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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스토리텔러 유경희 씨 황금빛 내 인생
새해가 되면 처세술이나 성공담을 담은 자기 계발서가 서가를 가득 메운다. 지금까지 책상 앞에서 이뤄낸 성과물로 사람들과 소통했다면, 이제는 창백한 삶에서 벗어나 살아 있는 종합 예술 ‘공간’으로 소통하겠다는 아트 스토리텔러 유경희 씨. 그의 안목과 취향의 집약체인 아트 룸은 ‘아름다움이야말로 당신을 가장 강하고 순수하게 만들어준다’는 부제를 담고 있다.


아트 스토리텔러 유경희 씨. <나쁜 그림> <가만히 가까이> <치유의 미술관> <그림 같은 여자 그림 보는 남자> 등 다수의 책을 쓰고, 유경희예술처방연구소를 열어 강의와 상담을 진행해왔다. 최근 정릉 언덕에 하우스 갤러리&숍 ‘아트 룸’을 오픈, 그간 쌓은 미학적 안목과 취향을 선보인다. 왼쪽 갤러리 숍 아트 룸은 오래된 주택의 구조를 살려 구석 구석 들여다보는 묘미가 있다.
1백 세 시대가 도래했다. 청년의 기준도 바뀌고 있다(2015년 UN에서 재정의한 생의 주기에 따르면 18~65세는 청년, 66~79세는 중년, 80~99세는 노년, 1백 세 이상은 장수 노인으로 분류한다). 따라서 노년층이 급증한다는 말은 잘못 됐다. 사실은 청년기가 더 길어진 셈이다. 이제는 한번 받은 교육으로 취업해 40~50년간 계속 같은 일을 하며 살 수 없다. 평생 직업을 세 번은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배워야 하는 세상이다. 영국 사회학자 피터 래슬릿Peter Laslett은 일찍이 ‘제3기 인생론(The Third Age Theory)’을 주창하며 가정과 직장등 삶을 꾸리며 소득과 소비를 경험하는 성취 시기 이후의 삶이야말로 자아실현을 통해 인생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절정기라 정의했다. 중요한 것은 제3의 시기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 스스로 개척하지 않으면 절대로 쟁취할 수 없는 황금기다. 그래서일까? 새로운 취미를 배우거나 삶을 좀 더 지혜롭고 즐겁게 바꿔줄 취향과 아이디어를 나누는 공간에 사람들이 북적인다. 아트 스토리텔러 유경희 씨의 하우스 갤러리&숍 ‘아트 룸Art room’도 같은 의미의 참새 방앗간이다.

“강의를 듣는 분들 중 은퇴 후의 삶이 막막하다고 말하는 분이 많아요. 지금이라도 무엇이든 배우고, 완전히 다른 인생을 한번 살아보라고 용기를 주고 싶어요. 그러려면 가장 먼저 자신이 정한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해요. 매일 문화센터에 나와 인문학 예술 강의를 듣는데 미술관 한 번 안 가고, 혼자서 여행할 줄 모르며, 끌리는 작품 한 점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꽃이 시들어야 열매가 맺히고, 스스로를 탐험해야 길이 열리는 법이죠.” 강의와 글쓰기라는 프레임을 벗어버리고, ‘공간’이라는 새로운 프레임으로 소통을 시작한 그의 이야기를 더 들어봐야겠다.

예술적 심미안으로 고른 현대 미술 작품과 바우하우스, 미드센트리 빈티지 가구, 조명등 등이 어우러진 공간은 다양한 리빙 신을 연출한다.

4층 다이닝룸에서 반 층 오르면 다섯 개 레벨 중 가장 꼭대기 층인 침실과 서재가 나온다. 생활 공간은 책장, 바닥재, 도어 등을 나무 소재로 선택해 온기를 더했다. 침실 테라스에서 바라보이는 북악산 풍광이 절경이다. 벽에 건 회화는 이순주 작가 작품.
공간, 가장 구조적이고 실용적인 조각
유경희 씨는 미학 공부를 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컬렉터가 되었을 거라 고백한다. 국문학과 미학을 전공하고 시각예술과 정신분석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그림’보다는 ‘책’을 사 모은 기간이 더 오래지만 많이 본 덕분인지 수집의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었다. “이론가로서 그림을 사보지 않고 비평만 한다는 건 눈이 아닌 안경으로만 보는 것과 같아요. 그림 보는 안목에는 왕도가 없어요. 많이 보고 또 많이 사봐야 하죠. 물론 과거의 컬렉션이 모두 마음에 드는 건 아니에요. 안목이 성장한 만큼 예전에 산 것은 어딘지 만족스럽지 못한데, 그 또한 필요한 공부지요.” 수년 전부터는 관심사가 도자, 고가구, 북유럽 빈티지 가구, 조명등으로 확장됐다. 마치 얼굴도 안 본 여자와 사랑에 빠진 발자크 같은 심정이라고 해야 할까? 살림을 즐겨 하지 않는데도 만듦새가 좋은 그릇을 보면 무조건 샀고,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서 가구를 모으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물건을 모으기 시작한 건 10년 안팎이지만 고속도로를 탄 듯 속도가 붙었다. 갤러리 숍 ‘아트 룸’은 한마디로 ‘유경희’의 미학적 안목과 취향이 집약된 공간이다. “갤러리 숍이라는 수식어를 붙였으니 뭘 파는 곳이냐고 묻곤 해요. 쉽게 설명하자면 미학자이자 컬렉터인 유경희가 지적 자산과 물리적 자산을 통해 고른 안목, 인사이트를 파는 거죠. 지금까지는 강의나 글쓰기 등 책상 위의 결과물로 사람들과 소통했다면, 이제는 살아 있는 감각으로 소통하고 싶어요.” 생각해보면 예술에 대한 안목이 공간을 보는 안목으로 확장되는 건 당연하다. 예술 작품은 본래 특정 장소에 설치하기 위해 제작한 사이트 스페시픽site-specific 아닌가! 유경희씨는 그런 의미에서 ‘공간’이라는 구조물을 가장 미학적이고 실용적인 조각품으로 봤다. 예술가가 사는 집은 그 사람의 영혼이 사는 집이요, 조각 작품의 일부분이 되고 싶다는 그의 바람대로 아트 룸은 한 땀 한 땀 영혼을 담아 천천히 다듬어졌다.

현관에 들어서면 다이닝룸을 거쳐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주방. 노출한 계단이 조형적 미감을 완성한다. 싱크대 상부장 위에도 그릇, 소품을 장식할 수 있도록 여백을 살렸다. 다이닝룸을 가로지르는 미송 테이블은 오랫동안 식탁으로 사용한 것. 현장에서 사포질과 스테인 도장을 다시 하고 빈티지 앤트 체어를 매치했다.
애드리브로 고친 집
정릉의 굽은 언덕을 올라 절집과 마주한 단독주택. 1983년 다섯 채를 나란히 똑같은 모양으로 지은 집 장사 집으로, 유경희 씨는 그중에서도 유독 가장 낡은 집에 마음을 뺏겼다. 집이 허름하고 낙후될수록 상상력이 더욱 촉발되고, 비포와 애프터의 극명한 대비에서 강렬한 희열을 느낀달까? 사실 이 집은 제대로 된 설계도 없이 일단 뜯고 하나씩 고친 집이다. 유경희 씨가 큰 그림을 그렸다면, 예술 치유 강의로 인연을 맺은 공간 디자이너 양정원 씨가 디테일을 채웠다. 양정원 씨는 변승훈 도예가의 아내로 안성 미리내 예술인 마을을 일구는 데 일조한 경험으로 집을 짓는 데 필요한 다방면의 노하우가 축적돼 있었다. 또한 건축가 김대균은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아낌없이 자문을 해준 숨은 조력자다. “공사 중 일이 뜻대로 안 되고 무언가 심각하게 망쳤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그런데 조금 시간이 지나면 그 망친 부분 때문에 새로운 상상력이 발휘되는 거예요. 결국에는 처음하고 싶던 것이 아쉽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신의 한 수’가 되곤 하죠. 이 공간은 그야말로 애드리브로 이뤄진 것이 많아요. 이층집처럼 보이지만 사실 5층 레벨이 숨어 있다는 것도 벽을 하나씩 뚫으면서 알게 됐으니까요!” 작은 주차장을 지나 계단을 올라 현관으로 들어서면, 집의 가장 중심인 주방과 다이닝룸(응접실)이 나온다. 스킵 플로어로 다섯 개 층이 교차하는 재미난 구조인데 주방과 응 접실이 4층, 한 계단 올라 5층에 침실과 서재가 있고, 3층부터 1층까지는 갤러리 겸 숍으로 구성했다. 4층을 중심으로 반 층씩 내려가는 구조를 활용하니 다양한 레이어가 생기면서 같은 공간이라도 낯설게 보이는 장점이 있다. 계단 구조는 모두 노출했는데, 화이트 일색의 공간에서 조형적 면모를 발휘한다. 하얗게 페인트칠한 벽은 모서리의 에지를 살리지 않고 둥글게 마감해 차가운 느낌을 상쇄했다. 공간 곳곳에서는 바우하우스부터 미드센트리까지 빈티지 가구와 조명등, 도자 작품, 제기 등 유경희 컬렉션을 만날 수 있다. 르코르뷔지에의 가죽 소파, 캐비닛처럼 잘 짠 이동식 주방, 정교하고 소박한 유리 펜던트 조명등 등이 공간에 어우러져 오랜 시간 사랑받은 제품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다. 화장실처럼 작은 공간도 심미안을 놓치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손바느질로 만든 거즈 커튼, 천사 조명등, 도자 수전, 직접 만든 향초 등 일상을 귀하게 여기는 태도가 곧 공간의 따스한 온도를 완성한다. “평창동, 정릉…. 이상하게도 저는 사람들이 기가 세다고 하는 곳에서만 살았어요. 그런데 이 집에서 첫날 하룻밤을 딱 자고 일어났는데 너무 개운한 거예요. 마치 자궁 속 태아처럼 깊고 고요한 단잠을 잤어요. 저는 범신론자에 가까운데 종교에 상관없이 성지를 늘 곁에 두고 살고 싶어요. 이 집을 리모델링하면서도 늘 이 집이 나와 나를 찾는 사람들의 지성소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누구도 다치지 않고, 힘들지 않고, 화내지 않고, 평화롭게 공사를 마무리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고요.”

노출 콘크리트와 에폭시 도장으로 러프하게 마감한 공간 곳곳에 초록 식물과 향초를 매치해 따스한 무드를 더했다.

천사 오브제와 리넨 원피스, 빈티지 유리 조명등 등으로 로맨틱하게 꾸민 욕실. 침실과 욕실 가로 창의 거즈 커튼은 손재주 좋은 지인이 손바느질로 만들어준 것.

오래된 주택의 기본 골조를 살려 구석구석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다. 장인 정신이 깃든 북유럽 빈티지 가구로 라운지, 서재 등의 공간을 연출했다. 공간은 늘 유동적으로 변신해 게스트 룸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4층 벽의 일부를 창처럼 뚫어 레이어의 묘미를 살렸다. 뚫린 벽이 하나의 프레임이 되어 익숙하게 보던 주방 풍경도 색다르게 느껴진다.

아트 룸을 오픈하며 ‘유경희 컬렉션’을 찾은 많은 이에게 정성껏 음식을 대접하는 것 또한 즐거운 일상이다. 4월 기획 전시 때도 브런치 강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르코르뷔지에의 LC 소파와 캐비닛 장인이 만든 사이드 보드, 커피 테이블과 작품이 어우러진 라운지 공간. 집이라는 생활 공간에 가구와 작품이 어우러져 남의 집 구경하듯 천천히 공간을 거닐며 취향과 감각을 쌓을 수 있다.

도자, 제기, 유기 등 우리 그릇의 투박한 아름다움을 좋아한다. 도자는 변승훈 작가 작품.
아트 룸은 아름다운 협업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디자이너 양정원, 건축가 김대균, 작가 이순주까지 마음 맞는 조력자 덕분에 레노베이션 과정은 매일이 축제였다. 수십 년간 도예가의 아내로 살던 양정원 디자이너는 유경희 대표와 합을 맞추면서 마치 봉인이 해제된 듯 잠재된 인테리어 노하우를 아트 룸에 마음껏 펼쳤다. 룸서비스라는 이름으로 유 대표와 함께 공간 컨설팅을 진행할 계획이다.
그날그날을 가득 채워 살 것
현관에 들어서면, 다이닝룸 정면 벽에 독일 현대미술의 주축으로 주목받는 로사 로이Rosa Loy의 그림이 걸려 있다. 여인이 여인을 잉태하는 그림으로 서로 생명을 돋워주고 가꿔준다. 마치 이 집의 탄생 스토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정원 선생은 사실 28년간 안성 작업실에서 은둔하다시피 농사짓고, 집 고치고, 장 담그고, 도자를 빚으며 자연과 더불어 살았어요. 세상과의 접점이 많지 않았지요. 그럼에도 저랑은 처음부터 너무 잘 통했어요. 제가 하는 말을 500% 이해하는 보기 드문 감성의 소유자죠! 두 사람이 각자 자기 말만 하는 것 같은데도 뭔가 의미심장하게 통한다고 해서 우스갯소리로 ‘접신’했다고 말할 정도니까요. 양정원 선생은 ‘룸서비스’라는 이름으로 저와 함께 인테리어, 가구, 미술 작품 등 공간과 관련한 컨설팅을 맡고 있어요.” ‘Art room’과 ‘Room service’라니 이름만 들어도 환상의 짝꿍이다. 일본의 철학자 모리 신조는 인간은 평생 만나야 할 사람과 반드시 만난다고 했다. 한순간도 이르지 않고 한순간도 느리지 않을 때, 여성이 여성을 돕고 서로의 멘토가 되어주는 것, 결국 우리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아트 룸에서 진행하는 룸서비스 중 하나로 다양한 전시도 기획했다. 오픈에 맞춰 지난 연말까지 진행한 전시에 이어 4월 중순에는 <빛과 거울-you light up my life>(가제) 전시를 통해 조명, 거울, 그림의 매치를 선보일 계획. 조명이야말로 모든 건축물의 화룡점정 아닌가. 아파트마다 원래 설치된 네모 박스의 조명등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을 볼 때마다 너무 안타깝다는 그는 한국의 앤티크 경대와 북유럽 조명등을 매치하는 식으로 의외의 궁합을 연출할 계획이다.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명암법)를 잘 활용해서 그린 바로크 회화, 빛을 색다르게 사용한 인상파 화가들의 이야기 등 특강도 진행한다. “아트 룸을 기획하고, 공간을 레노베이션하면서 매일이 축제였어요. 조력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죠. 나중에 더 나이 들면 우리 모두의 커뮤니티 빌리지가 될 수도 있겠네요. 4층에서 식사를 하면서 공동생활을 해보는 것도 상상해요. 무엇보다 예술이 인간을 영적으로 진화시키는 가장 소중한 요소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면, 이 공간은 분명 그 누구에게든 힐링 장소가 될 거예요.” “예술의 아름다움에 몰두할 때 우리는 현실을 잠시 잊어버린다. 세상에 아름다운 것이 이토록 많은데, 이런 것을 즐기기 위해서라도 좀 더 힘을 내어 인생의 어려움을 견뎌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것이 바로 예술이 주는 위안이요, 격려다!”(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평전) 그가 마지막으로 나누고 싶은 말이다.

진짜 나만의 취향을 찾고 싶다면 유행을 따르지 말고 자신만의 직관과 시선, 열정을 믿으라는 유경희 씨. 4층 다이닝룸에는 이 집의 트레이드 마크이자 탄생 스토리를 설명하는 듯한 로사 로이의 작품이 걸려 있다.

1층 가장 안쪽 룸에는 변승훈 작가의 도자와 생활 자기를 전시한다.

<행복> 독자를 초대합니다
아트 스토리텔러이자 예술치유사 유경희 씨의 미학적 안목과 취향을 경험할 수 있는 ‘아트 룸’에 초대합니다.
일시 3월 27일(화) 오후 2시
장소 서울시 성북구 정릉로10가길 55 아트 룸
인원 8명
참가비 1만 원
신청 방법 <행복> 홈페이지 ‘오픈 하우스’ 코너에 참가하고 싶은 이유를 간단히 적어 신청해주세요.

글 이지현 기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8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