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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김학중 안과 밖이 다르지 않다
건축가의 라이프스타일을 소개하면서 그가 직접 짓고 사는 집을 보여주는 것보다 더 정확한 예시가 있을까? 안팍건축 김학중 소장이 새 집을 지었다. 그가 건축가로서 스스로 완성한 신영동 주택은 비범한 건축 철학이나 공간의 테마 같은 피상적 원칙을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아이들이 뛰놀고, 집중해서 일하다 또 만족스레 쉴 수 있는 집. 작품으로서 순도를 높이는 것보다 ‘생활을 담는 그릇’으로서 건축의 본질을 구현한 보통의 집 짓기다.

안팍건축 김학중 소장이 집 짓는 꿈을 이뤘다. 종로구 신영동에 지은 지하 1층, 지상 3층 건물. 3층 주거 공간은 두 아이가 마음껏 뛰놀 수 있도록 스튜디오형으로 구성했다. 구기동 집에서 갓난아이던 지이는 뜀박질 좋아하는 아이가 되었다. 정면 그림은 김학중 소장과 김 소장에게 학창 시절 그림을 가르치던 류경아 씨가 선물로 그려준 것. 네 식구의 이미지를 네 개의 선으로 표현했다.
안팍건축 설계 사무소(02-3417-8000, www.ahnpaak.com). 안팍건축이라는 의미를 담아 외장재로 쓰는 벽돌을 그대로 노출해 마감했다. 선큰 지하지만 구조로 환하게 빛이 들어오는 것이 장점으로 쾌적한 업무 공간을 조성할 수 있었다.

주거 공간 가장 안쪽에 자리한 주방. 천장과 주방 가구가 한 덩어리 같은 느낌을 연출하도록 주방 가구는 무늬목으로 마감했다. 시각적 통일감이 느껴지는 것은 물론 진짜 원목 가구를 시공하는 것보다 비용 절감면에서 효과적이라 대만족이다.

주거 공간의 침실, 아이 방 모두 문이 없는 것이 특징. 아이 방에는 지이와 창우가 손꼽아 원한 이층 침대를 나란히 배치했다. 정면 창 너머로 절벽 뷰가 일품.
멋진 건축물이 있다.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를 만나 설계 의도와 철학 등을 취재한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자연스레 묻는 질문이 있다. “어떤 집에 살고 계신가요?” 건축가가 사는 집. 나카무라 요시후미가 지은 동명의 주택 순례기가 베스트셀러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건축가가 사는 집’은 늘 호기심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그냥 아파트에 살아요”가 대부분이다 (서로 머쓱해지는 순간!). 건축을 업으로 하는 이들도 자신의 집을 짓기가 쉽지 않은 만큼 집 짓기는 누구에게나 특별한 경험이라는 방증이다. 그런 의미에서 안팍건축 김학중 소장의 주거 이력은 박수를 쳐주고 싶을 만큼 진취적이다. “5년 전 구기동 주택을 레노베이션하면서 집을 짓고싶다는 생각이 더 확고해졌어요. 레노베이션이 객관식 문제라면 신축은 주관식 문제거든요. 이미 완성된 집이라는 한계를 극복하며 개조하는 과정도 충분히 즐겁지만, 이왕이면 터를 잡고 마스터플랜을 짜는 것부터 차곡차곡 풀어나가고 싶은 욕구가 컸죠.”

김학중 소장은 먼 훗날로 미루기보다 두 아이가 더 자라기 전, 가까운 미래라는 확실한 목표가 생겼고, 틈틈이 주변의 땅을 알아봤다. 땅 시세를 바탕으로 예산 안에서 마련할 수 있는 땅의 넓이와 용적률에 맞춰 쓱쓱 스케치도 해뒀다(마치 르코르뷔지에가 어머니 집을 지으면서 땅을 알아볼 때 도면을 안주머니에 넣고 다닌것처럼!). 2층집이 좋을지 3층집이 좋을지, 집과 주거 공간을 함께 둘지 분리할지, 주거 공간에 방은 몇 개 필요한지, 진입로와 마당은 어떻게 구성할지 등 상상만으로도 이미 집 짓기의 꿈을 절반은 이룬 듯했다. 그리고 ‘복이 담긴다’는 호리병 모양의 길쭉한 땅을 만났고, 올봄 첫 삽을 떴다.


웰컴 투 패밀리 하우스
지난한 여름 공사를 마치고 추석 무렵 완공한 그와 가족의 집. 종로구 신영동 대로변에 자리한 박공지붕의 3층 건물은 안팍건축의 신사옥이기도 하다. 지하 1층은 안팍건축의 설계 사무실로, 1층과 2층은 임대 수익을 위해 근린으로 구성했고, 3층은 네 식구의 주거 공간이다. 새 집을 짓기 전 김학중 씨 부부는 구기동 주택에 살았다. 38평 남짓한 2층집을 사서 레노베이션한 뒤 사무실과 주거 공간으로 사용했다. 오가닉 의류 브랜드를 론칭하며 집에서 디자인&비주얼 작업을 하던 아내 하초희 씨의 일터가 함께있던 공간은 천장은 물론 계단까지 노출로 디자인할 정도로 자유로운 감성이 물씬 풍겼다(2013년 <행복>에 레노베이션 스토리로 소개됐다). 갓 돌이 지난 첫째 지이가 있었지만 부부의 라이프스타일 위주로 구성한 집이었다. 반면 이번에 집을 지으면서 최우선으로 고려한 점은 ‘가족’의 생활이다. 둘째가 태어나면서 육아에 매진하는 아내와 두 아이가 안전하면서도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집. 건물 3층에 자리 잡은 주거 공간은 국내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스튜디오형, 즉 오픈 구조다. 김학중소장은 집을 지으며 임시로 아파트에 살았을 때 아이들에게 늘 뛰지 말라고 주의를 준 게 마음에 걸려 긴 직사각형 형태의 건물을 장축(길이) 방향으로 동선 계획을 세웠다. 4m 높이의 천장과 길쭉하게 뻗은 복도 라인의 장점을 살리는 방법으로 벽체도 최소화했다. 집 의 중심축은 아이 방. 아이 방을 중심으로 주방, 거실, 가족실(가족 서재), 부부 침실을 둘러 배치했다. 문을 없애니 아이 둘이 잘 때도 무서워하지 않고, 구석에 작은 쪽창을 내 틈새로 거실을 바라보며 재미있어한다(아이들에겐 이 또한 놀이다). 집의 가장 안쪽에 배치한 주방은 창 너머로 온종일 햇살이 가득하다. 예전 주방은 선반도 장식하고 아기자기하게 꾸몄다면 이번에는 냉장고, 오븐, 후드 레인지까지 모든 것을 빌트인해 미니멀하게 완성했다. “주방은 아내가 가장 시간을 많이 보내는 곳이라 구성은 물론, 식탁도 아내가 원하는 제품으로 골랐어요. 라운드 테이블은 아내가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친구를 초대해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거나, 아이들 간식을 챙기고 책도 읽어주는 등 다양한 활동이 이뤄지는 ‘공간’과 다름없어요.”

계단 경사면 아래 빈 공간이 아이들 놀이방으로 변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면 안쪽으로 넓은 다락방이 나온다. 아이들은 마음껏 어지르고 엄마는 치우지 않아도 되니 좋다.

아이들이 물장난할 수 있도록 넓은 욕조를 설치한 욕실.

안팍건축은 설계와 시공을 함께 하는 것이 특징이다. 한울건축 동기이던 설계사 이병호 씨가 합류해 새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평소 하나둘 모은 북유럽 빈티지 가구가 빛을 발하는 순간! 거울 너머 공간이 부부 침실.

거실과 가족실 사이 날개벽을 이용해 책상을 배치했다. 무채색에 가까운 진한 브라운 컬러 원목 바닥재는 지복득 마루 제품.

3층 주거 공간은 엘리베이터를 이용한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가장 먼저 만나는 현관에 빈티지 사이드보드와 가족사진을 장식했다.
건축, 생활을 설계하는 기쁨
인테리어의 백미는 따뜻하면서도 웅장한 공간감을 완성해주는 천장의 나무마감이다. 박공 천장은 외장용 적삼목에 요철을 내 촘촘하게 시공했다. 지붕에 나무마감재를 시공하면 자칫 산장 느낌이 들 수 있는데, 지붕이 맞닿는 라인에 세로축으로 간접 조명등을 삽입해 모던하면서도 드라마틱한 효과를 준다. “요즘 건축 흐름을 보면 사람이 만든 건축물이 자연에 점점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건축가가 공간의 내부와 외부를 딱 잘라 구분 지으면 내부와 외부 사이의 다채로운 그러데이션이 사라지고 말아요. 쉽게는 내부에 자연 마감재를 시공하는 일부터 적재적소에 창을 계획해 채광을 확보하고 차경을 즐기는 것까지 자연과 건축물을 결합할 수 있다면 사람들은 그 공간에서 더 행복하지 않을까요?” 건축가로서 김학중 소장의 또 다른 신념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쯤에서 ‘안팍건축’ 사무소명의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겠다. 안팍은 ‘안팎’을 소리나는 대로 적은 것으로, 사전적 의미는 사물이나 영역의 안과 밖, 마음속의 생각과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 집 안 살림과 바깥 살림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건축물 중에서도 ‘주택’을 설계하는 사람은 생활을 설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겉보기에만 으리으리한 집을 짓는 게 아니라, 생활 구석구석 디테일을 세심하고 다정하게 챙기는 것 또한 재미지요. 그러려면 건축가가 설계도만 그려서 끝나는 게 아니라, 설계에 맞춰 공간이 잘 구현되고 있는지(현장 감리), 설계에 맞춰 실제 시공했을 때 문제는 없는지(설계 감리) 등 모든 과정에 책임을 져야 하겠죠.” 설계 사무실과 시공사에서 실무를 쌓고 2013년 독립해 주거 공간 위주의 작업을 해온 김학중 소장은 설계와 시공을 함께 한다. 그러다 보니 설계가 현실적이고, 신축뿐 아니라 레노베이션도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설계안이 건축주의 요구 사항이나 대지 조건에 완벽하게 부합한다고 해도 시공 측면에서 보면 바람직하지 않을 때가 있고, 또 시공사에 따라 설계안의 시공 퀄리티를 못 맞출 수도 있다. 시공을 알아야 그에 맞는 설계를 할 수 있고, 혹여 시공에 문제가 생겼을 때도 유연하게 대처하고 조율할 수 있는 것. 물론 두 가지를 함께 했을 때 감리가 투명하게 진행될지, 혹여 양쪽 모두 전문성이 떨어지지 않을지 엄격한 자기 검열이 수반되어야 한다. “제가 이번에 건축주가 돼보니 힘들더라고요. 총공사 비용 내에서 운용해야 하는데 한편으로는 건축가의 욕심 때문에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 있고요. 빠듯한 비용으로도 최대한 원하는 것을 충족하는 것 또한 건축가의 역할이라는 점을 여실히 깨달았죠.” 김 소장은 구조체를 효과적으로 결합하는 방법이나 다른 재료들이 만나는 접합부를 단순화하는 등 프로세스를 줄이는 방식으로 비용을 줄였다. 골조 공사에서 단열을 끝내고, 내부에 빨간 벽돌을 쌓아 벽 마감을 생략하고, 합판으로 노출 콘크리트 효과(코팅 합판을 거푸집에 넣어 콘크리트를 붓고 합판을 뜯어내면 마치 노출 콘크리트 같은 단면이 생긴다)를 내는 식이다.

집의 중심축은 아이 방. 주방, 거실, 가족실 등 모든 공간과 소통하라는 의미에서 천장과 맞닿는 부분과 코너 쪽 창을 유리로 마감했다. 오른쪽 호리병 모양의 땅에 비스듬히 자리한 직사각 형태의 건물. 문화재 심의 구역이라 맞배지붕으로 설계를 바꿨다. 외관을 오래도록 깔끔하게 유지할 수 있는 외장재는 세라믹 사이딩을 시공했다.
일과 생활의 ‘완성’
물론 모든 과정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주변에 문화재(정자)가 있어서 복잡한 문화재 심의 절차에 설계를 몇 번이나 바꿨고, 땅을 파보니 암반이라 지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한 땀 한 땀 암석 제거 작업을 해야 했다. 암반에 물이 고이지 않도록 수로를 따로 조성하기까지, 더 어렵게 만든 지하 공간이라 애착이 크다. 설계 사무실은 지하지만, 선큰 구조라 남쪽과 서쪽으로 난 창을 통해 온종일 햇살이 들어온다. 내부지만 외부처럼 느껴지도록 빨간 벽돌로 마감한 것이 특징. 대표, 소장 같은 직함 말고 직원들과 자유롭게 지냈으면 하는 바람에 책상 대신 커다란 회의 테이블을 짜고 여덟 명이 앉는 책상으로 활용한다. “집과 일터가 함께 있으면 워라밸이 깨지지 않냐고 묻는데, 이게 제 업무 스타일과 맞는 것 같아요. 초창기에는 구기동 집에서 작업하다 일도 많아지고 직원도 늘어나면서 신사동으로 사무실을 분리했어요. 그런데 사무실에 억지로 앉아 있어도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가 많더라고요. 지금은 바로 컴퓨터를 끄고 집에 올라가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요. 아이들과 놀다가, 혹은 자다가도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내려가 작업하고…. 저는 이 방식이 더 잘 맞는 것 같아요.” 집을 짓는다는 것은 집을 머리가 아닌 마음속에 그리는 일이다. 눈을 감으면 이미 완성된 집이 떠오르도록 손으로 머리로 마음으로 하물며 꿈속에서도 그렸을 정도로 억겁의 그리기를 반복했을 그는 자신을 대견해하기에 앞서 모든 노고를 함께해준 이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챙겼다. 안팍건축 사옥을 짓는다고 하니 열 일 제쳐두고 달려와준 시공 소장님, 묻지도 않고 자재를 먼저 발주해준 협력 업체 사장님, 수십 혹은 수백 명의 인부까지, 집은 그들 모두에게 받은 ‘선물’이다. “신선한 공기와 환한 빛을 집 안으로도 충분히 끌어들일 수 있는, 안팎이 소통하는 건강한 집을 꿈꿨어요. 아이들이 언제든지 뛰놀고, 많은 사람이 모여도 좌불안석하지 않고 편안하게, 사무실 역시 도면만 바라보며 씨름하는 답답한 공간 말고 자유롭게 토론하며 편안하게 아이디어를 나누는 곳이길 바라죠. 하나둘 모은 빈티지 가구와 소품처럼 공간 역시 이곳을 오가는 사람들과의 에피소드가 겹겹이 쌓여 숙성되기를요.” ‘안팎으로 꼭 맞다(여러 가지 점으로 완전히 맞거나 서로 어울리다)’는 문장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행복> 독자를 초대합니다
<행복>을 통해 다양한 주거 프로젝트를 소개해온 건축가 김학중 씨의 집과 사무실로 독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일과 생활이 함께하는 공간을 둘러보며 다채로운 집 짓기 아이디어를 나눠보세요.

일시 2019년 1월 16일 (수) 오후 2시
장소 종로구 신영동 안팍건축 사옥 참가비 1만 원
인원 7명
신청 방법 <행복> 홈페이지 ‘오픈 하우스’ 코너에 참가하고 싶은 이유를 간단히 신청해주세요.

글 이지현 기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8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