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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이 사는 법 가회동 소셜 클럽, 쓸모 인류 빈센트의 집
가회동 한복판의 작은 한옥에 대한 얘기들이 조용히 들려왔다. 매일 생활하는 집이면서도 어쩐지 집 같지 않은 집, 집과 물건에 대한 접근 자체가 다른 집, 그러면서도 들어온 누구에게나 최상의 쾌적함과 안온함을 주는 곳. 빈센트의 한옥, 아폴로니아다.

가회동 한옥 ‘아폴로니아’의 빈센트와 우노 초이 부부. 젊은 시절 이미 집안일이든 무엇이든 주도적으로 관장하고 제대로 즐길 줄 아는 사람은 결국 버틀러(집사)라는 사실을 알았다는 빈센트. 귀찮음의 유혹을 뿌리치고 언제나 활발히 제 쓸모를 찾아 몸을 움직이는 빈센트는 이곳 아폴로니아의 주인이자 집사다. 아내는 매일 남편의 맞춤형 서빙을 받는다.

집 바닥의 꽃무늬는 아내가 좋아하는 샴페인의 문양을 본떠 만든 것. 집 안 곳곳에 재미 요소를 배치하는 것을 즐긴다.

기존 전통 한옥을 리모델링하면서 바깥 현관을 확장해 실내로 들였다. 기와와 서까래의 가장자리를 유리로 연결해 천장을 만들었다.


오른쪽 1백 년을 살 집이라는 생각으로 과감하게 개조했다. 바닥의 높낮이를 없애고 방 네 개를 터서 오픈형으로 만들었다. 방을 포기했지만 벽이 없으니 집 전체가 환하고 공기 순환이 잘돼 늘 쾌적하다.

“누구나 시시덕거릴 수 있는 아지트가 필요해. 이 집은 소셜 미팅 아지트야.”집주인 빈센트는 생뚱한 말로 집 소개를 시작한다. 많은 사람이 부담 없이 자주 모일 수 있는 장소로 만들었 다는 집. 가회동 한옥을 리모델링하고 파인애플 문양이 그려진 ‘아폴로니아’라는 이름의 문패를 단 지 정확히 1년이 지났다. 그가 꿈꾸는 집은 아지트 같은 공간이다. 누구나 모여서 편히 놀고 쉴 수 있는 제3의 공간 말이다. “우리는 다 외롭잖아. 나이가 들수록 반가운 친구들이 들락거려 활기가 넘쳐야 해. 나는 그렇게 모여서 시시덕거릴 수 있는 집을 만들고 싶었어.” 그의 말대로 빈센트의 한옥 아폴로니아는 집이면서도 집 같지가 않다. 제3의 공간이라는 표현에 걸맞게, 살림하는 집의 느낌보다는 편안한 소셜 클럽이라는 설명이 더 잘 어울린다. 빛이 잘 드는 자그마한 한옥은 전체가 큰 구획 없이 하나의 공간으로 탁 트여 있고, 군데군데 눈길을 끄는 디테일들은 허투루 보아 넘길 게 하나도 없다. 값나가는 물건이나 고급 가구로 꾸민 집이라면 빈센트의 집에선 명함을 내밀지 못할 것 같다. 오래된 물건, 중고 물건들이 이 집 안에서는 반짝반짝 빛이 난다.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집에 ‘온리 원only one’ 의 형용사를 붙인다면 바로 이 집이 아닐까 싶다. 꽁지머리를 한 어딘지 괴짜스러운 외모에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활발한 몸놀림의 빈센트와 보면 볼수록 잘 어울리는 집이다.

‘메이드 바이 빈센트’의 완벽한 시스템 주방. 본인의 라이프 패턴과 동선까지 고려해 하나하나 주문 제작한 것들이다. 오래 쓸 수 있는 스테인리스 소재를 사용했고 가지고 있는 물건들에 맞게 수납 공간을 짰다. 신선 식품을 고집하는 빈센트는 냉동고 없이 냉장고만 사용 중이다.

빈센트의 ‘최애템’인 고무신. 아내 우노 초이가 아트적 페인팅을 더했다. 찢어진 고무신도 바느질한 후 페인트칠을 하면 감쪽같다고.

비누가 쉽게 물러지지 않도록 고안한 비누 거치대. 사용하면서 작아지는 비누 사이즈까지 고려한 것을 보면 빈센트는 진정한 생활 발명가이다.

집에서 나는 빵 굽는 냄새를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매일 아침 빈센트가 직접 굽는다는 ‘못난이 빵’. 프렌치 코스 요리를 만들 만큼 수준급 요리 실력을 지녔으되 단순한 재료로 건강한 음식을 만든다는 것이 빈센트의 철학.

골드와 퍼플, 핑크 톤의 게스트 욕실. 청소하기 쉽도록 벽 고정형 변기를 달았다.

매일 드는 가죽 가방. ‘쓸모’를 고려해 빈센트가 디자인하고 아내 우노 초이가 전시회를 준비하며 직접 만든 것.

세탁기 옆 30cm 정도의 자투리 공간에 바퀴 달린 여닫이 수납장을 짜 넣고 세제 등을 두었다.
잘 지어서 오래 쓰는 게 진짜 친환경
은퇴하고 북촌에 살기로 마음먹은 후 빈센트는 적당한 크기의 옛 한옥을 찾았고, 리모델링하는 데만 1년이라는 시간이 꼬박 걸렸다. 오래 살 집이라 세세한 부분까지 무던히 신경을 쓴 것이다. 모든 디테일을 남의 손에 맡기지 않고 직접 챙겼다. 디자인하기, 집 짓기, 유지하기. 집을 계획하고 짓고 고치고 살아가는 것 모두 빈센트에게는 매우 중요한 친환경적 행위이다. 이 세 가지 조항이 조화롭게 맞물려야 환경을 고려한 집 짓기가 가능하다고 그는 말한다. “집을 디자인하고 짓는 데 걸리는 시간이 1~2년이라면 이후 그 집을 유지하는 시간은 50년이 넘어. 디자인하고 짓는 단계에서 잘만 하면 집은 1백 년도 너끈하게 유지할 수 있지. 집을 부수고 다시 짓는 것보다 지을 때 잘 지어서 오래 사는 게 환경을 위한 일이잖아. 뭐든 한 번 설치해서 영원히 사용하면 공해가 없고 말이야. 친환경 물건을 사고 먹고 쓰는 행위보다 더 사회적이고 실질적인 에코 라이프지.” 집의 디자인을 엉터리로 하면 나중에 짓고 고치는 데 돈이 더 많이 든다. 애초에 지을 때 잘해놓으면 유지하면서 돈이 덜 들어간다. 살면서 쾌적하고 편안한 건 당연지사. 단순한 이치 같지만 보통 집을 짓거나 리모델링하면서 이런 원칙을 세우고 지켜내기란 쉽지가 않다. 빈센트는 자신이 정한 조항들을 말 그대로 ‘원칙적으로’ 이 집에 적용했다. 집을 구하거나 짓는 ‘목적’에 관한 나름의 원칙도 있다. 공간이 소박할 것, 집에 격식이 없을 것, 수다를 떠는 공간일 것. 그가 말하는 소셜 미팅 플레이스는 결코 농담이 아니다. “나이 들수록 모여서 즐길 수 있는 아지트가 필요한 거야. 누군가의 집에서 편하게 모일 수 없으니 다들 커피 가게에 모여 있지. 반대로 나는 내 집을 아지트처럼 만들고 싶었어. 관계를 내 스스로 주도하는 공간인 거지. 좋아하는 사람들과 자주 모여서 얼굴도 보고 커피도 마시고 샴페인도 마시는 공간. 사람들이 모일 수 있도록 큰 테이블이 있어야 하고, 영화를 볼 수 있는 프로젝터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았어. 또 사람들이 자주 들락거리는 공간이니 청소하기가 쉬워야겠지. 난 그런 집을 만든 거야.”


‘실천’의 힘이 디테일을 만든다
이렇게 움직이고 실천하는 힘이 어디서 나올까 싶을 만큼 빈센트는 매사 실천하고 행동하는 사람이다. 매사에 ‘쓸모’를 고려하는 그의 실천적 태도가 이 집 아폴로니아 곳곳에 묻어 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공기부터 다른 쾌적함을 느낄 수 있는데, 습도와 온도, 조도까지 과학적으로 고려해 집을 지은 빈센트의 세심함 덕분이다. 콘센트와 스위치 사이에서도 바깥바람이 들어온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설계 단계에서 이런 부분까지 모두 챙겨 완벽하게 ‘하자 없는’ 집을 만든 것이다. 이 집에는 모든 가구와 집기, 디스플레이와 전기 시스템까지 여느 집에서는 생각지도 못하는 디테일이 들어있다. 모든 서랍은 구획에 맞게 나누었고 이중으로 특별 제작한 서랍도 많다. 싱크대는 을지로에서 스테인리스 스틸 소재로 맞추었고, 모든 수납장도 갖고 있는 물건에 맞게 맞춤 제작했다. 움직임의 패턴까지 고려해 콘센트의 위치를 잡고 환경을 생각해 LED 램프를 달고 센서를 장착했다. 이 집엔 DIY 요소가 많은데 필요한 것은 직접 만들어낸 결과이다. 빈센트는 이 집에서 1백 년을 살 계획이란다. 오래 쓸 집이니 맞춤형으로 완벽하게 손보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친환경 페인트와 에코 컵이 중요한 게 아니라 마인드 세팅부터 환경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해. 친환경 물건을 구매해서 에코를 실천한다는 개념은 물건을 새로 만드는 장사꾼에게만 도움이 되는 에코야. 오히려 내 라이프스타일에 에코 컵이 맞느냐의 문제가 더 중요한게 아닐까. 나에게는 스테인리스 스틸 소재가 그런 개념이야. 실용적이고 거의 영구적으로 쓸 수 있고, 위생적인 소재여서 집 내부 자재로 많이 활용했지.” 지구환경과 사회 구성원, 그리고 경제성. 이 세 가지 사항을 고려하지 않으면 에코는 말로만 그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사람과 동물을 포함한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커뮤니티와 우리의 자연환경이 건강해져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에코 라이프 자체가 궁극적으로 모든 사람의 경제적 형편에도 이로움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농부들에게 환경을 위해 농약을 쓰지 말라고만 할 게 아니라, 농약을 쓰지 않고도 개개인의 삶에 이익이 되도록 사회가 서포트를 해줘야 하는 거지. 이 세 가지가 조화를 이루지 않으면 사회가 건강한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할 거야. 이것들이 제대로 맞물려 돌아가지 않으면 개인의 이기심 때문에 결국 ‘에코’의 연결 고리도 끊어지는 거고.”

한번 사면 평생 쓰고, 중고로 구입한 물건도 새것처럼 관리해가며 쓰는 빈센트. 그는 이런 삶의 태도가 진정한 친환경이라고 믿는다. 오랫동안 모아온 아름다운 빈티지 커피 잔들은 매일 사용한다.


확 트인 한옥의 맨 안쪽, 부부의 침실. 오렌지, 핑크, 옐로 컬러가 유쾌하게 어우러진다. 침대 위 가로 창에는 아랫집 기와지붕이 그림처럼 걸려 있다.

가장 최근 마련한 의자. 중고 물건에도 커버링을 하거나 곱게 색감을 더해 집 전체의 분위기에 어울리게 손질해 새것처럼 사용한다. 그러니 집 안의 모든 물건이‘빈센트 스타일’, 즉 빈센트는 브랜드 메이커다.
중고가 반짝이는 집
빈센트의 아내이자 모델, 단추 디자이너인 우노 초이는 “우리 집의 명품은 중고”라는 설명을 덧붙인다. 이 집에선 중고 물건을 명품처럼 쓰고 있다. 바 스툴이나 나무 의자는 빈센트가 을지로 뒷골목에서 발견해 구입해서 수선한 것들. 옥상에 있는 야외 의자도 그렇고, 부부가 자주 사용하는 커피 잔들도 빈티지가 대부분이다. “중고 물건들이 우리 집에 와서 전성기를 맞은 거죠. 빈센트의 눈에 띄면 다 명품처럼 변해요. 빈센트는 항상 관리하는 사람이에요. 갈고 닦고 사용하는 사람. 남들 눈에는 별것 아닌 것도 친환경적으로 재활용하는 남자죠. 새로운 물건을 살 땐 평생 쓸 수 있는 것으로 고르는게 원칙이고요.” 빈센트의 철학은 간단명료하다. 뭐든지 콤팩트하게 만들어 정성 들여 관리하고 자주 쓰는 것. 자주 쓰면 쓸수 록 환경적으로 좋다는 것. 사람들이 이 집에 와서 편안함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손때와 세월이 켜켜이 쌓인 물건들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던 것처럼 집 안 곳곳 에 편안하게 자리 잡은 물건들은 근사한 새것처럼 눈길을 끌지만, 빈센트의 손길을 거쳐 잘 관리되고 다시 태어난 중고들이다. 중고 물건에 발랄한 색감과 숨결까지 불어넣은 빈센트를 보면 결국 모든 건 사용하는 사람의 태도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빈센트의 집 아폴로니아에는 방명록이 놓여 있다. 집에 들르는 이들이 손수 남긴 기록이다. 들춰보니 공감가는 글귀가 보인다. “어느 것 하나 이유 없는 게 없는 집. 집 전체가 너무 재미있고 또 유용한. 누가 따라 할 수 없고 돈으로 살 수 없고 그 마음을 읽으면 읽을수록 재치가 넘치는 집이 곧 사람인 집.” 많은 얘깃거리를 지닌 빈센트의 생활 철학은 10월 <쓸모 인류 빈센트>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이 동네에 이보다 멋진 집이 얼마나 많겠어. 비싸고 반짝이는 가구로 꽉 찬 집이 아닌데도 다들 오면 이런 집 처음이라고 놀라곤 하는 이유는 세컨드 하우스가 많은 북촌에서 이 집은 실제로 살면서 쓰고 겪고 느끼는 집이기 때문일 거야. 많은 사람이 와서 자주 쓰는 게 친 환경의 시작 아닐까.” 사는 즐거움은 별스러운 데 있는 게 아닌 듯하다. 내가 사는 공간의 소중함, 일상의 소중함을 ‘함께’ 즐기는 것에서 시작하는 마음. 빈센트의 작은 한옥에서 얻은 소중한 깨달음이다.

글 안지선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8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