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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리포트 지금 우리가 느껴야 할 신맛
“한 번 먹고 두 번 먹고 자꾸만 먹고 싶네!” 작년부터 신맛의 유행이 심상치 않다. 자몽이나 라임 같은 시트러스 과일의 신맛이 크게 인기를 끌더니, 올해는 신맛이 나는 음식이 미식 트렌드의 중심에 섰다. 우리는 왜 신맛에 열광하는 걸까? 음식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던 시절, 신맛은 경계의 대상이자 신중히 다뤄야 하는 맛이었다. 발효되어 먹어도 되는 음식인지, 부패해 버려야야 하는 음식인지의 판단을 산미와 후각에 의존했다.“한국인은 서양인보다 신맛에 열 배 가까이 민감하다. 해외여행으로 다양한 식재료를 접하게 됐고, 미식에 대한 폭이 넓어지면서 맛을 수용하는 범위가 확장됐다. 자연스럽게 단맛과 매운맛을 대체하는 맛으로 신맛이 떠올랐다.” 최낙언 식품 평론가는 사회 전반적으로 신맛의 호감도가 상승했다고 이야기한다. 신맛은 단맛과 어우러져 맛과 향을 증폭하는 역할도 하고, 부패를 막아주는 훌륭한 보존제가 된다. 그 자체로 훌륭한 자극제가 되기도 하는데, 예를 들어 드레싱에 시트러스 과일의 즙을 넣으면 맛이 한층 풍성해진다. 음식에 산미료가 들어가면 새콤한 맛이 입안에 침이 고이게 하며, 소화를 돕고 맛을 느끼는 데 도움을 준다. 이유야 어떻든 신맛이 매력적인 것은 분명하다. 새콤하고 상큼한 맛이 강한, 산미가 풍부한 커피가 스페셜티 커피의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 잡았고, 시큼한 맛이 나는 사워도도 인기다. 주류업계에서도 산미가 풍부한 사워 비어와 내추럴 와인이 주목받고 있다. 미식 평론가 브리야-사바랭Brillat-Savarin은 “조물주는 인간을 먹지 않으면 살 수 없도록 창조했으며, 식욕으로 먹도록 인도하고 쾌락으로 보상한다”라고 말했다. 신맛이 자꾸만 미지의 영역을 탐구하게 만드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신맛을 정의하는 이름이 궁금해
음식 속에는 신맛을 내는 다양한 물질이 존재한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신맛의 종류를 소개한다.

구연산 설탕과 당질, 녹말, 포도당 등이 발효하면서 생성되는 물질로 온화하면서 풍부한 신맛을 지닌 입자다. 어떤 과일이든 신맛이 난다 싶으면 대개 구연산을 함유한 것. 레몬, 감귤 등 시트러스 과일에 많이 들어 있다.
사과산 유기산의 한 가지로 덜 익은 사과와 복숭아, 포도 껍질 같은 과실 속에 들어 있다. 새콤한 향을 풍부하게 내기도 한다.
주석산 사과산과 함께 포도에 들어 있는 중요한 산이다. 와인의 산미를 결정짓는 물질이고, 사과산과 달리 익을수록 감소되지 않는다.
젖산 발효로 생기는 유기산을 말한다. 신맛이 강하고 끈적거리며 밀도가 높은 액체다. 우유가 발효되어 요구르트가 되면 젖산균이 풍부해진다.
초산 식초의 주성분이자 살균과 해독 작용을 하는 유기산 중 하나다. 톡 쏘는 신맛이 식욕을 돋워주며 소화액의 분비를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체내에 축적된 피로물질도 분해해 피로 해소를 돕는다.
클로로겐산 커피 생두 속에 풍부하게 들어 있는 천연 화합물. 생두를 볶으면 클로로겐산이 분해되면서 향기 물질로 바뀌고, 커피 맛과 향을 결정짓는다.


신맛, 어떻게 즐기면 좋을까?
최근 신맛은 커피와 와인, 빵, 맥주 등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신맛이 주는 쾌감은 상상 이상이라 자꾸만 먹고 싶어진다. 음식 속에서 신맛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그 비밀을 파헤쳐본다.


스페셜티 커피의 기준이 되다

생원두를 약하게 볶으면 원두 속 클로로겐산이라는 물질이 분해되면서 향기 물질로 변하고 과일 같은 산미가 난다.

프릳츠 싱글 오리진 페를라 델 카페 코스타리카 라 플라나다 농장의 원두로 만들었다. 자두의 상큼한 맛과 다크 초콜릿의 쌉쌀한 맛의 밸런스가 좋다. 200g, 2만 8천 원.

프릳츠 싱글 오리진 라스 라하스 내추럴 방식으로 재배한 원두를 사용해 과일의 향미를 제대로 구현해냈다. 뒷맛이 매우 깔끔하고, 와인과 건포도, 모과의 맛이 남는다. 180g, 1만 8천 원.
일단 향이 좋다. 맛은 두말할 것도 없다. 신맛이 살짝 나면서 말린 과일 향이 퍼진다. 커피가 식으면서 열대 과일에서 느껴지는 산뜻한 맛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과거 커피는 쓴맛의 대표 주자였다. 쓰디쓴 맛을 중화하기 위해 설탕과 우유를 넣어 즐기기도 했다. 1974년 커피의 품질을 따지는 ‘스페셜티 커피’라는 말이 등장하면서 사람들은 커피 맛 자체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와인처럼 커피를 둘러싼 테루아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가 중요해진 것. 이러한 현상을 ‘제3의 물결 커피’라고 부른다. 생두는 레몬이나 포도 같은 다양한 과일의 산미를 지니고 있다. 프릳츠의 김병기 대표는 생두에 열을 가하는 시간을 줄여 각각의 원두가 지닌 고유한 개성을 살리기 위한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이 커피 역시 미식에 가까운 형태로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대개 고지대에서 자라는 원두에 산미가 풍부합니다. 일교차가 클수록 커피 생육이 더뎌지고, 산이 풍부해지지요. 원두를 강하게 볶으면(강배전) 무게감은 좋아지지만 커피 고유의 특성은 줄어듭니다. 반면 약하게 볶으면(약배전) 원두 속 밝고 산뜻한 맛이 드러나죠. 산미가 달고 쓴 커피 맛의 균형을 잡아주고 복합적인 맛으로 인도합니다.”


시큼털털한 사워도의 매력

타르틴 베이커리 컨트리 브레드 투박한 생김새와 달리 속은 매우 부드럽다. 갓 나온 빵을 뜯으면 새콤한 향이 훅 하고 밀려든다. 1만 8천 원.

천연 발효종을 넣어 만든 사워도는 젖산균과 초산균이 생겨나면서 시큼한 향이 난다.
올해 초 제빵업계를 뜨겁게 달군 이슈 중 하나가 샌프란시스코의 유명 빵집인 타르틴 베이커리 서울점 오픈이다. 제빵계의 슈퍼스타 채드 로버트슨이 이끄는 이곳은 사워도로 만든 크고 투박한 컨트리 브레드가 명물이다. 이 빵을 사기 위해 건물 한 바퀴를 돌아 줄을 서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사워도sour dough는 말 그대로 시큼한 반죽을 의미하는데, 유산균과 효모가 살아 있는 천연 발효종을 말한다. “밀가루와 물, 소금만 있으면 됩니다. 여기에 종두 (르뱅, 효모균)를 섞어 반죽하면 밀가루 속 효모가 빵을 부풀리고, 젖산균과 초산균이 생겨나면서 글루텐을 분해해요. 베이커의 역량도 중요한데, 그때그때 반죽 상태를 확인해 어떻게 발효ㆍ숙성시킬 것인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타르틴 베이커리 서울을 책임지는 이일주 베이커는 완성한 반죽을 1ㆍ2차 발효시켜 밀가루가 지닌 야생적 풍미를 살린다. 발효시킨 반죽을 오븐에서 구우면 치즈처럼 시큼한 풍미가 생겨나고, 맛이 한층 풍성해진다. 수분이 풍부하고 부패균에 강해 실온에서도 장시간 보관할 수 있다. 소화가 잘되고 배가 더부룩하지 않는 것도 사워도만의 장점. 새콤한 잼류나 와인 등 기본적으로 산미를 지닌 음식과 잘 어우러진다.


맥주가 새콤하니 아주 좋군

사워비어는 야생 효모나 박테리아를 사용해 신맛이 나도록 발효 숙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메이징 브루잉 컴퍼니 바로 그 고제 유산균 발효로 만든 사워 비어. 오렌지의 새콤한 맛, 산초의 쌉쌀한 맛, 소금의 짠맛 등이 어우러지면서 산미가 복합적이다. 250ml, 6천 원.

와일드웨이브 설레임 새콤하면서 홉 향이 향긋한 맥주로, 과일 향이 물씬 나는 사워 에일. 330ml, 5천 원.
사워 비어는 야생 효모나 박테리아를 사용해 일부러 신맛이 나도록 발효 숙성한 맥주다. 마시면 식초처럼 새콤한 맛이 짧고 강렬하게 나며 과일 향이 이어진다. 침샘을 자극하고 묘한 중독성이 있다. “오크통에 장기간 숙성시켜 사워 비어를 생산하기도 합니다. 산성과 도수가 높다 보니 균이 침투하지 못해 오크통의 기운을 맥주에 불어넣을 수 있어요. 와인 못지않게 깊은 맛을 낼 수 있는 것이 사워 비어만의 장점이지요. 산미가 풍부한 맥주는 에이징 기간에 따라 맛이 부드럽게 변하면서 밸런스를 맞춰나가게 됩니다. 치킨과 피자 등 어떤 음식과도 잘 어우러지지요.” 어메이징 브루잉 컴퍼니의 김태경 대표는 양조 기술이 발달한 지 1백50년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사실 그전에는 지금처럼 깔끔한 스테인리스 스틸 용기가 보급되지 못했을 테고, 양조사가 원치 않은 균이나 박테리아가 맥즙에 들어가 발효에 관여했을 것이다. 그러니 고대의 맥주는 어느 정도 신맛을 함유했을 거라고. “인간의 입맛은 항상 근본적이고, 원초적인 것을 좇아서 회귀하기 마련입니다. 맛과 향이 깔끔한 라거도 좋지만, 사워 비어의 강렬한 맛도 즐겨보세요.”


내추럴 와인의 가파른 성장세

왼쪽 하거 마티아즈 츠바이겔트 로제 오스트리아 북부 캄프탈 지역에서 바이오다이내믹 농법으로 포도밭을 가꾸며 생산하는 적포도 츠바이겔트 품종으로 만든 로제 와인. 아름다운 분홍빛과 과실 향이 풍부하며, 무겁지 않고 편안하다. 오른쪽 바틱 레불라 껍질이 두꺼운 레불라 품종만 사용해 껍질째 발효한 후 거르지 않고 1년 정도 숙성한다. 오렌지빛을 띠고 꽃과 과실 향이 풍부하다.


스페인 동남부 무르시아 지방 후미야 지역에 있는보데가 세론 와이너리에서는 점토를 빚어 만든 항아리에서 순수 자연 방식 그대로 와인을 생산한다.
포도 품종 자체의 개성, 자연적으로 생성된 맛, 깨끗한 재배 환경을 고려하는 사람이 전 세계적으로 늘면서 내추럴 와인의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 국내는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현재 내추럴 와인은 ‘손으로 수확한 포도, 자연 효모로 발효, 생산공정 중 첨가 및 제거 금지, 이산화황 미사용 혹은 최소화’ 등의 조건을 충족해야 인정받는다. 포도 품종의 특성을 그대로 살린 덕분에 다른 와인보다 원시적이고 야생적인 풍미를 지녔다고도 평가받는다. “내추럴 와인은 지속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만듭니다. 자연 발효되는 과정에서 산미가 자연스럽게 생성됩니다. 화학적 성분을 최대한 배제했기에 무겁고 진한 성분이 없어 가볍게 마시기 좋아요.” 네이처 와인의 한건섭 대표는 와인의 생산과정과 다양성, 차이점 등을 확인하거나 디미터, 바이오뒤뱅, AB 등 라벨을 보며 선택하면 좋다고 덧붙였다.

촬영 및 제품 협조 네이처 와인(070-7716-2381), 어메이징 브루잉 컴퍼니(02-465-5208), 와일드웨이브(051-702-0839), 타르틴 베이커리 서울(02-792-2423), 프릳츠 커피(02-3275-2045)

글 김혜민 기자 | 사진 이경옥 기자 | 도움말 최낙언(식품 평론가) | 참고 도서 <맛의 원리>(예문당)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8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