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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준&김인태 패션 디자이너는 늙지 않는다
격변의 시대를 지나온 우리는 때때로 세대 간 소통의 장벽을 느끼곤 한다. 2020년 창간 33주년을 맞는 <행복>은 서로의 공감을 이끌고자 하는 바람으로, 각 분야에서 주목받는 젊은 작가와 그가 꼽는 존경하는 선배의 만남을 주선할 예정이다. 그 첫 번째로 패션 디자이너 김인태와 정욱준이 나란히 카메라 앞에 섰다.


평소 패션계 소식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면 김인태라는 이름은 낯설게 느낄지도 모른다. 김인태는 2014년에 브랜드 메종 김해김KIMH KIM을 론칭하고, 파리 패션 위크 컬렉션에 참여하며, 세계적 주목을 받는 신진 디자이너. 그리고 최근 제15회 삼성패션디자인펀드 Samsung Fashion&Design Fund(SFDF)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승승장구 중이다. 유독 치열하고 부침이 많은 패션계에서 이처럼 짧은 시간 내에 독보적 존재감을 드러낸 디자이너가 또 있을까? 김인태라는 인물도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하지만, 그가 누구의 영향을 받았는지 궁금했다. 그가 1순위로 꼽은 ‘존경하는 선배’는 준지Juun.J 정욱준. 예상 밖의 대답은 아니었다. 정욱준은 12년 전 파리에 진출해 한국의 패션 감성을 세계에 널리 알리고 인정받은 선 구자 중 선구자니까. 또 때마침 정욱준 디자이너는 2019년 12월, 2019년 대한민국패션대상 대통령 표창을 수상하며 한국의 패션 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김인태 디자이너와 함께 하는 인터뷰를 제안했을 때 정욱준 디자이너는 흔쾌하게 응했다. 하지만 컬렉션을 앞두고 밤낮이 바뀐 채 긴박하게 준비하는 중이었기에, 간신히 시간을 조율할 수 있었다. 그렇게 마침내 패션계 영웅과 신예의 공동 회견이 성사됐다.


후배에게 참선배란 동기부여를 하고 성장을 돕는 사람이다
김인태(이하 김) 2007년도 형이 파리에서 컬렉션을 열 때제가 헬퍼였잖아요. 파리에 간 지 1년 된 스물한 살 때였죠. 헬퍼로 참여한 그 시간은 제게 큰 영향을 준 매우 중요한 경험이었어요. 그런데 그때 제 인상은 어떠셨어요?

정욱준(이하 정) 음… 확연히 남다른 인상을 주었어. 20대 초반의 또래 친구들에게는 볼 수 없는 진지함이 느껴졌지. 김 2007년엔 형처럼 쿨하고 멋있게 하는 한국 디자이너가 없었어요. 그 쇼를 보고 ‘나도 언젠가는 이런 감동을 주는 쇼를 하고 싶다’는 동기부여가 됐죠. 아직도 또렷이 기억해요. 형이 당시 어떻게 쇼에 임하셨는지, 모델들한테 하는 행동, 전체 디렉션을 주는 상황 등…. 제가 첫 번째 쇼를 하던 날, 그때 본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더라고요. 그리고 때때로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든 순간에도 그때의 추억은 큰 힘이 됐어요.

DM으로 파리나 밀라노 유학생이 쇼를 보고 싶다고 연락을 많이 하는데, 웬만하면 명단에 올려놓고 보게 하는 이유야. 내가 누군가에게 물리적으로 도움을 줄 순 없어도 마음에 감동을 주는 것 자체로도 도와주는 거라고 생각하니까. 인태한테도 좋은 영향을 미쳤다니 기쁘네!


세대 격차? 중요한 건 나이가 아닌 감성이요, 필요한 건 눈치가 아닌 존중이다
난 진짜 나이를 잊고 살아. 그런데 우리나라에 있으면 유독 나이에 대해 자각을 많이 하게 돼. 우리나라 국민의 특성인지 꼬마 아이들도 서로 나이를 묻고 서열을 따지더라고. 그런 면에서 난 파리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게 정말 잘한 일 같아. 마흔두 살 때 파리에 갔는데, 스무 살은 어려진 것 같은 마음으로 살아왔으니까. 그 당시 파리 사람들은 나를 ‘코리안 신동’이라 부르더라고. 또 그 누구도 인터뷰하면서 내가 몇 살인지 궁금해하지 않았어.

형은 그냥 마인드 세팅이 젊은 것 같아요. 정말 형이랑 같은 제너레이션이라고 느끼죠. 누군가 대할 때 나이보다는 ‘힙하다’ ‘통한다’ 등의 느낌이 더 많이 작용하니까요. 정 나이가 들수록 누가 나를 공경하고 특별하게 대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없어야 하는 것 같아. 나는 회사에서 임원이다 보니 의전 문화를 겪곤 하는데, 그런 건 참 불편해. 김 젊게 살려고 노력한다면 그것부터가 오히려 어색한 거겠죠. 저도 형처럼 나이를 초월하고 싶어요. <해리 포터> 처럼 후속 편이 기다려지는 소설처럼, 다음 쇼를 계속 기대하고 궁금증을 유발하는 디자이너가 되는 게 늙지 않는 비결인 것 같아요.

외국에서는 나를 나이나 사회적 위치가 아닌, 크리에이터로 존중해주는 게 느껴지는데 그게 무척 기분이 좋아. 내가 디자이너가 되길 잘했구나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김 상대방이 누구이건 대화할 때 방식이 아니라 본질을 고민해야 하는 것 같아요. ‘이렇게 말하고 행동하는 게 존경하는 자세겠지?’ 식의 태도나 방법에 대해 많이 생각하는데, 그보다는 그가 어떠한 이야기 또는 궤적을 지닌 사람인지에 더 초점을 맞추고 대화하면 더 자연스럽죠. 그게 바로 존중 아닐까요?



세계적 브랜드 준지Juun.J를 이끄는 크리에이터이자 (주)삼성물산 패션 부문 총괄 디렉터인 정욱준. 2007년 파리 패션 위크에 데뷔한 이후 10년 넘게 꾸준히 참가하며 독창적 아이덴티티를 구축하면서 세계에 한국 패션을 알리는 데 공헌했다.
인생 선배의 조언, 언제나 자기중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인태가 빨리 파리 컬렉션을 시작한 건 잘한 거야. 컬렉션 준비는 체력이 중요해서 조금이라도 젊을 때 하면 좋지. 단, 조언하고 싶은 건 멘탈 관리를 잘하라는 거. 디자이너는 압박감이 상당한 직업이잖아. 1년에 두 번 새로운 걸 만들어내야 하고 그때마다 평가를 받으니까. 또 다른 창작가와 달리 우리는 딱 정해진 발표 시즌이 있잖아. 그러니 컬렉션을 앞두고 있으면 아무리 실연을 당해도 그림을 그려야 하는데, 정말 마인드 컨트롤이 필요하지.

멘탈 관리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전 모든 순간에 예민한 편이에요. 타고난 것도 있고 남보다 더 정황을 보려고 노력하거든요. 흥도 확 올라서 신나게 쇼를 하고 나면, 그다음은 완전 녹다운되어 혼자 있어야 하는데, 그럴 때면 ‘내가 프로페셔널하지 못하나?’ 하는 생각도 들거든요.

괜찮아. 나를 아껴야 하니까. 자기 성향에 맞게 정신 관리를 하면 되지. 워낙 패션계가 화려한 곳이다 보니까 자기중심으로 생활하지 않으면 휩쓸리기 십상이지. 나도 나를 지키기 위해 일 외에는 꼭 필요한 것만 하고 사랑하는 사람, 강아지, 친구들만 만나는 편이야.

형이 그렇게 이야기해주시니, 그래도 괜찮구나 생각이 들면서 마음속 숙제가 풀린 것 같아요. 때로는 의무적으로 사람을 더 만나고 찾아다녀야 하나 생각도 했거든요. 정 그래도 네가 꼭 만나고 싶은 사람, 하고 싶은 걸 찾는 건 중요해. 난 컬렉션 때 음악을 샤넬 쇼를 맡아온 미셸 고베르Michel Gaubert와 하고 싶었어. 그래서 그에게 장문의 메일을 보냈지. “나는 신인 디자이너인데, 너의 어떤 쇼의 음악을 들었고, 너를 정말 좋아해. 나의 컬렉션은 이래. 나는 말도 안 되는 금액밖에 줄 수 없지만, 내 컬렉션을 사랑하게 된다면 함께 해주길 바라.” 결국 그에게 연락이 왔고, 우린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어. 이렇게 정말로 만나고 같이하고 싶은 사람은 달려들어야지. 배우고 싶고, 동경한다면.



2014년 브랜드 메종 김해김을 론칭한 디자이너 김인태. 2020 S/S 파리 컬렉션에서 선보인 그의 쇼는 개성 있는 무대와 내용으로 호평을 받았고, 한복에서 모티프를 얻 어 한복 장인과 협업한 ‘김인태 김해김’ 시리즈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한국 패션계여, 꿈을 크게 갖기를
인태가 거의 10여 년 만에 파리 무대에 나온 한국 디자이너 아니니? 그래서 참 기특해. 요즘 추세가 즐기면서 재미있게 돈 벌려고 하지 세계 컬렉션에 나가야겠다는 생각은 별로 안 하는 것 같거든. 뭐 그런 마음을 비난할 수는 없지만. 난 디자이너로서 디자이너에게 영감을 주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어. 그거 하나로, 딱 한 번의 컬렉션을 할 수 있는 돈이 모였을 때 파리로 갔지.

형은 언제나 꿈을 이야기하고 그런 기운을 불어넣어 다른 사람도 꿈꾸게 해줘요. 어쩌면 실력은 둘째치고 꿈이 더 필요한 시대 같아요.

패션쇼든 페어든 진정한 패션의 장에 도전해서 평가받는 사람이 많아지고, 그래서 파리든 뉴욕이든 꿈을 펼치는 디자이너가 많이 나오면 좋겠어.

저는 궁극적으로 김해김이 생활 문화 전반에 영향을 주면 좋겠어요. 1층엔 옷, 서점, 카페, 아틀리에 공방이 있고, 2~6층엔 내가 좋아하는 가구, 예술 작품, 음악, 향기 등 여러 요소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을 꿈꾸기도 해요.

지금 서울 매장인 ‘에스파스 김해김’처럼?

네! 그래서 지금부터 그 공간에서 이것저것 실험을 하는 중이에요. 형의 진짜 꿈은 뭐예요?

1백 년, 2백 년… 그렇게 세기를 초월하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 진정한 오리지낼리티를 지닌 명품이랄까. 나는 부귀영화를 못 누려도 돼. 샤넬도 사실 부와 명예는 칼 라거펠트가 누렸잖아. 그처럼 나의 멋진 후배가 나의 하우스를 이끌어주면 좋겠어. 그리고 무엇을 해도 행복하기!

글 강옥진 기자 | 사진 안지섭 | 헤어와 메이크업 탁연지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0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