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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눈 맞춤
두 사람이 4분간 눈을 떼지 않고 서로 바라보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지난겨울 <뉴욕타임스>의 칼럼이 심리학자 아서 에런Arthor Aron의 ‘4분간 눈 맞춤을 하면 관계가 더욱 깊 어진다’는 신기한 이론을 소개했습니다. 그 내용이 궁금하면 유튜브에서 동영상 ‘How To Connect With Anyone’을 찾아보세요. 낯선 남녀, 네 번 데이트한 연인, 1년간 사귄 커플, 아기를 낳은 커플, 중년 부부, 55년을 함께 산 노부부의 실험이 나옵니다. 참가자들은 처음엔 눈 맞추기를 쑥스러워하지만, 서로 바라보며 시간이 흐르자 활짝 웃고, “아내와 눈 맞추는 게 이렇게 멋진 일인지 이제야 알았다”며 무릎을 치고, 상대와 예전처럼 입 맞추고 싶어하지요. 4분이 지나자 자신도 모르게 상대를 껴안고 손을 어루만지고 함께 춤추는 멋진 장면으로 끝나는 이 동영상은 5백만여 명이 시청하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사랑하고 싶고, 관계를 회복하고 싶고, 더욱 아껴주고 싶은 누군가가 있나요? 그 사람과 조용히 눈 맞춰보세요. 가족은 물론 반려견과 내가 사는 도시까지, 우리가 주변과 눈 맞춤을 해야 하는 속 깊은 이유를 소개합니다.

눈 맞춤은 사회성의 시작입니다
한국인이 컴퓨터나 스마트폰 등을 보는 시간은 하루 평균 8.5시간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매일 다른 사람과 눈을 맞추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요? 흔히 “그것에서 눈 떼지 마”라고 할 때 눈은 ‘주의’를 의미합니다. 이제 눈 맞춤이라는 단어에 ‘주의’를 기울여보세요. 다른 사람과 눈 맞춤을 하면 관계가 깊어지고 행복 또한 깊어집니다.

행복에 관한 대다수의 연구는 ‘사회성’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여기서 사회성이란 다른 사람과 어울리고 고민을 털어놓고 시간을 보내는 등의 사회적 활동을 의미하지요. 사회성이 행복의 절대 조건은 아닙니다. 내향성의 가치를 알려주는 수전 케인의<Quiet> 같은 장르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휴가철에 혼자 해변에 누워 있고 싶은 꿈도 꾸니 말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관계를 통해 행복해지는 사회적 동물이라는 사실이 우리의 유전자에 새겨져 있습니다.


눈 맞춤은 사회적 관계예요
식사 시간에 휴대폰에 코를 박은 채 밥을 먹고 나면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지는 건 이처럼 ‘행복해지는 길은 휴대폰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있다!’는 사회성의 중요성을 우리 유전자가 인지하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사회성의 가장 기본은 서로 주고받는 말과 몸짓입니다. 말이 사회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과학적으로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 잘 알지요.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거나 말실수로 다 된 밥에 재를 뿌리는 경험을 누구나 하니까요. 그런데 몸짓은 어떤가요? 비언어적 소통이 의사소통의 65% 이상을 차지한다는 연구 결과에서 알 수 있듯, 몸짓도 또 하나의 언어입니다. 그중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몸의 부분이 얼굴, 특히 눈입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얼굴 읽기 전문가로 태어났습니다. 감정 숨기기에 능숙한 포커 페이스를 만난 게 아니라면, 상대방의 표정을 보고 기분을 파악하는 데 수초도 걸리지 않죠. 이것은 그 옛날부터 생존을 위해 공동생활을 해온 인간이 후손에게 물려준 능력입니다. 그래서 사회성이 뛰어난 사람은 자연스럽게 타인의 눈에 주의를 기울입니다. 얼굴 연구가로 유명한 폴 에크먼Paul Ekman에 따르면 사회적 능력이 높은 사람은 얼굴의 특정 부위, 눈과 주변 근육 그리고 눈썹의 움직임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은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잘 읽으니 설득도 잘합니다. ‘상대와 눈 맞춤을 피하면서 그를 설득하는 사람은 없다’는 또 다른 심리학자의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소통과 감성에는 눈이 중요해요
어떤 사람은 처음 만나는 사람과 쉽게 눈을 마주치고 대화를 하는 반면, 누구는 눈 맞춤을 어려워합니다. 이런 차이는 왜 생기는 걸까요? 가장 극단적 이유는 사회성 부족을 특징으로 하는 정신장애 때문입니다. 자폐증은 특히 사회성 형성에 큰 어려움을 겪습니다. 자폐 어린이는 다른 사람의 눈을 잘 보지 않거나, 물건을 쳐다보듯 합니다. 눈에서 상대방의 감정 같은 정보를 읽으려는 시도가 적은 것이죠. 따라서 진단 검사를 하는 임상가들은 아이의 시선을 쫓으며 눈 맞춤부터 확인합니다. 과거의 나쁜 경험 때문에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하는 사회공포증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타인과 눈 맞춤에서 분노, 불쾌 등 부정적 정보만 습득합니다. 다행히 정신장애 같은 극단의 사회성 부족도 전문가의 도움으로 나아질 수 있어요. 요즘은 저희 연구소가 참여해 만든 ‘룩앳미’ 앱처럼 게임 형식으로 눈 맞춤을 향상시키는 치료 프로그램도 나왔죠. 또 외상 후 장애가 있다면 반복적인 눈 움직임 연습으로 힘들었던 기억을 치유할 수 있고, 우울증 인지 치료를 할 때는 마음이 우울해지려고 할 때 억지로라도 몸을 움직이거나 다른 사람과 눈을 맞추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라고 조언합니다.

특별한 정신장애가 없지만 눈 맞춤이 영 부담스럽다면 요즘 우울하다는 증거일 수 있어요. 우울한 사람이 기분 좋은 사람에 비해 다른 사람과 눈 맞춤을 잘 하지 않는다는 실험 결과는 기분이 변하면 시선도 변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나, 미래, 세상에 대한 희망을 잃은 사람은 다른 사람과 눈 맞출 여유가 없죠. 주변의 평판에 민감한 사람도 부정적 평가가 두려워 시선을 회피합니다. 마음 아픈 사실을 굳이 확인하기보다 피하는 게 더 안전하다고 믿는 심리지요. 유아는 본능적으로 다른 사람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지만, 성인이 될수록 눈 맞춤을 피해야 하는 상황이 늘어납니다. 하지만 심리학 전문가는 눈을 마주치지 않고는 수많은 중요한 정보를 읽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임상 상담과 교육을 할 때마다 더 절감하게 되니 안타까운 마음이지요.

이제 휴대폰을 잠시 내려놓고 주변을 둘러보세요. 지하철에서 사람들을 둘러보고 거리에서 풍경을 눈에 담아보세요. 엘리베이터에 함께 탄 이웃에게 다정한 눈인사를 건네보세요. 배우자의 눈에서 사랑을 읽고 감사하며, 친구의 눈에서 고단함을 읽고 위로하며, 아이의 눈에서 호기심을 보고 그것을 펼칠 기회를 주세요. 물론 처음에는 어색합니다. 하지만 휴대폰이 그리워도(?) 몇 번만 참고 상대의 눈을 보는 연습을 해보세요. 그러면 머지않아 깊은 관계, 다채로운 삶, 살 만한 세상과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글을 쓴 정경미 교수는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이자 연세대학교 송도 글로벌 캠퍼스의 교학부학장으로 재직 중이다. 미국 하와이 대학교 대학원에서 임상심리학 박사를 마쳤고, 존스홉킨스 대학교 의대와 컬럼비아 대학교 의대의 정신 발달 장애 관련 기관에서 오랜 경험을 쌓은 임상심리 전문가이자 학자다. 그가 이끄는 행동 심리학 연구실은 자폐 어린이를 위한 삼성전자의 룩앳미 앱 프로그램 개발, 소아암 환자 심리 상담 등의 활동으로 우리 사회가 좀 더 행복해지는 데 기여하고 있다.

<행복> 문화교양팀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5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