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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브 요리 전문가 박현신∙손진수 부부 단순하고 충만한 전원생활
언제 더웠냐는 듯 여름이 지나가고 어느덧 가을이 왔다. 헤르만 헤세는 저서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에서 “무더운 마지막 밤들이 이어지고 과꽃이 피어나는 이 시기에 나는 내 몸의 모든 숨구멍을 통해 자연을 빨아들인다”고 말하며 가을로 접어드는 바로 이 계절을 예찬했다. 도심에서 그리 거리가 멀지도 않은데 쉽게 대자연을 접할 수 있는 경기도 용인. 허브 요리 전문가 박현신과 건축가 손진수 부부의 전원생활도 절정의 계절 ‘가을’을 맞이했다.

경기도 용인, 허브 요리 전문가 박현신 씨와 남편 손진수 씨(건축가)가 직접 설계하고 지은 전원주택. 왼쪽은 주거 공간, 오른쪽은 창고(작업실)로 집을 둘러싼 소담한 정원과 키친 가든이 전원생활의 묘미를 더해준다.

자연스러운 멋이 느껴지는 리넨 커버링 소파와 프리츠 한센의 포울 키에르홀름 라탄 라운지체어로 꾸민 리빙룸.

주택살이의 장점 중 하나는 바로 창문 있는 욕실. 침실과 연결된 작은 욕실을 초록색 가구와 거울로 포인트를 줬다.

관에서 바라본 주방&다이닝룸. 밖으로 자그마한 덱이 연결된다. 이층집에서 단층집으로 규모를 줄이되, 박공 천장의 구조를 살려 시원한 공간감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지난해 봄, 박현신·손진수 씨 부부는 오랫동안 가꾸고 일군 두창리 호숫가 집을 떠나 지난해 이웃 마을로 이사했다. 빨간 벽돌로 마감한 목조 주택의 형태는 두창리 집과 비슷하지만 집과 창고, 정원까지 규모는 반으로 줄었다. 전원생활을 시작한 지 딱 20년 만이다. “1997년 아파트 생활을 정리하고 근교에 집을 지었어요. 제가 전문적으로 요리 클래스를 시작했는데 아파트에서 허브를 키우기가 쉽지 않았고 디자인 회사를 다니던 남편도 집 짓는 일을 해보자고 해서 도시 생활을 정리했죠. 디자인하우스에서 출간한 <땅의 노래 바람의 꿈>이 전원생활을 결심하는 데 큰 용기를 줬어요.” 박현신 씨는 이상적인 전원 공동체를 일구고 살아가는 홋카이도 아리스 팜 이야기에 감명을 받아 농장을 직접 찾아갔다. 시골집이라 하면 으레 불편하고 지저분하며 촌스러운 이미지가 떠올랐는데, 아리스 팜을 방문한 후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시골이라도 얼마든지 예쁘게, 깔끔하게 또 편리하게 살 수 있는 방법, 부부가 ‘전원주택’이 아닌 ‘전원생활’을 강조하는 이유다.

주거 공간의 서재. 오른쪽 책상은 남편 손진수 씨가 직접 만든 것. 책이 밖으로 보이지 않도록 문짝이 달린 붙박이장 안에 책을 수납한다. 

창고 작업실에 놓인 그릇장. 민트 그린 컬러가 요리하는 공간에 상큼한 포인트를 준다. 

빈티지 사이드 보드와 금속 촛대, 유리 화기, 조명등이 조화를 이룬다. 유칼립투스 열매처럼 마당에 있는 모든 허브가 꽃꽂이의 재료가 된다. 

최소한의 가구로 정갈한 휴식 공간을 완성했다. 손진수 씨가 직접 제작한 침대 프레임에 매트리스 대신 두툼한 목화솜 요를 깔고 생활한다.

부엌의 백미는 바로 손진수 씨가 뚝딱 만든 벽면 수납장. 나무 도마, 파에야 냄비, 각종 틀까지 수납과 장식을 동시에 만족하는 자랑하고 싶은 아이템이다. 
1백 평 집보다 스무 평 창고가 주는 여유
도시 생활에 지칠 때면 누구나 전원생활을 꿈꾼다. 대부분은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살겠다는 막연한 꿈을 안고 전원생활에 입문하지만 현실의 벽이 만만치 않다. 공기 좋은 야외에서 바비큐를 즐기는 것도, 가드닝의 낭만도 봄 한 철이다. 가뭄, 벌레, 잡초 등과 씨름하다 혹독한 겨울을 맞으면 그제야 자신의 선택을 의심하고 후회하기 시작한다. 전원 ‘주택’만있고 그 안에서의 ‘생활’은 없기 때문이다. “집을 지을 때 가장 중요한 건 평수도, 디자인도 아니에요. 매일의 생활이 편안하려면 관리하기 수월해야하고 기능이 뒷받침되어야 하죠. 창고는 그런 의미에서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꼭 필요한 공간입니다.” 남편 손진수 씨가 직접 지은 집은 주거동과 창고동이 앞뒤로 나란히 자리한다. 주거동은 단출한 식구가 살기 편하도록 평수를 40평(약 132㎡)으로 줄여 단층으 로 짓되 높은 박공 천장 구조를 살려 주택 고유의 개방감을 느낄 수 있다. 주인공은 단연 주방과 다이닝 공간. 일반적이라면 소파를 두었을 공간에 8인용 테이블을 두고 테이블 옆으로 낮은 리넨 소파와 포울 키에르홀름의 라운지체어를 매치해 편안한 무드를 완성했다. 뒤채 창고는 20평(61㎡)으로 계획했다. 창고는 반을 나눠 한쪽은 박현신 씨의 다이닝 공간으로, 한쪽은 손진수 씨의 목공 작업실로 사용한다. “시골에 살면 도시와 달리 허드레 물건이 많아요. 창고가 필요하다는 걸 알아도 대부분 자투리 공간을 활용해서 작게 짓는데, 이왕이면 넉넉하게, 또 집처럼 정성 들여 지으라고 조언해요. 작고 답답한 창고는 그저 물건을 쌓아두는 공간으로 끝나고, 나중에는 뭐가 어느 구석에 있는지도 몰라 잘 찾아 쓰지도 않거든요. 그래서 또 정리가 안 되고, 악순환이 반복되죠.” 손진수 씨는 창고를 지을 때 집과 똑같은 단열재를 시공했다. 벽과 벽 사이에 공기층을 만들고 단열재를 넣으니 환기가 잘되어 여름에 곰팡이 슬 염려도 없고 겨울에도 따뜻하다. 집과 창고 모두 지열 시스템을 적용해(지하 150m에서 15℃ 정도의 미지근한 물을 끌어 올려 난방, 에너지원으로 사용)지난겨울 영하 10℃의 날씨에도 영상 10℃ 정도의 온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난방비 절감을 넘어 사용한 물은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내고, 화석연료도 때지 않으니 환경보호에 도움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아름다운 창고에서 박현신 씨는 플로리스트, 일본의 차 전문가와 협업해 색다른 클래스를 펼치기도 했다. 창고의 반대편 문을 열고 나가면 집 뒤편의 숲이 펼쳐지는데, 그는 은밀한 후원과 같은 이 공간을 가장 좋아한다. 하늘을 보고 시원한 바람을 쐬고 빗방울도 맞을 수 있는 곳. 낡은 테이블과 불을 때는 화로가 있어 언제든 낭만적 야외 수업을 펼칠 수 있다. 지난여름 이곳에서 클래스를 한 아보리스타의 박혜림 플로리스트는 뒷산에서 채집한 식물로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꽃꽂이를 선보였다. 손진수 씨의 또 다른 취미는 목공이다. 전원 생활을 하면서 필요한 것을 하나둘 만들어 쓰다 보니 본업이 목수, 부업이 집 짓는 일이 되었을 정도다. “은퇴 후 많은 부부가 겪는 고민이기도 할 텐데요, 저희처럼 자유로운 직종의, 집에서 일하는 사람은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얼굴을 마주 보고 있어요. 안채와 사랑채처럼 주거 공간과 창고로 자연스럽게 서로의 영역을 분리해 거리 두기를 하죠. 따로 또 같이, 서로의 생활을 존중하면서도 갈등을 줄이는 방법이에요.”

창고 속 박현신 씨의 작업 공간. 미송 합판 마감에 천장의 목구조, 창밖의 그린 풍경과 수확한 채소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박현신 씨는 이곳에서 허브 요리를 비롯해 다양한 클래스를 진행할 계획이다.
두 시간 일하고, 네 시간 쉬고
부부의 하루 일과는 매일 아침 5시 30분에 시작한다. 간단하게 커피 한잔 마시고 해가 뜨기 전 한두 시간 정도 밭일을 한 후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 갓 채집한 채소로 만든 샐러드와 오믈렛, 수비드한 닭가슴살구이 등 아침은 그야말로 든든하게 차려 먹는다. “전원생활을 유지하려면 일의 노예가 되지 말아야 해요. 남편과 저는 아침에 두 시간, 오후에 두 시간 정도 시간을 정해놓고 정원 일을 해요. 보통 가드닝을 유행처럼 봄에 반짝 하는 거라 생각하는데, 사실 매일 꾸준히 해야 지치지 않고 지속할 수 있죠.” 그래서 부부의 1년살이 계획은 정원 일과 맞물려 있다. 일반 채소는 4월에, 콩은 이른 봄에, 당근은 여름에 씨를 뿌린다. 해가 길어지는 5월부터는 뒤돌아서면 자라는 정원의 잔디를 이틀에 한 번꼴로 깎아야 한다(자주 깎아야 밀도가 높아지고 잡초가 자랄 틈이 없다). 가지, 토마토, 고추, 호박을 수확하는 여름을 지나 8월 마지막 주에는 무와 근대, 시금치 씨앗을 뿌렸다. 뜨거운 여름 햇볕에 고추도 말리고, 파란 수세미가 누렇게 되면 껍질을 벗기고 씨를 털어 말려 1년 동안 쓸 천연 수세미를 만든다. 폭염과 가뭄이 계속되는 여름은 정원에 가장 많이 신경을 써야 할 시기라 부부는 여름휴가 대신 가을·겨울에 긴 휴가를 떠난다.

부엌과 마주 보는 남편 손진수 씨의 작업 공간. 목공 테이블과 도구들이 정갈하게 정리 정돈되어 있다. 작업하다 쉬거나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작업대 뒤쪽으로 작은 방을 구성했다.

키친 가든의 싱그러운 아침 풍경. 박현신 씨의 SNS(@orto_madre) 피드를 그대로 옮기면 “콩 한 알을 심었더니 수익률 최고!” “콩 심은 데 콩 났다”.

빨간 고추는 여름 햇볕에 바짝 말려 보관한다.

올해는 레몬 농사가 잘됐다.

정원 일을 스타일리시하면서도 편리하게 하기 위해 부부가 직접 디자인해서 제작한 작업대. 바퀴를 달아 이동하기 쉽고 화분 거치대로 활용할 수도 있다.

폭염을 이겨내고 주렁주렁 열린 대추가 가을을 알리는 듯하다.

폭우와 추위에서 어린싹을 보호하는 온상. 딱 먹을 만큼만 수확하기 좋은 작은 크기로 제작했다.
“밭을 일구다 보면 먹는 방식도 바뀌죠. 예를 들어 마트에서는 무 하나만 사면 되지만, 밭에서는 비슷한 시기에 수십 개는 거뜬히 수확해요. 갈무리를 하거나 절임으로 만드는 등 방법을 이래저래 고민하다 보면 음식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죠. 또 레시피를 결정한 다음 장을 보는 것과 달리 수확한 채소를 어떻게 요리할까 생각하는 것은 무척 크리에이티브한 일이에요.” 손진수 씨는 얼마 전 20년 가드닝 노하우를 담아 작업대를 직접 디자인, 제작했다. ‘호미질은 꼭 쪼그리고 앉아서 해야 하나?’ ‘무거운 화분을 쉽게 옮기는 방법은 없을까?’ ‘작업대도 되면서 디스플레이 효과도 있으면 좋을 텐데’ 등 실제 정원 일을 하면서 생각해오던 부분을 하나둘 적용해 완성한 모종 작업대는 히노키탕에서 사용하는 나무로 프레임을 짜고 한쪽에 흙을 부을 수 있는 양철 포트를 끼워 제작했다. 서서 모종 작업을 하거나 분갈이할 때 편리한데, 공간에 맞춰 크기와 높이를 조절할 수 있어 아파트 테라스에도 활용할 수 있 다. 키친 가든의 온상 역시 올여름 폭우 때 진가를 발휘한 아이템이다. “전원생활의 가장 큰 장점은 남들보다 채소를 일찍 수확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 5월에 먹어야 할 채소를 4월에 먼저 먹어야 더 맛있고, 그래야 이웃에 나눠줘도 반가워하죠. 딱 이 정도 크기의 온상이 있으면 약간 추울 때도 루콜라, 상추를 먹을 수 있어요. 늦가을에 씨를 뿌려도 서리를 피할 수 있고요.”

인근 과수원에서 재배한 포도와 복숭아, 홈메이드 토마토 주스와 수비드로 조리한 닭 가슴살, 샐러드로 차려낸 실제 아침 식사. 날씨가 좋은 날에는 테라스에 앉아 낭창낭창한 햇살을 받으며 잉글리시 브렉퍼스트를 즐긴다.
뿌리를 단단하게 내리고 태양을 향해 건강하게 뻗어 올라가는 생명을 접하는 것은 매일매일 분주하게 살아가는 사람에게 큰 위로가 된다. 그런 이유로 전원생활을 꿈꾸지만, 정작 생활은 없는 그림 같은 집만 머릿속에 그리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어렵게 용기를 내 시작한 전원생활이 벌써부터 괴롭기만 하다면, 박현신·손진수 씨 부부의 전원생활에 귀 기울여보라. 뭐든 무리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치에 맞는 생활을 하면서 스타일리시하게 정원 일을 즐길 수 있는 여유, 관리하기 편할 정도로 살림의 규모를 줄이되, 창고조차도 머물고 싶은 공간으로 구현하는 정성. 진짜 가드닝은 봄에 반짝 유행처럼 하는 게 아니다. 한여름의 폭염과 폭우를 견뎌내야 녹음과 열매, 꽃이 공존하는 충만한 이 계절을 맞이할 수 있다.

글 이지현 기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8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