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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양 함양산촌 쌀누룩으로 빛 고운 식초를 빚다
지리산 아래 야트막한 평지에 자리한 한옥으로 들어서니 크고 작은 옹기가 줄지어 있다. 옹기 속에서는 1년 동안 발효한 식초가 말간 빛을 띠며 새큼한 냄새를 풍긴다. 임채홍 대표가 개발한 쌀누룩으로 빚은 식초로 ‘발효로 소통하고자 하는 젊은 세대’의 열정과 집념으로 이룬 결과물이다.

전통 발효 음식으로 다채로운 음식을 개발하는 김봉수 셰프(왼쪽)와 쌀누룩을 사용해 저온 숙성 방식으로 식초를 빚는 임채홍 대표.

발효 음식에서 재미를 찾다
제1의 맛은 소금, 제2의 맛은 양념이요, 제3의 맛은 발효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의 예언처럼 인간의 기대 수명이 늘어나고 건강한 음식에 대한 열망이 높아지면서 세계는 몇 년 전부터 발효 식품에 푹 빠져 있다. 김치를 비롯해 사워크라우트, 치즈 등 인류는 이미 오래전부터 발효 음식을 먹어왔지만 예측할 수 없는 미지의 맛을 선사하는 것이 발효 식품의 매력. CNN과 NRA(전미레스토랑협회)는 2016년 푸드 트렌드를 상징하는 키워드 중 하나로 발효를 꼽았고,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을 말할 때 빠지지 않는 레스토랑 노마NOMA(현재 농장형 레스토랑으로 재개업하기 위해 영업을 중단한 상태)의 레네 레제피 셰프는 레스토랑에 발효실을 따로 만들었을 정도다. 미국의 저명한 요리 잡지 <본아페티>가 2016년 9월호에서 소개한 LA 산타모니카에 있는 한식당 바루BAROO는 다양한 발효 음식을 선보이며 미식가가 주목하는 레스토랑으로 떠올랐다. 이토록 세계가 열광하는 발효 음식은 우리네 밥상을 책임지는 한식 의 근간. 김치를 비롯해 간장과 식초, 장류 등 한국에서 발효 식품은 전통 음식이며, 가장 토속적인 음식을 뜻한다. 발효가 이처럼 세계적 트렌드로 주목받는 반면, 정작 한국에서는 전통 발효 식품 소비가 줄어들고 있다. 함양산촌의 임채홍 대표는 이러한 상황에서 발효의 장점은 살리고 현대인의 입맛에 맞게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사방 천지가 수려한 봉우리로 둘러싸인 지리산으로 귀농한 그는 오랜 시간 연구해 완성한 쌀누룩으로 식초를 빚는다. 그의 손끝에서 탄생한 식초는 쿰쿰한 대신 과실향을 은은하게 풍긴다.


전통 음식에 대한 의문을 쌀누룩으로 풀다
“2006년 전통음식연구소에 입사해서 2010년 세종대학교 대학원 조리외식경영학과에서 전통주와 발효를 공부했습니다. 한식세계화 사업의 일환으로 세계 곳곳에 있는 한식당의 메뉴를 개발하고 컨설팅했어요. 그러다 2012년 12월 지인을 도와 세르비아에 한식당을 오픈했죠. 비빔밥과 한국식 프라이드치킨을 조리면서 한식의 인기를 몸소 체험했어요. 관심은 있지만 복잡한 양념 탓에 한식을 조리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현지인이 많더군요. 그때부터 조리 과정을 효율적으로 돕고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식초와 간장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2013년 말 한국으로 돌아온 임채홍 대표는 귀농하겠다는 계획을 앞당겨 고향으로 왔다. 고된 서울 생활로 몸과 마음이 지친 이유도 있었지만, 개인적 관심으로 2007년부터 만들어오던 쌀누룩으로 자신의 이름을 내건 식초를 선보이고 싶었다. 2015년 경남 함양 원산마을로 내려와 본격적으로 식초 빚기에 몰두했다. 단 전통 방식에만 의존하고 싶진 않았다. 한식당을 운영한 경험을 살려 젊은 세대는 물론, 외국인의 입맛까지 고려한 식초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의 비법 쌀누룩을 활용해서 말이다. “좋은 누룩은 맛있는 술과 식초의 근간이지요. 밀 누룩을 사용하면 밀 껍질이 발효되면서 간장처럼 쿰쿰한 향이 나고 색이 누르스름해져요. 입안에서 누룩 냄새가 오래 남죠. 반면 쌀누룩을 사용하면 식초 맛이 훨씬 부드럽고 색도 맑아요.”

임채홍 대표는 부모님과 함께 직접 농사지은 쌀을 사용해 누룩을 만든다. 흔히 밀이나 쌀로만 누룩을 빚는데, 그는 쌀가루와 녹두를 활용해 누룩을 빚는다. 쌀가루와 녹두를 잘 반죽한 뒤 씨누룩과 천연 지하수를 부으면 온도가 23~25℃로 유지되면서 발효가 활발하게 일어나기 시작한다. 이 누룩을 틀에 부어 성형한 뒤 송순(소나무순)을 덮어 온도가 30℃로 유지되는 한옥에서 7일간 선발효한다. 이때 자연 효모균이나 다름없는 송순은 유해한 미생물의 침입을 막아주고 누룩 속 이로운 미생물의 발효를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그 후 상온에서 열흘 정도 후 발효하면 두부처럼 뽀얀 누룩이 완성된다.


저온 발효 숙성한 임채홍표 식초
“대부분의 농가가 봄이 지나고 기온이 오를 무렵부터 식초를 빚습니다. 6월부터 기온이 25℃ 이상으로 오르기 시작하면 아무런 열 보조 장치 없이 자연스럽게 식초를 발효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기 때문이죠. 반면 저는 11월부터 3월 사이에 저온 발효 숙성 방식으로 식초를 빚습니다. 전통 방식으로 식초를 빚는 분들은 어림없는 소리라고 나무라며 이상한 놈 취급을 받기도 했지만 제 방식대로 해보고 싶었어요.” 임채홍 대표는 지난 7년간 사단법인 전통음식연구소에서 일하며 고문헌에 수록된 술이란 술은 죄다 복원해보면서 저온 발효 방식에 확고한 믿음이 생겼다. 매년 11월이 되면 그는 쌀을 빻아 뜨거운 물을 부어 범벅을 만든 후 쌀누룩을 넣어 날씨가 따뜻하면 하루 반나절, 날씨가 추우면 3일 정도 발효시켜 밑술을 만든다. 그 후 지에밥과 누룩으로 덧술을 만들어 밑술과 함께 항아리에 담아 5~10℃로 유지되는 한옥에서 보름 정도 저온 발효 숙성시킨다. 그런 다음 술지게미와 막걸리를 분리하고 물을 첨가해 알코올 도수를 7도로 맞춘다. 여기에 씨식초(종초)를 15% 넣어 3개월 동안 숙성한 뒤 깨끗하게 걸러내 1년~1년 6개월 숙성 과정을 거치면 임채 홍표 식초가 탄생하는 것. 복잡한 과정만큼이나 식초 맛도 독특하다. 새큼한 냄새가 은은하게 나면서 전통 식초와 달리 맛이 아주 부드럽고 색도 맑다.

“함양산촌을 대표하는 특색 있는 식초를 만들기 위해 개발한 것이 진달래식초와 과일맛식초입니다. 기본 식초에 진달래와 과일을 활용했지요. 봄이 되면 마을을 둘러싼 산에 지천으로 피는 진달래를 따다 덧술을 만들 때 같이 넣습니다. 고혈압과 간경화, 지방간을 완화하는 진달래의 효능을 살려 만든 건강한 식초예요. 과일맛식초는 초산 발효할 때 사과, 배, 오렌지, 바나나 등을 넣고 만든 조리용 식초입니다.” 현재 임채홍 대표는 이 밖에도 오미자식초와 사과식초, 딸기식초 등 다양한 식초를 선보인다. 최근에는 요리에 익숙지않은 젊은 세대와 외국인의 입맛을 고려해 해물맛간장을 만들었는데, 무척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해외 수출을 위해 미국 LA에 있는 유통업체와 긍정적으로 협의하고 있는 중이다. 그가 만든 차별화한 식초와 간장으로 세계인의 식탁을 공략할 예정이다.

임채홍 대표는 봄이 되면 지천으로 피는 진달래잎을 따고 겨울에는 잘 말려 보관했다가 덧술을 만들 때 함께 넣어 발효시킨 후 진달래식초를 만든다.

쌀가루와 녹두로 만든 누룩으로 식초를 빚는 것이 함양산촌의 비법. 녹두가 유해균의 침입을 효과적으로 막아 깔끔한 술맛을 낼 수 있는 것.

높은 온도에서 단시간에 발효하면 식초 맛이 거칠고 탁한데, 이곳은 저온 숙성 발효 방식으로 만들어 식초 색이 맑고 맛 또한 부드럽다.

김봉수 셰프는 진달래식초를 넣은 오미자 음료와 과일맛식초를 드레싱으로 활용한 샐러드, 해물맛간장으로 감칠맛을 더한 국수를 선보였다.

진달래식초는 500ml 2만 5천 원이며, 오미자식초, 딸기식초, 과일맛식초, 해물맛간장도 판매한다.

산미와 감칠맛을 극대화하다
김봉수 셰프는 함양산촌 식초의 가장 큰 특징으로 산미와 깔끔한 맛을 꼽았다. “레스토랑에서 일할 당시 한국 술로 다양한 페어링을 시도했습니다. 지나치게 달거나 누룩 냄새가 강한 술은 음식과 페어링하기 생각보다 어려웠어요. 글라스에 스모크를 넣어 술의 단맛이나 누룩 냄새를 가려보기도 했지만, 전통주를 빚는 분들은 ‘이건 우리 술이 아니다!’라고 딱 잘라 말하시더라고요. 전통 발효 식품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 고민이 많았는데, 함양산촌의 식초를 맛보고 굉장히 놀랐어요. 그중에서도 과일맛식초는 시판 식초에 비해 과실 향이 풍부하고, 진달래 식초는 누룩 향이 나지 않으며 맛이 깔끔하더라고요. 다양한 요리에 활용하기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좋은 식초는 좋은 술이 바탕이 되니 향후 깜짝 놀랄 만한 술이 나올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도 들었지요.”

그는 과실 향이 진한 과일맛식초를 사용해 샐러드를, 산미가 강하지 않은 진달래식초를 넣어 만든 오미자 음료를 제안했다. “시중에서 판매하는 식초 음료는 착색료와 화학 당료가 많이 첨가되었습니다. 진달래식초는 쌀누룩으로 발효시킨 덕분에 식초 자체에 단맛이 배어 있어요. 오미자를 우린 물에 진달래식초를 넣어서 마셔보세요. 사과를 갈아 만든 즙을 넣으면 자연스러운 단맛을 더할 수 있어요.” 그는 산미와 감칠맛을 극대화하고 싶다면 식초를 활용해보라고 덧붙였다. 그 예가 바로 과일 맛식초를 활용한 샐러드다. 토마토와 도라지잎 페이스트, 치즈를 올린 샐러드 위에 과일맛식초를 드레싱으로 뿌리면 토마토 속에 숨어 있는 감칠맛과 산미를 증폭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말한다. 김봉수 셰프는 이날 해물맛간장을 활용해 국수도 함께 선보였다. 다시마와 버섯, 멸치로 국물을 낸 뒤 해물맛간장으로 감칠맛을 더했다. “해물맛간장은 갈대 뿌리, 오가피, 우엉 등 세 가지 한약재를 넣어 해물의 비린 맛을 완벽하게 잡았어요. 일반 간장보다 염도가 낮고 맛도 깔끔해요.” 누구에게나 거부감 없는 맛있는 발효식품을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말하는 임채홍 대표. 그는 전통을 존중하되 한 번만 역으로 생각해보면 좀 더 쉬운 방법으로 좋은 발효 식품을 만들 수 있다고 강조한다. 앞으로 프리미엄 식초도 만들 계획이라는 그가 어떤 ‘미지의 맛’을 보여줄지 기대가 된다.

글 김혜민 기자 사진 이경옥 기자 요리 김봉수 문의 함양산촌(070-5005-3720)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7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