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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티벌에서 만난 멋진 농부들 음식 세계에서 찾은 가치와 즐거움
최근 음식 인류학, 음식 인문학, 미식 예술 등의 책이 주목받기 시작하는 것은 ‘사람은 모두 음식 세계의 구성원’이라는 철학적 사유와 현실적 인식을 깨닫고 음식 세계에서 각자의 역할을 해온농부, 교수, 과학자, 마케터들이 있기 때문이다. 서로 하는 일이 달라도 건강하고 아름다운 음식 생태계를 경작하려는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 그들의 이름이 바로 ‘멋진 농부’다.


미식과학대학교의 데이비드 산토・루이자 토리 교수

“사람은 과학적, 문화적으로 자연 음식 세계의 일원이죠”
이번 슬로푸드국제페스티벌은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개최한 대회지만, 세계인이 슬로푸드에 관심을 가진 것은 이미 오래전 일이다. 오랜 역사 속에 사회철학이 발달하고 산업화를 이룬 서양 사회, 특히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사회는 일찌감치 슬로푸드에 관심을 갖고 좋은 먹거리라는 물리적 의미를 뛰어넘어 자신의 몸을 구성하는 물질 자체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건강과 정신세계, 그리고 자연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탐구하는 통합적 사유를 하게 되었다.

사람은 음식 세계 생태계의 일원이다
슬로푸드세계운동본부가 이탈리아에서 운영하는 미식과학대학교의 데이비드 산토 교수. 미국인인 그의 삶은 우연한 계기로 슬로 라이프스타일로 변화했다. “2004년 즈음 LA에서 운전을 하다가 우연히 라디오에서 미식과학대학에 대해 들었는데, 제가 활동한 미국식 마케팅과 광고 등의 분야가 아닌 미식 과학이라는 분야라면 제 삶이 달라질 것 같더군요. 그래서 1년 뒤 이탈리아로 가서 미식과학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 이후 삶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제 자신과 세상을 다시 보게 됐다는 점이 놀라워요.”

미식과학대학교의 특징은 미각의 과학적, 문화적 통찰이라는 지식을 넘어 우리 자신이 지구 속 음식 생태계의 일부라는 사실을 학생이 스스로 깨닫게 만든다는 점이다. 데이비드 산토 교수도 미국에서 평생 요리를 만들어 먹었지만 자신이 음식 세계의 일부라는 사실은 생각하지 못하고 살았다. 하지만 인문학, 역사, 문화와 과학적 시선을 조금만 돌려보면 지구 자연 세계의 일원인 사람은 결국 음식 세계의 일원이기도 하다는 통합된 사고를 하게 된다. 이러한 사실을 자각하면 우리의 식생활이 나의 몸과 마음, 그리고 지구 생태계와 사회 문화에 미치는 영향에 자연스레 관심이 간다.

“미식과학대학원을 졸업하니 세상 모든 것이 음식으로 보였고, 나는 그 세계의 일원이었습니다. 식품을 재화나 문화의 일부분이 아닌 생태계의 일부분으로 보니까요. 그래서 미식과학대학교에 들어가기 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이죠.” 많은 사람이 미식과학대학교를 졸업하면서 자신의 삶이 달라졌다고 말하는 이유도 데이비드 산토 교수와 비슷하다.

반면, 이탈리아인인 루이자 토리 박사는 식품 패키지 분야를 연구하는 과학자이니 식품 산업에 속한 삶을 살고 있었다. 식품 포장 용기의 오염, 플라스틱 용기 개발 등을 연구하다 보니 그 속에 담긴 식품을 잘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미식과학대학원에 입학했다. “저는 식품 생산을 기술적인 부분으로만 연구했지만 미식과학대학원에 다닌 후 더 큰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농부가 농사를 짓는 것뿐 아니라 내가 축적한 과학적 지식을 이용해서도 음식과 건강한 식생활의 가치를 더 높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죤.”

과학, 역사, 문화, 인문학과 연결된 음식
미식과학대학교에서 관능 분석 연구소를 맡고 있는 루이자 토리 박사는 사람의 미각과 반응 분석으로 음식의 맛뿐 아니라 인류가 음식을 즐기게 된 문화와 역사까지 연결한다. 이러한 분석 작업을 통해 식품 기업에도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사회 문화를 발전시키고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음식 분야다. “과학자나 기업가는 세계를 바꾸려고 하지만, 이곳에서는 나 자신부터 바꾸면 세상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니 슬로 라이프스타일을 향유하려면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자신을 먼저 바꾸어야 합니다. 저는 이제 효과적인 식품 패키징보다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사람의 미식 선호도를 더 잘 이해하는 연구를 합니다. 유전적 요소, 문화적 요소 등에서 어떤 부분이 사람의 음식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과학적으로 데이터를 분석해서 그 상관관계를 알아보는 것이지요. 미식과학대학에서는 이러한 과학적 관능 분석을 통해 음식 세계에 대한 통합적 사고를 할 수 있습니다.”

석사 코스 두 개와 3년제 학부 과정으로 시작한 미식과학대학교는 현재 요리, 와인, 식품과 건강 등의 석사 과정을 추가했다. 의학이나 건강 분야 종사자도, 요리사도, 소믈리에나 와인 유통업자도 인류 문화와 자연 생태계 속에서 우리가 먹는 음식과 자연의 상관관계를 이해하면 직업적 시야 또한 더욱 넓어진다. 건강한 마음과 방식으로 생산한 슬로푸드를 먹고 마시면서 세계 곳곳에서 온 학생들과 교류하며 체득하는 슬로 라이프스타일, 이것이 미식과학대학교가 동문에게 선사하는 가장 값진 선물이다.

 



청년 농부 박진・강병진・장일웅・이우재 래코드RE;CODE 디자이너 장다혜・김동현

“청년 농부로 살아가는 건 나와 타인이 동시에 행복해지는 일이죠”

도심 속 양봉 네트워크를 꿈꾸다
올해 서른네 살의 박진 대표는 직장 생활을 할 때부터 환경과 농업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2007년 ‘도시 양봉’이라는 개념을 처음 알게 된 후 2013년부터 ‘어반비즈서울’이라는 도심 양봉 네트워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지난 3년간 ‘버티자’는 생각으로 일해왔는데, 2016년부터는 ‘확장하자’는 목표로 일하고 있어요. 우리 색깔에 맞는 수익 모델을 찾아가는 단계입니다. 시민이 도시 양봉을 보다 쉽게 접할 수 있는 서비스를 출시할 예정이죠.” ‘허니 뱅크’는 도시 속 양봉을 꿈꾸지만 직접 나서기는 어려운 시민을 위한 서비스다.

어반비즈서울에 한 시민이 투자를 하면 그 시민의 이름이 적힌 벌통을 도심 어딘가에 설치해 관리하고, 진행 과정을 지속적으로 그 시민에게 알린다. 그리고 마지막엔 양봉의 결실인 ‘꿀’로 그 시민의 투자에 보답하는 서비스. 박진 대표가 처음으로 벌통을 설치한 곳은 노들섬 텃밭, 언론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건 명동 유네스코 회관 옥상에 벌통을 설치하면서부터다. 최근엔 어린이집이나 고등학교, 대학교와 영국대사관에도 벌통을 설치했다. 박진 대표가 또 새롭게 준비 중인 ‘허니 팩토리’는 지금까지 주로 옥상이나 텃밭에 벌통을 설치하던 것에서 벗어나 시민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지상에 벌통을 설치하는 것이다. 

이탈리아에서 이미 시행하는 도심 속 양봉프로젝트로, 이를 인상 깊게 지켜본 박진 대표는 이탈리아의 디자이너에게 직접 연락해 공원 속 벌통 디자인을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허가까지 받아냈다. “현재 서울 시내에서 양봉을 할 수 있는 장소로 총 열아홉 군데를 확보했는데, 거점을 늘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서울시에 우리 프로젝트를 알려왔고, 마침내 곧 서울시와 MOU를 체결할 예정이에요. 그 후엔 더 많은 시민에게 도시 양봉을 알리고 체험할 기회를 늘리는 것 또한 조금은 쉬워지지 않을까요?” 우리 생태계와 식량 생산에 없어서는 안 될 꿀벌을 지키고 키우는 도시 양봉가 박진 대표가 꿈꾸는 ‘도심 속 양봉 네트워크’의 실현이 머지않았다.

우리 고유의 잼 문화를 만들어나가다
‘맛있는 일요일’을 떠올리게 하는 ‘선데이잼’ 강병진 대표는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하다가 집 근처에 처음 텃밭을 만들었다. 개인적 힐링과 치유를 위해 텃밭을 가꾼 지 어느덧 4년째. “한 평 남짓한 텃밭을 가꾸면 4인 가족이 충분히 먹을 수 있는 만큼의 채소를 거둘 수 있어요. 어머니를 따라 오이지나 처트니를 만들다가 공교롭게도 당시 ‘건강빵’을 내세우는 프리미엄 브랜드가 많아지면서 ‘잼을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2012~2013년부터 마르쉐@ 같은 유기농 식품을 취급하는 플리마켓이 생겨나면서 지인과 함께 참여해 소비자들에게 입소문이 났다. 최근 온라인 판매까지 영역을 확장하면서 설비를 늘리고 작업 환경을 개선해 규모를 조금씩 키우고 있다.1년에 두 번 봄가을에는 파티도 연다. “해외 고급 브랜드부터 국내 중저가 브랜드까지 굉장히 다양한 잼이 있는데, 우리 입맛에 맞는 고유한 방식으로 잼을 즐기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어서 파티를 열고 있어요.” 젊은 여성 소비자가 주요 고객이다 보니 시각적 요소도 상당히 중시하는 편이다. 지난 3년간 패키지 디자인을 여덟 번 바꿨을 정도. 신제품을 개발할 땐 제철 재료로 끊임없이 시험하고, 해외 식품 서적을 두루 섭렵하면서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도록 노력한다. “잼을 만들면서 가장 행복한 건 스스로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있다는 걸 느낀다는 거예요. 내일 당장 할 일이 있고, 그 일을 사람들이 좋아해준다는 건 저에게 큰 의미지요.”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일군 도시 텃밭에서 얻은 채소와 허브로 잼을 만들고, 더 많은 사람과 함께 도시 농부의 삶을 나누고 있는 강병진 대표가 펼쳐나갈 또 다른 ‘맛있는 프로젝트’가 기대된다.

새롭고 재미있는 조경 디자인을 꿈꾸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종묘ㆍ조경 사업을 하고 있는 가든 디자이너 장일웅은 자연환경관리기술사 최연소 합격자, 광주디자인비엔날레 가든 디자이너라는 타이틀이 있다.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에서는 오로지 ‘식물 생산과 판매’만 했는데, 저는 키워낸 식물을 어떻게 하면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에 잘 응용할지 고민하고 있어요. 1차 산업을 넘어 조경(정원, 공원) 디자인은 물론, 프로ㆍ아마추어 가드너에게 필요한 각종 소품 제작까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는 처음 영국을 방문했을 당시 그들의 정원 문화를 접한 후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요즘도 첼시 플라워 쇼 등 유명 조경 박람회를 보기 위해 매년 영국을 방문한다. 해마다 새로운 조경 트렌드를 접하며 그것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재창조해야겠다는 꿈을 갖게 됐기 때문. 하지만 그는 우리나라 고유의 식물을 잘 키우고 지켜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야생화와 토종 종자, 자생식물을 보호하고 키우는 작업을 계속 진행 중인데, 육종을 통해 부가가치가 높은 우리나라 고유의 식물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전남 구례를 기반으로 활동하던 그는 최근 청년 사업가 장진우와 손잡고 ‘키친 가든’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조경 디자인에 도전하고 있다. 장진우 씨가 최근 문을 연 카페 겸 바 ‘칼로 앤 디에고’의 가든 디자인을 맡으면서 인연을 맺었다. 소격동 장진우식당 옥상의 가든 디자인 또한 맡았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일하고, 그 과정에서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얻는다는 점에서 가든 디자이너 장일웅은 요즘 자신의 삶에 아주 만족한다.

젊은 농촌의 미래를 위해 뛰다
서른두 살의 파릇한 농장주 이우재는 한국농수산대학 대가축학과를 7기로 졸업했다. 졸업 후 아버지에게서 소 60마리를 물려받았는데, 몇 년간 1년에 겨우 열흘 남짓 쉬면서 일만 하며 지냈다. “하루 24시간을 소들과 함께 생활했어요.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배고플 때, 아플 때, 새끼를 찾을 때 모두 소의 울음소리가 다른 것도 알았지요.” 지금은 규모가 늘어 소 3백여 마리를 맡고 있지만, 젊은 나이에 일만 하며 지낸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2백 두 까지는 저 혼자 도맡았는데, 2백 두가 넘으니 도저히 혼자 힘으로는 감당이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직원 한 명을 고용해 현재는 둘이서 3백 두를 돌보고 있습니다.” 

유난히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인 이우재 대표는 경기 도4-H연합회의 회장직도 맡고 있다. 1947년부터 시작해 농업 지식을 교육하고 서로 교류하는 역사가 깊은 단체로, 초등학생을 포함한 경기도민 1만 2천 명 정도가 가입되어 있다. “사실 나이가 많건 적건 간에 농사를 짓는다는 건 혼자만의 싸움이거든요. 그런데 비슷한 연령대의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공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 역할을 하는 단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서른두 살 10년 차 농장주 이우재 대표가 생각하는 농부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건 ‘관찰’이에요. 옛 어른들에게서 전해 내려오는 말 중 ‘키우는 농식물, 동물은 주인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자주 들여다보며 돌보고 관찰해야 한다는 거겠죠.”

업사이클링 패션 브랜드 래코드RE;CODE 인턴 디자이너 장다혜・김동현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인턴 디자이너 두 명이 주도적으로 디자인에 참여하고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 ‘멋진 농부 4인을 위한 워크웨어’가 탄생했다. “디자인이란 실제 옷을 입는 사람과의 소통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용성은 물론이고 농부를 꿈꾸는 젊은이들이 입고 싶어 할 만한 패션 아이템으로도 손색이 없어야 한다는 점에 착안했죠.” 인턴 디자이너 장다혜와 김동현은 ‘업사이클링’ 개념을 접목해 농부 옷 디자인에 재고 원단(카시트, 에어백, 공군 텐트 소재 등)과 재고 의류 등을 이용했다. 청년 농부 4인의 작업 현장을 방문해 이야기를 나누며 틀을 잡아나갔다. “처음 ‘농부를 위한 디자인’이라는 주제를 접했을 때 디자이너로서 굉장히 설레었어요. 한정된 소재와 재고로 일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 과정을 래코드의 장인분들과 공유할 수 있어 뿌듯했습니다.” 3년 전부터 ‘작업복’이 필요한 사람을 위한 의류와 액세서리 디자인을 개발, 판매해온 래코드는 이번 슬로푸드국제페스티벌에서 선보인 농부 옷의 디테일을 수정ㆍ보완해 2016년 상반기에 상품으로 출시할 예정이다.





슬로푸드 베이루트 바바라 마사드 지부장과 청년 네트워크 요리스 레흐만 회장
“우리 재능을 관심과 도움에 쓰면 음식 세상이 평화로워져요”

인류는 먹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 그러니 이 세상 모든 사람은 음식 세계 안에 있다. 이 음식 세계의 생태계가 흐트러지거나 무너지지 않고 평온히 흘러가야 생태계의 구성원인 우리 삶도 안전하고 평탄하게 흘러간다. 슬로푸드 운동은 단순히 건강을 위해 좋은 먹거리를 먹자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개인과 세계가 음식이라는 고리로 연결된 유기체라고 인식하는 발상과 관점의 전환 운동이기도 하다. 슬로푸드국제페스티벌이 각국의 건강한 먹거리를 소개하는 것 외에도 다채로운 교육 프로그램과 콘퍼런스를 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번 슬로푸드국제페스티벌에도 매일 여러 차례에 걸쳐 다양한 주제의 콘퍼런스가 열렸는데, 첫째 날의 주제는 ‘음식의 나눔과 평화’라는 의미 깊은 내용이었다. 나만 좋은 음식을 먹고 건강해지는 것이 평화가 아니라, 지구 곳곳이 두루 잘 먹고 두루 행복해야 우리 모두 진정한 평화를 누릴 수 있다. 음식과 집 그리고 사랑 이 세 가지가 우리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이 콘퍼런스에서 첫 번째 강연자로 나선 슬로푸드 운동의 레바논 베이루트 지부장인 바바라 마사드Barbara Massaad는 이런 자신의 사진과 요리라는 재능을 접목해 지구의 음식 생태계가 동등한 평화를 누리는 데 기여하고 있다. “저는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태어났고 미국 플로리다 주에서 자랐죠. 아버지는 레바논에서 예술 사진가로 유명한 작가였는데, 미국에서는 가족이 함께 레바논 음식점을 운영했어요. 그곳에서 요리하는 아버지를 도우면서 요리에 관심을 갖고 실질적 경험도 쌓았죠. 1988년 다시 레바논으로 돌아와 대학에 진학했고 광고-마케팅을 전공한 뒤 여러 유명 회사에서 근무했습니다. 이후 레바논, 이탈리아, 프랑스 등의 레스토랑에서도 훈련을 받았지요.”

음식 세상에서 소외된 사람들
이처럼 풍성한 경력을 쌓고 레바논에 돌아온 몇 해 전, 그는 UN에 근무하는 친구와 함께 베이루트 근처의 시리아 난민 캠프에 갔다가 큰 충격을 받았다. 그가 자신의 아파트에서 보일러를 틀어도 만족스러울 만큼 따뜻하지 않다며 투정할 때 지척에서 많은 사람이 추위와 공포에 떨며 제대로 된 음식조차 먹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았다. 난민에게 가장 쉽게 공급할 수 있는 음식은 무엇일까? 그때 따뜻하고 먹기 간편한 수프가 떠올랐다. 비록 지금은 난민이 되었지만 시리아인에게도 오랫동안 향유해오던 그들만의 맛있는 수프 레시피가 있지 않은가. 

사진을 찍고 요리하는 일이 가장 큰 재능이었으니 바바라 마사드 지부장은 난민촌을 오가며 시리아 가족들을 설득하고 인터뷰해 2백여 가지가 넘는 그들의 수프 레시피를 모았다. 그리고 그 내용을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하고 세계의 요리 애호가들에게 시리아의 수프를 좀 더 쉽고 맛있게 만들 수 있는 갖가지 아이디어를 더해달라고 요청했다. 지구 곳곳에서 많은 댓글이 도착했고, 수프라는 음식을 매개로 지구의 많은 사람이 시리아인이 처한 상황을 자연스레 공감하고 도움을 주고 싶어 했다. 이러한 많은 노력과 아이디어를 정제해 한 그릇의 맛난 수프처럼 펴낸 책이 다. 시리아 난민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그들의 병을 치료하는 데 판매금 전액을 사용하는 값진 책이 탄생한 것이다.

“이 책을 미국에서 발간하자 일주일 만에 15만 부가 판매되었습니다. 그 수익금으로 시리아 어린이들이 수술을 받고 있지요. 이제 곧 네덜란드에서도 책 사인회를 합니다. 이 책이 한글로도 발간되어 머지않아 한국에서도 사인회를 하고 싶습니다. 만약 제가 이발사였다면 그들의 머리카락을 잘라주었겠지만 마침 제가 사진가이자 음식 칼럼니스트였기에 이런 방법으로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던 겁니다. 누군가의 고통을 목격했다면 자신의 재능으로 그 고통을 덜어줄 방법을 생각하면 됩니다. 많은 사람이 이렇게 노력하고 이런 시야를 갖출 때 모든 사람이 제대로 먹고 나누며 우리가 속한 생태계가 공평하고 평화로울 것입니다.”

젊은이의 관심은 음식 생태계의 건강한 에너지
반면, 슬로푸드국제본부 청년 네트워크를 이끄는 요리스 레흐만Joris Lehman 회장은 젊은이들이 이러한 음식 생태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젊은이 특유의 아이디어를 내고 실행하는 일을 한다. 젊은 치기를 내려놓고 호흡을 가다듬으며 눈을 들어 세상을 보라. 우리가 남기고 버리는 음식이 너무나 많지만, 지구 한쪽 사람들은 여전히 굶주림의 고통에 시달린다. 이 불평등을 좀 더 기발한 눈과 마음으로, 그 어느 시대보다 발달한 두뇌로, 좀 더 긍정적이고 즐겁게 해결하는 것이 이 시대 젊은이들의 숙제다. 이런 문제를 세계인에게 환기시키기 위해 슬로푸드 청년 네트워크는 밀라노 엑스포에서 대대적인 퍼레이드를 벌여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청년 네트워크는 요리사, 농부, 유통업체, 영양사 및 기타 식품 전문가 등이 참가한 네트워크로 청년의 적극적 참여를 통해 음식과 농업의 미래를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합니다. 우리는 좋고, 깨끗하고, 공정한 음식을 전 세계인이 누려야 한다는 비전이 있습니다. 소비자의 인식을 바꾸고, 음식 전문가를 교육하며,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격차를 해소하는 것은 지속적인 먹거리 생산에 핵심 요건이죠.”

암스테르담 대학과 파리 제7대학에서 정치학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한 그가 젊은이들과 함께 벌이는 활동은 다채롭다. 쓰고 남은 식재료로 맛난 요리를 만들어주는 레스토랑을 열면 누군가는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식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클라우드 펀딩으로 부족한 음식을 공급하는 것은 어떨까? 거리에 시민 공동 냉장고가 있고 내가 다 못 먹을 것 같은 음식을 그곳에 가져다 놓으면 지구에서 낭비되는 음식이 확연히 줄어들지 않을까? 못생겨서 차별받는 식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춤추고 노래하는 젊음의 파티를 열면 얼마나 신날까? 이런 다양한 생각을 하고 그 답을 찾는 과정이 퍼레이드로, 도시 셰어링 플랫폼 구축으로, 독특한 레스토랑 창업으로 이어졌다. 우리나라에서도 젊은이들이 남은 식재료를 모으고 디제잉을 곁들인 ‘요리가무’라는 신나는 파티를 열었는데, 이 참신한 아이디어가 세계로 퍼져나가 각국 슬로푸드 청년네트워크에서 각자의 문화에 따라 다채로운 요리가무를 즐기고 있다.

이처럼 세상 모든 생태계의 순환에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젊음과 명석한 두뇌, 그리고 착한 마음은 모든 생태계에서 가장 건강한 에너지가 된다. 슬로푸드국제본부가 지구의 인류사를 만드는 음식 생태계에 이 시대와 미래의 젊은이들이 더욱 깊은 관심을 기울이기를 바라는 이유다.



 
셰프 하미현・딜런 존스・나다브 말린・시노부 나마에 

“모두가 행복해지는 음식을 만드는 일, 그것이 우리의 역할입니다”

‘맛배움터’는 요리를 보고 배우는 것에서 그치는 단순한 요리 강좌가 아니다. 우리가 소중히 다뤄야 할 음식의 본질인 ‘진짜 맛’에 대한 이야기를 셰프와 농부, 음식 전문가가 생생하게 들려주며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음식 교육 프로그램이다. 찾는 이가 없어 점점 사라져가는 우리 음식을 소중히 지켜가는 셰프 하미현과 딜런 존스, 나다브 말린, 시노부 나마에가 찾은 이 세상의 진짜 맛은 과연 무엇일까?

호주에서 나고 자란 딜런 셰프가 맛배움터에서 자국 음식이 아닌 태국 그린 커리의 고유한 맛과 향을 소개하는 모습은 꽤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는 우연히 맛본 태국 음식에 반해 방콕과 각별한 인연을 맺었다. 고향인 호주를 떠나 태국 요리를 시작한 지 어언 14년째다. 그사이 태국인 아내를 만나 현재 태국어로 ‘고대의, 전통의’라는 뜻의 로컬 레스토랑 보란Bo.Lan을 운영하는 그는 누구보다 태국 음식과 전통 식재료에 호기심이 많다. 그래서 그는 직접 맛보고 경험한 식재료를 요리에 적극 활용하며 농부와 손님, 요리사가 모두 행복해질 수 있는 공생을 꿈꾼다.

“사실 처음에는 이국적인 맛과 향이 좋아 태국 음식 자체에만 관심이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사용하는 모든 식재료가 현지 사람들에게는 선대로부터 내려온 귀중한 문화유산이더군요. 태국 음식의 뿌리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요리를 했더니 농부와 손님이 모두 행복하더라고요.맛있는 음식을 먹으려면 좋은 농산물을 기르는 농부가 살아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사용하는 모든 식재료는 농부와 직거래로 구입하죠. 농부 가족의 이름을 꿰고 있을 정도로 관계가 탄탄해요. 그만큼 서로 믿으며 일하고 있지요. 덕분에 좋은 농산물을 공급받고 토종 종자를 알아가게 되었어요. 신뢰를 쌓다 보니 로컬 커뮤니티와 점점 가까워졌고, 방콕에서 일어나는 슬로푸드에 귀 기울이게 됐지요.” 딜런 셰프는 태국 음식 문화를 알리고 지켜나가는 것은 태국 음식을 요리하는 셰프로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한다. 태국 음식에 대한 소중한 마음이 있기에 그가 맛배움터에 소개한 것이 그린 커리인 것이다. 그린 커리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음식에 대한 진실한 태도가 한 나라의 음식 문화를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모든 길은 슬로푸드로 통한다
이스라엘에서 푸드 케이터링 회사를 운영하는 나다브 말린 셰프에게 슬로푸드란 어릴 때부터 실천해온 삶 그 자체다. “어머니는 주말마다 열리는 마켓에서 장을 보고 좋은 재료로 만든 건강한 음식을 직접 판매하기도 했어요. 그런 어머니 모습을 통해 슬로푸드의 가치와 중요성을 자연스레 익혔어요. 대학에서는 푸드 페어에 참가하기도 했는데, 슬로푸드 하나만 보고 전 세계에서 모인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느껴지는 강렬한 에너지가 마음에 많이 와 닿았어요. 이제 이스라엘에서도 슬로푸드 운동을 시작해야 하지 않겠느냐라는 카를로 페트리니의 말도 인상적이었어요. 그런 경험이 바탕이 되어 회사를 운영하는 데서도 슬로푸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지요. 대표적 예로 오가닉 농가가 팔고 남은 식재료를 사용해 음식을 선보이는 것입니다. 남은 채소로 오늘의 구운 채소 요리를 만들기도 하고, 포도는 잼으로, 오이는 피클로 만들어 손님에게 판매하고 있어요. 농부는 남은 재고를 팔아서 좋고, 셰프는 좋은 식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손님에게 대접하니 모두 행복할 수밖에요. 야생 허브처럼 잊혀가는 식재료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온전히 제 몫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식재료이자 슈퍼 푸드로 각광받는 병아리콩을 으깨서 만든 경단을 튀겨낸 전통 음식 팔라펠falafel을 선보이며, 음식이야말로 개인과 나라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스라엘에서도 깨를 빻아 압착해 기름을 만드는데 향이 순한 편이에요. 반편 한국의 참기름은 향이 굉장히 강하더라고요. 같은 식재료일지라도 제각기 다른 문화 속에서 탄생한 맛과 향을 경험할 때마다 ‘나는 정말 행운아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우리가 전 세계의 슬로푸드를 지켜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2015 더 월드 베스트 아시아 레스토랑 50’에서 12위를 차지한 도쿄의 프렌치 레스토랑 레페르베상스L’Effervescence의 오너 셰프 시노부 나마에가 지양하는 단어는 ‘세계화’다. “지구 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음식 속에는 각 나라의 다양성과 정체성이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국가 간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등장한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몇 세대에 걸쳐 내려온 음식의 고유한 특징이 사라지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음식은 서로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매개체로, 그 맛을 함께 나눌 때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한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우리 땅에서 나는 제철 식재료에 관심을 두는 것입니다.

이미 문명화된 사회 속에서 토종 종자와 식재료를 찾기란 굉장히 힘들어요. 문명과 자연 사이의 흐트러진 균형을 바로잡기 위해 순수한 맛을 간직한 유기농 식재료를 주로 사용하지요.” 자연에 가까운 맛을 추구하는 나마에 셰프는 조금만 주위를 둘러보면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진짜 맛이 점점 사라지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좋은 식재료를 알아보고 사용하는 이가 하나 둘 줄어들면서 농가 역시 힘든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을 알게 된 후 그는 지속 가능한 농업을 위해 몸소 슬로푸드를 실천하기로 결심했다. 

이번 맛배움터에서 그가 선보인 요리도 같은 맥락이다. 도쿄 지바 현에는 고자키라는 발효 마을이 있다. 이곳에 위치한 데라다본가는 역사가 3백40년이 넘는 양조장으로, 유기농 쌀만 사용해 수작업으로 사케를 만드는 곳이다. 옛 방식으로 사케 만들기를 고집하는 곳이기도 하다. 나마에 셰프는 데라다본가의 24대 전통 사케 장인 마사루 데라다를 초청해 그가 생산하는 사케와 누룩, 시오코지(누룩 소금) 등으로 샐러드, 래디시 스테이크, 디저트 등을 선보였다. 세계화로 인해 토종 먹거리의 본질이 흐려지는 일을 막기 위해 전통 식재료의 활용을 끊임없이 고민한 결과다. 그의 레스토랑 레페르베상스가 미식가에게 ‘유러피언 테크닉과 일본 제철 식재료의 환상적인 만남’이라고 불리는 이유를 확실히 깨닫게 해준 시간이었다.

가장 한국적인 것에 답이 있다
맛배움터의 여러 강의를 들으며 세계적 셰프와 어깨를 견주어도 손색없는 셰프가 한국에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흐뭇했다. 할머니와 엄마의 손끝에서 완성되는 내림 음식을 연구하며 맛배움터에 참가한 하미현 셰프가 슬로푸드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계기도 특별하다. “광고 회사의 아트 디렉터로 일했어요. 광고 촬영을 위해 수십 개의 세트를 짓고 부수는 과정을 보면서 문득 제 직업이 소모적인 일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길로 과감히 일을 그만두고 지방의 사찰을 돌아다니며 음식을 배웠어요. 텃밭에서 농약 없이 건강하게 기른 채소를 먹고, 인분을 퇴비로 주고, 또다시 텃밭을 가꾸고… 그렇게 돌고 도는 과정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우리 삶 역시 텃밭 이치와 다를 바가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면서 지방 식재료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내림 음식을 찾아다니며 공부했어요. 그러다 이탈리아의 슬로푸드페스티벌 테라 마드레로 신혼여행을 갔는데 제가 원하던,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바로 거기 있더군요.” 그래서 하미현 셰프는 지방 곳곳에서 사라져가는 내림 음식을 세상에 소개하는 일을 시작으로 슬로푸드와 뜻을 함께하게 됐다. 

이번 맛배움터에서는 깊은 산골에 꼭꼭 숨어 있는 강원도 장충리 마을 어르신들이 1년 동안이나 감자를 곰삭혀 만든 녹말가루를 소개했다. 공장에서 하루 만에 뚝딱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섭리대로 천천히 완성하는 내림 음식은 그 자체로 멋스러운 음식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마을 어르신들은 칠십 평생 만들어온 감자 전분에 뭐 대단한 것이 있다고 허허하며 쑥스럽게 웃으셨다지만, 그는 그 속에서 우리가 잊고 있었던 슬로푸드 정신, 진짜 맛을 발견한 것이다.

셰프는 맛의 본질을 알리는 대사이자, 잘 알려지지 않은 건강한 식재료를 찾아 소개하는 탐험가 못지않다는 것을 이들 셰프를 보며 깨달았다. 건강한 식재료를 생산하는 농가와 자꾸만 자취를 감추는 음식을 소개하는 역할을 자처하는 그들이 있어 우리의 밥상은 더욱 풍요롭다.





농사 안 짓는 농부 한민성・공석진・박종범 대표

“멋진 농부는 식생활에 대한 생각 변화를 이끄는 사람이죠”

슬로푸드국제페스티벌에 ‘농사 안 짓는 농부’라는 프로젝트 그룹으로 참가한 한민성, 공석진, 박종범 대표는 프로젝트 그룹의 이름처럼 직접 농사를 짓지는 않지만 제각각 가슴 뛰는 젊은 시절부터 농촌과 우리 사회에 기여하려는 진정한 마음을 지녔다는 공통점이 있다. 특유의 좋은 머리와 사회과학적 기술과 아이디어를 적용해 농촌과 도시를 연결하고 우리 사회가 슬로푸드의 가치와 중요성을 알고 보다 질 높은 삶을 향유할 수 있게 리드하고 있다. 친환경 농산물 쇼핑몰인 ‘둘러앉은 밥상’을 운영하는 한민성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농사 안 짓는 농부들이 농촌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다양하다.

우선, 한민성 대표는 20대에 자전거로 전국 일주를 자주 했고, 그때 만난 농가에서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나라 농산물 유통 체계의 불합리한 점을 알게 되었다. 농부가 농사를 지어 우리 밥상까지 오는 데 밭떼기 한 번, 경매 세 번 이런 식으로 7~8단계를 거치니 시장에 건강한 경쟁 구도가 필요했고, 온라인 마켓이 그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우선 제대로 된 농산물을 찾아다녔어요. 인증서를 보는 게 아니라 여러 번 방문하고 교류하면서 그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어떻게 농사짓는지를 듣고 오랜 시간에 걸쳐 구술 정리를 했습니다. 어떤 매체에서는 이 구술 정리를 애그리 콘텐츠라고 부르더군요. 우리 회사의 기준을 충족할 만큼 진정성 있는 농가는 같이 판로를 찾아주고 디자이너를 투입하는 등 팜 매니지먼트를 합니다. 강소농 정책은 농가에 마케팅, 디자인, 고객 관리도 하고 농산물 생산도 잘하라고 하지만, 모두가 스티브 잡스가 될 수는 없어요. 그러니 저희 파트너가 된 농민이 마음 놓고 농사만 잘 지을 수 있도록 다른 부분을 해결해주는 것이 저희 팜 매니지먼트가 하는 역할입니다.”

농부는 농사만 짓게 해주는 농촌 기획자
‘농사펀드’의 박종범 대표는 십수 년 전 대학 시절부터 지역의 소상공인을 돕는 웹마케팅 회사에서 근무했다. 그곳에서 농촌 마을 컨설팅과 홍보 업무에 관심이 생겨 행정안전자치부 농촌 지원 사업단에서도 근무했다. 어느 날은 강원도 화천에서 열린 토마토 축제를 지원하기 위해 농가 체험을 진행했는데. 도시 사람도 농촌 어르신도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 일이 도시도 농촌도 함께 좋아하게 만드는 일이구나’ 라는 것을 느꼈다. 그 이후로 농촌 기획자라는 이름을 스스로 만들었고, 지금까지 줄곧 농촌 관련 기획 일을 하고 있다.

“농촌 기획자란 농촌의 어려움을 기획이라는 방식으로 푸는 독특한 직업이에요. 대부분의 작은 농가는 영농자금을 빌려서 쓰기 때문에 빚을 진 상태로 농사를 짓고 수확할 때까지 계속 빚쟁이죠. 만약 자금 흐름의 순서를 바꿀 수 있다면 어떨까요? 이런 생각으로 2013년에 클라우드 편딩을 농촌 자금 지원에 적용해 농부의 영농자금 걱정을 덜어주는 농사펀드를 시작했습니다.”

SNS에서 ‘공씨 아저씨네’라는 독특한 과일 가게로 유명한 공석진 대표는 농사 안 짓는 농부 중 가장 늦게 농촌 관련 일을 시작한 과일 장수다. “신문방송학과 사진을 복수 전공한 후 오랫동안 사진 관련 일을 했어요. 제주도에 귀촌한 대학 선배가 마을 관련 일을 많이 했는데 우연히 선배의 부탁으로 그 마을의 감귤 판매를 도와주다가 이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죠.”공석진 대표의 삶의 모토는 ‘상식이 통하는 사회’다. 그런데 다른 직업으로 사회생활을 경험하다가 농산물 유통을 해보니 상식에 어긋나는 점이 너무 많았다. “예를 들면 과일을 크기별로 나누어 가격을 책정하는 것 등이죠. 마트에는 크고 예쁜 과일만 들어갈 수 있어 작고 못생긴 건 헐값에 거래됩니다. 하지만 농부가 게을러서 그렇게 된 게 아니라 자연 현상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고 실제로 먹어보면 더 맛있으니, 한 해 동안 열심히 농사지은 농부에게 매우 불리한 거래 방식입니다. 그래서 처음 감귤을 팔 때 크기로 구분하지 않고 섞어서 팔았고 못생긴 것도 제값을 받게 해주려 노력했어요. 2014년 가을에는 시장에서 B급으로 취급되는 사과를 판매하는 프로젝트를 했죠. 이런 맛있는 사과가 왜 B급으로 나가냐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A급과 B급을 섞어서 팔았더니 완판했습니다. 이처럼 생각을 달리하면 농민이 열심히 생산한 모든 상품이 비로소 제값을 받을 수 있지요.”

멋진 농부가 부러움을 받는 미래를 꿈꾸며
이처럼 각각 활발한 활동을 벌이는 세 사람이 슬로푸드국제페스티벌을 위해 뭉친 이유는 영화로 치면 <어벤져스> 같은 파워 때문이다. 각자 등장하는 영화로는 관심을 받지 못했지만 주인공이 한곳에 뭉치니 큰 관심을 받은 영화 <어벤져스>처럼 이 일도 함께 하면 반향이 더 클 것이라고 판단했고, 농촌 기획자 박종범 대표가 ‘농사 안 짓는 농부’라는 멋진 이름을 붙였다. “함께 부스를 연 건 이번이 처음이지만 쌈지농부의 천재박 실장까지 넷이 평소에도 의견과 정보를 나누며 농촌 지원 사업을 함께 해왔어요. 예를 들어 벌교의 폐교 위기에 놓인 학교에 고구마를 심고 판매하게 도와주었는데. 지금은 시내에서 전학 오는 학교로 변화되었어요. 농사펀드도 함께 시작했고 슬로푸드국제페스티벌에서 농부상을 받은 농부의 어려움도 함께 해결해드렸지요.”

이들이 농사 안 짓는 농부로 모인 것은 요즘 젊은이들에게 농촌 관련 일도 멋진 직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기 때문이다. 트렌드에 들뜬 직업이 아니라 진정한 마음을 갖고 젊은 아이디어와 재능을 더해 꾸준히 농촌 관련 일을 하면 이 직업으로 사회에 기여하고 자신과 가족도 가치 있고 멋진 라이프스타일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젊은층에게 직접 보여주고 싶었다.

“사람은 돈을 많이 쓰는 곳에 관심을 더 갖기 마련이죠. 옷에 돈을 많이 쓰면 옷에 대해 생각하고. 휴대폰에 돈을 많이 쓰면 앱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러니 그 산업이 더욱 발전합니다. 오늘 한 끼를 삼각김밥으로 대충 때우지 말고 주위 사람 설득해 건강한 밥을 드세요. 그리고 맛있으면 이걸 누가 키웠을까도 생각해보세요. 우리 같은 젊은이부터 내가 먹는 게 나를 구성하는 물질이라는 인식을 하는 게 중요해요. 오늘 내가 선택한 나의 밥상이 내 건강을 결정합니다.” 농사 안 짓는 농부들은 많은 사람이 이런 생각을 하도록 사회 분위기를 이끌고, 우리의 건강한 소비로 농촌이 더욱 발전하기를 꿈꾼다.

“농촌 관련 일을 하는 젊은 층이 많아졌지만 부모 세대의 편법을 따라 하거나 농촌의 어려움을 개선할 노력 없이 온라인 마켓을 이용해 자신의 이윤만 창출하려는 사람도 많습니다. 자신의 젊음을 농촌과 도시가 더불어 행복해질 수 있는 신선한 아이디어와 기획에 사용하는 젊은이가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먹거리를 주문하고 입금하는 소비 활동은 농촌을 돕는 가장 좋은 방법. 그 진정성에 대해 질문하는 관심이 있는 당신 또한 이 시대의 멋진 농부다.

글 김민정, 유주희, 김혜민 기자 | 사진 이경옥, 이기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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