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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리빙 스타일리스트 김유림 엄마가 기다리는 집
손과 마음을 동시에 담은 것의 기운은 언제나 온유溫柔하다. 늘 바지런히 손을 움직여 무언가를 만들고 엄마의 마음으로 요리를 짓는 사람. 맘스웨이팅 김유림 실장이 제주에 지은 집과 복합 공간은 “어서 와라”는 엄마의 말처럼 따뜻하고 상냥했다.

제주 한경면 금등리에 오픈한 달링하버 제주(@darling_harbour_jeju). 푸드&리빙 스타일리스트로 활동하는 맘스웨이팅 김유림 실장이 문을 연 카페 겸 복합 공간으로 다양한 클래스와 소규모 모임, 워크숍 등을 계획하고 있다. 엄마가 기다리는 집처럼 머무는 동안 마음이 편해지고 포근한 공간이라는 의미를 담아 홀 가운데 집 형태의 구조물을 세웠다.

카페 한쪽의 쇼케이스. 선반 벽 뒤편으로는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작은 휴식 공간(아지트)을 구성했다. 달링 하버 문구를 수놓은 패브릭과 쿠션, 강아지 폼폰은 맘스웨이팅에서 제작했다.
고대 인도에서는 인생을 네 분기로 구분했다. 공부하고 성장하는 학생기學生期, 일하고 아이를 키우는 가주기家住期, 은퇴 후 숲으로 들어가서 생활한다는 의미를 담은 임서기林棲期, 천지자연과 합일하기 위해 여기저기를 여행하는 유행기遊行期다. 이 사고에 따르면 임서기에 들어서야 비로소 삶이 무엇이고 ‘나는 누구인가?’ 같은 의문을 갖게 된다. 처음 이 내용을 접했을 때는 노년기가 인생의 절반을 차지한다는 점이 놀라웠지만, 실제 1백 세 시대를 맞이한 지금 노년기가 인생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길어진 것이 현실이다. 어쩌다 보니 반백 년을 살았다면, 그 이후는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 인생 3분기를 맞은 푸드 스타일리스트 김유림 씨는 숲 대신 제주행을 택했다.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살기
기자가 기억하는 스타일리스트 김유림은 일의 영역을 구분 짓거나, 품이 든다고 몸을 사리고 비용에 맞춰가며 일을 하던 이가 아니었다. ‘맘스웨이팅’이라는 이름이 주는 따뜻한 느낌 그대로 그는 주변 사람들을 품을 줄 알았다. 학교 끝나면 엄마가 있는 집을 향해 한달음에 달려가는 아이 마음이랄까? 월간지의 초 읽기 스케줄과 빠듯한 준비기간에도 늘 한결같이 “해볼게요”라고 말해주는 그를 많은 기자가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가 논현동 작업실을 정리하고 홀연히 제주행을 택한 것은 솔직히 예상도, 예감도 못 한 일이었다. “2006년 맘스웨이팅을 오픈하고 잡지·방송의 푸드 스타일링, 메뉴 컨설팅, 핸드메이드 작업, 리빙 스타일링까지 영역을 확장하며 쉴 새 없이 일한 것 같아요. 당시만 해도 바느질, 요리, 공간 스타일링 등 일하는 분야가 서로 다른 세 사람이 모여서 작업하는 공간이 없었어요. 지금처럼 SNS가 활발할 때도 아닌데도 금방 입소문이 나서 여러 잡지사에서 촬영하자고 연락이 왔어요.”

늦깎이로 푸드 스타일링 공부를 하고, 마음 맞는 친구들과 재미난 작업을 해보고 싶어 공간을 오픈했지만 동업이라는 게 이상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모두 그만두자 했을 때 한번 시작한 일을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오기가 발동했다. 맘스웨이팅을 꿋꿋이 지키며 일을 하는 동안 마음속의 잡음을 떨쳤다. 스타일링만 하면 되는데 촬영 이미지의 배경도 직접 바느질로 만들었다. 단행본 작업할 때는 이미지 소스를 모두 핸드메이드로 제작하고, 스타일링 작업하면서 떠오른 아이디어로 리빙 제품도 론칭했다. “드라마 세 편의 푸드 스타일링 작업을 연이어 했더니 몸이 버티질 못하더라고요. 문득 그동안 뭘 한 건가 의문이 들더라고요. 해온 일의 양은 상당한데, 정작 그곳에 나는 없는 것처럼 공허하게 느껴졌어요.”

어느새 나이가 든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며 누군가는 쉬면서 삶의 의미를 묻고, 누군가는 하던 일을 묵묵히 계속하거나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등 각자의 방식으로 해결책을 찾는다. 김유림 씨는 이 세 가지 방법을 적절히 취하기로 했다. 그래서 그의 제주행은 한 장의 마무리이자 이어지는 장의 시작점이다. 제주는 30대 때부터 50대가 되면 살아보고 싶은 곳이었고, 해오던 일을 계속하면서도 다른 호흡으로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에는 반대하던 가족도 그의 도전과 의지에 응원을 보냈다. 2년 전 땅을 사고, 지난해 집과 작업실, 상업 공간이 따로 또 함께 있는 설계를 마치고 집을 지었다.

높은 천장고를 활용해 메자닌 구조의 중이층 다락방을 만들었다. 맘스웨이팅 리빙을 펼치는 작업 공간으로 지붕이 낮은 벽면에는 수납장을 구성했다.

거실에서 바라본 서재. 타일, 벽 마감재, 도어까지 원하는 자재를 서울만큼 다양하게 구할 수 없어 군더더기 없이 최대한 심플하게 마감했다. 대신 침실과 서재 문짝은 목재 슬라이딩 도어로 제작, 문을 닫으면 포인트 월 역할을 한다.

평생 현역을 위한 일터
한경면 금등리는 원래 한림면에 속하던 지역이다. 협제해수욕장이 걸어서 5~10분 거리로 가까우면서도 무척 조용하고 애월과 달리 시골 정취가 남아 있다. 간혹 시골 마을은 폐가나 창고, 축사 등이 방치돼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데, 이 마을은 잘 관리된 창고와 전통 돌담집이 조화를 이루며 소담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집을 설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동네 풍경과 조화를 이루는 형태와 마감, 그리고 주거 공간과 작업실, 복합 공간을 따로 또 함께 구성하는 것이었다. 습도 높은 제주 환경에 맞춰 콘크리트조 대신 목조 주택으로 설계하고,
외벽 마감도 목조로 선택했다. 집은 주거 공간과 카페 ‘달링하버 제주’로 오픈한 복합 공간이 나란히 연결된 구조다. 가로형 주거 공간과 정사각형 형태의 복합 공간은 외부 출입문을 분리하고 내부에서 현관과 테라스가 연결되도록 했다(차후 쓰임새에 따라 공간을 유동적으로 사용할 수 있고, 두 채로 나눠 짓는 것보다 비용이 절감된다). 집은 높은 천장을 이용해 메자닌 구조의 중이층을 설계했다. 1층은 메인 침실과 서재, 부엌과 거실이 있고, 중이층은 바느질 작업 공간과 작은 방(게스트룸)으로 구성했다. 제주에서는 목재도, 타일도 자재를 구하는 게 쉽지 않아 최대한 심플하게 마감하되 고재 나무로 슬라이딩 도어를 제작해 최소한의 포인트를 줬다.

“작업실 인테리어는 일할 공간만 생각하면 되는데, 집과 작업하는 곳, 상업 공간을 합치면서 생기는 문제점 등 결정해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더라고요. 상업 공간에 바닥 난방을 할지, 보일러를 개별로 설치할지, 온수만 주거 공간에서 연결할지…. 게다가 제주는 LPG 가스를 쓰잖아요. 불 쓰는 주방은 위험할 수도 있어 전기레인지로 시공하고, 바닥 난방과 온수는 LPG 가스로 결정하는 등 서울에서는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결정하고 챙기는 과정이 힘들더라고요.”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집을 짓는 일이 어디 쉬운가? 집 설계를 마치고 시공할 무렵 어깨 수술을 해 감리를 꼼꼼하게 챙기지 못한 그는 결국 완공 후 재공사를 감행했다. 주거 공간의 욕실은 두 번, 카페 주방 시설은 무려 세 번이나 재시공했다. 약속과 달리 미송으로 마감한 주방 가구가 마음에 들지 않아 페인팅했다 다시 철거하고, 자작나무 합판으로 전체를 새로 짰다. 오일 스테인 작업으로 원하는 색감을 만든 뒤, 시선이 방해되지 않도록 전체적으로 상부장은 생략하고 하부장의 수납 기능에 집중했다. 냉장고를 수납한 장은 뒤편의 조리 공간을 가리는 파티션 역할을 한다. 원래 설계보다 작게 시공한 창은 무대식 평상으로 보완했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서면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주방 맞은편 창가에 계단식 평상을 시공해 캐주얼한 좌식 공간으로 꾸민 것. 평상 위에서 창문 너머 오솔길을 바라보며 차 한잔 하고, 식물을 바라보며 힐링할 수 있다.

창밖으로 돌담과 오솔길이 바라보이는 침실은 매일 아침 새로운 시작임을 상기하게 한다. 슬라이딩 도어 안쪽으로 욕실과 간이 드레스룸을 함께 구성, 연한 그레이 컬러 벽지로 마감하고 침대 헤드보드와 가구 등은 최소화했다.

다락방을 오르는 계단에서 내려다본 거실. 집 안쪽으로 허브를 키우는 덱과 마당이 펼쳐진다.

마당 안쪽에서 바라본 집. 덱을 중심으로 왼쪽 건물이 카페, 오른쪽 가로로 긴 건물이 주거 공간이다. 뒤돌아서면 자라는 잡초 때문에 쉬는 날은 아침 일찍부터 윤서 씨와 밭 매는 일이 일상이다. 하지만 이렇게 햇빛을 받으며 꽃과 나무를 조금씩 알아가는 과정이 즐겁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카페 달링하버 제주의 백미는 공간 가운데 자리한 집 형태의 구조물이다. “머무는 동안 마음이 편안해지고 포근해지는 공간”이라는 맘스웨이팅의 콘셉트를 집약한 ‘집 속의 집’인 셈이다. 김유림 씨가 재공사를 앞두고 고민하자 키즈 전용 펜션을 운영하는 옆집의 젊은 건축가 부부가 아이디어를 내고 제작도 해줬다(이웃도 잘 만나야 한다!). 사실 여전히 “제주에 살고 싶다”는 사람이 많다. 제주로 이주하는 많은 사람이 카페나 게스트 하우스를 계획하지만 이미 제주는 카페 포화 상태다. 단순한 카페 이상의 콘텐츠가 필요하다. 달링하버 제주가 자연 풍광이 좋은 제주에서 굳이 식물을 테마로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밖에서 보면 주택인 줄 알고 무심코 지나칠 정도로 외관상 전혀 상업 공간같지 않은 이곳을 일부러 찾아와 문을 열었을 때 “우와” 할 수 있는 시각적 장치가 필요했다. 인증샷만 찍고 떠나기 아쉽다면 카페 구석구석을 장식한 패브릭 모빌, 샤셰 등을 직접 만들어볼 수도 있다. 이때 집 형태 구조물은 워크숍 공간이자, 계절별 리빙 콘텐츠를 펼칠 수 있는 쇼케이스다. 예컨대 지금은 식물을 테마로 하지만, 7~8월 휴가철에는 패브릭을 걸어 휴양지 콘셉트로 꾸밀 수도 있다. “이곳을 알리기 위해 우선 카페로 오픈했지만, 궁극적으로는 다양한 활동을 하는 공간이 되길 바라요. 서울에서만큼은 아니지만 간단한 요리 스타일링 작업도 하고, 귤과 레몬처럼 제주에서 나는 재료를 활용한 청 만들기나 간단한 요리 클래스를 열 계획이에요. 패브릭 소품 DIY 키트도 구상 중이고요. 제주에서 활동하는 솜씨 좋은 분들이 와서 워크숍을 해도 좋고, 소규모 웨딩이나 모임 장소로 활용할 수도 있어요.”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집을 짓는다는 게 쉽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카페 주방. 세 번이나 다시 공사해 냉장고를 끼워 넣는 수납장부터 카운터, 조리대까지 ㄷ자형 공간을 완성했다. 가구는 자작나무로 제작하고 스테인 도장으로 원하는 컬러를 연출했다.

제주에서 인생 3분기를 시작한 푸드&리빙 스타일리스트 김유림 씨.

지난 10년간 압구정동에서 신사동, 논현동으로 작업실을 옮겨도 늘 그와 함께한 바느질 작업 책상과 재봉틀.
달링하버 제주는 서울에서도 같이 활동한 디자이너 고윤서 씨가 함께한다. 김유림 씨보다 1년 먼저 제주에 내려와 생활하던 윤서 씨는 맘스웨이팅과 리빙 레이블이 작업한 단행본 의 일러스트를 비롯해 제품 디자인을 진행했다. 예쁜 창문을 단 쿠션(창문을 열면 왕관을 쓴 럭셔리한 닭, 동화 속 토끼 등이 나온다!), 양면 오너먼트 등 리빙 레이블과 맘스웨이팅이 선보인 리빙 제품의 패턴 스케치업, 기계 자수를 위한 펀칭이 그의 솜씨. 섬유공예를 전공하고 손맛 나는 핸드메이드 작업을 펼치는 김유림 실장과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며 좋은 합을 이룬다. 두 사람은 이왕이면 제주의 지역성을 살린 작업을 하고 싶다. 제주 특산품을 토핑으로 올린 키시, 귤청, 현무암 형태로 만든 스콘 등이 그런 고민의 결과다. “아들이 군대 문제로 한국에 있어요. 제가 제주로 내려간다고 하니까 또 떨어져 살아야 하냐고 말하는데, 마음이 뜨끔했어요. 전 아이의 사춘기를 본 적이 없어요. 물론 유학 중이긴 했지만, 저 역시 일하는 엄마가 갖는 부채감이 있죠. 이 집은 은퇴를 최대한 늦추고자 하는 우리 부부의 노후 대책이면서 동시에 아이를 위해 무엇 하나는 남겨줘야겠다는 엄마의 마음이기도 해요. 비슷하면서도 다른 의미의 맘스웨이팅이죠.” 인간은 평생 변화하는 존재다. 삶의 철학과 방식이 달라졌다면 의식주를 담는 주거의 형태나 기능, 지역도 변화하는 게 맞다. 인생에 없어도 되는 일은 지워나가고 새로운 나이에 새롭게 어울리는 것을 채워가며 살아가는 것. 막연하게 꿈꾸던 제주에서의 인생 3분기를 시작한 김유림 씨는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안고,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이 기분 좋은 변화를 실천 중이다.


오픈 스튜디오
김유림 씨가 운영하는 달링하버 제주에 독자분들을 초대합니다. 여름에 쉽게 즐기는 음료 만들기 시연과 함께 김유림 씨가 만든 수제 과일청을 선물로 드립니다.

일시 6월 21일(금) 오후
2~4시
장소 제주 한경면 금등리 172
참가비 2만 원
인원 8명
신청 방법 <행복> 홈페이지 ‘이벤트’ 코너에 참가하고 싶은 이유를 간단히 적어 신청해주세요.

글 이지현 기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9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