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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예술계 선후배의 공감 30년 차이 시는 짧아서 좋다

시인 황인숙・황인찬
시는 짧아서 좋다


황인찬은 1988년생으로 201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다. 2012년 제31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구관조 씻기기> <희지의 세계>가 있다. 시인과 타이포그래퍼가 짝을 이뤄 만드는 독특한 작품집 <16시: 황인찬, 김병조>를 내기도 했다. 현재 ‘는’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황인숙은 1958년생으로 198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가 당선되며 시단에 데뷔했다. 1999년 동서문학상과 2004년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새는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놓고>부터 <못다 한 사랑이 너무 많아서>까지 총 일곱 권의 시집을 냈다.








황인찬 시인(30세)은 황인숙 시인(60세)의 시를 ‘징하다’고 생각했다. “제가 처음 시를 읽고, 쓰기 시작한 게 2007년이었어요. 선생님 등단한 지 20년쯤 되었을 때인데, 시 속에서 언어가 도약하는 감각에 깜짝 놀라는 부분이 있거든요. 선생님 첫 시집이나, 그때 읽었던 시집이나, 이번에 새로 나온 시집까지 계속 언어가 도약하는 감각을 유지하는 걸 보고서 참 징하다고 생각했죠. 후배 입장에선 선생님들 시가 계속 좋으면 존경스러운 한편, 마냥 좋지만은 않거든요.” 이러고는 허허허 큰 소리로 웃는다. 황인숙 시인에겐 황인찬 시인의 시가 우아하다. “시보다 소문을 먼저 들었어요. ‘어디 얼마나 잘 쓰나 보자’ 하는 마음이었는데 진짜로 잘 써요. 황인찬 씨 시에는 어떤 우아함이 있어요. 인찬씨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어?” 다정한 말투의 그는 자신의 말에 대한 후배의 반응이 궁금하다.

둘은 이제껏 두 번쯤 스쳐 지난 사이다. 2년 전엔 지하철에서 만나 20분 정도 옆자리에 앉아 가면서 당시 읽고 있던 책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그런데도 이상하리만큼 서로에게 스스럼이 없다. “시인들이 그래요. 처음 봐도 다 일가붙이들 같아.” 황인찬 시인이 태어난 이듬해 황인숙 시인의 첫 시집 <새는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놓고>가 나왔다. 세대는 다르지만 황인숙 시인은 황인찬 시인의 두 번째 시집 <희지의 세계>를 읽으며 “내가 무얼 놓치고 있는지를 알 것 같았다”고 말했다. 황인찬 시인은 황인숙 시인의 최근작 ‘못다 한 사랑이 너무 많아서’에 나오는 ‘텅 텅’이라는 의성어를 읽고 며칠 동안 계속 머릿속이 텅텅 울렸단다.

황인찬 시인은 문예창작과에 들어갔지만 소설 쓰기에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대학 1학년을 보냈다. “겨울방학 때쯤 소설을 못 쓰면 뭘 해야 하지? 시나 쓸까? 했죠.” “그렇지! 시는 짧으니까.” “맞아요, 시는 짧아서 좋았어요.” 그때까지 황인찬 시인은 시를 거의 읽지 않았다. 황병승, 김행숙 등 인기 있던 시인의 시를 읽어도 그 속에서 언어가 반짝거린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정확히 무슨 말인지는 몰랐다. 시를 쓰면서, 시가 좋아졌다. “오르한 파묵의 <눈>을 읽는데 너무 좋은 걸 읽으면 뭔가 쓰고 싶은 마음이 들잖아요. 그런데 그게 소설은 아닌 것 같아서, 제 나름대로 시를 써 내려갔는데 그게 무척 마음에 들고 기분이 좋았어요.” “맞아! 기분이 좋아. 나도 처음 시 쓸 때 기분이 참 좋았어.” 황인숙 시인은 맞장구의 달인이다. 그 역시 시가 짧아서 좋았다. “저도 ‘이게 혹시 시가 아닐까?’ 하며 쓴 건 스무 살 무렵이었던 것 같아요. 열 편쯤 써서 친구한테만 보여줬다가, 서울예전 들어가면서 정현종 선생님께 보여드렸더니 굉장히 칭찬을 받아서 ‘나 시 천재인가 봐’ 하면서 열심히 썼죠.”

하지만 30년 전 문단엔 현실 참여적 시가 주류였다. “오직 그 길만이 옳은 것 같았어요. 그런데 전 세상 모르고 유유자적 내 시만 쓰고 있었던 거죠. 주눅이 들었어요. 가장 팔팔해야 할 시기를 그렇게 보낸 게 아쉽죠.” 황인찬 시인은 갈 길이 너무 많아 고민이다. “시 쓰기는 그저 시 한 편을 쓰는 게 아니라, 한 명의 시인을 완성해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첫 시집을 내고 첫 발자국 찍는 건 쉬웠는데, 다음 발자국을 찍는 게 너무 고민이 되고 고통스럽더라고요. 또 시집을 내고 나니 그다음 발자국을 어디에 어떻게 찍어야 할지 더 모르겠어요.” “그냥 한 편 한 편 써.” “제가 너무 생각이 많아서요.” “그런데 인찬씨 첫 시집 제목이 <앵무새 죽이기>였나?” “<구관조 씻기기>예요. 괜찮아요, 선생님. 많이들 그렇게 이야기하세요.” 황인숙 시인은 다정하게 말하고, 황인찬 시인은 소리 내어 크게 웃었다. 

“요즘엔 책을 읽는다고 하면 오히려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는 다면서요? 척박해진 토양에서 인찬 씨처럼 우아하게 잘 쓰는 시인이 나오는 걸 보면 ‘쓸 사람은 다 쓰는구나’라는 생각을 해요.” _황인숙

“선생님 작품 중에서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라는 시를 가장 좋아합니다. 시 속에서 언어가 도약하는 짜릿한 감각을 느껴요. 인식이 접히고, 언어가 확 열리는 순간!” _황인찬

글 정규영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7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