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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추억을 더한 업사이클링
제 몫을 다한 뒤 아무렇게나 버려진 공병은 유리 오브제로 탄생하고, 시간의 더께가 내려앉은 고재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테이블이 된다. 출발선은 다르지만 결국은 하나를 이야기하는 업사이클링 제품들. 전에 없던 새로운 디자인이 탄생하게 된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자.

서랍 손잡이+볼 → 설치 작품 반전 미학
누크갤러리에서 전시 중인 ‘볼 앤드 핸들 스푼’ 시리즈는 금속공예가 신자경의 작품. 일상의 흔적이 남아 있는 물건으로 작업하기 좋아하는 그의 성향이 고스란히 반영됐다. 독일 뮌헨에서 작업실을 운영하는 그는 인근 벼룩시장에서 구입한 앤티크 서랍 손잡이에 직접 만든 금속 볼을 붙여 스푼 모습의 작품을 선보였다.

헌책, 니트, 자전거 부품 → 조명등 사물의 재발견
윤리적 디자인을 추구하는 패션 브랜드 래코드가 디자인 스튜디오 세 곳과 협업해 업사이클링 조명등을 선보였다. 갓 러브 디자인은 헌책을 층층이 쌓아 북 램프를 만들었는데, 맨 위에 놓인 작은 책을 뚫어 조명등 몸체로 사용했다. 세이지 디자인은 주위에서 얻은 니트로 특별한 전등갓을 만들었다. 니트를 에폭시에 적셔 뒤집어 놓은 컵에 씌워 굳힌 뒤 전등갓을 만든 후, 열 발생률이 낮은 LED 조명등으로 활용했다. 세컨드비는 자전거 소모품을 절단이나 용접을 하지 않고 분해, 재조립해서 인더스트리얼 스타일의 조명등 몸체를 완성했다. 재해석한 일상의 사물과 전구 조명등이 만난 창의적 작품은 명동성당 나눔의 공간에 전시했다.

낡은 청바지+의자 → 디자인 체어 나무가 쉬어 간 자리
군데군데 해지고 바랜 모습이 영락없는 청바지인데 나무가 쉬었다 간 것처럼 나뭇결이 선명히 찍힌 데님 시트 의자는 스페이스 B-E에서 소장한 조원석 디자이너의 작품이다. 몇 해 전 캘빈클라인과 컬래버레이션한 작품으로, 버려지는 데님을 나뭇결 무늬로 워싱해 낡은 톤 체어의 시트 커버로 활용한 것. 시간이 흐를수록 청바지가 몸에 익숙해지는 것처럼 시트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작품보다 아름다운 톤 체어를 완성했다.

고재 문짝 → 테이블 오랜 친구
콜라주한 것처럼 보이는 테이블은 디자이너 신경옥과 오랫동안 함께해온 친구 같은 존재다. 오로지 시간만이 낼 수 있는 깊이를 일찌감치 깨달은 그는 소문난 고재 애호가다. 10년 전 작업실을 꾸밀 때 그는 색상이 서로 다른 고재 문짝 두 개를 들고 오랫동안 이용해온 목공소를 찾았다. 그곳에서 문짝을 쪼개어 다리부터 상판까지 패치워크하듯 접합해 대형 테이블을 만든 것. 그리고 지금의 집으로 이사하면서 더 작게 리폼했다. 상판이 훼손되면 그 부분만 다른 나무로 교체해가며 10년째 사용 중인데, 쓰임새가 다해도 새롭게 탄생하는 업사이클링의 진정한 매력을 보여준다.

바둑판+불상+방독면 → 장식 오브제 수집의 즐거움
아버지께 물려받은 낡은 바둑판, 뉴욕 벼룩시장에서 찾은 불상과 방독면. 얼마나 되었을지 시간을 가늠할 수 없다는 것 외에는 어떠한 공통점도 찾을 수 없는 세 가지 사물이 모여 세상에 둘도 없는 작품 같은 오브제가 되었다. 빈티지 컬렉터인 키스마이하우스 김지현 대표의 소장품으로, 오래된 나무 바둑판에 스탠드 제조업체에서 산 부품을 지지대 삼아 불상을 올리고 방독면을 씌운 것이다. 빈티지를 알아보는 안목과 감각이 어김없이 실력을 발휘한 셈. 이렇게 만든 오브제는 그만의 작품이 되어 놓이는 곳마다 갤러리 공간처럼 연출해준다.

공병 → 유리 아트워크 해체와 조합의 변주
서로 다른 형상으로 유리의 투명한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오브제는 주에디션 윤이서 대표의 아트워크다. 투명한 유리병에 매료된 그는 버려진 공병과 곳곳에서 수집한 독특한 유리병을 절단과 연마 과정을 거쳐 그대로 사용하거나 재접합하면서 오브제를 만들었다. 병을 자세히 살펴보면 브랜드 로고와 형태, 무늬가 남아 있어 본래 어떤 제품이었는지 가늠할 수 있다. 그의 작업실에 있는 선반장은 이러한 오브제로 빼곡히 채웠다. 화병, 캔들 홀더, 냅킨 홀더 같은 작은 오브제부터 전등갓까지 유리병 업사이클링의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헌 옷 → 러그 씨실과 날실에 추억을 담아
화려한 디자인의 러그는 위빙 아티스트이자 램 아뜰리에의 주인인 정영순 작가가 서양식 베틀인 수직기로 만든 작품이다. 이토록 다채로운 패턴을 입힐 수 있게 된 데는 직조에 사용한 위사, 즉 실에 비밀이 있다. 작가 자신이 즐겨 입던 니트와 셔츠 등을 결대로 찢어 여러 종류의 위사와 더불어 사용한 것. 가까이서 보면 색감과 굵기, 패턴이 제각각이고, 시접과 단, 올 풀림이 눈에 띄는 등 본래 옷이었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이렇게 완성한 러그는 늘 곁에 두는 생활용품이자 기억을 소환하는 훌륭한 오브제가 된다.

재봉틀 다리 +상판 → 콘솔 옷 짓는 풍경
재봉틀 다리를 이용해 만든 가구는 체어스온더힐 한정현 작가의 작품이다. 싱어 재봉틀 다리의 빈티지한 매력에 반한 작가는 황학동 일대에서 찾은 재봉틀 다리에 직접 디자인한 상판을 얹고 피스로 접합해 독특한 콘솔을 완성했다. 이후로도 그는 상판의 디자인을 달리해 세 가지 버전을 선보였다. 재단용 자를 모티프로 만든 상판부터 ‘드르륵’ 하는 재봉틀 소리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박스 장식의 상판까지, 옷 짓는 풍경을 디자인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촬영 협조 누크갤러리(02-732-7241), 젠틀 몬스터 홈앤리버커리(070-5080-0194)

#업사이클링제품 #테이블 #오브제
글 이새미 기자 | 사진 김동오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5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