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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악기 메이커 마쓰모토 미라이 가족 자급자족의 삶
중세 시대 이전의 고악기를 직접 손으로 만들어 밥벌이를 하고, 옛집을 고쳐 살며, 농사를 지어 식재료를 얻고, 고악기 연주회로 삶의 유희를 즐기는 마쓰모토 미라이 가족. 살림이라는 일상의 행위를 예술로 승화시킨 이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이른 아침, 촬영을 위해 온 가족이 엄마 집의 정원에 모였다. 아들과 며느리, 딸과 손녀는 모두 패션 디자이너 출신인 엄마가 손수 만든 옷을 입고 있다.

마쓰모토 미라이와 히로미 부부의 집 카테노이에에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거실의 진열장. 소품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오이타 공항에서 차로 한 시간 정도 걸려 도착한 산코우 지역의 산 속 마을. 듬성듬성 빈집이 보일 정도로 인적이 드물고, 어쩌면 사람보다 나무와 새가 더 많을 법한 무척 평화로운 동네다. 마쓰모토 미라이는 6년 전 결혼 후 낡은 가옥을 빌려 아내와 함께 하나씩 고쳐가면서 지금의 예쁜 집을 완성했다. 3년 전부터는 ‘카테노이에’라는 이름을 붙이고 빈방을 손님에게 빌려주는 에어비앤비 숙소를 운영하고 있다. 카테노이에에 들어서는 순간, 거실에 놓인 나무로 만든 오르간과 이름 모를 악기들을 비롯해 여러 가지 장식물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집 안 곳곳에는 하나하나 이야기가 담겨 있을 것 같은 작은 오브제를 진열해놓았는데, 이 부부가 지나온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한 정감 어린 사물들이 참 아기자기하다. 작은 물건이라도 교감이 생기면 소중히 여기는 집주인의 섬세한 성향이 느껴졌다. 도착했을 때 우리를 반긴 건 아내 히로미 씨였고 남편은 일을 하러 갔다고 했다. 그가 출근하는 곳은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고악기 연구소 공방. 고악기는 유럽의 중세 르네상스 시기 악기를 뜻한다. 오늘날 우리에게 친숙한 피아노, 바이올린, 기타 등의 전신인 악기를 손으로 직접 만드는 게 마쓰모토 미라이의 직업. ‘과연 이 생경한 고악기를 지금도 찾는 이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부터 ‘어쩌다 이렇게 생소한 일을 하게 됐을까?’ 하는 궁금증까지, 그에 대한 호기심이 솟구쳤다.


카테노이에의 아늑한 거실. 부부는 살면서 하나씩 고치며 지금의 집을 완성했다. 바닥부터 창문, 전등 등 골격은 주로 남편이, 아기자기한 장식은 아내의 솜씨다.

엄마 집의 거실은 연주회가 열리는 미니 홀과 같다. 이날 취재팀을 위해 가족은 미니 콘서트를 열었다.

카테노이에의 사랑스러운 부엌. 매일 아침 부부는 함께 조식을 차리는데, 남편 미라이 씨의 주특기는 달걀말이다.
타인의 기준 대신 스스로 찾아가는 인생의 길
먼저 그의 아버지 故 마쓰모토 고우하쿠의 이야기부터 하지 않을 수 없다. 고우하쿠 씨는 1972년 유럽 중세 르네상스 시대의 악기를 복원·연구·제작하기 위해 도쿄에 ‘카테리나 고악기 연구소’를 만들었다. 음악대학에서 피아노 조율을 전공했는데, 피아노 이전의 악기가 있다는걸 알고 고악기 연구를 시작한 것. 현대 악기에 비해 종류나 형식이 압도적으로 다양한 고악기의 깊은 멋에 매료되어 악기의 기원을 찾아 가족을 데리고 유럽을 거쳐 한국에 머무르기도 하며 여행 같은 삶을 시작했다. “온라인도 없던 시절이니까요. 자료를 구할 수도 없고, 무작정 직접 만들어보자 하는 마음이었어요.” 고우하쿠 씨의 아내이자 미라이씨의 엄마인 데루씨의 회상이다. 그러다 고악기를 만들기 적합한 환경, 즉 악기의 재료인 나무가 무성한 곳을 찾아 오이타 산코우 마을로 이주한 게 1991년의 일. 2년 전, 필자가 이곳에 왔을 때 고우하쿠 씨는 한국의 악기를 연구하기 위해 한국 국악원에 다니던 30여 년 전의 기억을 되새겼고, 함께 아리랑을 연주하고 같이 노래를 불렀다. 아, 그렇게 따뜻한 사람이었는데, 갑자기 작년 말에 거짓말처럼 자다가 세상과 작별했다고 한다. 참 안타까운 소식이다. 카테리나 고악기 연구소를 개소한 지 46년째, 현재는 장남인 미라이 씨가 이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저도 이 길을 걷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아버지도 하라고 한 적은 없고요. 하지만 어릴 때부터 악기 공방은 저의 놀이터였고, 그 영향으로 고등학교 때 기타를 처음 만들었죠.” 미라이 씨의 말. “돈이 있으면 살 텐데 없으니까 직접 만든 거예요. 예술혼을 위해서는 가난이 유리하다고 하잖아요. 하하.” 엄마가 거들며 덧붙인다. “남편이 독학으로 터득하는 열정이 있었다면, 아들은 아무래도 어릴 때부터 이런 환경에 노출되어서인지 감각이 훨씬 좋아요. 그래서 저 아이가 무언가 만드는 사람이 될 거라고 줄곧 생각했지요.” “고악기 복원과 제작은 무엇보다 재미있고, 또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희소성이 있는 일이니까요.” 미라이 씨가 이 일에서 의미를 찾은 이유다. 한국의 취재팀을 위해 미라이 씨와 엄마, 여동생은 즉석에서 미니 콘서트를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악기를 만들고 연주하는 풍습은 이 가족의 오랜 문화. 미라이 씨는 여동생 마이카 씨와 ‘바오 밥’이라는 이름으로 공연을 다니는 뮤지션으로도 활동 중 이다. 현재 네 번째 앨범을 위해 녹음 작업 중이라고. 한편 이 가족이 2005년부터 공연해온 ‘Sing Bird Concert’는 열여섯 번째를 맞이하는 올해 5월 11일 공연이 마지막이란다. 도쿄에서도 일부러 이 시골을 찾아올 정도로 인기가 많던 이 숲속 연주회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대신 앞으로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하는 작은 연주회나 여러 지역의 인기 숍이 참가하는 마켓을 열거나, 악기 만들기 워크숍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마쓰모토 미라이가 매일 작업하는 고악기 연구소. 악기를 만드는 일은 좋은 음색과 형태를 찾아가는 인고의 예술 작업이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산업혁명 이후 오페라하우스처럼 대형홀 공연이 일반화되면서 악기는 음량이 커지는 쪽으로 진화했다고 한다. 반면 중세 고악기는 소리가 참 나긋나긋하고 상냥하다.

농가의 헛간에 남아 있던 바구니와 소쿠리인데,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거뜬히 사용할 정도로 잘 만든 도구들이다.

주방 한편에 아내가 분필로 써놓은 카테노이에. ‘좋은 기운을 주고받는 집’이라는 뜻이란다.

건강한 식재료로 만들어서인지 정말 맛있던 저녁상.

저녁상을 준비 중인 히로미 씨. 전원생활을 시작한 지 5년쯤 되니 이 생활이 몸에 밴, 진짜 즐기는 기분이 든다는 그다.
손으로 무언가를 완성해가는 기쁨과 보람
미라이 씨는 악기를 만들지 않을 때는 농사를 짓는다. 쌀, 보리, 콩과 제철 채소가 주요 작물이다. 또 틈틈이 시간을 내어 카테노이에 확장 작업을 한다. 부부의 보금자리 옆 빈터에 또 다른 방을 짓고 있는 것. 벽을 세우고, 계단을 만들고, 창을 내고…. 미라이 씨는 그야말로 한 땀 한 땀 새로운 공간을 창조해가고 있다. “80여 년 이상 된 농가를 빌려 싹 바꾸기보다는 좋은 소재를 남겨 원래의 모습을 찾아가는 일에 재미를 느끼며 천천히 하고 있어요. 옛집을 공사하면서 요즘엔 찾을 수 없는 목재나 소재 그리고 지금 시대에는 할 수 없는 정교한 공정을 발견하는 게 즐겁지요.” 이 깊은 산골로 이사와서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찬찬히 손으로 만드는 게 익숙한 미라이 씨와 달리 아내 히로미 씨는 시내에서 살던 도시 여자였다. 물론 처음에는 예상치 못한 육체노동이 당황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하던 즐거움을 5년 정도 지나서야 비로소 진짜 즐기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제는 전원생활을 노동이라고 여기지 않고, 필요한 게 뭘까 돌아보며 하나씩 바꿔나가는 기쁨과 여유를 알게 됐어요.” 히로미 씨의 이야기다. 그가 차린 저녁상은 그야말로 진수성찬! 온 가족이 농사 지은 콩으로 담근 미소로 끓인 미소시루, 이웃 연근 농가 에서 가지고 온 연근을 갈아 만든 춘권피에 굵게 다진 연근을 말아 튀긴 후 마당에서 딴 펜넬을 올린 스프링 롤, 오이타의 명물 치킨 가라아케, 우리가 선물로 준비해간 김부각을 고명으로 올리는 센스를 발휘한 적양배추 샐러드 그리고 자신들이 농사지은 쌀로 갓 지은 고슬고슬한 밥까지! 소박한 재료로 소박하지 않은 멋진 저녁상을 함께 준비하면서 이 가족의 소소하되 깊이 있는 생활을 엿볼 수 있었다. 대량생산한 기성품을 의식 없이 소비하는 시대에 꼭 필요한 건 직접 만들어서 귀중하게 다루고 물려주는 진짜 자연이 가득한 집! 이들의 생활 방식을 쉽사리 흉내낼 수 는 없겠지만, 그 정신은 가슴에 새겨야 할 듯하다. 잊고 있는 삶 속의 가치를 발견하기 위해.

일본 쓰지 조리사 전문학교에서 유학한 요리 연구가 박현신은 <나는 허브에 탐닉한다> 외 다수의 책을 출판하고 <행복>을 비롯한 여러 매체에 요리 칼럼을 써왔습니다. 현재 경기도 용인에서 건축가 남편과 각종 식재료를 기르며 전원생활을 하면서 각국의 전문가를 초청해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독자 여행
일본 규슈 지역의 라이프스타일 고수를 소개하는 연재는 6월호까지 이어집니다. 그리고 <행복> 독자들과 함께 그들을 직접 만나고, 고수의 멋진 감각을 오감으로 체험하는 여행 프로그램을 마련했습니다. 5월 30일(목)~6월 1일(토) 일정이며, 자세한 내용은 본지 57쪽을 참고하세요.

글 박현신 | 정리 강옥진 기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9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