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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음식연구원 한복려 원장 수라일기 水剌日記
어머니 혜경궁의 회갑연을 위해 아버지의 묘가 있는 화성을 찾아간 조선 제22대 왕 정조. <수라일기>는 그 8일간의 여정과 음식을 기록한 조선의 의궤를 흥미로운 설명과 그림, 사진과 디자인이라는 2018년의 언어로 재현한 소중한 문화의 기록이자 감각의 창작물이다.

창덕궁 옆 고즈넉한 한옥 서재에서 고서를 연구하는 한복려 원장.

득중정어사도. 행차 여섯째 날, 정조가 신하들과 활쏘기를 한 후 혜경궁을 모시고 매화 터뜨리는 것을 구경하는 장면이다.
1795년 을묘년 4월 초, 이른 새벽에 정조는 궁을 뒤로하고 새로 지은 화성 행궁을 향해 8일간의 특별한 여행을 떠났다. 연로한 어머니 혜경궁을 가마에 모시고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인 화성 현륭원으로 가는 원행은 남편을 비극적으로 여의고 회한의 날을 살아온 어머니에게 성대한 회갑연을 열어드리고 싶은 아들의 효심에서 비롯된 여행이었다. 마침 을묘년은 정조 자신도 어린 나이에 즉위한 후 살얼음판 같은 조정을 조심성과 명민함으로 다스린 지 20년이 되는 해이기도 했다. 성리학과 실학을 바탕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한 정조의 뜻에 따라 정약용이 거중기로 돌을 들어 올려 쌓은 화성은 아버지를 대신해 성군이 된 왕이 지나온 세월과 앞으로의 희망을 갈무리하려는 상징적인 목적지였다.

궁중 음식으로 보는 역사와 인문학
“‘의궤’는 의식의 모범이 되는 궤입니다. 나라의 주요 행사를 진행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자세히 기록해 다음 행사 때 국가의 재정을 낭비하거나 달리하는 것을 방지했지요. 나라의 예법과 절차에 대한 자세한 기록 속에는 궁중 음식의 재료, 조리법, 상차림, 식기 등의 내용도 있으니 궁중음식연구원에서는 의궤를 번역하며 조리법 이전에 왕실 문화부터 공부해왔습니다.” 조선 왕조 궁중 음식 제3대 기능 보유자인 한복려 궁중음식연구원장은 궁중 음식을 배우는 과정이 “함께 의궤를 번역하면서 사료를 찾아보고 추측하고 실습하고 재현해보는 인문학 수업”이라고 설명한다. 그의 어머니 故 황혜성(제2대 기능 보유자, 1920~2006) 선생은 민족문화와 정신의 뿌리인 궁중 음식이 사라지지 않도록 조선의 마지막 궁녀 故 한희순(제1대 기능 보유자, 1889~1971) 선생이 있던 낙선재로 찾아가 궁중 음식을 배우고 기록하는 데 일생을 바쳤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자란 한복려, 한복선, 한복진 세 자매도 우리의 전통 음식을 연구하는 어머니의 길을 따랐다. 특히 맏딸인 한복려 궁중음식연구원장은 석·박사 과정과 궁중음식연구원에서의 연구를 통해 그동안 의궤를 비롯한 수많은 고서를 번역하고 재현해 우리나라 전통 음식 연구 발전에 기여했다. “제 나이가 일흔 살이 넘으면서 그동안 저와 궁중음식연구회 이수자들이 함께 공부하고 재현한 것을 다음 세대를 위한 기록으로 남겨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어려운 한자로 기록된 고서를 요즘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표현으로 풀이해 궁중 음식을 재현하되, 책 디자인은 현대적으로 해야 미래 세대도 조선 왕조의 역사와 음식에 친숙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윤2월14일
화성에서 마지막 밤, 매화포가 터지고, 활쏘기가 끝나니 진찬과 양로연의 흥분이 서서히 사그라들고 봉수당 진찬이 막을 내린다。다시 돌아올 날을 기약하며 긴긴밤의 허리를 동여 야다소반과에 담아 올린다。

화성에서 마지막 밤, 혜경궁에게 올린 야다소반과. 각색인절미병, 면, 다식과 등 12기를 자기에 담아 흑칠족반 위에 올렸다.
어머니와 떠난 왕의 원행
한복려 궁중음식연구원장의 생각을 고스란히 담아 수년간 노력한 끝에 정길자 궁중병과연구원장, 궁중음식연구회(조선 왕조 궁중 음식 기능 이수·전수자 모임) 회원 등 20여 명의 공저로 <수라일기>를 완성했다. 조선 왕조의 의궤는 사진처럼 정교한 그림과 설명으로 역사적, 미술사적, 생활문화적 가치가 뛰어나 2007년 유네스코가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수라일기>는 그중에서도 역사 속 최고 시대로 손꼽히는 정조 시대의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를 연구해 8일간의 원행 동안 혜경궁과 정조, 수행원 등이 먹은 음식을 자세히 기록한 ‘권4 찬품 편의 음식’을 재현해 소개한다. “<원행을묘정리의궤>는 조선 왕조 식문화 자료의 보고예요. 궁중 잔치에 관한 의궤인 <진찬의궤> <진연의궤> 등은 주로 잔치를 위한 특별한 음식을 소개하지만, <원행을묘정리의궤>는 혜경궁의 회갑연 음식뿐 아니라 8일간의 여정 동안 혜경궁과 왕을 위해 준비한 매일의 일상식을 기록했어요. 2백여 년 전 사람들의 음식과 상차림을 이보다 더 정확하게 알려주는 자료는 없지요.” 8일간 하루 대여섯 번씩 차리는 식사를 연구·번역하고 재현하니, 그 속에 담긴 왕의 뜻과 시대의 문화, 옛 그림과 글에 대한 풀이만으로도 두꺼운 책 한 권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원행을묘정리의궤>는 왕실의 절차와 사람의 예법을 더 많은 백성이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글은 금속활자로 찍었고, 김홍도가 이끄는 수준 높은 화원 수백 명이 그린 정교한 그림을 천연색 목판에 새겨찍은 최초의 금속활자판 의궤다. 그야말로 문자와 그림이 한데 어우러진 종합적 행사 보고서이자 이야기책이다. 여기에 한복려 원장의 현대적 설명까지 더하니 이야기 편과 조리법 편으로 나눈 두 권의 책을 완성해야 할 만큼 읽을거리와 볼거리가 풍성해졌다. 2백여 년 전 당대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그림과 글을 곁들여 기록물을 만든 정조의 뜻이 2018년 옛 기록을 보다 쉽고 흥미롭게 이해할 수 있도록 혁신적 카피와 디자인을 곁들인 <수라일기>에 고스란히 투영된 느낌이다.


윤2월9일
밤이 이윽하여 석수라를 올린다。적두수화취와 명태탕에 갖은 반찬, 어만두와 각색적으로 솜씨를 내어본다。

시흥참에서 쉬어 갈 때 혜경궁에게 올린 석수라. 은기에 담아서 11기를 흑칠족 원반 위에, 화기에 담아 3기를 흑칠족 협반 위에 올렸다.
김홍도와 화원들이 그린 세세한 그림으로 보는 1천7백여 명이 참여한 행차 풍경과 구경 나온 백성들. 화성으로 가는 길에 한강을 건너기 위해 배 수십 척을 굴비처럼 나란히 엮어 깜짝 다리를 만들어낸 과학적 아이디어, 연로한 어머니의 매 끼니를 위해 쉬어 갈 지점을 정해 미리 식사를 준비한 조직력, 아버지의 능 앞에서 어머니께 음식과 춤과 노래를 대접한 아름다운 회갑연을 그린 그림, 그리고 그 설명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윤 2월, 볕이 따뜻해 지천에 꽃이 피어나는 4월 초에 원행에 나선건 연로한 어머니를 걱정하는 정조의 극진한 효심 때문이었다. 왕은 가마 대신 말을 타고 어머니의 가마 뒤를 따랐으며, 식사를 하면서 쉬어 갈 각 참에 도착하면 왕이 직접 수라간을 단속해 어머니의 식사를 챙겼다. 8일간 이른 아침의 죽수라부터 미음상, 조수라, 주수라, 석수라, 주다소반과까지 하루 대여섯 차례 상을 올려 어머니의 기력이 쇠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썼지만, 정작 왕은 어머니 혜경궁 수라의 절반만 되는 찬을 받았다. 따라서 왕의 수라를 연구하는 대신 <수라일기>에서는 8일 동안 왕보다 더 풍성한 수라를 받은 혜경궁의 수라상을 연구했다. 왕이 이 원행을 통해 백성에게 보여주고자 한 것은 혁신적 기계를 동원해 화성이라는 신도시를 건설한 업적 이전에 ‘사람이 사는 예법, 부모를 생각하는 효심, 백성을 배려하는 마음, 공과 사를 구분하는 진정성’이라는 설명이다.

효와 애민 정신을 담은 궁중의 일상식
을묘년의 원행은 8일간 행차에 1천7백여 명이 참여했고, 각 참에서 음식을 만들고 잔치에 참여한 인원까지 합하면 총 6천3백여 명이나 되었지만, 정조는 어머니의 회갑연에 백성이 낸 세금은 한 푼도 쓰지 않았다. 대신 그 많은 인원을 먹이고 잔치를 준비하는 비용은 나라의 환곡을 이용한 이자 수익 10만 냥을 확보해 해결했다. 4월 초에 원행을 떠난 이유도 본격적인 농사철 전에 최대한 간소한 행차를 해 백성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한 뜻이었다. <수라일기>는 정조의 애민 정신으로 이를 설명한다. 회갑연에 이어서는 노인들만 초대한 양로연을 열어 좋은 음식과 풍악을 대접했다. 이에 감복한 노인들은 잔칫상에 오른 검은콩을 모아 궁에 남은 세자에게 다시 보내어 감사와 만수무강을 비는 마음을 전했다고 하는 전
래 동화 같은 따뜻한 이야기도 소개한다.

궁중음식연구원에서 이수자와 일반인에게 우리 전통의 맛과 멋을 전수하는 한복려 원장.

<수라일기>는 1권에서 8일간의 음식 일지와 이야기를, 2권에서 궁중 음식의 식재료와 만드는 법을 소개한다.
“전통 음식은 단순히 먹거리가 아니라 우리 민족의 삶과 정신을 반영한 문화예요. 옛 기록을 번역하고 공부하면서 감동을 받고 감탄할 때가 많아요. 예를 들어 ‘양로연에 초대받은 노인들이 왕에게 감사를 전하려고 했던 마음의 소통은 그 옛날에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을까’ 같은 질문이 공부를 하면 할수록 더 많이 생기지요. 궁중음식을 연구하는 목적은 단순히 음식의 재현이 아니라, 옛 생각과 정신을 재현하는 것이니 인문학의 분야라고 할 수 있지요.” 수년간 권4 찬품 편을 다른 고서와 교차 분석하며 연구한 끝에 <수라 일기>에서는 혜경궁에게 올린 음식상을 위주로 상차림을 재현했고, 정조와 수행원의 상차림도 재현했다. 또한 궁중 음식 3백15가지의 조리법도 소개한다. 옛 식재료도 소개하되 요즘 구하기 어려운 것은 현재의 것으로 대체할 수 있도록 쉽게 풀어주는 <수라일기>는 방대한 이야기책이자 자세한 요리책인 ‘2018년의 의궤’라 할 수 있겠다. 한문에 익숙하지 않은 혜경궁이 <원행을묘정리의궤>를 읽는 데 어려움을 느끼자, 정조는 8일간의 원행 기록을 한글로 풀이한 <뎡니의궤>를 편찬했다. 이처럼 기록을 그 자체로 고집하지 않고 사용자와 시대에 맞게 변화시킨 현자들의 유연성과 배려심 덕분에 역사는 흘러가고 인류는 발전해왔다. 커피를 마시며 옛 의궤를 읽고, 부부가 함께 궁중 음식을 준비하고, 아이와 함께 김홍도가 그린 ‘반차도’를 들여다보며 회갑연을 상상해보는 현대적 시간은 <수라일기>가 다음 세대에 전하는 선물이다. 2018년의 의궤, 이 소중한 유산은 궁중음식연구원(02-3673-1122)에 문의해 구입할 수 있다. 또한 궁중음식연구원은 <수라일기>의 내용과 음식을 재현하는 다채로운 행사를 열어 많은 사람을 초대할 계획이다.


<수라일기>에 나온 추천 음식 네 가지

해저-담침채
“지금의 김치 맛은 진한 젓갈을 많이 넣고 매우면서 풀기가 강하게 나는 등 점점 진한 맛으로 가고 있다. 슴슴하면서도 담백하고 감칠맛 나는 궁중 대표 김치는 다시 찾아야 할 김치의 맛인 것 같다.”


배추통김치를 무와 함께 새우젓과 조기젓국으로 간을 맞추어 슴슴하고 시원하게 담근 국물이 많은 김치이다. 수라상에는 침채와 담침채가 나란히 오른 경우가 많다. 침채는 짠지에 해당하며, 담침채는 국물이 많은 싱건지를 말한다.


생복만두탕
“정조가 어머니께 효도하는 음식으로 올릴 수 있게 숙수들이 만들어 마음을 전한 음식 같다.”


진상한 해물 중에는 전복이 많다. 대부분 말린 상태로 들어오나 제철에는 생복을 사용한다. 전복 사이에 소를 넣어 빚은 만두로 만든 탕이 특별하다. 궁중 만두 종류의 하나이다.


화양적
“잔치에 고기, 해물 등 고급 재료를 골고루 나눠 먹도록 배려한 음식이 꼬치이다. 손은 많이 가지만 모든 이에게 맛있는 음식을 골고루 먹이고 싶어 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나타내는 음식 같다.”


각종 고기와 해물, 채소 등을 양념해 익히고 같은 크기로 만들어 꼬치에 꿰어 담는다. 한입에 다양한 재료의 맛을 즐기도록 만든별미 찬이다.


길경잡채
“현대인은 매연으로 힘들어하니 도라지로 음식을 해 먹으면 호흡기에 좋은 약선 음식이 된다.”


길경은 도라지를 말하는데, 예부터 꾸준히 애용하는 대표 채소이다. 생것을 쓰기도 하지만 말려두었다가 없는 시기에 불려서 음식 재료로 사용하며, 말린 건 약선 재료로도 쓴다. 잡채라는 명칭이 나오는데, 지금처럼 당면이 들어가지 않았지만 도라지, 숙주나물 등과 여러 채소를 함께 넣어 만든 채소 음식이다.

글 김민정 | 사진 민희기(인물), 임준빈(음식) | 문의 궁중음식연구원(02-3673-1122)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8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