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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가 김상태·이애라 부부 땅을 밟고 사니 오늘이 충만하다
땅을 밟고 살면 매일 ‘땅의 이야기’가 쌓인다. 더욱이 김포 택지 지구에 들어선 김상태·이애라 부부의 집에는 마당이 세 개나 있으니 많은 시간이 땅과 맞물려 돌아간다. 꽃을 심고, 된장을 담그고, 노을 아래 맥주를 마시고, 밤에는 자전거를 타고 생태 공원 주위를 달린다. 마당 넓은 집으로 이사 온 후 이 가족은 전에 없이 충만한 시간을 사는 중이다. 두 마리 고양이와 함께.

아파트 생활을 그만두고 단독주택에서 산 지 약 1년. 부부는 택지 지구에 딸린 공동 텃밭을 일구며 이웃과 함께하는 시간을 포함해 모든 것이 너무 좋다고 했다. 그런 행복의 여파로 또 한번 집을 지어보고 싶은 꿈까지 생겼다.

땅과 정원이 있는 사람에게 4월은 손이 바쁘고 마음이 촉촉해지는 달이다. <정원가의 열두 달>을 쓴 체코의 문필가 카렐 차페크karel capek도 얘기하지 않았던가. “정원가에게 4월은 가장 축복받은 달. 웅크리고 앉아 잠깐 숨을 멈추고 폭신폭신한 흙 속에 손가락을 살짝 찔러 넣어보라. 단단히 영글었지만 한없이 연약한 싹눈이 손끝에 닿을 것이다. 입맞춤의 느낌을 어떤 말로도 설명하기 어렵듯, 이 기분 역시 마찬가지다.”

4월이 깊어갈수록 김상태·이애라 부부도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며칠 전에는 모종삽을 들고 어디에 무엇을 심을까 즐거운 고민을 하며 반나절 내내 정원 일을 했다. 그렇게 새로 뿌리를 내린 ‘아이’들은 울릉도가 고향으로 향이 1백 리를 간다고 해 이름 붙은 섬백리향, 여리고 보드라운 흰 꽃이 아름다운 이베리스, 긴 꽃자루 위에 한 송이 꽃이 피는 청화국. “모두 여리여리 잔잔한 꽃들이에요. 바람에 한들한들 흔들리는 모습도 예쁘고. 저는 그런 꽃이 좋더라고요.” 이애라 씨가 행복한 얼굴로 말하자, 그런 그녀의 얼굴을 남편은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본다.


바닥에 단 차이를 줘 더욱 아늑한 느낌이 드는 미디어룸. 바깥 창문으로 정원이 보이는 구조다. 옆으로는 사각 다실이 들어섰다.

한지 창호로 연중 순한 빛이 일렁이는 아이 방. 총 세 개의 방이 조르르 이어진다.

세 아이들 방 앞의 긴 복도.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책도 읽고 게임도 하는 긴 테이블이 인상적이다.
취재를 하는 동안 내내 기분이 좋았는데, 몽글몽글 부부의 사랑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부동산 임대업과 함께 농산물을 가공하고 소분해 삼계탕에 들어가는 재료를 포함해 다양한 식품을 유통하는 김상태 씨는 지인들 사이에서 ‘김포의 최수종’이라 불릴 만큼 아내 사랑이 지극하다. 한옥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 늘 ‘땅집’을 향한 그리움이 있던 아내에게 이 집을 선물한 것도 그다. 물론 함께 일군 재산을 쏟아부은 거지만, 세상에는 쓰레기 분리수거 하나까지 트집을 잡으며 단독주택으로 이사하는 것을 반대하는 남편도 많다. “연애 기간이 짧아서 그런지 애가 셋인 지금까지 권태기는 경험해보지 않았어요. 아내 입장에서는 저한테 ‘올인’을 한거잖아요? 제가 잘해야지요.” ‘김포 최수종’의 말이다. 아내의 말도 재미있다. “남편도 아파트에 딱 맞는 사람은 아니었어요. 어릴 때부터 동네에서 인사 잘하기로 소문나 사람을 만나면 ‘안녕하세요?’ 하고 말을 거는데, 아파트 문화에서는 그게 불편한 거예요. 잘 모르는 사람이 대뜸 인사를 하니까. 엘리베이터를 타서도 그렇게 인사를 건넸다가 무안해지는 경우가 몇 번 있었는데, 저희 집이 23층이었거든요. 1층까지 내려가는 시간이 힘들었어요.(웃음)”

그런 아파트를 떠나 이곳으로 이사 온 것이 작년 6월. 1년이 채 안 되는데 그간 많은 이야기가 쌓였다.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에요. 택지 지구에 땅을 사면 의무적으로 텃밭도 구입해야 해요. 여러 가구가 공동으로 일구는 밭이라 자연스럽게 이웃과 교류하게 되지요. 토마토를 주면 옥수수가 돌아오고, 감자를 건네면 파가 배달되고요.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속 풍경 같은 모습이 만들어지는 거예요. 이렇듯 자연스럽게 물물교환을 하고 그러면서 서로 정도 쌓이지요. 아이들이 열다섯 살, 열세 살, 여섯 살인데 동네에 또래가 많다 보니 스스럼없이 이 집 저 집 옮겨가며 놀아요. 그러다 부모끼리도 친해져서 언제차나 한잔, 언제 바비큐나 한번하고 모임이 이루어지고요. 무엇보다 이웃들이 건축과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잖아요. 서로 집 구경을 하며 마감재며 가구며 인테리어에 관해 이야기할 때가 많아요.”

창문으로 생태공원이 내다보이는 안방. 서승모 건축가와 함께 인테리어까지 신경 써서 꾸며서인지 부티크 호텔 같은 분위기다.

마당을 중심으로 건물이 들어선 ㅁ자집.

정원을 바라보며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오면 현관이 나온다.

한지 창호로 마감해 개폐가 자유로운 보조 주방.
누군가의 ‘라이프스타일’이라고 하면 편애하는 조명과 가구, 브랜드와 테이블웨어가 넝쿨처럼 쏟아져 나와야만 할 것 같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담고 아우르는 집 자체가 내가 바라던 대로 맞춤하게 지어지면 이런 소프트웨어에 생각보다 관심이 가지 않고 돈과 에너지도 덜 쏟게 된다.


오늘도 따뜻한 햇살 아래
건축과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은 이웃들에게도 이 집은 유독 ‘빛나는’ 곳이다. 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남편은 자연스레 체득한 미감을 무기 삼아 식탁을 직접 디자인했고, 미닫이 형태로 만든 현관의 중문과 2층 옷장에는 부분부분 검은 문양의 무늬목을 입혀 고급스러움을 더했다. 집에 놀러 온 사람들이 가장 놀라는 공간은 욕실의 좌변기. 통유리로 마감해 변기가 훤히 보이는데, 사선으로는 이웃집 창이, 그 너머로는 생태공원이 보이는 곳에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어 보는 사람마저 살짝 부담스럽다. 이런 반응에 대한 김상태 씨의 말. “하하, 햇빛이 쨍하게 비치면 바깥쪽에서는 안 보이거든요. 그리고 자연을 보며 시원스럽게 배설하고 싶다는 ‘로망’ 같은 게 있었어요.(웃음)” 변기는 일본 토토Toto에서 직접 주문한 제품. “대학을 졸업하고 일본에서 음향 공부를 했거든요. 덕분에 일본어를 좀 할 줄 아는데, 아내를 위해서라도 욕실 제품만큼은 특히 좋은 걸로 설치하고 싶어 주문을 했지요. 히노키 욕조도 그런 마음으로 들여놓은 거고요. 그런데 히노키 욕조는 관리하기 힘들긴 해요. 너무 말리면 갈라지고 습하면 곰팡이가 피기 때문에 사용한 후에는 솔로 꼭 문지르고 건조도 잘해야 해요. 아내다음으로 어려운 것 같아요.(웃음)”

부부가 고심해서 선택한 히노키 욕조. 욕실 문을 열면 편백나무 향이 훅 끼쳐온다.

자녀가 셋인데도 여전히 신혼부부 같은 달콤함이라니. 남편은 동네에서 ‘김포 최수종’으로 통한다.

개방감이 남다른 화장실. 시원하게 볼일을 보고 싶어 한 남편의 아이디어다.
인테리어도 훌륭하지만 하드웨어도 좋다
386.60㎡(약 1백16평) 땅에 들어선 이층집을 설계한 이는 건축가 서승모. 고요하면서도 우아한 분위기와 ‘목소리’의 집을 짓는 그는 한옥의 ㅁ자집처럼 마당을 중심에 두고 거실과 주방, 아이들 방을 배치해 어디에 있든 자연의 변화와 시간을 보고 누릴 수 있도록 했다. 장독대가 있는 쪽으로 작은 다실을 만들어 넣었고, 다이닝룸을 오픈형으로 크게 구획해 주방의 시간이 평화롭고 시원스레 흐르도록 했다. 미디어룸의 바닥면을 살짝 낮게 만들어 한층 편안한 느낌으로 TV를 볼 수 있도록 했고, 건물의 면이 너무 압도적으로 보이지 않도록 중간중간 스테인리스로 보일 듯 말 듯 얇은 선을 넣었다. 미닫이 창문을 한지로 마감해 집 안에 은은한 빛이 감돌도록 한 점도 돋보인다. 차분하고 고요하게 흐르는 집의 시간을 위해 작은 것까지 섬세하게 조율한 흔적들. 구석구석 감탄이 절로 나왔는데, 김상태·이애라 부부가 서승모 건축가를 ‘은인’이라 칭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누군가의 ‘라이프스타일’이라고 하면 편애하는 브랜드의 조명과 가구, 테이블웨어가 넝쿨처럼 쏟아져 나와야만 할 것 같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담고 아우르는 집 자체가 내가 바라던 대로 맞춤하게 지어지면 이런 소프트웨어에 생각보다 관심이 가지 않고, 돈과 에너지도 덜 쏟게 된다. 세 자녀의 방이 조르르 연결된 2층 통로 창문 맞은편이 서향. 오후 2~3시가 되면 그쪽으로 풍성한 햇빛이 드리우는데, 그런 풍경만 바라보고 있어도 삶이 좋아진다. 바람이 시원한 날, 마당으로 나가 맥주 한 캔만 들이켜도 더 이상 바랄 게 없다는 마음이 든다. 자녀가 셋인데도 집이 잡지 화보속 그것처럼 깨끗하고 단정해 놀랐는데, 이런저런 가구와 조명을 들이지 않은 덕분이다. “최근 남편이 손유영 동양화가의 작품을 두 점 가져왔는데, 좋아하는 건 그렇게 천천히 하나씩 채우면 되는 것 같아요. 심심하지도, 공허하지도 않아요. 집에 있으면 빛이 계속 바뀌거든요. 그런 자연의 흐름만 가만 보고 있어도 마음이 편안해져요. 내가 이렇게 자연을 자주 들여다보는 사람이었나 싶죠. 따로 옥상을 만들지 않은 대신 월동하는 섬기린초를 가득 심었는데, 7월경에 주황색 꽃이 피기 시작하면 정말 예뻐요. 노을이 그 꽃들을 비출 때는 특히요. 땅집에 살게 되니 손이 바빠요. 다음 주에 친정엄마랑 된장을 담그기로 했어요.”


손유영 작가의 그림을 포함해 좋아하는 것으로 천천히 꾸미자는 것이 부부의 공통된 의견.

1층에 마련한 세탁실. 집에 들어오면 옷부터 갈아입고 바로 샤워를 하고 거실로 ‘입장’하는 구조다.

철근콘크리트 구조에 외단열 스타코로 마감한 이층집. 부부는 이 집을 설계한 서승모 건축가를 ‘은인’이라 칭했다.
가구와 조명 대신 집에 데려온 것은 고양이 ‘로이’와 ‘구름이’. 구름이가 임신 중이라 배 속에 있는 새끼 여섯 마리가 태어나면 고양이 여덟 마리와 사람 다섯 명이 함께 사는, 그야말로 대가족이 된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아찔할 수도 있지만 이 부부는 유튜브를 보며 기꺼이 구름이의 출산 준비를 하고 있다. 큼지막한 종이 박스를 가져와 ‘출산방’도 만들어두었다. 이애라 씨의 인스타그램(@luna.a_ne)을 보면 따뜻한 햇살 아래 한가롭게 볕을 쬐고 집 안으로 들어온 벌레를 권투하듯 잡고 있는 로이와 구름이의 사진이 많은데,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따뜻하고 아늑하다. 그렇게 이 대가족의 하루가 또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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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성갑(한 점 갤러리 클립 대표)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1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