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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타라 김수진 대표 살고 싶은 곳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한다
“어느 도시에서 살 것인가?” 하는 물음은 결국 “어떤 삶을 살 것인가?”로 연결된다. 나고 자란 고향 대전에서 라이프스타일의 새로운 감도를 선보이고 싶다는 김수진 대표. 머티리얼부터 홈 퍼니싱까지 타임리스 디자인과 아트 신의 견고한 취향 및 가치를 이야기하는 ‘공간 타라’는 스타일을 넘어 생활철학의 격전지를 꿈꾼다.

대전에 오픈한 라이프스타일 문화 공간 ‘공간 타라’. 성큰 이끼 정원이 고요하고 묵직한 감동을 전하는 지하 갤러리 공간에는 김수진 대표가 컬렉션한 미드센추리 모던 빈티지 가구와 조명, 작품, 도자 오브제 등을 전시했다.
복층 펜트하우스의 보이드 구조를 살려 탁 트인 개방감이 돋보이는 거실&다이닝룸. 마치 떠 있는 듯한 구조적 계단이 공간에 입체감을 더한다.
대전광역시는 대덕연구개발특구,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가 조성된 과학도시이자 국가기관 본청이 자리한 행정 도시다. 전국 어디든 자동차와 철도로 2~3시간 내 도착해 교통·지리적 이점이 있지만, 특별한 관광 콘텐츠가 없다는 인식 때문에 ‘노잼 도시’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재미가 없다는 것은 사람을 확 끄는 매력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공간 타라’가 자리한 대전 도룡동은 저희 부부의 학창 시절 추억이 깃든 곳이에요. 결혼 후 남편 사업의 본거지인 청주에 살다가 2009년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어요. 건설자재 수입·유통을 하는 남편은 강원도 고성부터 해남 땅끝마을까지 전국에서 안 가본 곳이 없는데 언제나 대전, 대전에서도 도룡동을 가장 살고 싶은 동네로 꼽았죠.”

도시의 정체성은 사용자, 즉 구성원의 라이프스타일로 구현될 때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도룡동은 1970년대부터 외국 학자와 연구원의 사택을 중심으로 형성된 조용한 주택가로, 나지막한 산세와 대로를 중심으로 단아한 벽돌식 주택과 카페·레스토랑 및 앤티크 가구점 등이 어우러진 것이 특징이다. 최근 대전신세계 아트 앤 사이언스와 호텔 오노마 오토그래프 컬렉션 오픈 등 개발 이슈와 맞물려 높은 건물이 하나둘 생기고 있지만, 여전히 옛 동네의 고즈넉한 정취를 즐길 수 있다.


백자, 분청, 가야토기까지 하나둘 모은 다완·다관 컬렉션.
게스트룸에서 바라본 거실. 허명욱 작가의 아톰 작품이 마치 수호신처럼 공간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남편과 제가 나고 자란 고향 대전이 심심한 도시로 점철되는게 안타까웠어요. 도시는 생물이죠. 도시 안에 있는 동네 역시 성장과 쇠퇴기를 겪지만, 몇몇 사람의 노력으로 다시 활력을 불어넣을 수도 있으니까요. ‘공간 타라’는 일명 도룡동 사랑방 프로젝트로 시작했어요. 미국 포틀랜드나 스웨덴 말뫼 등 지방 도시가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를 선도하며 로컬이라는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은 것처럼 대전 역시 대전다움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도시 기획자의 거대한 담론보다는 애정을 갖고 있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 저희 부부가 좋아하던 정취와 문화를 함께 즐기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기획했죠.”


게스트룸 베란다 공간을 다실로 구성했다. 창문 아래 우성이산을 바라보며 마치 리조트에 온 듯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다탁은 다인앤살리스에서 제작, 천장에서 내린 무쇠 주전자와 높이를 맞춰 화로를 구성했다.
머티리얼에서 홈 퍼니싱까지, 집의 모든 것
타라Tara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 소유의 농장 이름이다. 소설 속 타라는 단순한 농장이라기보다 어머니 대지로서 고향, 정신적 삶의 지주 의미를 담고 있다.

“빨간 벽돌집이 있던 자리에 새로 건물을 지으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점은 동네 풍경과의 조화였어요. 디자인을 뽐내는 설계보다 원래 그 자리에 있던 것처럼 담백하고 우직하게 자리 잡길 원했죠. 건축 설계는 나우건축, 인테리어 설계는 이건축연구소, 조경은 산에들에에서 맡았어요. 내외부 모두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하고, 창문 등 디자인 요소와 마감재의 질감까지 모두 최소한으로 덜어낸 것이 특징이에요.”

건물은 지하 1층과 지상 5층 규모다. 1·2층은 프리츠한센 쇼룸이 자리하고, 3층은 리브리스Libris 라운지와 애술린 Assouline 북 코너로 구성했다.


편백나무 욕조는 남편 서영진 씨가 김수진 대표를 위해 일본에서 공수했다.
본격적으로 김수진 대표의 취향과 감도를 소개하는 공간은 리브리스라는 브랜드로 통칭했다. 지하 1층 리브리스 갤러리는 이끼 정원을 품은 전시 공간으로 장 프루베, 샤를로트 페리앙, 앙드레 소르네, 마리오 보타 등 미드센추리 모던 빈티지 가구 컬렉션과 세르주 무이의 조명, 그림과 도자, 작가 소품 등을 선보인다. 4층 리브리스 홈은 좀 더 캐주얼한 홈 컬렉션을 소개할 예정. 5층은 김수진 대표의 집무실로, 정원과 다이닝 섹션을 구성해 리빙과 관련한 다양한 소규모 모임과 클래스 등을 진행할 계획이다.

“공간의 또 다른 볼거리는 전 층을 아우르는 아트 컬렉션이에요. 지하 갤러리와 집무실은 물론 프리츠한센 쇼룸과 계단실, 화장실까지 페인팅과 도자 등 다양한 미술 작품을 매치해 단순한 쇼핑 이상의 감도를 경험할 수 있죠. 저희 부부가 오랫동안 컬렉션한 작품, 빈티지 가구를 비롯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셀렉션한 공예 오브제와 생활용품, 좋은 향까지 공간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취향의 감각을 높일 수 있길 기대해요.”


공간 타라 5층에 자리한 김수진 대표의 집무실. 책상과 다이닝 테이블은 이탈리아 미드센추리 모던 제품으로, 가장 좋아하는 가구이기도 하다. 집무실 맞은편은 탁 트인 옥상정원으로 폴딩 도어를 개방해 소규모 파티나 모임을 즐길 수 있다.
건물을 두루 경험하고 즐기길 바라는 마음은 계단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노상호 작가를 비롯해 권순익 작가, 김재용 작가, 허수영 작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기본은 바탕, 집으로부터
공간 타라의 경쟁력은 50년 동안 하우징에 필요한 목재와 다양한 마감재를 수입, 유통하는 모회사의 히스토리에서 시작한다. 사업을 하면서도 골프 같은 취미 하나 갖지 않고 오직 일에만 매진하던 남편 서영진 대표가 유일하게 즐긴 취미가 바로 인테리어다.

“시댁이 보수적이어서 아이들이 다 큰 후 집을 장만했어요. 신축 아파트였는데, 남편이 인테리어 잡지를 한 아름 사 와서 집을 고치자고 하더라고요. 그때만 해도 새 집을 뜯어 고친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때였어요. 처음에는 맹목적으로 예뻐 보이는 것, 유행하는 마감재를 욕심껏 다 사용했어요. 두 번째 집도 세번째 집도 아파트였는데, 생활에 맞춰 동선을 짜고 구조를 맞추는 데 집중했어요. 전문가가 아니니 시행착오도 수없이 겪었어요. 유행하는 소재나 인테리어 트렌드는 내가 살 집에는 신중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걸 비싼 수험료를 내고 배웠죠.”


세르주 무이의 브라켓 조명과 조선 시대 말기 은 상감기법의 고가구가 멋스럽게 어우러진다.
현재 사는 집은 도룡동의 주상 복합 아파트로 6년 전 이사하면서 레노베이션을 진행했다. 공간을 어떻게 꾸밀지보다 집의 기본 바탕이 되는 마감재를 선택하는 데 집중한 덕에 초고층 아파트지만, 마치 리조트에 온 듯 편안한 무드를 자아낸다. 일등공신은 바로 규조토 벽 마감과 원목 바닥재. 고층 아파트에 페인팅을 하면 건물이 움직이면서 갈라짐 등 하자가 발생하는데, 규조토는 탄성이 있어 갈라지지 않고 흡습성도 좋다. 바닥은 포슬린 타일, 대리석 등을 모두 거쳤기에 오크 원목 마루로 선택했다(포슬린 타일은 아무리 정교하게 시공하더라도 탄성이 없어 전체적으로 뒤틀리는 것은 물론, 바닥 울림이 있어 아파트에서는 적당하지 않다).

“복층 펜트하우스라 기존 아파트보다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설계할 수 있었어요. 레노베이션하면서 가족회의에서 각자의 로망을 하나씩 얘기했는데, 다들 원하는 게 분명하다는 것을 알았어요. 아파트지만 주택의 입체적 평면을 원하던 남편의 로망은 ‘멋진’ 계단이었고요, 노매드적 삶을 사는 아이들은 아무것도 없는 (기능적인) 방, 저는 다실과 넓은 세탁실을 원했죠. 기존 계단실을 막아 창고로 바꾸고, 게스트룸 베란다를 다실로 재구성했어요.”


수미 작가의 긴쓰키(金継ぎ, Kintugi) 아트 오브제, 빈티지 글라스, 1960년대 이탈리아 포스터, 토기 등 김수진 대표의 생활 미감을 엿볼 수 있는 오브제와 홈 컬렉션.
현관으로 들어서면 오른편으로 마스터 베드 존을 구성. 작은 드레스룸을 침실로 바꾸고 안쪽에 히노키 욕조를 배치했다. 보통 침실로 사용하는 넓은 방은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서재로 꾸몄다. 현관에서 복도를 따라 왼쪽으로 들어서면 거실과 주방이 나타나는 구조. 복층 집의 보이드 구조를 살려 높은 천장고가 돋보이는 거실은 페인팅, 조각을 망라한 다양한 미술 작품이 펼쳐진다.

“다실은 존재 자체로 위로가 돼요. 집 인테리어를 할 때도, 공간 타라를 기획할 때도 머리를 비우고 싶을 때 다실에서 차 한잔 내려 마시면 생각이 정리되곤 했죠. 집에 대한 기준과 관심은 공간 타라를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지만, 공간 타라를 기획하면서는 제 취향 너머 대중적 취향도 살펴보게 됐어요. 한 단계 성장한 거죠(웃음).”


PK 데이베드, 테이블, 라운지체어로 구성한 1층 프리츠한센 쇼룸. 정영주 작가의 작품 ‘꿈’과 통원목 벤치가 공간의 감도를 높인다.
3층 리브리스 라운지. 애술린의 아트 북과 김수진 대표가 셀렉션한 다양한 라이프스타일 오브제를 만날 수 있다.
취향과 감각을 나누는 기쁨, 모두의 집
김수진 대표는 공간 타라를 구상하며 매주 주말 서울을 찾았다. 삼청동, 서촌, 북촌, 한남동, 압구정, 청담동 등 매주 새로 생긴 문화 공간을 리스트업하고, 도시가 어떻게 변화 하고 있는지 관찰했다. 옷 가게인 줄 알고 들어가면 카페도 있고 꽃집도 있고… 공존하지 않을 것 같은 것들이 혼재된 풍경이 흥미로웠다.

“프리츠한센은 1백50년 역사를 지닌 브랜드인 만큼 타임리스 디자인의 가치를 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거라 믿었죠. 애술린은 워낙 컬러가 분명해 다른 브랜드와 섞이기는 어렵지만, 오랜 팬으로서 함께하고 싶었어요. 갤러리에 이끼 정원을 조성하고, 가구 쇼룸에 빈티지 가구와 작품을 함께 매치하는 것처럼 카페지만 다양한 아트 서적을 보면서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취향을 강요하는 것이 아닌 콘텐츠를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오랜 시간 공들여 컬렉션한 예술 작품을 계단에 건 것도 같은 의미다. 카페나 쇼룸만 둘러보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공간에 더 오래 머물게 하겠다는 전략은 통했으니,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하는 고객이 부쩍 늘었다.


공간 타라의 숨은 주역들. 인테리어 디자인을 맡은 이성란 소장, 옥상정원을 구성한 현종영 대표 등 각 분야의 전문가가 공간 설계 단계부터 시공까지 합을 맞춰 완성도를 높였다.
대전시 유성구 도룡동에 자리한 공간 타라(042- 861-8114). 대지 면적 346.90m2, 연면적 878.82m2, 지하 1층, 지상 5층 건물로 프리츠한센 쇼룸과 리브리스 라운지, 갤러리, 생활용품 편집숍으로 구성했다. 공간 설계는 나우건축 박종원 소장, 인테리어 설계는 이건축연구소 이성란 소장, 지하 성큰 정원은 뜰과 숲 권춘희 대표, 옥상정원은 산에들에 현종영 대표가 맡았다.
“미술 작품도, 빈티지 가구도 컬렉션의 기준은 명확해요. 작가의 고유한 에너지가 느껴질 때 당기는 힘이 배가되죠. 멋진 공간에 가면 그 공간을 기획한 사람이 궁금해질 때가 있는데, 기획부터 디테일까지 한 사람의 일관된 철학과 색깔이 녹아 있을 때의 감동은 따라갈 수가 없고요. 가구, 조명, 빈티지, 아트 북, 공예, 생활용품… 서툴고 느리지만 ‘타라’다움을 찾아가는 여정이 즐거운 이유예요.”

글 이지현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3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