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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사람이 인공지능에게 배운 것

일전에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오랫동안 일해온 의사 한 분과 인공지능에 대해 대화하다가 의외의 이야기를 들었다. 인공지능 때문에 정신건강의학과 장사가 안될 거라고 예상하는 주변 사람들이 있다는 소식이었다. 그러니까 불안하거나 강한 강박을 느끼거나 혹은 심한 스트레스를 느껴서 과거에는 정신건강의학과에 찾아올 만한 사람 중 상당수가 이제는 인공지능과 대화하면서 자신의 정신적 고통을 달랜다는 이야기였다.


보통 인공지능에 대해 옛 영화 속에 자주 나오던 이야기는 “인공지능은 사람이 아니라 기계이기 때문에 감정이 없고 차가우며 사람과 같은 따뜻한 교류를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끈끈한 감정적 교류야말로 인공지능이 흉내 낼 수 없는 사람의 가치라는 이야기도 옛 SF에 많이 나왔다. 그러나 LLM 기술로 탄생한 현대의 인공지능 프로그램은 정확히 그 반대로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공지능은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고 보듬는 말을 해주면서 이용료를 받고 있다. 가장 따뜻한 말을 해줄 수 있는 상대를 찾아야 할 때 맨 먼저 생각나는 상대가 바로 인공지능이다.


뛰어난 심리 상담을 해낼 수 있는 사람 상담 전문가나 사람의 정신 건강에 대해 상담한 경험이 많은 의사는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인공지능보다 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사실을 대부분의 사람은 알고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자신의 정신적 고통을 드러내기를 힘겨워한다. 시간과 돈을 들여 전문가를 만날 약속을 잡고 치료하기 위한 과정을 공식적으로 시작하는 것도 부담을 많이 느낄 만한 일이다. 육아 때문에 하게 되는 고민이라든가, 속을 썩이는 가족이나 짜증 나게 하는 친구 때문에 생긴 고민 등은 사소하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그래서 일을 크게 벌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럴 때 사람 전문가를 찾는 대신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인공지능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고 있다. 인공지능에게 말을 거는 일은 깊은 밤 침대에 누워서 할 수도 있고, 출퇴근 시간 지하철 안에서도 할 수 있다. 상대방이 사람이 아니기에 부담 없이 언제나 말을 건넬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상대가 감정을 지니고 나를 바라보는 진짜 사람이 아니라, 단지 컴퓨터 프로그램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이상하게도 더 솔직하고 더 거리낌 없이 자기 고민을 말하게 되는 일도 많다. 그렇다 보니 갈수록 점점 많은 사람이 힘든 마음을 인공지능에게 털어놓는다. 인공지능은 같은 고민을 여러 번 늘어놓더라도 항상 자상한 태도를 취한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똑같은 신세 한탄을 만날 때마다 늘어놓는다면 미안할 텐데 인공지능과 상담할 때는 그런 문제도 없다.


이런 인공지능이 어차피 대단한 삶의 진리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것은 아니다. 누가 말을 걸든 항상 그 사람에게 친절한 태도로 응답하며, 그 사람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는 데 최적의 성능을 발휘하도록 개발된 게 인공지능 프로그램이다. 그저 모든 이야기에 적당히 공감해주고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수준의 조언을 던져주는 정도의 기능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 사람들은 그 어떤 다른 사람보다 인공지능과 자상하고 진솔하게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일이 얼마나 바람직한 것일까? 좀 더 바람직하게 사람의 정신 건강을 위해 인공지능을 활용할 수 있는 더 전문화된 좋은 방법을 찾아야 할까? 자고 일어나기가 무서울 정도일 만큼 빠른 속도로 발전해가는 인공지능 세상에서 무엇이 답인지 알기란 어렵다.


그래도 나는 현대인의 삶에서 무엇이 부족했기에 그 빈틈을 인공지능이 채워가고 있는지는 돌이켜볼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좀 더 가까이에서 더 쉽게 마음을 나누고 싶어 한다는 뜻이다. 반복되는 고민과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보면서도 항상 친절을 잃지 않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다. 사소해 보이고 대단찮아 보이는 고민거리라도 같이 이야기하면서 삶의 고통을 언제나 함께 덜어갈 수 있다는 희망을 나누어야 한다. 이것이 사람을 흉내 내기 위해 개발된 인공지능이 지닌 덕목인 만큼 그 본바탕인 우리 속에도 분명 자리 잡고 있음을 다시 돌이켜야 하는 건 아닐까.
글 곽재식(과학자, 소설가) | 담당 최혜경  

 

곽재식(과학자, 소설가)

과학 지식으로 사회현상을 풀이하는 곽재식 교수. 공적 직함은 숭실사이버대학교 환경안전공학과 교수이지만, 엉뚱하고 독특한 상상력으로 과학과 역사·영화에 심지어 괴물까지 넘나드는 작가입니다. 그런 그에게 ‘ 행복’에 대한 생각을 들려달라 청했고, 답으로 인공지능 이야기가 돌아온 겁니다. 우리 인간이 지금 갈급한 게 무언지 인공지능이 때론 반면교사로, 때론 ‘정면교사’로 알려주더란 말입니다. 그게 ‘행복’의 또 다른 갈구라는 것도요. 곽재식 교수는 KAIST에서 원자력 및 양자 공학 학사 학위와 화학 석사 학위를, 연세대학교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2006년 단편소설 ‘토끼의 아리아’가 MBC 〈베스트극장〉에서 영상화된 이후 〈지상 최대의 내기〉 〈신라 공주 해적전〉 〈가장 무서운 이야기 사건〉 〈빵 좋아하는 악당들의 행성〉등 다수의 소설을 펴냈습니다다. 인문과학 교양서로 〈곽재식의 세균 박람회〉 〈지구는 괜찮아, 우리가 문제지〉 〈곽재식의 유령 잡는 화학자〉 〈휴가 갈 땐 주기율표〉 〈아파트 생물학〉 외 여러 권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