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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횡성 향기로운 우리 산나물
막 싹을 틔운 잔가지 사이로 햇빛이 가물거리고, 축축한 봄 입김이 몸을 간질인다. 깊은 산속 땅은 아직 누렇지만, 틈새를 비집고 나온 잎새는 청신하다. 강태현 농부는 강원도 산자락에 피어난 나물을 뜯어 먹으며 살아온, 화전민의 삶을 기억하는 마지막 세대다. 산마늘과 곤드레를 비롯해 강원도의 맛이 담긴 토종 나물 이야기를 전한다.

한국만큼 다양한 나물을 식문화로 끌어들인 나라도 없다. 특히 강원도는 나물을 즐겨 먹은 지역으로, 곤드레(위)와 산마늘이 대표적이다.
주식이 된 나물
“타령타령 산나물 타령/ 강원도 산나물을 뜯어다가 먹는 타령/ 어디 한번 들어보고 나물 이름도 들어보자/… 구구九九 절기 돌아오면 높은 산 산나물은 한참 제철을 맞게 되는데/ 산도 좋고 물도 좋으니/ 맛 좋은 나물에 이름도 많다/ … 나물밥엔 곤드레요/ 금낭화는 며느리취요/ 누리대나물은 약초나물 …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보자.” 매봉산 아래 놓인 야트막한 골짜기에 나무와 돌 조각을 얼기설기 엮어 움막을 짓고 살아온 강태현 농부. 그가 직접 노랫말을 써서 지은 ‘화전아리랑’을 흥얼거린다. 1966년 정부에서 화전 정리 사업을 공포한 뒤 강제 이주 정책에 떠밀려 도시로 나간 그는 2005년 강원도 횡성으로 돌아왔다. 가난했지만 산을 뛰어다니며 자유를 누리던 시절이 그리웠고, 인생의 느지막한 시점에서 다시 그 행복을 맛보고 싶었다. 골짜기가 깊은 강원도 산속은 예부터 화전민(주로 산간지대에서 풀과 나무를 불살라버리고 그 자리를 파 일구어 농사를 짓던 이들)이 가장 많이 살던 지역이다. 산을 경작해 농사를 지어 삶을 이어나간 화전민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먹거리 중 하나가 나물이다. 나물은 사람이 먹을 수 있는 풀이나 나뭇잎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로 그것을 조리한 것까지 포함한다. “지금은 일부러 나물밥을 먹기 위해 강원도로 몰려들지요. 배를 곯던 보릿고개 시절에는 먹을 것이 부족해 산나물을 뜯어서 먹었어요. 풀 먹고 배부를 리가 있나요. 살려고 먹었죠.” 실로 한국만큼 풀 자체를 다양한 나물 요리로 발전시킨 나라도 없다. 국토의 절반이 산이니 먹을 수 있는 온갖 풀을 밥상 위에 올린 것은 당연했다. 강태현 농부는 열세 살 때부터 산을 돌아다니며 갖가지 나물을 익혔다. 한학자였던 그의 아버지는 다양한 풀과 동물 등이 그려진 사전으로 지식을 물려줬고(지금도 간직하고 있는데, 책의 세월만 1백 년이 넘는다), 어머니는 나물 넣어 지은 밥과 된장에 무친 반찬 맛으로 기억을 채워줬다. 봄기운이 땅에 서리고 연한 풀잎이 발목을 부드럽게 간질이는 시기가 오면 강태현 농부는 옆구리에 광주리를 끼고, 작은 칼 하나를 챙겨 산으로 향한다. 산 마늘과 곤드레, 점나도나물, 산두릅, 보금취 등 갖가지 산나물을 캔다. 나물이 곧 자신의 삶이요, 화전민을 대변하는 토종 먹거리이자 후대에 물려주고 싶은 음식 문화이기 때문이다.


알싸한 산마늘과 야들야들한 곤드레
봄은 가장 낮은 곳부터 온다. 봄을 한반도 전역으로 끌고 오는 것은 약 4천8백 종의 식물. 국립수목원 DMZ 자생식물관리과 정수영 박사는 제주에서 자라는 특정 식물 2천 종과 DMZ 지역에서 자생하는 7백여 종을 제외하고, 한반도 어느 지역에서나 비슷한 식물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정수영 박사는 그중에서도 강원도에서만 자라는 특정 나물을 꼽자면 산마늘과 곤드레가 대표적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산마늘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내륙에서 자라는 강원도산마늘(오대산종)과 울릉도 산림지대에서 볼 수 있는 울릉산마늘(조선 후기 울릉도에 정착한 선조들이 먹을 식량이 없어 거의 아사 직전에 산마늘을 먹고 명命을 이어나갔다 해서 ‘명이나물’이라고 부른다)로 구분한다. 오대산종은 5월부터 높은 산지에서 싹이 나기 시작한다. 맛과 효능으로 인기가 높아지면서 홍천군 내면 쪽에서는 산마늘을 재배하는 농가도 많아졌다. 잎이 넓고 해발이 낮은 곳에서도 재배가 가능한 울릉도종과 달리, 오대산종은 잎이 뾰족하고 길며 해발 600m 이상에서만 자란다. 강태현 농부와 아내 신현초 씨도 산마늘의 맛과 모양을 정확하게 기억한다. “주로 오대산 근처에서 자라는데, 찾기가 어려워 귀했습니다. 높은 산에서 채취한 산마늘은 잎이 뾰족하고 마늘처럼 알싸한 맛이 강했어요. 왕이 사약을 내릴 때 사용했다는 독초, 박새와 비슷하게 생겨 꼼꼼하게 살펴봐야 했지요.” 강원도에서 가장 많이 먹은 나물이 바로 고려엉겅퀴, 곤드레다. ‘평창아라리’에는 “한치 뒷산에 두치 곤두레 아지미 맛만 같아도 고것만은 뜯어를 먹어도 봄살아나지”라는 노랫말도 등장한다. 산기슭이나 골짜기에 자생하는 곤드레는 5월부터 모습을 드러낸다. 씹는 맛이 부드럽고 야들야들하다. 주로 어린잎과 줄기를 데쳐 먹고, 말려서 묵나물로 활용했다.

지금 강원도 매봉산 근처에서 채취할 수 있는 나물. 보릿고개를 견디기 위해 갖가지 나물을 뜯어 데쳐 먹고, 약용으로 많이 썼다.

강태현 농부의 아버지가 물려주신 사전. 이 속에 그림으로 남겨진 식물을 보며 먹을 수 있는 것, 독이 되는 것, 약초가 되는 것을 익혀나갔다.

입말한식가 하미현은 강태현 농부와 집 뒤에 있는 산으로 나물을 채취하러 나섰다.

강원도에서 자라는 오대산종 산마늘은 고지대에서만 자라며 잎이 가늘고 뾰족하다. 사진은 국립수목원 제공.

때를 맞춘 봄나물에 취하다
<조선왕조실록> 연산 35권에는 “각종 산나물을 강원도에서 연속 봉진封進하게 하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를 보아 강원도에는 산마늘과 곤드레를 비롯한 다양한 나물이 자생했고, 그 맛으로 유명했던 것이 분명하다. 강태현 농부가 구분하는 나물 가짓수만 해도 50여 종이 넘으며, 지금도 다양한 나물을 채취해 먹는다. “논두렁과 밭두렁에서 가장 먼저 피어나는 나물이 점나도나물입니다. 이 지역에서는 콩나물이라 불렀는데, 형태가 자그맣고 잎이 동글동글하게 생겼어요.” 봄나물의 대표 격이라 할 수 있는 두릅은 다부지게 생겼다. 가장자리에 크고 작은 톱니가 있고, 땅에서 갓 채취한 두릅의 맛과 향은 두말할 것 없이 향기롭다. 주로 관상용으로 심었지만 먹을 것이 없던 시절 보금취라 불리던 매발톱도 나물로 즐겨 먹었다. 며눌취 혹은 며느리 주머니라고 부르는 금낭화는 비단으로 만든 주머니처럼 생긴 붉은 꽃을 피우는데, 이른 봄에 어린잎을 데쳐먹는다. 번식력이 강한 망초대나물도 맛이 좋아 연한 잎만 골라 나물로 즐겨 먹었단다. 갖가지 나물을 소개하던 강태현 농부가 책장에서 낡은 사전을 꺼내 찬찬히 넘긴다. 앞서 말한 그의 아버지가 물려준 귀한 책이 란다. 오랜 세월을 말해주듯 빛바랜 종이에 희미해진 나물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나물 요리는 가난해서, 먹을 것이 없어서 시작된 음식 문화지만 지금은 영양가와 맛이 있어서 먹으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특별한 식문화로 자리 잡았다. 음식에 담긴 기억은 시대에 따라 사라지기도 하고 새로운 경험이 더해지기도 한다. 강태현 농부가 나물을 통해 전하고 싶은 것은 화전민의 삶과 그 시절 아련한 기억이 담긴 맛이다.


입말한식가 하미현이 전하는 우리 나물 맛
점나도나물 풋풋한 향과 아삭한 식감이 좋다. 수프, 물김치로 적당.
산마늘 매운맛이 강하고 마늘 향이 난다. 쌈이나 절임으로 좋다.
며눌치(금낭화) 신맛으로 시작해 끝 맛이 맵다. 잎보다 대의 맛과 향이 진하고 물기가 많다. 해산물에 곁들이는 숙채 샐러드로 추천한다.
망초대 특유의 향과 알싸한 맛이 진하게 난다. 새콤달콤한 드레싱을 곁들여 샐러드로 만든다.
두릅 참두릅은 대가 두껍고 여물어 절임이나 숙채로 먹는 것이 좋다.
보금취 단맛과 짠맛, 쌉싸래한 맛이 조화롭다. 겉절이로 제격.
곤드레 단맛과 고소한 맛이 조화롭고 잎에 점성이 있다. 푹 데쳐 내는 생선이나 고기찜과 궁합이 좋다.


기획과 취재를 함께 한 입말한식가 하미현은 사라져가는 토종 식재료와 이를 재배하는 농부를 발굴하고, 입말로 전해지는 음식을 기록하는 일을 한다. 마을 곳곳에 남아 있는 내림 음식의 원형을 ‘과거의 맛’으로 재현하고 , 현대에 맞는 레시피를 개발해 ‘지금의 맛’으로 풀어낸다.




글 김혜민 기자 | 사진 이경옥 기자 | 취재 협조 강태현 농부(033-344-3497) | 도움말 정수영(국립수목원) 참고 도서 <한반도 민속식물 강원도편>(국립수목원) | 참고 논문 ‘한국 및 중국 동북부산 부추속(부추과)의 계통분류학적 연구(최혁재, 2009)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8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