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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부부의 122㎡ 아파트 개조기 어디를 고치고 어디를 그대로 둘 것인가
공간을 조율한다는 뜻의 ‘튠tune 플래닝’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김석ㆍ나진형 씨 부부가 얼마 전 새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멀쩡한 마감재를 뜯어내고 무조건 구조를 변경하는 것이 아닌, 명민한 수위 조절이 돋보이는 디자이너 부부의 레노베이션 스토리.


레드와 블루 컬러로 첫인상이 기분 좋은 현관 입구. 신발장 문짝을 볼론 마감재로 래핑한 아이디어가 재밌다.

튠 플래닝을 운영하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김석ㆍ나진형 씨 부부가 얼마 전 이사한 분당의 122㎡(37평) 아파트. 최소한의 개조로 아파트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건축적 구조미를 살렸다.


명필름 심재명 대표의 서촌 작은 집, 출판 편집자 부부의 부암동 다가구 주택 레노베이션, 호텔처럼 머무는 집을 표방한 용산의 주상 복합 아파트까지 그간 <행복>을 통해 다양한 필모그래피를 선보여온 김석ㆍ나진형 씨 부부가 얼마 전 분당의 새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부부 디자이너를 향한 차고 넘치는 관심이 부담스러웠는지 편의를 위한 최소한의 것만 손봤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삭막하지 않고 실용적이면서 멋스러운 새집에 들어서는 순간 ‘역시’라는 감탄사가 튀어나온다.

비결은 바로 명민한 선택과 집중의 결과. 사실 새집을 레노베이션하는 일은 낡은 집을 고치는 것보다 더욱 확고한 신념이 필요하다. 말끔한 마감재를 뜯어내는 것이 아깝다가도 문과 몰딩의 색깔만큼은 바꿔야지 싶고, 가족의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효율적인 공간 재배치는 필수라고 생각하면서도 구조 변경을 비롯한 대대적 레노베이션은 선뜻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흔히 홈 드레싱이라는 공식을 적용하지만 막상 레노베이션을 하다 보면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욕심이 멈추질 않는다. 하물며 디자이너 자신이 사는 집이라면 어떻겠는가? 나진형 씨 역시 디자이너로서, 주부로서 집에 대한 로망을 열거하자면 끝이 없을 터. 입주 1년 전부터 도면을 그렸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설계를 무려 여섯 번 바꾸고 나니 아이러니하게도 어디를 ‘그대로 두어야’ 할지가 더욱 명확해졌단다. 클라이언트와 작업하면서 간혹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반문들을 떠올렸다. 굳이 사는 데 지장이 없다면, 그리고 그것이 단순히 기분의 차이일 뿐이라면 모두 뜯어낼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에서 시작하니 모든 게 단순하고 명확해졌다.


널찍한 소파와 데이 베드를 둔 거실. 얼비오 시스템으로 연출한 미니 수직 정원이 공간에 생동감을 더한다.

안방 침실에 책상과 침대를 나란히 배치한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수납장의 슬라이딩 도어를 샴페인 골드 톤의 거울로 마감해 차분하면서도 확장감이 느껴진다.

침실에서 바라본 주방.

단면이 보이는 오픈 장과 서랍형 수납장을 함께 구성한 거실 장식장은 거실의 포인트 월이자 늘어가는 잔살림의 집결지요, 책장 역할을 한다.

1 오픈형 주방은 빌트인 시스템과 모던한 익스텐션 테이블로 깔끔하게 완성했다.
2 아들 건이 방에서 바라본 복도.
3 자작나무 합판으로 맞춤 제작한 침대에 스틸 보드를 매치해 실용성을 더했다.


선택과 포기, 잘하는 것에 집중하라 나진형 씨는 튠 플래닝이 잘하는 것, 즉 건축적 디테일과 마감에 주안점을 두기로 했다. 자작나무 합판과 무채색 발크로맷,구로 철판 등을 부분 마감재로 시공하고 공간마다 한두 가지 컬러로 포인트를 줘 모던하면서도 개성 넘치는 공간을 완성한 것. 예를 들어 멀쩡한 문짝과 프레임을 뜯어내는 대신 자작나무 합판과 발크로맷을 얇게 가공해 포장하듯 문짝과 문틀을 감싸고 컬러 마감재를 문에 붙여 포인트를 주는 식이다. 사실 문짝을 완전히 떼어내고 다른것으로 교체하는 것보다 훨씬 수고스러운 과정이지만 쓸데없는 쓰레기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는 디자이너로서 그의 철학이 십분 반영된 결과다.
“주방과 거실을 가로지르는 파티션 겸 장식장을 털어낸 것이 유일한 구조 변경이에요. 공동 주택에 적용한 보편 타당한 공간 유닛을 존중하자는 생각에서였죠. 써보고 불편하면 그때 다시 조절해도 되니까요.” 거실 아트월과 복도를 제외한 모든 공간은 벽지로 마감했다. 아파트에는 천장이나 벽에 페인트칠을 하려면 석고 보드를 한 장 더 붙여 매끈하게 마감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조명 공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완성도와 비용을 고려해 도배로 대신했다.


주방에서 바라본 침실. 주방, 거실, 침실이 만나는 벽면을 블랙 발크로맷으로 마감해 면 분할 효과를 주었더니 아파트에서는 보기 힘든 구조미가 더해졌다.

1 헤드보드 겸 책장 역할을 하는 양면 오픈 수납장.
2 천장 역시 천장형 시스템 에어컨과 환기팬을 설치할 부분만 일부 보수하고 기존 천장을 그대로 두었다.
3 평면적 아파트에 구조미를 더하기 위한 라인 조명등.
4 벽이 있으면서 베란다 창이라는 또 하나의 프레임이 만들어지는 게 싫었다는 디자이너는 자투리 벽면에 유리를 붙여 확장 효과를 주었다. 아이가 있는 집은 그러데이션 효과를 주는 유리창 전용 투명 스티커를 붙이는 게 안전하다.
5 디지털시계를 수납장 안쪽에 세우고 그 사이즈만큼 도려내어 마치 벽면에 매입한 것 같은 효과를 냈다.
6 바닥에 사용하는 친환경 합성수지 마감재 볼론을 문짝에 래핑하니 색다른 느낌이다.


디테일을 살려 완성도를 높이다 디자이너로서 공간 곳곳에 잔잔한 재미를 불어넣은 아이디어가 눈에 띈다. 주로 바닥에 사용하는 친환경 합성수지 마감재인 ‘볼론’을 현관 신발장 문짝과 드레스룸 문에 붙인 점도 돋보이는데, 볼론은 두께와 내구성을 만족시키는 것은 물론 색다른 질감과 컬러로 호응받는 아이템이다. 안방 침실에 침대와 책상을 나란히 배치한 아이디어는 어떠한가. 침대 헤드보드 겸 책장으로 큐브 형태의 수납장을 짜 넣어 양쪽에서 책이나 시계 등을 수납할 수 있도록 했으니 매끈한 책상과 홈 시어터로 무장한 서재도 부럽지 않다. 주방의 익스텐션 테이블은 나진형 실장이 직접 맞춤 제작한 것. 헤펠레 목공방에서 독일산 익스텐션 테이블 하드웨어를 구입해 금속 공장에서 다리 골조를 맞추고, 발크로맷으로 상판을 제작했더니 시중에서 판매하는 수입 제품의 3분의 1 가격에 멋진 익스텐션 테이블을 완성할 수 있었다. 서재가 없기에 식탁이 다양한 역할을 하는데, 주말이면 동생네 가족과 담소를 즐기는 장소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자료를 잔뜩 늘어놓는 작업대가 되기도 한다.

한편 가족 모두가 앉아도 될 만큼 사이즈가 넉넉한 데이 베드와 소파를 ㄱ자로 배치하고 이동하기 쉬운 사이드 테이블을 더해 라운지처럼 완성한 거실은 휴식과 재충전의 공간이다. 의미 없는 TV장을 두는 대신 책장과 수납장을 겸하는 장식장을 짜 넣으니 온 가족이 자연스럽게 거실에 모이게 된다고. 이처럼 가족의 라이프스타일을 철저히 파악해 목적을 염두에 두고 가구와 소품을 배치하면 한정된 공간은 물론 시간까지 더욱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사실 퇴근 후 가족이 얼굴을 마주하고 얘기할 시간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마저도 컴퓨터를 하러 각자 방으로 들어가기 일쑤니 온 가족이 함께 모이는 거실이야말로 이번 레노베이션의 가장 큰 수확임이 분명하다. 장식성과 기능성을 겸비한 수납장, 마감재의 색다른 해석, 합리적 공간 분할로 실속 있게 완성한 튠 플래닝 김석ㆍ나진형 씨 부부의 가족 공간. 필요 없는 것을 과감히 포기하고 필요한 것과 잘하는 것에 집중한 꽤나 설득력 있는 레노베이션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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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지현 기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3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