운 미식가였는데, “최고로 좋은 반찬이란 두부, 오이, 생강과 나물이다”라는 말을 남긴 것을 보면 소박한 오이야말로 미식의 끝이 아닐까.

이기조 작가의 12각 3단 합 백자 도시락과 황아람 작가의 격자 모양으로 엮은 형태의 투톤 합은 조은숙갤러리 판매.
홍고추를 더한 오이숙채
오이(1개)는 손가락 크기로 잘라서 천일염에 15분간 절인다. 절인 오이는 흐르는 물에 헹군 후 물기를 꼭 짠다. 달군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오이와 홍고추(적당량)를 넣고 맛간장(1큰술), 맛술(1큰술)로 간한 후 볶다가 오이가 익으면 들기름(1작은술)을 뿌린다.


배처럼 시원한 무
우리에게 익숙한 무는 삼국시대부터 일찍이 우리 밥상에 자리 잡았다. 고려 중기 문인 이규보의 <가포육영>에는 순무에 대한 시도 실려 있는데, “땅속의 뿌리는 날로 커지고 서리 맞은 후에 수확하여 칼로 베어 맛보면 배 같은 맛이네”라고 무 맛을 표현했다. 한편 <홍길동전>의 작가로 유명한 허균은 조선 최고의 채소 중 하나로 무를 꼽으며, 맛이 배와 같고 물기가 많은 나주 무를 으뜸으로 쳤다. 무 중에서도 붉은빛이 아름다운 홍무(순무)는 민화에도 종종 등장할 정도로 사랑받은 채소다.

이세용 작가의 연리문 도시락은 조은숙갤러리 판매.
로즈메리 소금의 순무구이
순무(1개)는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고, 2등분한다. 팬에 자른 단면이 닿도록 순무를 놓고 약한 불에 서서히 익힌다. 단면이 익으면 로즈메리 소금과 로즈메리 허브를 약간씩 넣고 마저 익힌다.


최고의 약초, 버섯
“산에서 나는 보약”이라 일컫는 버섯이 우리나라 문헌에 처음 등장한 것은 삼국시대이고, 고려 중기 문신 이인로의 <파한집>에 송이버섯을 가리키는 ‘송지’라는 단어가 구체적으로 나온다. 고려 때 버섯의 식용법이 개발되어 조선 시대에 완전히 부식으로 자리 잡은 채소라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의약서 <향약구급방>에 마고, 즉 표고버섯이 처음 등장하는데, 버섯의 종류·특징·약용법을 기록해 옛날부터 버섯이 귀한 식재료였음을 알 수 있다.

허명욱 작가의 옻칠 원형 도시락(동함)은 조은숙갤러리 판매.
산초 향의 제주표고 BBQ
마른 표고버섯(7~10개)을 찬물에 담가 24시간 불린다. 수분을 충분히 머금은 표고버섯은 키친타월로 가볍게 물기를 제거한 후 기둥을 자른다. 간장(2큰술), 맛술(1큰술), 흑설탕(1작은술), 멸치 액젓(1작은술), 산초 가루(1작은술)를 섞어 매리네이트할 소스를 만든다. 손질한 버섯을 소스에 30분간 재운 후 달군 팬에 굽는다.


모두에게 이롭고 유용한 콩
콩을 사랑한 학자 성호 이익은 가난한 백성에게 유용한 곡식으로 콩을 예찬했다. <성호사설>에 “곡식이란 사람을 살리는 것으로 주장을 삼는다면 콩의 힘이 가장 큰 것이다”라고 기록했다. 콩은 두부를 만들고 남은 비지로 국을 끓여 먹을 수도 있고, 싹을 틔워 콩나물로 먹을 수도 있으니 이보다 유용한 곡식이 있었겠는가. 사대부 역시 두부를 맛과 향, 색, 모양, 간편함 등 오미를 갖춘 음식이라고 칭송했다.

허명욱 작가의 1단 합 도시락은 조은숙갤러리 판매.
연근 칩 올린 구운 두부
수분을 90% 이상 제거한 두부(1모)를 한 입 크기로 썰고 소금으로 간한 후 직화로 굽는다. 들기름을 골고루 바르고 연근 칩을 올린다.


재산이 되기도 한 미나리
무릇 나물 민족인 우리에게 봄나물이란 찬란한 봄의 맛이기도 하다. 조상들의 봄나물 사랑은 더욱 극진했다. 고려 말기 학자 목은 이색은 자신을 ‘미나리 먹고 햇볕 쬐던 늙은 시골 농부’라고 표현하기도 했는데, 봄나물을 즐겨 먹고 술을 즐기며 인생을 관조하며 살던 풍류가 담겨 있다. 한편 조선 후기에는 상품 작물의 재배가 일반화되면서 도성 안의 농민은 텃밭을 가꾸어 채소를 재배했다. <천일록>을 쓴 조선 후기 농학자 우하영은 “미나리 두 마지기를 심으면 벼 열 마지기 심어서 얻는 이익을 올리고”라고 적었으니, 상품 가치까지 높던 채소가 바로 미나리다.

박성철 작가의 옻칠 정사각 도시락은 조은숙갤러리 판매.
미나리우엉밥
제철을 맞아 질감이 보드라운 미나리는 날것 그대로 쫑쫑 잘게 썰어서 밥에 넣고 소금, 들깻가루, 들기름을 약간씩 넣어 섞는다. 그 위에 구운 우엉을 올린다.


보기에만 어여쁜 줄 알았던 토마토
조선 시대에는 다른 나라로부터 다양한 채소가 유입되어 부식류가 더욱 발달했다. 그중 하나가 조선 시대에 처음 기록된 토마토다. 조선 시대 유학자 이수광이 쓴 <지봉유설>에 토마토가 ‘감 시枾’ 자를 쓴 ‘남만시’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 즉 남쪽 오랑캐가 전한 감이라는 뜻으로 임진왜란 전후에 들어온 것으로 추측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에 관상용 식물 정도로 생각하다가 17세기 이후 식용으로 널리 쓰였다.

최기 작가의 1단 합(황춘경칠)은 조은숙갤러리 판매.
대추토마토 겉절이
석류 식초(2큰술), 홀그레인 머스터드(1큰술), 간장(1작은술), 까나리 액젓(1작은술)을 섞어 양념장을 만든다. 반으로 자른 대추토마토(10개)와 비타민에 양념장을 넣고 골고루 버무려 완성한다.

글 이승민 기자 | 사진 이우경 기자 요리 장진아(베이스이즈나이스) | 스타일링 민송이·민들레(7doors) 민화 하송정(청림화실) | 참고 도서 <채소의 인문학>(따비)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1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