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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창을 통해 바라보던 동네 풍경 그대로 노년을 응원하는 집


우리 집 역사를 소개합니다
어디에 있나요? 충남 당진 합덕 운산리에 있어요.
누가 살아요? 어머니 한봉선, 건축주이자 아들 박영진의 가족(아내와 두 딸은 해외 거주 중)이 살아요.
집의 이력이 궁금해요. 1962년 박영진 씨의 아버지 故 박홍규 선생과 어머니가 이 터에 한옥을 짓고 살다 40년 전 이층 양옥집을 다시 지었어요. 20년 전 박영진 씨 가족이 서울에서 이사 와 살다 지난해 오래된 양옥을 허물고 새 집을 지었죠. 올 2월 완공하고 이사한 지 5개월쯤 되어가요.
새 집을 소개한다면요? 단층집과 이층집을 ㄱ자로 배치하면서 주차장과 대문을 별동으로 구성했어요. 마치 중정처럼 마당을 집이 둘러싸고 있는 모양이에요.

옛날 집

주방에서 보조 주방을 지나 장독대와 텃밭이 있는 뒷마당으로 연결된다.

1층 어머니 방. 남쪽으로 큰 창을 내 하루 종일 환하게 빛이 든다. 침대 맞은편은 붙박이장을 구성하고 벽면은 한지로 도배했다.

아들 박영진 씨의 서재와 침실, 게스트 침실이 있는 2층. 현관에 들어서면 머리 위에 있는 천창에서 빛이 쏟아진다.

대문을 열면 초록 잔디 마당이 펼쳐진다. 봄가을이면 실내보다 마당에서 보내는 시간이 훨씬 많다고. © 노경
이 터에 벌써 세 번째 지은 집이에요. 우리 아들 영진이는 서울 살다 20년 전에 내려왔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 서울에 유학 보내 직장 다니며 살다 시골로 내려와 살려니 처음에는 고역이었겠지. 당진에 있는 아파트로 이사 가자고도 했으니까. 그런데 그게 쉽나. 첫 번째 집에서 자식 넷 낳고 키우다 두 번째 집에서는 손주까지 봤어요. 저 사진 속 손녀가 우리 아들 둘째 딸인데, 이 집에서 태어나서 언니 따라 유학 갔지. 영진이가 어릴 때 서울로 유학 가서 떨어져 살던 기억 때문인지, 애 엄마도 같이 보냈어요. 그래서 지금은 아들과 나 둘이 살아요. 이 집 짓기 전에는 이층 양옥집이었어. 40년 전에 내가 서울 을지로 가서 자재 다 싣고 내려와 목수 데려다 직접 지었어요. 그때는 애 아버지랑 진짜 무지하게 싸웠지. 청소기라는 게 처음 나왔을 땐데, 청소기를 쓰려면 문턱이 없어야 하잖아요? 근데 애 아버지가 문지방을 없앴다고, 불 쓰는 부엌에 나무 마루 깔았다고 아주 난리가 났어요. 그런데 이 터가 기운이 좋은지 애 아버지 사업도 흥하고 자식들도 잘 키웠어요. 부엌에서 손님도 참 많이 치렀지. 자식들, 손주들 결혼할 때 이 집에서 함도 다 받았고. 마당이 넓어서 김장은 다 우리 집에 모여서 했어요. 언젠가 아들이 집이 너무 낡았으니까 아파트로 이사할까 또 물었어요. 새시를 이중으로 달아도 겨울에 춥고, 또 큰 집 관리하기도 힘에 부치니까.

근데 나는 어디 다른 데 가기는 싫데요. 아, 이 동네에서 내가 대장이여. 지금도 국수 삶아놓고 마당에 나가서 “아무개야 국수 먹어” 소리치면 금방 뛰어와요. 애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상 치르고 집에 와보니까 부엌에 칼하고 도마가 여덟 개가 있어. 장례식장 음식 시원찮으니까 집에서 음식해서 장례식장으로 갖다 나른 거지. 어디 놀러 가면 다 같이 가고. 요즘 도시 사람들은 이웃 간 그런 묘미가 어디 있나요?

그냥 여기에 새로 짓고 살자 했어요. 단, 내가 떠나면 아들 내외가 살 집이잖아요. 집 지을 때는 애들 뜻에 많이 맡겼지. 집은 뭐 그냥 시골 보건소 같지 않어? 다 좋은디, 대문이 너무 으리으리해 보이는 것 같아요. 안 그래요? 사실 집 짓고 다용도실 때문에 소장님 내 원망 많이 들었어요. 우리 집은 큰집이라 제사도 있고 명절 때 다 모이는데 병풍, 돗자리 수납할 곳이 없잖어. 차양도 달아달라고 했고요. 비 오는 날 장 뜨러 가려면 우산 쓰고 가야 하는데 얼마나 불편해? 보조 주방에 수도도 없어서 추가했어요. 마당에 잔디 까는 건 사실 나는 반대했어요. 새로 돋운 마당이라 물을 줘도 쑥쑥 빠지는데, 잔디 관리하랴 꽃 심으랴 아주 고생했어요. 새 집 지었다고 동네 사람들이 화분을 하나씩 가져오니까 다 심어야지. 마당에 저 거북이가 우리 집 마스코트여. 동네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거북이를 만날 옮겨놔요. 등에 올려두기도하고, 힘들어 보이면 내려놓고. 근데 이렇게 해놓고 보니까, 마당에 꽃도 있고 거북이도 있고 나무도 있으니까 좋아. 언젠가 산 아래 집 하나 짓고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했거든. 지천이 내 꽃밭이고 정원이니까. 지금 산 밑으로 갈 수는 없지만, 이렇게 눈앞에 초록 잔디가 펼쳐지니 그냥 숲이라 생각하기로 했어요. 근데 잔디를 깔아서 김장하기가 영 쉽지 않겄지? _ 한봉선(81세, 건축주 박영진의 어머니)

보조 주방과 연결되는 뒷마당의 텃밭과 장독대. 고추와 상추를 심어 이웃과 나눠 먹는다.

현관으로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주방과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이 자리한다. 생활하는 데 편리하게 실용적으로 지은 집이지만, 현관에서는 높은 천장고의 공간감을 느낄 수 있다.

거실 통창 너머 내·외부를 잇는 덱과 탁 트인 전망이 일품.

모던하면서도 담박한 건축미가 돋보이는 집. 대문, 주차장, 창고가 연결된 별동이 집의 파사드 역할을 한다. 대지 면적 631㎡, 건축 면적 159.03㎡(주거), 87㎡(주차장 별동)
기와집, 개량 한옥, 황토집…. 시골집 하면 대략 이런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런데 단독주택에 대한 관심은 도시뿐 아니라 시골집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당진 합덕 한봉선 할머니의 집은 동네 풍경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도시에 살던 아들 내외의 라이프스타일 면면을 안팎으로 반영한 실용적인 집이라 의미가 크다.

집 설계는 어떻게 의뢰했나요?
(박영진_ 건축주/ 아들) 악당이반 김영일 대표에게 소개받았어요. 당시 김영일 대표는 파주 스튜디오를 짓고 있었는데, 스튜디오를 설계한 사이건축 박인영·이진오 소장을 소개해주셨죠. 2016년 가을에 처음 집을 방문했고, 2017년 8월에 착공했어요.

설계를 요청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이었나요?
(박영진) 혼자 튀는 집을 짓고 싶지는 않았어요. 시골 마을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소박한 집, 실용적인 집, 살기 편한 집이면 된다고 했죠.
(박인영_ 건축가) 건축주는 화이트 큐브 타입의 플랫한 형태를 선호했는데, 시골집과 모던 건축 사이에서 절충점을 찾기 위해 단층집과 박공지붕 형태의 이층 주택을 조합했죠. 대문에서 바라봤을 때 정면은 단층으로, 오른쪽은 이층집으로 구성했고, 대문 양 옆으로 주차장과 창고가 자리해요.

기존 구옥은 어머니께서 직접 지은 집이라고 들었어요.
(한봉선_ 건축주/ 어머니) 40년 전만 해도 첨단 양옥집이었는데, 세월이 흐르니 사람처럼 하나둘씩 손볼 곳이 생기고 관리하는 게 더 힘들더라고. 애들은 서울 아파트에 살다 내려왔으니 불편한 점이 많았겠지.

살면서 개선하고 싶던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박영진) 내부를 목재로 마감해서 전체적으로 집이 어두웠고, 거실은 필요 이상으로 넓었어요. 단열도 안 좋아서 공간 활용도와 효율성이 떨어졌죠.
(박인영) 채광뿐 아니라 조망을 확보하기 위해 메인 창은 최대한 키우고 각 부실별로 창을 두 곳 이상 설치해 통풍과 환기를 개선했죠. 층고를 높게 한 것도 채광, 환기 등을 해결하는 방법 중 하나였고요.

두 세대가 같이 사는 집인 만큼 가족 구성원 각자가 원하는 것을 모두 반영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박영진) 제가 기러기 아빠예요. 지금은 저와 어머니 단둘이 거주하지만 방학 때는 아내와 딸들이 와서 지내고, 간헐적으로 누이와 조카들이 와서 머물 수 있는 게스트 공간이 필요했어요. 아내가 귀국했을 때, 또 저희 부부만 남았을 때까지 고려해야 했죠.
(박인영) 어머니 세대와 아들 내외 세대가 따로 또 같이 구분되도록 마스터 베드룸 두 개를 1층과 2층에 각각 배치하고 자주 오는 누님을 위한 1층 게스트룸과 딸들을 위한 2층 게스트룸으로 구성했어요. 한정된 면적 안에 방을 네 개 이상 구성하고, 방마다 화장실을 따로 두려다 보니 공간이 작게 쪼개졌어요. 2층 안방은 박공 천장을 살리고 게스트룸은 평천장으로 계획해 다양한 공감각을 느낄 수 있도록 했죠.

방마다 화장실과 파우더룸이 따로 있더라고요.
(박인영) 보통 부부도 의견이 일치되기가 쉽지 않잖아요. 게다가 이 댁은 어머니가 직접 집을 지으실 정도로 주관이 뚜렷하시고요. 아드님, 며느님, 어머님의 의견이 다를 경우 아드님은 무조건 어머님 뜻대로, 어머님은 무조건 며느리 뜻대로, 며느리는 또 어머님 뜻대로 해달라고 하시더라고요. 가족 구성원 각자가 서로를 상당히 배려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상당히 배려하는 만큼 각각의 독립적 생활을 강화해주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어요. 특히 건축주 가족은 합덕에서 오랫동안 양돈 사업을 해온 터라 지역사회의 이목이 신경 쓰일 수밖에 없는데, 집 안에서만은 이런 시선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어머니를 위한 공간으로 차별화한 점이 있다면요?
(박영진) 어머니는 직접 운전해서 서울을 오갈 정도로 정정하세요. 마을에서도 큰형님 노릇 톡톡히 하는데, 그래서 이 집은 어머니 친구분들이 모이는 사랑방 역할도 해야 했어요. 대문으로 누가 들어오는지 잘 볼 수 있도록 어머니 방을 대문과 마주 보게 배치했죠.

평상 같달까요? 거실과 연결되는 덱처럼 현대적 공간에 시골집의 정서를 접목한 아이디어가 재밌어요.
(박영진) 늘 대문을 열어놓고 사세요. 기약 없는 방문이 무례로 여겨지지 않는 동네에서 덱은 어르신들의 쉼터 역할도 해요. 걸터앉기 좋은 높이라 평상처럼 앉아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눌 수 있죠.

어머님이 하루 종일 움직이시더라고요. 앞마당 잡초를 뽑다 어느새 뒷마당 텃밭에 가셔서 상추, 파, 마늘을 손질하는가 하면 장독대도 살피시고.
(한봉선) 근데 건축하시는 양반이 살림을 안 해봤으니 아나. 난 고추라도 말리려면 옥상에 올라가야 하는데 계단도 안 만들고, 또 상추 심을 텃밭이 필요하다고 했더니 화분에다 심으랴. 나한테 혼쭐이 났지. 집 안에 다용도실도 하나 없어서 바깥 창고를 이용해야 하는데, 여간 불편한 게 아녀.
(박인영) 사실 어머님들의 주 생활 공간은 집 안이 아닌 ‘마당’이라는 사실을 간과했어요. 시골집은 더더욱 내·외부의 연결성이 중요해요. 부엌에서 장독대, 텃밭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어야 하고, 앞마당에서 뒷마당으로 이동할 때 집을 빙 돌아가지 않고 바로 갈 수 있는 동선도 생각해야 하고요. 덱은 사랑방이기도 하지만 집 안팎을 연결하는 브리지예요.

큰살림을 하는 시골집에 현대의 라이프스타일을 담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박영진) 전체적인 건축계획은 마음에 들어요. 거실을 중심으로 주방과 어머님 방이 나뉘면서 제 공간은 2층으로 분리된 점도 편하고요. 밖에서는 안이 잘 들여다보이지 않는데 안에서는 개방감이 느껴지는 점도 좋은 설계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담이 높은 게 조금 부담스러워요. 수수하고 평범하게 보이면 좋겠는데, 대문만 보면 으리으리한 집 같거든요.
(박인영) 부모님이 살던 시대와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시대는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옛날 집이 동네에 완전히 열린 집이었다면, 현재는 도로와 어느 정도 차단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주차장 별동을 구성했죠.

오랫동안 기억 속에는 ‘열린 집’이었을 텐데, 아마도 낯설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어린 시절의 추억이 있는 집을 허물고 새로 짓는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도 있을 테고요.
(박영진) 골목에서 친구들과 뛰놀고 마당에서 온갖 집안일을 하고 친척들이 모이기도 하던 옛집의 사용성과 살림이 단출해진 지금의 살아가는 방식은 차이가 크죠. 어머니도 큰살림에서 좀 더 편해졌으면 했고요. 그런 이유로 집을 새로 지었지만 어린 시절 살던 집터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에요. 옥상에서 보이는 오일장 풍경도, 이웃집도, 집 안에서 창문 너머로 보이는 장면도 어릴 때 보던 그대로거든요. 여기가 우리 집이었고, 또 앞으로 살아갈 나의 집. 이런 시간들이 쌓여 아이들에게는 고향 집이 되겠죠?
(박인영) 가족 구성원에게 ‘우리 집’이기도 하지만 ‘내 집’이라는 기억이 많이 쌓이길 바랍니다.

글 이지현 기자 | 사진 이우경 기자 | 설계 사이건축(02-332-5942, www.saai.co.kr)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8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