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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덕을 닦는 집 산청율수원
‘율수聿修’는 유교 사상을 담은 경전 <시경詩經>에 나오는 말로 ‘스스로 갈고닦아 덕을 쌓는다’는 뜻이다. 산청율수원은 재능그룹 박성훈 회장이 조상의 덕을 이어 다시금 새로 쌓아 올린 격조 높은 한옥 스테이다.

2013년 올해의 한옥 대상을 수상한 산청율수원으로 들어가는 대문채 입구.

‘물이 아래로 내려간다’는 뜻으로 이름 지은 안채 하계재의 안방에서는 방문 너머로 잘 가꾼 정원이 내다보인다.
바람과 물의 기운이 모인 터
“산이 높고 물이 푸르다(山高水淸)”는 경상남도 산청으로 향하는 길은 말 그대로 내내 푸르렀다. 산청山淸의 원래 이름은 주위가 푸른 산으로 둘러싸여 응달진 곳이라 산음 山陰이었다고 한다. 해발 1108m 높이의 깊고 좁은 황매산의 골짜기를 타고 흩어졌던 바람이 잦아들고, 계곡을 따라 내려오는 신등천은 단계천과 만나 산청을 대표하는 경호강을 지나 진주 남강까지 흘러간다. 바람과 물이 모여드는 분지이자 두물머리. 예로부터 땅이 비옥하고 기운이 생동하는 땅이었음이 틀림없다.

산청 단계마을에 도착해 낮은 돌담길을 따라 20여 분 걷다 보니 비범한 한옥 한 채를 마주했다. 이곳은 본래 1900년에 지은 ‘고헌고택’으로 재능그룹 박성훈 회장 부친인 박휴창 옹의 생가였다. 1백 년이란 시간이 흘러 이곳저곳 손볼 곳이 많아지자 박성훈 회장은 개·보수 작업을 중지하고 ‘다시 짓자’는 결론을 내렸다. “한옥은 1천 년을 가는 집입니다. 단, 제대로 짓고 제대로 관리했을 때 가능한 이야기죠. 우리가 지금부터 1천 년 가는 한옥을 제대로 지어 많은 사람이 이곳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줍시다.” 이렇게 그의 뜻대로 고헌고택 터에 새로 들어선 산청율수원은 4년의 공사 끝에 2013년 10월 한옥 스테이로 문을 열었다.

산수유, 백일홍, 모감주, 수국 등 외래종보다는 선조가 집 안에 즐겨 심은 꽃들로 세심하게 꾸민 정원은 감탄을 자아낼 만큼 아름답다.

안채 기둥에 달린 주련에는 기옹 박공구의 시구가 적혀 있다. ‘모든 풀은 하룻밤 서리에 시들어 떨어지는구나’라는 뜻이다.

낮은 담벼락 앞에는 심은 지 두 해째부터 줄기가 검은색으로 변하는 오죽을 감상할 수 있다.

마음을 합한 집 짓기
총 일곱 채의 건축물, 연못과 정자를 갖춘 산청율수원에 사용한 목재는 무려 총 20만 재才이고, 기와는 약 3만 장이다. 이 거대한 프로젝트를 위해 설계와 시공은 각각 건축사 사무소 삼간일목의 권현호 소장과 가은앤파트너스 이문호 소장이 맡았으며, 이 밖에도 풍수 전문가 김대환, 대목장 정영수, 와공 정태용, 전통 조경 전문가 안계동 등 각계 전문가가 힘을 합했다. 기본적으로 한옥은 목조건물이므로 우선 좋은 소나무를 찾는 것이 관건이었다. “강릉에 수령 90년 된 소나무가 있다”는 전화를 받자마자 한달음에 달려가 어렵사리 구한 목재는 강원도 삼척에서 자란 금강송이었다. 율수원의 모든 기둥과 보는 수령이 최소 50년에서 최대 1백50년 이상 된 금강송을 사용한 것이다.

건물 배치는 안채를 중심으로 식당채·목욕채·안사랑채·바깥사랑채·대문채 총 다섯 채가 안채를 감싸며 보좌하는 형세를 띠도록 설계했는데, 그중 바깥사랑채 고헌, 안사랑채 농암, 안채 하계재를 숙박 공간으로 꾸몄다. 모든 방의 벽면은 닥종이로 도배하고, 바닥은 한지로 초배한 후 기름먹인 닥종이를 깔아 단아한 기운을 자아낸다. 산청율수원의 가장 큰 특징은 각 채에 그 위상에 걸맞은 당호를 짓고 현판을 단 것이다. 당우와 방마다 각각의 이름을 쓴 현판 서른세 개를 달고 집과 정자 기둥에는 마흔 일곱 개의 주련을 달았다. 기둥 주련에는 남명 조식, 율곡 이이, 용담 박이장의 시를 걸었으며, 여든 개의 편액과 주련 글씨를 박원규, 정도준 등 한국 대표 서예가 12명이 썼기에 한국 서단의 서풍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서예 박물관이기도 하다. 선조의 지혜가 담긴 글귀를 하나씩 음미하며 돌아보는 것도 한옥의 고즈넉함을 즐기는 방법이 될 터.

9백 평 이상의 너른 집터에 자리한 웅장한 규모를 짐작할 수 있는 산청율수원 전경.

바깥사랑채 고헌의 명겸실과 노겸실을 잇는 복도. 살문에 모시 발을 달아 따사로운 햇살을 가려준다.

위에는 이불장을, 아래에는 바깥 풍경을 내다볼 수 있는 낮은 살문을 설치한 바깥사랑채 안방.

식당채와 바깥사랑채 사이에 있는 양희문을 지나면 용담정이란 정자와 연못을 만날 수 있다.

궁궐이 아닌 쉬러 오는 곳입니다
산청율수원은 전통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면서도 그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을 보여준다. 기존 전통 한옥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건축양식의 관례다. 예를 들어 원기둥은 전통적으로 ‘남자의 것’으로 여겨 안채에는 쓰지 않지만 이곳 안채 앞에는 원기둥을, 뒤에는 각기둥을 사용했다. 또한 경상도 사대부가와 서울 양반가의 건축양식이 적절히 혼재하고 있다. 대표적 예로 추녀 밑에서 위를 바라본 펼친 부채 모양의 ‘선자서까래’를 들 수 있다. 바깥사랑채의 나비 문양으로 깎은 계자각(누마루나 대청 난간의 짧은 기둥)은 또 어떠한가. 이처럼 수수한 경상도 방식과는 달리 서울식 한옥 양식의 ‘보’가 화려한 자태를 뽐낸다.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중용을 지켜 음양의 어우러짐을 잘 구현한 것이다. 9백 평 넘는 규모의 집에 비해 대문과 기단 높이는 굉장히 겸손하다. 웅장하지만 결코 위압되지 않는다. 집이 사람을 넘보지 않고, 사람이 집을 누리는 곳이구나. 누마루에 기대어 너그러운 풍류의 정취에 빠져 있다보면 스스로 덕이 쌓이는 착각마저 든다. 율수의 도道는 현판 안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숙박 정보
주소 경남 산청군 신등면 신등가회로 36
예약 055-974-0221

농암(안사랑채)
익겸실(2인) 주중 25만 원, 주말 30만 원
유겸/복겸실(4인) 주중 35만 원, 주말 40만 원

고헌(바깥사랑채)
호겸실(2인) 주중 30만 원, 주말 35만 원
명겸실(2인) 주중 25만 원, 주말 30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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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승민 기자 | 사진 이우경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9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