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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은희경 과거의 빛은 내게 한때의 그림자를 드리운 뒤 사라졌다
“은희경의 신작이 ‘나왔다’는 소식은 뉴스가 되지만, 그 작품이 ‘좋다’는 사실은 뉴스가 되지 못한다.”(평론가 신형철) 7년 만에 장편소설 <빛의 과거>가 나왔다. 3주 만에 10쇄를 돌파할 정도로 인기다. 역시 이변이란 없이 좋은 소설이었다. 25년 동안 ‘이토록 다른 서로’ 간 소통의 부재를 써온 은희경. 오랜 팬인 나는 <빛의 과거>를 이렇게 읽을 수밖에 없었다. “이토록 다른 서로를 미워할 수 있을까.”

소설 <빛의 과거> 속 주인공처럼 은희경은 1977년에 대학에 입학했고, 3년 동안 여대 기숙사 생활을 거쳤으며, 학보사 기자로 활동했다. 그러나 단지 자전 소설이나 성장 소설로 읽는 건 위험하다. 소설 속 주인공 유경과 희진이 조우하는 2017년과 이들의 청춘 시절 1977년이 계속 교차하고, 주인공과 타인의 삶이 얽히고설킨다.  터틀넥은 그레이양, 화이트 셔츠는 디데무, 팬츠는 데무 제품.
모든 이의 삶의 수심은 보이는 것 이상으로 깊다. 그런데도 사람과 사람 사이를 건너갈 수 있을까? 우리에게 날개는 있나, 돛배는 있나. 아니, 애초부터 건너가는 건 불가능한 일 아닐까. 다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양 끝을 이어주는 어떤 밧줄 같은 것이 물속 깊이 놓여 있을 것이다. 이쪽에서 파르르 떨면 저쪽에서 잡은 손도 파르르 떠는 것 같은. 청춘의 미열이 자꾸 발목을 잡던 스무 살 즈음, 은희경의 소설은 가슴팍을 비집고 들어왔다. <새의 선물>을 읽으며 일찍 어른이 되어버린, 혹은 어른인 척하게 되어버린 소녀의 독백이 내 것 같아 전율했다(1995년 출간한 이 소설은 서너 해 전 누적 판매 70만 부를 넘었다. 여전히 청춘들이 이 소설에 반응한다는 뜻이리라). 소통 부재의 부서진 관계 안에서 그 먼지를 뒤집어쓰고도 날아오르려는 나 같은 여자 이야기를 <타인에게 말 걸기>에서 읽었다. <마이너리그>를 읽으며 나의 마이너 인생을 보듬었고, 속물 근성과 허위의식투성이인 나와 당신을 비웃었다. <아내의 상자> <소년을 위로해줘>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생이 먼지처럼 풀썩거릴 때마다 나는 은희경의 소설을 펼쳐 들었다. 사실 은희경의 소설을 읽지 않고는 청춘 축에 끼기어렵다는 확신은 그 시절 모두의 것이었다. 그리고 당신과 나는 이제, 눈가의 주름보다 눈빛을 잃어버린 것에 더 마음 아파하는 나이가 되었다. 2019년 가을, 은희경은 1977년의 여대 기숙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 <빛의 과거>를 펴냈다. ‘58년 개띠 해’에 태어나 1977년에 대학에 입학한 동급생들 이야기지만, 90년대 학번이든 세기를 돌아 10년대 학번이든 이 소설을 읽으며 지뢰처럼 매설해놓은 제 마음의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누구에게나 있는 삶의 줄거리는 아니지만, 누구에게나 있는 삶의 디테일로 상처와 치부를 살핀다. 나와 당신은 청춘이었고, 청춘이기때문이다.

“모든 소설이 행복에 대한 질문이라고 생각해요. 내 소설은 행 복해지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아요. 그런데 ‘행복이 대체 뭐지?’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들어요. 내가 원하는 행복이 뭔지 그걸 먼 저 알려면 일단 나를 알아야겠죠. 나의 좌표를 읽으려면 인간을 골고루 이해해야 하고요. 타인과 내가 다르다는 것, 각자의 고 유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죠. 소설을 읽는 사람과 읽지 않는 사람이 다른 점, 이것 아닐까요.”

나는 회색 지대에 갇혀 있었다
2017년 중년이 된 주인공 유경이 1977년 여대 기숙사에서 만난 친구 희진의 소설을 읽으면서 <빛의 과거>는 시작된다. 중간 지대에 어정쩡하게 서 있던 국문학도 김유경, 원하는 걸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욕망에 충실한 김희진, 학생운동에 적극적이면서도 장학금을 놓치지 않는 최성옥, 과시적이고 자기중심적이지만 미워할 수 없는 양애란, 말수는 적지만 그 시대에도 취향이란 걸 갖고 살던 오현수…. 322호와 417호의 룸메이트 일곱 명은 만화방창의 그 봄날을 부대끼며 산다. 그 사이사이로 백지 대자보를 들고만 있어도 연행되던 긴급조치 9호의 시대, 대학가요제, 단성사와 대한극장, 이에리사와 정현숙, 싱어롱 다방, 딸팅(딸기밭에 함께 가는 미팅)과 야팅(야유회를 같이가는 미팅) 같은 그 시절 풍경이 고명처럼 얹힌다.

“나는 1959년에 태어났지만 이르게 77학번으로 대학에 갔죠. 내가 품고 있는 이야기, 잘 아는 이야기이니 작가로서 안 쓰고 넘어갈 수 없는 이야기였어요.” 보수적인 지방 도시에서 나고 자란 유경처럼 은희경은 전북 고창의 한 읍에서 자랐다. 유경처럼 말을 더듬어 웅변 학원에 다녔고, 질문을 하기보다 받아들이는 아이로 살았다. “네게는 이야기가 많으니까 시가 아니라 산문을 써야 한다”는 선생님 밑에서 글을 배웠다. “유경처럼 주목받을까 봐 존재감 없는 학생을 자청했죠. 만 다섯 살에 학교에 들어갔으니 규칙을 잘 못 익히고, 그러다 보니 겁이 많아지고, 아무것도 모르는 걸 들킬까 봐 질문하기를 두려워하고, 수긍도 부정도 못 하는 아이, ‘나’인 척하는 ‘나’로 산 거죠. 내 소설의 흐름 중 하나가 이게 진짜 나인가, 보이기 위한 나인가라는 질문이 많은데, 그때 내 문제의식이 글이 된 거예요.”

“언제나 그렇듯 나는 중간지대에 어정쩡하게 서 있다가 간혹 무언가에 떠밀리게 되면 아무것도 결정 못한 표정으로 거기 휩쓸리곤 했다.” <빛의 과거> 속 이 문장은 우물 바닥에 남은 그림자처럼 내 가슴에 무겁게 남았다. 유경의 청춘이야말로 나의 청춘이 아니고 무언가. 당신도 그러한가. 유경처럼 은희경도 상경해 숙명여대 기숙사에서 3년을 보냈으며, 학보사 기자로 활동했다(그 시절 일기, 취재 수첩은 <빛의 과거> 속에서 과거를 고증했다). “규칙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규범을 따르고, 그 규범에 맞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죠. 그런 세계에 주눅 들어 있었던 거예요. 그러면서도 그런 내가 싫었어요.” 하지만 그렇게 그 궤도를 통과하지 않을 순 없었다. 이른바 청춘의 방황만은 아니었다. 그도 우리처럼 무력하고 어리석을 뿐이었다.

“여전히 나는 무력하고 방어적인 회색 지대에 갇혀 있었다. 나 자신이 실망스럽고 그러다 보니 의욕이 없어 방치하게 되고, 결국 해야 할 것을 제대로 못해 무력감에 빠지고, 무력감은 쫓김과 불안을 낳고 (중략) 외로움 위에 생존 의지인 자존심이 더해지니 남들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하고 (중략) 이 모든 감정이 시간 낭비인 것 같아 회의와 비관에 빠지는 것.” 이 뼈 때리는 문장은 내 존재의 서술이 아니고 무언가. 당신도 그러한가. 졸업 후 은희경은 1년 남짓 국어 교사로 일했고, 외국 영화를 소설로 만드는 아르바이트를 했으며, 출판사와 잡지사를 다니며 30대 중반이 되었다(그 출판사 중 하나가 <행복>을 발행하는 디자인하우스의 단행본 출판팀이다). “그때까지 여전히 세상에 대해 할 이야기도, 질문도, 관점도 없었어요. 꿈 같은 게 없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저 순서에 맞게 부모·선생님·기득권의 기대에 맞춰 사는 꽉 막힌 인간이 있었죠. 내가 선택한 건 없고 긴 숙제하듯 산 것 같아요. 그런데 어느 날 ‘이렇게 살다 내 인생 끝나고 말지. 이게 아닌데, 그럼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죠.” ‘이렇게 살다 인생 끝나고 말지’란 말은 내 마음도 베었다.

출판사를 다니며 두 아이를 키우던 은희경은 그날로 한 달 휴가를 내고, 노트북 하나 챙겨 들고 혼자 여행을 갔다. ‘그럼 뭐’가 그에겐 결국 글 쓰는 것이었고 자신에 대해 쓰기 시작했다. 여행지에서 쓴 다섯 편, 서울에 돌아온 후 쓴 한편을 그해 신춘문예에 응모했고,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소설 ‘이중주’가 당선돼 등단했다. 그해 다시 몇 달간 절에 들어가 독하게 쓴 <새의 선물>이 문학동네소설상을 받았다. 이후 25년 동안 열네 권의 소설책을 출간했고, 이상 문학상, 동인문학상, 한국소설문학상, 이산문학상 등의 면류관이 그에게 씌워졌다.

안으로 열熱하고 겉으로 서늘옵게
은희경의 소설은 불편했다. 그래서 우리가 더 탐했을 것이다. 목욕탕 거울에 나를 비춰볼 때처럼 불편했지만 눈 딱감고 거울 바라보듯 읽었다. 소설 속 인물들은 흐벅진 정을 나누지도, 위로하려 들지도, 열심히 살라고 채찍질하지도 않았다(어쩌면 그래서 위로가 됐는지도 모른다). 냉소적이고, 날카롭고, 우울하고, 이 모든 것을 버무려놨음에도 묘하게 유머까지 드리웠다. 그는 독자에게 사인해줄 때 가끔 이런 문구를 적는다. ‘안으로 열熱하고 겉으로 서늘옵게’. 평론가들은 은희경의 시선을 ‘냉소적 시선’이라 읽었다. 하지만 그보다 나는 “찬물도, 뜨거운 물도, 미지근한 물도 아니고, 찬물과 뜨거운 물이 섞이지 않은 상태”라는 소설가 박성천의 표현에 무릎을 쳤다.

“처음 소설가가 됐을 때 생각했어요. ‘가르치는 글을 안 쓰겠다. 나는 가르칠 게 없는 사람이다’ ‘우는 글은 안 쓰겠다. 편들어달라고 하지 않겠다. 무조건 화해하고 위로하는 태도는 오답에 적응하게 만들고, 더 이상 질문하지 못하게 한다’ ‘좀 더 내가 진짜라고 느끼는 것을 쓰자. 솔직하게 썼는지, 아니면 그럴듯하게 쓴 건지 많이 경계하자’.” 사람들 누구나 가진 침묵은 남모를 상처의 표현이니 침묵하는 그들을 저만치서 바라보는 것. 은희경은 그걸 택했다. 은희경의 소설 속 여자들은 좀처럼 울지 않는다. 코끝만 빨개질 뿐이다. 아픈 내색조차 하지 않고 그저 종종 술을 마실 뿐이다. <새의 선물>에서 장군이 엄마는 하숙생들과 술자리 벌이는 게 낙이고, ‘이중주’의 인혜는 혼자 술을 마셔 딸한테 잔소리를 듣는다. ‘특별하고도 위대한 연인’에서 여자는 술 마시다 남자와 만나고 헤어진다. ‘타인에게 말 걸기’의 그녀도 혼자 술을 마신다. 좀체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그 여자들에게 술은 제 가슴에 눈물 대신 붓는 위로다. 그건 그들이 아프다는 시그널이다. 아프지만, 온몸으로 부딪치고 겪어낸다. <빛의 과거>에서도 김희진은 여성에 대한 편견에, 오현수는 집단의 틀에 침범당하는 개인성에, 최성옥은 부조리한 사회 시스템에 맞선다(독재 정권과 어용 총장, 성차별 등 1977년의 이 문제는 현재로도 이어진다). 역시 아프지만, 온몸으로 겪는다. 안으로 열하게, 겉으로 서늘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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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누구로 알고 살아가는 걸까
어릴 적 ‘나’인 척하는 ‘나’로 산 은희경이 자신의 소설 속에 ‘이게 진짜 나인가, 보이기 위한 나인가’라는 질문을 넣는다는 이야기, 다시 한번 복기하길 권한다. <빛의 과거> 에서 “끊어진 건 아니지만 간격이 불규칙한 점선 같은 관계”의 유경과 희진은 2017년에 재회한다. 그리고 희진이 1977년을 소재로 쓴 소설 속에서 유경은 제 기억과 다른 자신을 발견한다. 과거의 자신은 비겁하고 징징거리는 공주로 그려질 뿐이었다. 말더듬 때문에 결정적 순간에 물러서는 유경을 두고 희진은 서술한다.

“회피야말로 가장 비겁한 악이다” “그 정도를 치명적 장애나 결핍이라도 되는 듯이 감추려들고 괴로워하는 것이야말로 장애와 결핍을 가까이에서 본 적 없는 그녀의 ‘공주다움’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나와 실제의 나는 얼마나 다른 존재인가. 나는 나를 누구로 알고 사는 걸까, 진짜 나는 누구인가. 은희경이 소설에 심은 이 화두 앞에서 무릎 꺾인 이는 나뿐인가. “15년 전부터 쓰고 싶었던 소설인데 10년 전에도, 8년 전에도, 3년 전에도 쓰다 실패한 건 입구를 찾지 못해서예요. 써서 뭐 하나, 단지 1977년을 불러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회의했죠. 그러다 빛은 오래전 출발해 수많은 시간을 꺾이고 반사된 후에 지금, 여기에 도착했음을 떠올렸어요. 내가 과거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현재를 보는 눈, 나와 타인의 삶을 해석하는 눈이 달라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1977년과 2017년을 오가며 과거와 현재를, 유경과 희진을 들여다보게 됐죠.” 성장이란 자기가 서 있는 시간과 공간을 지각하는 것이다. 소설을 다 읽은 이라면 누구든 딱 한 뼘씩 성장했을 것이다.

은희경의 소설이 늘 그렇듯 이번에도 악역은 없다. “한 사람의 마음에 선과 악이 다 있다고 생각해요. 그 사이에서 갈등하면서, 경계하면서 나쁘지 않은 존재가 되려는 게 인간이고요. 우린 모두 다른 존재예요. 사람마다 다른 상황, 다른 조건에서 각자 인생을 살고 상처를 갖죠. 그 안에서 각자가 다른 방식으로 타인을 대하는 거죠. 어쩌면 과거의 우린 모두 삶의 무게를 감당하느라 조금은 비겁하고 편협했던 게 아닐까요. 나부터 그런 자신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소설을 썼어요. 그냥 그 사람의 인생이라고 존중하고 편들어주고 싶었어요.” 감당하기 쉬운 생이 어디 있겠는가. ‘냉소’와 ‘거리 두기’로 표상되던 소설가 은희경은 생을 이룬 인연들을 저만치서 바라보게 된 것이다. 물론 허튼 위로 따윈 보태지 않은 채로.

2017년의 유경은 “과거의 빛은 내게 한때의 그림자를 드리운 뒤 사라졌다” “나는 과거를 돌아보며 뭔가를 욕망하거나 탄식할 나이도 지났으며, 회고 취미를 가질 만큼 자기애가 강하고 기억을 편집하는 데에 능한 사람도 못 되었다. 뜨거움과 차가움 둘 다 희미해졌다”고 털어놓는다. “손 끝 가까이에서 닿을락 말락 흔들리고 있지만 끝내는 만져보지 못한 빛이었다”고 이 소설을 마무리한다. 우리 누구도 사람 사이의 심연을 건너진 못할 것이다. 인간이란 존재는 광막한 우주에서 외톨이로 잠긴 채 태어났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존재가 중력의 끈으로 이어지듯 떨림으로 서로를 감지할 것이다. 우린 같은 달을 보고 있으니. 그 줄을 살살 흔들기만 하면 되는 거다.

7년 만에 낸 여덟 번째 장편소설 <빛의 과거>. 10년 전 쓰는 데 실패하지 않았다면 여섯 번째 장편이 될 수 있었을 만큼 애먹인 소설이기도 하다.

글 최혜경 기자 | 사진 김정한 | 패션 스타일링 박명선 | 헤어와 메이크업 성지안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9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