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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즐거운 삶 가족 모두의 집
하나의 특정한 콘셉트가 존재하기보다는 가족 구성원의 취향이 각각의 공간에 다양한 스타일로 반영된 147㎡ 아파트. 클래식 애호가 남편을 위한 널찍한 라운지, 그린 컬러가 시선을 사로잡는 가족 서재, 어질러져도 멋진 키치한 아이 방…. 가족 구성원 모두의 로망을 담은 사례다.

튀르쿠아즈 컬러가 인상적인 가족실. 벽면을 털어내고 유리 슬라이딩 도어로 마감해 복도에서 바라보면 쇼케이스처럼 근사한 첫인상을 완성한다.

거실에서 바라본 주방. 거실과 주방 사이의 답답한 벽을 털어내고 널찍한 아일랜드를 설치했다.

가족실 한편에는 번역가로 활동하는 집주인 김선형 씨가 번역한 책, 번역을 앞둔 책이 꽂혀 있다.
아이가 한창 자랄 때는 부모의 삶 역시 치열하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부부라면 더더욱 삶의 질이나 인테리어를 따질 여유가 없다. 대부분은 아이가 생기면서 부부만의 공간이 사라졌다고 투덜댈 겨를도 없이 시간이 흐른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면, 아침에 흩어져 각자의 전투를 치르고 밤늦게야 다시 모이는 ‘집’은 마치 전장의 작전 본부에 비유되기도 한다. 강북의 호젓함과 대단지의 편의 시설을 갖추고 교통의 편리함으로 조성 단계부터 화제를 모은 경희궁 자이. 압구정동 아파트 단지에서 20년간, 그것도 한집에서 살았던 김선형 씨 가족은 새 보금자리로 이곳을 낙점했다. 여느 집과 마찬가지로 치열한 시간을 보낸 김선형 씨 가족에게 새집이 지닌 의미는 단순한 이사나 레노베이션 이상의 각별함이 있다.

주방에서 바라본 가족실과 거실. 탁 트인 개방감이 느껴진다. 언제나 음악 소리가 들리는 거실은 클래식 애호가인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으로 빈티지 턴테이블과 나무 울림이 좋은 스피커를 구했다.

침실은 오롯이 휴식에 집중할 수 있도록 미니멀하게 꾸몄다. 잠자리에 들기 전 책을 읽는 부부는 각자 등받이를 세울 수 있는 모션 베드를 사용한다.

동글 가족, 살고 싶은 집을 찾다
김선형 씨 가족은 서로 닮은 외모만큼 합이 척척 잘 맞는다. 전에 살던 동네에서도 뭐든 함께 하는 ‘동글동글’ 가족으로 유명했다. 6년 전, 딸 승현 씨가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강남에서 강북으로 활동 반경이 넓어졌고, 뭐든 함께 하는 가족은 주말이면 광화문ㆍ부암동ㆍ인사동을 산책하며 시간을 보냈다. 아이의 대학 입시가 끝나고 집이 더 이상 재테크의 수단이 아닌 이상 강남 한복판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부부는 자연스레 이주를 결심했다. “남편은 책과 클래식을 좋아해요. 서양화를 전공하는 딸아이와 전시도 자주 보러 가니 미술관, 서점이 가깝고 대중교통 이용이 편리한 광화문 주변 지역이 우리의 라이프스타일과 잘 맞겠다고 판단했죠.” 김선형 씨는 2년 전 집을 계약하고 바로 인테리어 디자인 회사 마르멜로 디자인을 찾았다. 언젠가 이사를 하면 어떤 공간에 살 것인가에 대해 늘 스스로 질문했고, 틈틈이 인터넷이나 잡지에서 마음에 드는 공간을 보면 디자이너를 메모해두었다가 사이트를 방문해 포트폴리오를 살펴보곤 했다. 그중 마르멜로 디자인 이경희 대표가 작업한 공간은 마감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반면 컬러 사용은 과감했다.

“많은 분이 주거 공간에 컬러를 적용하는 걸 두려워해요. 컬러를 쓴다고 해도 뉴트럴 계열이나 파스텔 톤에서 벗어나지 못할 만큼 제한적인데, 클라이언트는 처음부터 공간에 대담한 컬러를 입히길 원했지요. 첫 회의 때 딸 승현 씨가 함께 왔는데, 자신의 방은 꼭 빨간색으로 마감하고 싶다고 했어요.” 디자인을 맡은 이경희 대표는 승현 씨 방에 빨간 타일 바닥재를 고르고 벽은 회색으로 마감했다. 공간의 백미는 현관 복도에서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가족실. 초록색 벽과 고벽돌이 어우러지는 가족실은 책 읽기 좋아하는 세 식구의 서재로 활용하는데, 아무리 책이 쌓여 있어도 지저분해 보이지 않고 근사하다(창의적 생각이 마구마구 떠오를 때도 있다!). 책, 화장품, 음악 CD, 물감, 낙서 등 자질구레한 물건이 많은 스물두 살 여대생의 방 역시 빨간색 바닥이 시선을 잡아주면서 어질러져 있어도 꽤 괜찮은, 키치한 감성으로 읽힌다. 초록색, 빨간색 등 강렬한 컬러의 힘이다. 사실 잡지에서 본 마음에 드는 공간을 그대로 구현한다고 개성 넘치는 집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과감한 컬러color를 넘어 자신만의 컬러(individuality)가 더해지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집에 살고 싶은가’에 앞서 ‘우리는 어떤 가족인가’를 먼저 생각했어요. 콘셉트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게 아니라 가족 구성원 각자가 원하는 삶의 모습과 취향이 반영되는 것이 레노베이션의 핵심 포인트였죠.”

김선형 씨가 디자이너에게 주문한 것은 ‘디자인’이라기보다 ‘라이프스타일’에 가까웠다. 클래식 애호가인 남편이 편하게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라운지, 요리를 즐기는 자신을 위한 널찍한 아일랜드와 친척들이 와도 함께 앉을 수 있는 다이닝 테이블, 각 집안의 장녀와 장남으로 집안 어르신이 오시면 편하게 주무실 수 있는 게스트 공간, 딸 승현 씨가 그린 그림을 걸 수 있는 벽, 책이 많이 꽂혀 있어도 지저분해 보이지 않는 가족실…. 지난 20년간 한집에 살면서 하나씩 차곡차곡 쌓아온 위시 리스트는 디자이너의 세심하고 입체적인 해석으로 공간에 하나씩 구현됐다.

평소 요리를 즐기는 김선형 씨의 취미와 라이프스타일이 드러나는 주방 한편. 미국에 살 때 구입한 소형 가전은 전압이 달라 변압기를 써야 하는데, 조리대 가장 안쪽으로 전자 기기를 정돈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편리하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내밀한 공간이지만, 데커레이션을 가장 신경 쓴 욕실. 식물을 매치해 싱그러움을 더했다. 안방 테라스에서도 바질, 로즈메리 등을 키워 요리할 때 사용한다고.

빨간 바닥재가 인상적인 딸 승현 씨의 방. 침대 발치에 파티션을 배치하되, 상단은 유리로 마감해 답답해 보이지 않는다.

메이크업과 록 음악을 즐기는 대학생의 취향을 오롯이 보여주는 공간.

공간을 완성하고 그림을 걸고 싶은데 마땅한 작품을 찾지 못했다면? 아이가 그린 그림을 전시하면 가족만의 스토리가 있는 갤러리 월을 완성할 수 있다. 벽에 걸린 그림은 딸 승현 씨 작품.

어디서 보아도 예쁜 ‘각’
먼저 현관에 들어서면 파란색 회화 작품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현관에서 서재로, 안방으로 이어지는 벽면에 가득 걸린 작품은 모두 승현 씨가 과제로 그린 그림. 집을 찾은 손님들이 그림을 한참 들여다보며 “작품 좋다”고 평하니, 딸의 그림을 근사한 작품처럼 걸어주고 싶다는 미션은 성공한 셈. 거실에는 화이트 패브릭으로 커버링한 소파가 자리한다. 하얀색이라 사용하기 부담스럽지 않을까 우려도 있었지만, 200% 만족! 거실에서 음악 듣고 책 읽기 좋아하는 남편이 퇴근한 후 뒹굴뒹굴하기에 제격이다. 주방은 거실 사이의 답답한 가벽을 털어내고 김선형 씨의 로망이던 커다란 아일랜드 조리대를 시공했다. 거실과 주방의 많은 면적을 차지하는 터라 상판을 스테인리스 스틸로 선택해 모던한 인테리어를 완성. 30평대이던 예전 집에 비해 장과 조리대 사이의 간격이 넓어 남편과 함께 식사 준비를 할 때도, 정리를 할 때도 복잡하지 않다. ㄱ자로 꺾이는 조리대 가장 안쪽 데드 스페이스는 소형 가전과 조리 도구를 쭉 늘어놓을 수 있어 편리하다.

거실과 안방 사이에 있는 가족실은 쇼케이스처럼 투명 유리 슬라이딩 도어로 마감했다. 간혹 집에서 번역 작업을 할 때(김선형 씨는 영미문학을 전공하고 학생을 가르치다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재즈> <시녀 이야기> <수전 손택의 말> <어려운 여자들> 등을 번역했으며,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로 2010년 유영번역상을 수상했다) 유리문을 닫으면 완벽하게 집중할 수 있고, 일과 생활이 분리되면서도 또 함께 소통하는 것 같아 만족한다. 디자이너는 책이 많이 쌓여도 복잡해 보이지 않는 힘은 여백과 컬러에 있다고 말한다. “흔히 서재는 여분의 방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만큼 면적이 넓지 않기에 가구를 최소화해 상대적으로 여유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죠. 컬러로 포인트를 주되, 테이블 외의 가구를 생략했어요. 필요하면 한쪽에 모션 데스크를 둘 수 있도록요.” 가족실의 테이블과 의자는 원래 식탁으로 사용하던 것. 미국에서 애뉴얼 세일할 때 구입한 조지 나카시마 벤치와 의자는 오래 앉아 있어도 착석감이 편하다. 쿠션은 바르셀로나 여행 때 피카소 미술관에서 구입한 것으로, 초록 벽과 어우러지면 확실한 컬러 포인트가 된다.

현관을 중심으로 복도 오른쪽에는 게스트룸과 딸 방이 자리한다. 디자이너는 부부와 자녀의 존을 자연스레 분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서로의 공간을 연결 지으며 색다른 레이어를 만드는 ‘복도’의 묘미를 잘 살렸다. 딸 방에서 바라보이는 가족실의 초록색 벽, 안방 침실에서 보이는 다이닝 테이블, 거실에서 바라보이는 복도의 갤러리 월이 그 포인트! 김선형 씨의 표현에 따르면 ‘어디서 보아도 예쁜 집’이란다. “남편은 매일 아침, 침실 문을 열고 나올 때마다 이사하니 참 좋다고 말해요. 자기 표현이 중요한 딸도 빨간색 방이 꽤 마음에 드는지 우리 가족의 ‘서식지’로 그만이라고 하고요.” 과감하게 사용한 컬러, 여행의 추억에서 비롯한 오브제, 일률적 스타일 공식을 벗어난 믹스 매치…. 김선형 씨의 집을 취재하며 가족에 대한 배려가 예산보다 훨씬 훌륭한 디자인을 완성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한 취향을 뚜렷이 반영한 공간은 새것 특유의 매끈한 이질감도, 세월이 흘렀을 때의 지루함도 이겨내는 힘이 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이경희는…
마르멜로 디자인 대표. 군더더기 없는 마감에 색을 잘 쓰는 디자이너로 차갑지 않은 모던 인테리어를 선보인다. 인테리어 작업을 하면서 공간을 마무리하는 식물, 베딩, 액자 포스터 등을 큐레이션해 판매하는 마르멜로 홈을 운영하며 다채로운 홈 스타일링을 제안한다.

글 이지현 기자 사진 박찬우 디자인 및 시공 마르멜로 디자인(02-588-9217)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7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