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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가득한 집> x 래코드RE;CODE 소중한 옷, 다시 입다
추억이 담겨 있어 차마 버리지 못하고 옷장 속에 오래 간직해온 옷을 밖으로 꺼냈습니다. 무엇이든 쉽게 사고 쉽게 버리는 시대에 이 무슨 케케묵은 이야기냐고요? 광주비엔날레재단 김선정 대표가 어머니에게 물려받아 대를 이어 고쳐 입은 옷 이야기를 들으면 생각이 바뀔 겁니다.

래코드 리컬렉션을 통해 재탄생한 어머니의 재킷을 입은 김선정 대표. 기존 옷의 특징인 어깨 라인은 살리고, 몸에 꼭 맞게 흐르는 여성스러운 실루엣을 현대적 라인으로 수정했다.

광주비엔날레재단 김선정 대표의 어머니인 전 아트선재센터 관장 정희자 여사가 30년 전 구입해 입던 발망 슈트 재킷이다. 어머니의 수많은 옷 중 유독 멋있어 보여 3년 전 자신의 사이즈에 맞게 줄였으나 디자인 때문에 손이 잘 가지 않았다고. 결국 어머니도 못 입게 되어 볼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남편의 옷을 고쳐 입으며 발견한 가능성
화장기 없는 짧은 커트 머리와 캐주얼한 재킷, 그리고 운동화를 즐겨 신는 광주비엔날레재단 김선정 대표는 소탈한 첫인상만큼이나 여러 면에서 선입견을 깨트린다. 첫째는 영국 미술 전문지 <아트리뷰>가 선정한 ‘세계 미술계 파워 100인’, 갤러리 아트선재센터 전 관장, 광주비엔날레재단 대표이사, 한국 현대미술의 구심점이라는 평까지, 그의 굵직한 예술계 이력을 들으면 범접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막상 만나본 그는 맑은 눈빛과 기분 좋은 웃음으로 금세 상대를 편안하게 만든다. 그리고 두 번째는 워커홀릭이라는 소문을 먼저 접한지라 ‘시간을 아끼기 위해 무엇이든 빨리, 그리고 새것’을 선호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시간이 빚어내는 묵직한 가치를 알아보는 눈에 무게를 싣고 산다.

실제 그는 2017년 광주비엔날레재단 대표이사로 취임한 이후 한 달에 열흘은 해외 출장을 다니고, 일주일에 두세번씩 서울과 광주를 오가는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런 와중에 <행복>이 코오롱인더스트리 래코드와 진행하는 ‘소중한 옷, 다시 입기’ 리컬렉션 프로젝트에 흔쾌히 응한 것은 그 취지가 평소 자신의 가치관과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래코드의 리컬렉션은 개인 맞춤 업사이클링 서비스다. “예전에는 디자인을 보고 물건을 사곤했지만 요즘에는 물건이 지닌 가치가 제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과 맞아야 구입해요. 특히 환경에 관심이 많아지면서 더욱 행동으로 옮겨야겠다고 다짐하죠. 오늘 광주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 안에서 뉴스를 봤는데,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여한 배우 제인 폰다가 다시는 옷을 사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마지막으로 구입한 빨간 코트와 6년 전 칸 영화제에서 입었던 드레스를 매치해 시상식 무대에 오른 것을 보았습니다. 이런 행동에 깊이 공감이 가더군요.”

그런 의미에서 시즌이 지나면 폐기물이 되는 옷을 업사이클링하는 패션 브랜드 래코드를 좋아하는 브랜드 중 하나로 꼽는다. 작년 광주비엔날레에 래코드가 참여한 인연으로 관심을 갖게 됐다. 래코드가 리컬렉션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오래된 옷을 세상에 단 하나뿐인 옷으로 다시 만들어준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지난 1월에 10년 전 구입한 남편의 양복을 여성복으로 바꾸는 작업을 의뢰했다. 이렇게 탄생한 옷에 주변의 칭찬이 쏟아졌으며, 오래된 남편 옷을 리폼한 것이라고 하면 더욱 놀라움을 표했다고. 그래서 이번 <행복>과 래코드가 함께하는 프로젝트에 그동안 아껴온 어머니의 옷을 믿고 맡길 수 있었다고 한다.


위쪽은 김선정 대표의 남편이 10년 전 구입해 입던 정장 상의다. 사이즈 때문에 입지 못했는데,지난 1월 래코드의 리컬렉션 프로그램을 통해 남성복이 아래쪽 디자인처럼 여성복으로 재탄생했다. 이렇게 만든 옷은 입을 때마다 원래의 주인을 떠올리게 해 더욱 의미있게 느껴진다.
집 안 가득 어머니의 물건으로 채운 이유
김선정 대표의 어머니인 전 아트선재센터 관장 정희자 여사는 이제 여든이 넘었지만, 어머니의 옷장 속에는 젊은 시절부터 입던 옷이 가득하다. “하나하나 심사숙고한 끝에 구입한 옷이라 그런지 버리지 않고 모두 갖고 계셔요.” 누구보다 멋을 아는 어머니의 옷은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우아하고 멋스러워 김선정 대표의 마음을 움직인다. 친정에 가면 어머니의 옷장을 뒤져 마음에 드는 옷을 가져오곤 하는데, 특히 눈에 띈 옷이 바로 이번에 의뢰한 옷이다. 그냥 새 옷을 사 입는 게 훨씬 편할 텐데 어머니의 물건에 관심이 가는 건 어쩌면 오래된 것에 대한 그의 타고난 관심일지도 모른다. 아트선재센터 자리에 있던 옛 한옥을 철거하기 전 개최한 전시 <싹>을 시작으로, 플랫폼 서울 프로젝트를 통해 옛 서울역사와 옛 기무사를 전시 공간으로 활용하는 등 시간이 스민 옛 공간을 현대미술과 접합해 선보이는 데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여왔다는 점에서 짐작해볼 수 있다.

김선정 대표 집에 놓인 물건도 대부분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오래된 것들이다. 샹들리에, 의자, 탁자…. 잠시 생각해보더니 가장 최신 가구라고 할 수 있는 게 30여 년 전 결혼할 때 산 식탁이라고 할 정도다. 이처럼 어머니 물건을 물려받아 쓰는 이유는 물건에 깃든 추억과 이야기 때문으로, 어릴 때부터 물건 하나를 사더라도 이건 어디서 어떤 이유로 샀다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은 덕에 그것들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물건과 달리 옷은 다시 입는 게 쉽지 않았다. 말 그대로 ‘엄마 옷을 입은 느낌’이었다고. 어머니가 추구하는 우아한 스타일과 그가 추구하는 캐주얼한 스타일, 시간의 흐름으로 다소 유행이 지난 디자인, 그리고 신체 사이즈도 다른 만큼 물려받은 옷을 소화하는 게 고민이었다. 그래서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가능성을 발견해 기쁘다는 소감을 전한다.

해체된 재고와 원단으로 다시 옷이 만들어진다. 이번 작업을 위한 재킷 패턴.


옷을 다시 만들 때는 신체 사이즈를 꼼꼼하게 재고, 디자이너와 만나 상담 과정을 거친다. 이러한 과정이 있기에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옷이 탄생하는 것이다.
지금은 모든 걸 빠르게 하다 보니 정성스러운 옛 감성이 많이 사라졌다. 옛 물건이 지닌 공예적 가치와 미감 역시 그가 어머니 물건에 마음이 끌리는 또 다른 이유다. 그의 이런 생활태도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또 다음 세대로 대물림되고 있다. “이제는 작아져서 못 입는 옷 몇 벌을 예비 며느리에게 선물했어요. 1990년대 초 남동생이 결혼할 때 산 옷인데 별로 입지 못했어요. 무척 아끼던 옷이라 의미있다고 생각해서 줬는데 좋아할지 모르겠네요. 젊은 사람들은 생각이 다를 수 있으니까요. 하하.” 오는 9월에 열리는 제13회 광주비엔날레를 준비하는 동시에 올해로 40주년을 맞는 광주5·18민주화운동을 기념한 전시가 서울·부에노스아이레스·쾰른·타이베이 네 도시에서 동시에 열리고, 8월 말에 광주에서 하나로 합쳐져 다시 열리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앞두고 있다. 그야말로 전 세계를 무대로 뛰어다니는 만큼 일과 삶의 균형을 잡는 게 쉽지 않은데, 시간이 생길 때마다 가족이 함께 모여 저녁을 먹으려 노력한다. 이것이 그가 생각하는 행복이다. 아마 이런 기억이 모여 또 다른 추억이 깃든 물건이 생길 것이고, 거기서 오래되고 소중한 가치가 생겨날 것이다.


소중한 옷, 리컬렉션 해드립니다
추억이 깃든 소중한 옷을 다시 꺼내보세요. 사연과 함께 신청하면 브랜드 래코드에서 옷을 만들어드립니다. 맞춤 제작 과정으로 진행하며, 비포&애프터 기사는 5월호 <행복>에 게재할 예정입니다.

인원 1명
신청 방법 3월 18일까지 <행복>홈페이지 ‘이벤트’ 코너에 참가 사연과 함께 리컬렉션하고 싶은 옷 사진을 첨부해 신청해주세요. 당첨자는 개별 연락드립니다.

글 김현정 기자 | 사진 이정규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0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