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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 조경가 정원은 비울수록 가득 채워집니다
꾀와 기교를 부리지 않고 담담하게 조경가의 길을 걸어온 KnL 환경디자인 스튜디오 김용택 소장의 공간은 그를 닮아 차분하고 안온하다. 개인 주택부터 정신병원 등 공공 정원까지 그 비운 여백에는 홀로 명상하고 사색하며 정서적 안위를 얻게 하는 놀라운 힘이 있었다.

완공을 앞둔 분당의 어느 주택 정원에서 만난 김용택 소장. 그는 설계부터 시공, 식물 식재, 감리까지 정원을 완성하는 전 과정을 책임진다.

저 멀리 키 큰 관목을 조망할 수 있는 넓은 잔디 옆으로 풍성한 그라스가 자리한다.
여백의 미를 담은 한국식 정원
국내 주택 정원 분야의 대표 전문가라 할 수 있는 김용택 소장은 정원 자체보다 정원을 품은 원대한 풍경을 함께 담아낸다. 그는 한국 조경계의 대모라 할 수 있는 정영선 조경가가 대표로 있는 조경설계 서안㈜에서 10년간 경력을 쌓았다. “5년간 사무실에서 도면 작업을 했고, 그 후 5년은 현장을 나갔어요.” 특히 한국 정원의 진수라 평하는 호암 미술관 정원 ‘희원’은 그가 2년 반 동안 설계부터 감리까지 맡아서 진행한 큰 프로젝트였다. “당시 초보 정원 디자이너로서 우리나라 톱 클래스 시공자와 함께한 현장 경험은 저에게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그는 유독 건축가와 함께 설계하는 프로젝트를 맡는 경우가 많았다. “덕분에 건축과 조경의 관계에 대해 고민할 수 있었죠. 특히 건축이란 실제 사람이 거주하는 생활 공간을 짓는 것이기에 안에서 바라보이는 정원의 풍경과 역할을 고심했습니다.” 현재 완공을 앞둔 분당의 주택 역시 건축과 지형에 맞는 조경을 구상했다. 주변 산세를 그대로 수용해 산의 능선을 따라 언덕을 다져 자연스러운 굴곡을 만들었고, 넓게 비운 마당은 탁 트인 시야감을 형성한다. 빈마당에는 빛과 바람, 어둠이 머물다 간다.

“정원은 채우는 것보다 비우는 게 중요해요. 비움의 미학이란 한국 정서와도 맞닿아 있다고 할까요.” 한국 전통 정원의 경우 대개 마당을 여백으로 비워두었다. “정원에서 산과 들, 강의 풍경을 바라보았으니까요. 정원 자체에 볼거리가 가득하지는 않았죠.” 나무를 심을 때도 위계를 정해 한두 그루만 엄선해 심었다. 분당의 주택 역시 원래 있던 주변 소나무를 제외하고는 무겁거나 위압적으로 다가오는 관목은 없었다. 존재감을 드러내는 나무는 집 앞 배롱나무 한 그루뿐이었다. “크기는 작지만 가지의 굴곡이 많아 조형적으로 아름다운 나무예요.”

정원 곳곳의 식물은 어느 하나 튀는 것 없이 주변과 어우러진다. 한 가지 원칙이 있다면, 그늘진 곳, 햇빛이 잘 드는 곳, 바람이 부는 곳 등 식물 생리에 맞춰 장소를 정하는 것. 예를 들면 응달엔 산수국, 수호초 같은 그늘에서 잘 자라는 식물을 골라 심는다. 그가 심는 식물은 잡초와의 경계가 특별히 없을 정도로 무던하다. “저기 단풍나무 아래 난 것이 잡초인데 심은 것 같잖아요. 억새 옆에는 억새 비슷한 잡초가 올라오고, 어떻게 알고 그리 나는지 신기해요.” 그의 정원에서 잡초는 꼭 제거해야 하는 대상이 아닌 모양이다. 널찍하게 자연경관을 품은 저 마당처럼 관대하달까.


“정원은 채우는 것보다 비우는 게 중요해요. 비움의 미학이란 한국 정서와 도 맞닿아 있다고 할까요. 그래서 저는 정원의 마당은 비워둡니다. 그 여백을 통해 저 먼 곳의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죠.” _김용택

주택 입구에 들어서면 작은 오솔길을 따라 넓은 초원처럼 펼쳐지는 마당으로 통한다.

마당 주변으로 심은 그라스는 바람이 불 때마다 하늘하늘 흔들리며 평온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주택 아래층에서 올라오는 길목에는 징검다리처럼 돌을 띄엄띄엄 두어 마치 시냇물을 건너는 것 같다.

청초한 하얀색 꽃잎 위로 나비가 날아든다.
새로 일어나게 하는 치유의 힘
그가 독립해서 작업한 프로젝트가 자그마치 5백 개가 되는 동안 기억에 남는 정원이 있다면 이민아 건축가의 제안으로 맡은 안양소년원이다. 모래밭, 잔디밭, 철길 등으로 꾸민 그 정원은 폐쇄된 공간에서 숨통을 틔우고, 외부 세계를 연결해주는 통로가 되었다. 한참 시간이 지난 뒤 이민아 소장이 그에게 CD 한 장을 건넸다. CD에는 소년원 아이들이 찍은 정원 사진이 담겨 있었다. “작은 잎사귀라든지 물에 비친 나뭇가지라든지 아이들이 저마다의 시선으로 바라본 정원 풍경을 보고 굉장히 감동했어요.” 그는 10년째 전북 완주군에 위치한 정신병원의 조경도 담당하고 있다. 일반 주택 정원과는 다르게 조형이나 식물 배치, 소재를 과감하게 시도했다. 음악 분수를 설치한 원형 연못, 그늘을 만들어주는 가벼운 곡선의 덱 구조물, 밝은 상록수와 잔디, 열매와 꽃이 피는 생동감 넘치는 정원. “생각보다 병원 환자들이 정원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더군요.” 길을 따라 걸으며 잎사귀를 만져보고, 꽃향기를 맡기위해 허리를 구부리며 자신의 모습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정원에서 다시금 자신을 발견한다. 그게 치유의 숨은 동력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정원사에게 물었습니다

한국 정원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 추천해줄 만한 도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최초의 원예서가 있습니다. 조선 초기 선비인 강희안이 꽃과 나무를 기르며 기록한 <양화소록>입니다. 소나무, 대나무, 국화, 매화, 연화 등 우리나라 꽃과 나무의 특성, 품종, 재배법을 정리했죠. 식물에 대한 정보를 넘어 태도를 배울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국화에서 기다림을 배우고, 매화에서 꿋꿋한 의지와 절개를 느끼는 것이죠.

취미로 정원을 꾸미는 초보 가드너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책을 보는 것도 도움이 되지만 무엇보다 자기 땅에 직접 식물을 심어봐야 합니다. 저 역시 다세대주택, 타운 하우스, 단독주택까지 다양한 형태의 주택에 살아보면서 작은 정원을 가꾸었어요. 지금은 2백여 종의 식물을 기르고 있죠. 거름, 바람, 온도, 습도, 햇빛 등 조건을 달리하면서 식물이 자라는 모습을 관찰하는 게 무척 도움이 됩니다. 씨앗에서 어떻게 발아해서 성장하는지 1년을 지켜보세요.

전문 조경가를 꿈꾸는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사무실 안에서 설계하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앉아서 도면만 그리면 실제 공간의 스케일과 느낌을 절대 알 수 없어요. 꼭 현장에서 감리까지 책임을 져야 합니다. 꽃을 심는 방향도 종류마다 다르기 때문에 이를 잡아주면서 심어야 자신이 생각한 그림을 실현할 수 있어요. 현장에서 자신의 감각을 믿고 바꿔야 하는 부분은 과감히 결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일꾼의 작품이 아닌 진정한 자기 작품이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하다 보면 자기 복제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가 오는데, ‘이게 될까? 어떻게 나올까?’ 하고 만들면서도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새로운 시도를 꾸준히 해야 합니다. 이 말은 저 자신에게도 해주고 싶네요.

글 이승민 기자 | 사진 이우경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9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