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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를 살아가기 위한 고택의 진화 이음 더 플레이스
북촌 골목을 거닐다 보면 유난히 독특한 모습의 한옥을 볼 수 있다. 마치 성벽을 쌓아 올린 듯한 이곳은 프라이빗 한옥 갤러리, 이음 더 플레이스. 전통의 품격과 현재의 아름다움, 미래의 가치를 잇는다는 의미를 품고 있다. 1908년 도시형 한옥으로 지어 1백 년 만에 리모델링하고 갤러리로 진화했다.

벽면을 통유리로 마감한 이곳은 실질적인 사랑방으로, 경복궁을 중심으로 한 아름다운 차경이 일품이다.
‘한옥’ 하면 떠오르는 일반적 풍경이 있다. 웅장하게 솟은 대문, 와편으로 촘촘하게 장식한 돌담. 하지만 이를 고루하게 여기기라도 한 듯 황토색 벽돌을 쌓아 외벽을 만들고, 아치형으로 창을 낸 한옥이 있다. 프라이빗 한옥 갤러리인 ‘이음 더 플레이스Eum The Place’다. 대문을 지나 계단을 오르는 순간 한옥의 매력이 드러난다. 폭이 좁고 가파른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극적으로 시야가 탁 트이며 아래채와 정원, 본채가 한눈에 들어온다. 눈앞에 또다시 층층이 돌계단이 이어지니 마치 사찰에 온듯한 느낌이랄까! 몸을 돌려 방향을 왼쪽으로 꺾으면 아래채로, 계속 직진하면 정원을 지나 본채로 들어가니 발걸음을 어디로 향할지 고민하는 찰나에 쉼을 느낄 수 있고, 어떠한 한옥이 펼쳐질지 묘한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한옥 세 채를 이은 한옥 갤러리
이음 더 플레이스는 서로 다른 세 채의 한옥이 정원을 에워싸는 형식을 취한다. 20년 전에 구입한 본채는 1908년에 지은 고택으로, 전통 한옥과 일식 건축이 혼재해 있었다. 이곳에서 세 자녀와 함께 생활하다 10년 전,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웃한 한옥 두 채(지금의 아래채)를 추가로 구입했다. 당시 북촌을 중심으로 한옥 복원 작업이 산발적으로 진행되면서, 집주인은 한옥에 남은 일본 가옥의 잔재를 줄이고 과거와 현대를 아우르는 한옥으로 정비하기 위해 곧바로 리모델링을 결심했다. 리모델링에는 구가도시건축의 조정구 대표가 함께했다. 그는 한옥을 각종 전시와 행사를 위한 문화 공간으로도 활용할 것이라는 집주인의 계획에 따라 본채를 생활 공간과 갤러리 공간으로 정리하고, 두 채의 한옥이 나란히 붙어 있던 아래채는 이주법(한옥기둥을 옮겨서 구조를 변경하는 것)을 활용해 갤러리에 적합한 구조로 변경했다. 또 본채와 아래채의 대지 차를 이용해 창의 방향을 정하니 창 너머로 본채의 정원이 마주 보인다. 내부는 최대한 비워 갤러리 역할에 충실했다.

새로 짓는 것보다 시간이 더 오래 걸리고, 철저한 설계가 수반되어야 하는 일이 바로 한옥 리모델링이다. 옛 한옥을 재정비하기 위해 정태도 대목이 함께 했고, 10년간 생활해온 집주인도 합세해 백방으로 뛰었다. “1백 살이 된 한옥을 리모델링하면서 가족도 한옥에 대해 배우고 이해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고택의 멋을 잇기 위해 고재를 수급하고, 기와 한 장 돌 하나도 세월의 켜가 묻은 것을 고르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다녔지요.”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지금의 모습을 갖춘 이음 더 플레이스는 현대를 살아가기 위한 고택의 진화를 보여준다. 정원에 들어서면 모던하게 디자인한 포석정이 눈앞에 펼쳐진다. “리모델링을 끝낸 후 지인들을 초대한 적이 있어요. 그때 풍수를 잘 보는 분이 한옥을 훑어보고는 강한 양의 기운으로 지었으니, 여성성을 담은 작품으로 음양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지요. 그래서 연못과 포석정을 만들었습니다.”

아래채는 똑같은 구조의 한옥 두 채를 연결해 꾸민 갤러리. 작품이 돋보이도록 한옥 본연의 모습만 남기고 장식적 요소는 모두 배제했다.

중국 회화 작가 이경혁의 작품으로, 압도적 존재감을 지닌다.

음양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 정원에는 여성성을 담아 곡선을 살린 포석정을 만들었다. 연못과 연결된 포석정에서 비단잉어가 자유롭게 오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마당 너머로 성벽처럼 쌓은 담벼락과 고려시대의 아치형 창을 응용한 창문이 보인다. 통풍을 원활히 하도록 고안한 것. 그 옆으로 아담한 툇마루와 온돌식으로 꾸민 겨울의 방이 있다.

한옥, 대담하고 섬세하다
본채로 들어가면 한옥 갤러리의 면모를 더욱 강하게 느낄 수 있다. 대청마루에는 故 몽휴 김걸 선생의 나전칠기가 놓여 있고, 한쪽 벽면에는 루브르 박물관에 ‘팔준도’를 올릴 만큼 작품성을 인정받은 중국의 전통 회화 작가 이경혁의 작품이 1백 년의 세월과 비견하게 걸려 있다. 칸칸이 이어지는 공간을 지나면 고영훈 작가의 ‘달항아리’가 걸린 방이 나온다. 벽 한 면을 유리로 구성한 이곳은 실질적으로 사랑방 역할을 하는 공간이자, 이 집에서 가장 아름다운 차경을 품고 있다. 오롯이 앉아서 바라보면 경복궁을 중심으로 한 서울 전경이 안마당의 풍경으로 들어와 안긴다. 오랜 세월을 지내면서 한옥의 일부가 잘려 나가 루역할을 하는 곳이 없어졌기에 고안한 공간으로, 단순한 한옥이 아닌 역사와 문화가 조화를 이루는 예술 공간을 만들고 싶었던 집주인의 의도가 엿보인다.

이곳에서 대담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면, 아래채에 꾸민 ‘여름의 방’과 ‘겨울의 방’은 ㄷ자 한옥의 데칼코마니 같은 구조를 활용해 반전의 미학을 보여준다. 누각처럼 떠 있는 여름의 방은 계단을 만들기 위해 ㄷ자 한옥을 구조 변경하면서 생긴 공간으로, 창문을 열면 담벼락 밖으로 삼청동과 경복궁 일대를 감상 할 수 있다. 여름의 방과 구조가 똑같은 겨울의 방은 전통식 온돌방으로, 두 사람이 겨우 앉을 만한 마루와 연결되며 한옥에서의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대청마루에서 창문을 열면 십장생과 꽃 그림이 그려진 담장이 나온다. 최대한 비우고 간결하게 꾸민 한옥에서 화려함의 절정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정원에서 내려다본 풍경. 계단을 따라 올라오면 아래채와 정원으로 향하는 갈림길이 나온다. 계단 위에 원두막처럼 떠 있는 방이 여름의 방이다.

창 너머로 풍경을 감상하며 다도를 즐길 수 있다.

하늘을 향해 낸 아담한 천창. 한옥 곳곳에는 이토록 소소한 즐거움을 주는 요소가 숨어 있다.

대청마루는 퇴까지 확장하고 정갈하게 단장했다. 창 너머로 꽃담이 있는 쪽마당을 발견할 수 있다.

한옥의 진정한 묘미는 공간의 이음에 있다고 여기는 집주인은 곳곳에 누마루와 온돌을 놓아달라고 요청해 오르락내리락 넘나드는 재미가 쏠쏠한 한옥을 완성했다. 그야말로 시간의 이음, 공간의 이음이 모두 담겨 있다. 그 안에서 보물찾기하듯 의외의 요소를 발견하는 것 또한 커다란 즐거움이다. 이를테면 꽃담을 두른 쪽마당이 그렇다. 대청마루에서 창을 열면 꽃 그림이 그려진 담장과 그 아래로 길게 낸 쪽마당이 보인다. 갤러리역할을 하도록 퇴까지 공간을 확장하고, 최대한 간결하게 꾸민 대청마루에서 화려함의 절정을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성벽을 닮은 독특한 외벽은 호주에서 공수해 온 친환경 벽돌을 쌓은 것으로, 날씨와 시간이 변함에 따라 다채로운 빛깔을 낸다. 비가 오면 벽돌의 색감이 차분해지고 석양빛을 받으면 오히려 하얗게 빛난다. 워낙 바람과 볕이 강한 지역이어서 한옥을 보호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

다만 기존의 벽은 일제의 잔재가 강하게 남아 있어 전통문화를 보존한다는 일념으로 다시 성벽처럼 쌓고, 고려시대의 아치형 창을 더해 디자인과 성능을 모두 살렸다. 그러면서도 한옥의 외벽을 고스란히 드러내니 폐쇄적인 느낌이 들지 않는다. 집주인은 고려시대의 화려한 건축술과 조선시대의 소박한 멋을 조화롭게 보여주고자 했다. “아름답게 꾸미면 화려하고, 화장을 지우면 수수한 한국 여인의 모습이 한옥에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직접 살아보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지요. 한옥살이는 부지런함이 근간이 됩니다. 나무와 돌 그리고 흙으로 지은 이 집은 사람의 숨과 정성으로 그 형태를 유지하지요. 과연 집에 생명이 있겠냐마는 정말로 손길을 놓으면 금방 쇠락하고, 다시 거처하면 따뜻하게 온기가 피어나요. 생활의 흔적을 정리하고 갤러리로 변모한 이음 더 플레이스가 앞으로 복합 문화 공간으로서 많은 이에게 사랑받는 한옥으로 거듭나기를 바랍니다.”

왼쪽 누마루처럼 단을 높인 방에는 고영훈 작가의 달항아리와 무토 전성근 작가의 도자기로 유려한 멋을 더했다.
아래채에서는 창 너머로 본채의 정원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대지 차를 이용한 지혜로운 발상이다.

글 이새미 기자 사진 이우경 기자 취재 협조 이음 더 플레이스(02-736-8118, www.eumtheplace.com)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7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