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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가 고희숙&이혜미 ‘하겠다’는 마음만 잃지 않으면 된다
때로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든든한 선배가 있다. ‘과연 가능한 일일까?’ 매우 어렵게 여겨지는 일을 누군가 해내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이상적 본보기가 되기 때문이다. 도예가 고희숙은 도예가 이혜미에게 그러한 존재다.


흙으로 빚고 구워 어떠한 형태감을 지닌 도자기는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물체다. 식기, 다기, 화병 등 일상용품부터 철학과 미감을 응축해놓은 순수 작품까지 쓰임도 다양하다. 도자기 공예를 하는 도예가는 상품과 작품을 동시에 만들곤 하지만, 대부분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편이다. 그런 면에서 이혜미 도예가는 그 균형감이 독보적이다. 젊은 세대가 갖고 싶어 하는 그릇을 만드는 동시에 고유의 작가 정신을 발휘한 작품성도 참신하다. 밀레니얼 세대답게 소셜 네트워크 세상에서도 인기가 좋다. 도예가 이혜미에게 존경하는 선배를 묻자 고희숙 작가를 꼽았다.

도예가 고희숙은 20년 이상 꾸준히 활동을 이어오는 몇 안되는 여자 선배이면서 일상품과 작품의 경계를 지혜롭게 넘나드는 작가다. “선생님의 크고 작은 전시에 빠짐없이 다녀오곤 했어요. 마음속에 선생님처럼 늘 꾸준히 하는 작가가 되자는 다짐을 새겨왔지요.” 간간이 인사할 수 있는 자리는 있었어도 제대로 존경의 마음을 표현할 기회는 없었다는 후배 작가의 이야기를 전달하며, 도예가 고희숙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혜미 씨가요?” 간결한 선이 아름다운 순백의 작품을 만드는 작가답게 특유의 곱고 차분한 음성으로 말한 그의 첫마디는 놀라움인지, 당황인지, 기쁨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어쨌거나 다행히 인터뷰는 성사됐고, 고희숙 작가의 본심은 감동이었다는 걸 인터뷰 말미에 알았다. “작가 생활을 이어오면서 바란 것이 있었어요. 일반 사람에게 좋은 그릇을 만드는 사람으로 인식되는 것도 좋지만, 작가들 사이에서 작업을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요. 먼 후배가 생각해서 불러줬다니 사실 이번 주가 너무 바빴지만 달려왔어요. 이거는 꼭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요.”


“이 일이 내 평생 하고 싶은 일인가?” 자문의 시간이 필요하다
고희숙(이하 고) 요즘 혜미 씨 정말 핫하더라고요. 전시, 페어 활동도 많이 하고 작품도 좋고, 거기다 숍도 연 것 같던데.

이혜미(이하 이) 어디서 작품을 구입할 수 있냐는 문의가 많은데, 몇몇 군데 알려드렸다가 결국 못 구했다고 연락이 오면 너무 죄송하더라고요. 그래서 미팅 장소로도 사용할 겸 숍을 열었어요. 토요일만 오픈하고, 안에서 작업하고 있다가 누가 오면 잠깐 만나는 식이죠.

그런 사교적이고 외향적 성향이 혜미 씨의 장점 같아요. 난 누가 온다 하면 아침부터 작업이 잘 안 되거든요.(웃음)

그래서 애초에 토요일은 작업 목표량을 좀 줄여놔요. “오늘은 이것만 해도 잘한 거야!” 할 수 있도록. 또 워낙 낮에는 집중을 잘 못하는 야행성인데, 요즘은 습관을 좀 고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선생님은 어떠세요?

저는 밤샘은 안 해요. 워낙 어릴 적부터 아이 키우면서 일정한 시간에 출퇴근하듯 작업하는 습관이 들었죠. 한때는 밤늦게까지 일하는 친구들이 부러웠지만, 짧은 시간 내에 집중해서 작업하는 게 좋을 때도 있어요. 그래도 혜미씨가 주말까지 쉬지 않고 작업한다는 건 대견하네요. 손의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매일 잠깐이나마 작업하는 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떨 때는 주말까지 작업하는 게 남편에게 미안하기도 해요. 그래도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산다는 것에 대한 감사함이 커서 더 열심히 하는 면도 있고요. 제가 원래 다른 전공으로 입학했다가 결국 2주 만에 그만두고 다시 입시를 준비해서 도예를 하게 됐거든요. 그 과정에서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어요.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것을 찾는 그런 시간은 중요해요. 저는 그 고민을 대학 졸업하고 했어요. 대학 3학년 때 광고회사에서 인턴십을 했고, 졸업 후 그 회사를 1년 다녔어요. 광고가 재미있으면 계속했을 텐데 도자기 작업에 대한 미련이 계속 맴돌았죠. 그때 가장 흥미를 느낀 캐스팅 작업을 더 잘 배울 수 있는 대학원에 가야겠다 생각했어요. 그렇게 결혼과 함께 일본으로 유학을 갔고, 방향에 대해 고민한 결과 배울 수 있는 건 죄다 배웠지요. 학기가 끝나고 방학이 되면 석고방에 가서 틀 깎는 기술을 배우거나, 노리다케Noritake 공장에서 캐스팅을 배우는 등 쉬지 않고 움직였어요.



고희숙은 홍익대학교 도예과를 졸업한 후 일본 아이치 현립 예술대학 대학원 도자디자인코스를 졸업했다. 캐스팅과 물레를 연결한 작업이 시그너처 스타일로서, 간결한 선의 단정한 백자는 맑고 우아하다. 3월 10일까지 ‘노영희의 그릇’에서 열리는 <도예가 10인의 자화자찬> 전시에 참여한다.

출산과 육아는 작가에게 걸림돌이 아니다, 숨 고르기의 시간일 뿐
제가 올해 서른일곱이에요. 선생님의 서른일곱은 어떠셨는지 궁금해요.

음… 애 둘과 지지고 볶으며 작업하고 있을 때네요.

아, 저도 결혼 4년 차에 접어들었는데… 아직 임신과 출산, 육아에 대해 상상을 못 하겠어요.

상상을 하면 안 돼요.(웃음) ‘어떻게 하지?’ 걱정하면 못하고, 막상 낳으면 못 할 것 같았는데 어느새 하고 있고, 어느새 잘 자라 대학에 가고…. 지나고 보니 그래요.

아이 한 명은 계획이 있는데, 선배 작가 중에 아이 낳고도 작가 생활 꾸준히 하시는 분을 별로 못 봤어요. 그러다 보니 작가 생활과 병행한다는 게 정말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두려움도 크고요. 임신 중에 유약이나 먼지 등에 노출되는 것도 걱정되는데, 그건 괜찮으셨어요?

의외로 괜찮아요. 임신 유지는 산모 건강에 따라 개인 차가 커서 일반화하기도 어렵고요. 닥쳐보지 않고 걱정만 하면 끝이 없죠.

그런데 임신을 하기 전에 뭔가를 해놓고 싶은 마음이 커요. 그래서 작년과 올해 전시나 페어에 최대한 참여했어요.

근데 그 일의 욕심이라는 것도 한이 없어요. 대학원 재학중 일본에서 ‘크래프트전’에 참가했는데, 입선도 아니고 덜컥 대상을 탔어요. 그래서 큰 주목을 받았는데 그 해에 아이가 생긴 거예요. 졸업 전시와 동시에 첫째를 출산했지요. 그 때 좋은 제안이 정말 많이 왔는데 포기해야 하는 일들이 안타깝고 욕심도 났지만, 과연 그때 내가 그 일을 했더라도 지금과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아, 출산 후에도 계속 작업할 수 있겠지요?

저도 어떻게든 끈을 놓지 않으려고 나 스스로를 혹사시키곤 했어요. 일부러 둘째 출산일 1백 일 후에 개인전을 잡아서, 만삭 때까지 최대한 작업해놓고 출품하는 식으로요. 그때는 그렇게까지 해야 꾸준히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돌이켜보니 참 부질없었다 싶어요. 만약 1년 정도 손 놓고 아이만 돌봐주었다 해도, 그렇게까지 나한테 모질게 하지 않았더라도 결국은 할 거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혜미 씨도 결국은 할 사람이라고 보여요.



이혜미는 홍익대학교와 동대학원 도예과를 졸업한 후 스승이던 이헌정 작가의 ‘바다 디자인 아뜰리에’에서 경험을 쌓고, 이후 한국도자기에서 근무하면서 저녁과 주말에는 개인 작업을 하며 치열하게 달려왔다. 상회 안료를 통해 다양한 질감을 탐구하는 그의 작업은 참신하고 현대적이라 평가받는다.

치우치지 않는 삶, 모든 것은 선택에 달렸다
일상적인 그릇만 만들다 보면 나다운 것을 투영하기가 어려워요. 작가로서 한 단계 올라가기 위해서는 나다운 뭔가를 찾아야 하는데, 그저 잘 팔리는 그릇을 만들다 보면 주문을 쳐내는 작업을 반복하게 되지요. 그러면 중간중간 페어나 개인전, 공예 전시에 낼 수 있는 작품이 줄어들고요.

무슨 말씀인지 알 것 같아요. 저도 개인 작업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최대한 확보하려고 노력해요. 하지만 가끔은 만들고 싶지 않은 것도 작업해야 할 때가 있죠. 그걸 하느라고 개인 작업을 못 할까 봐 조바심도 나고, 어떤 때는 누가 이것만 좀 해주면 싶을 때도 많고요.

저도 그런 생각에 공방에 사람을 둔 적이 있는데, 결국은 혼자 작업하는 길을 택했어요. 돈을 더 벌 수 있을지언정 내 작업 시간을 확보하기가 더 어렵더라고요. 그러니 전시가 잡히면 주문을 미루곤 해요.

네, 저도요! 그런데 개인전 끝나면 좀 쉬고 싶어도 오히려 밀린 일들 때문에 끊임없이 작업해야 하는 게 힘들기도 해요. 도예라는 게 물리적 시간과 체력이 필요한 작업이잖아요.

그래서 ‘공예 노동’이라고도 하잖아요.(웃음) 그래도 직업으로서 도예는 나이가 들어도 건강하다면 계속할 수 있는 일이라 후배들에게 권하는 편이에요. 나이가 들수록 괜찮은 직업이라고 느끼거든요. 어릴 때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예가가 되고 싶다’ 했지만, 지금은 동네 사랑방처럼 도자기도 만들고 차도 마시고 그런 나눔을 하는 삶도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모든 사람이 작가가 되어야 하는 건 아니니까요. 다양한 곳에서 도자기의 끈을 놓지 않고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살면서 저의 ‘투두 리스트(to do list)’를 다 해보는게 목표예요.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열심히 살고 싶어요. 중간에 쉼이 있을지언정 이 작업은 놓지 않으려고요.

글 강옥진 기자 | 사진 안지섭 | 헤어와 메이크업 탁연지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0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