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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건축 신재호 대표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KBS 간판 예능 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와 MBC <아빠! 어디가?> 등 ‘부성 코드’를 내세운 프로그램이 인기다. 그간 바쁘다는 핑계로 자녀와 시간을 보내지 못하던 아빠들이 울고 웃고, 다정다감하게 변하는 모습을 보며 알 수 없는 뿌듯함과 감동을 느낀다. 건축 회사 대표 신재호보다 아빠 신재호가 더 궁금한 이유다. 일요일 아침, 회사 옥상에서 아이들과 물놀이를 하며 ‘아버지’를 꿈꾸는 아빠 신재호를 만났다.

1 벽돌 40만 장을 갈아 마감한 건물로 화제를 모은 서판교 1010 빌딩. 도시건축(031-8016-7472) 신재호 대표가 설계, 시공한 건축물로 지하와 옥상 등 소외될 수 있는 공간을 특화한 것이 특징이다.
2 데드 스페이스를 최대한 줄인 공간 활용 노하우. 주택 1층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아래 공간은 아들 정훈이의 특별한 아지트다. 

일본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중산층 가정을 꾸리고 있는 주인공 료타가 아들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면서 겪는 내용을 담았다. 주목할 부분은 지금 껏 친자식이라 생각하고 키운 케이타의 친부 유다이가 추구하는 육아 철학이 료타의 그것과 정반대라는 점이다. 자신이 만들어놓은 기준에 아이를 끼워 맞추려 하는 료타와 달리 유다이는 아이를 방목하며 눈높이를 최대한 맞춘다. 같은 일을 겪는 두 가족의 너무도 다른 모습, 답은 ‘함께’라는 말에 있다. 뭐든 같이하는 아빠와 뭐든 혼자서 하는 아빠. 아이를 키우면서 비로소 그렇게, 아버지가 되는 이야기는 비단 영화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도시건축 신재호 대표를 만나니 아버지가 되는 일은 생각보다 가까이, 단순한 데 있었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서판교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떠오른 1010 빌딩. 특별한 재료가 아닌 빨간 벽돌로 지은 4층 건물이 요즘 건축계에서 이슈가 되고 있다. 벽돌 40만 장을 하나하나 맷돌로 갈아 쌓았다는 다소 과장된 소문이 돌기도 했다. 무엇보다 건축주와 건축가, 시공자가 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아이들을 위해 건물 옥상에 수영장까지 만들었지만 정작 자신의 사무실은 지하 2층, 주차장 옆 자투리 공간을 활용하는 괴짜 건축주. 건물의 가장 소외된 공간을 멋지게 쓰고 싶었다는 도시건축 신재호 대표다.

1 신재호 대표와 가족이 사는 서판교 주택. 1층 바닥에서 2층 천장까지 관통하는 유리 터널을 통해 주방과 거실, 방과 방이 유기적으로 소통하는 구조다. 
2 1010 빌딩 지하에 있는 도시건축 사무실. 습하고 환기가 잘되지 않는 지하실의 단점을 보완해 아늑하고,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을 완성했다. 가운데 회의 테이블 뒤 양쪽으로 부스가 자리하는데 언뜻 십자 형태처럼 보이는 비례미가 특징이다. 
3 1010 빌딩의 외관. 분절된 사각 박스와 테라스, 창문 등의 비례가 돋보인다. 외장재로 사용한 파벽돌은 벽돌을 붙일 때 사용한 흙 반죽(모르타르)이 붙어 있어 모르타르를 제거해 써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대부분 기계로 표면을 갈아내지만 그러면 손맛이 없어진다. 신 대표는 ‘손맛’을 위해 일일이 수작업으로 모르타르를 제거했다고 하니 맷돌로 갈았다는 소문이 전혀 근거 없는 낭설은 아닌 셈이다. 

막상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괴짜스럽지만은 않다. 마침 유치원에 다녀온 둘째 명훈이가 그의 책상 옆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는 얘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짬짬이 명훈이와 눈을 맞추며, 아버지가 되기 ‘전’과 ‘후’의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고백한다. 홍대 카페 문화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잘나가던 시절, 남과 똑같은 카페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그는 6m 높이의 아무런 장식 없는 뻥 뚫린 공간을 만들었다. 벽에 걸린 스피커 두 개, 통유리가 카페 인테리어의 전부였다. 뒤뜰에 사진 갤러리도 구성해 사진작가 구본창, 김중만의 초창기 전시도 열었다. 지금이야 흔히 볼 수 있는 미니멀리즘 인테리어와 갤러리를 겸한 문화 공간이지만, 20년 전에는 무척 특별한 디자인이었다. 건축이나 디자인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타고난 감각과 끼로 트렌드의 중심에 있던 그를 화젯거리 삼아 수근거리는 이도 많았다. 젊고 패기 넘치던 때에 세상의 관심과 부가 따르니 두려울 게 없었다. 하지만 자신이 자만이 되고, 돈은 독이 됐다. 더 큰 쾌락을 위해 탐닉하던 유흥도, 친구들과의 의리도, 밀고 당기는 연애도 지겨워졌다.

열정과 의욕이 무감각해져 마치 급류 위를 떠내려가는 통나무처럼 삶의 생기가 방전됐다. 정작 중요한 것의 가치를 잊고 방황하던 그의 버팀목이 되어준 것은 다름 아닌 가족이었다. 늘 할 수 있다고 자신을 믿어준 어머니와 아들을 포기하는 대신 혹독한 건축 현장으로 끌어낸 아버지(홍익대학교 서양화과를 나와 화단에서 인정받을 무렵 생계를 위해 붓을 놓은 아버지는 당시 작게 건축업을 하고 있었다). “노가다부터 시작했죠. 낮에는 현장에 나가고, 저녁마다 각 파트 팀장에게 과외를 받았어요. 목수 팀장, 설비 팀장, 전기 팀장을 쫓아다니며 밤낮없이 꼬박 2년을 일했더니 남들 10년 한 것만큼의 실력이 되더라고요.”

1 가족의 편안한 일상을 엿볼 수 있는 공간. 거실에 널찍한 소파와 라운지 체어, 책상을 두었다. 
2 아이들 방 조명등과 침대, 침대 뒤 옷걸이 겸 파티션 모두 신재호 대표가 디자인하고 제작한 것. 

20~30대를 흥청망청 살다 보니 신기하게도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분간하는 혜안이 생겼다는 신 대표는 할 일만 하기에도 시간이 짧다는 이치를 깨달았단다. 그리고 결혼 후 가정을 이루고 ‘아버지’가 된 그는 아버지이기에 고수해야 할 두 가지 원칙을 세웠다. 정직한 집을 짓자는 것과 사람이 중심인 건축문화를 만들자는 것. 이 두 가지 원칙이 공존하는 공간이 바로 1010 빌딩과 최근 완공한 자신의 주택이다.

아이들의 눈으로
1010 빌딩에서 차로 5분쯤 가면 서판교 주택가에 최근 완공한 그의 집이 있다. 1010 빌딩과 마찬가지로 외관을 벽돌로 쌓아 마감한 집이다. 집의 핵심은 한마디로 가족 중심의 공간 구성에 있다. 아이의, 아이에 의한, 아이를 위한 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간 배치도, 동선도, 가구도, 조명도 모두 아이들 위주로 선택했다. 성큰sunken 구조의 지하는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다. 지하지만 어두침침한 느낌이 없고 외부 테라스와 유일하게 연결된다. 야외 느낌을 더하기 위해 천장에 해먹을 매달고 랜턴 형태의 조명등을 설치한 아이디어도 재밌다. 2층 천장까지 뚫려 있는 사각 유리 터널은 지하 놀이방에서도 하늘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계단 아래 공간은 정훈이와 친구들의 아지트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다락방에서 꼼지락꼼지락 놀던 기억이 가장 먼저 생각나요. 항상 보던 물건인데도 그 안에 있으면 뭔가 신비롭고 귀해 보였죠. 요즘 건축물은 구조적으로 다락이 있기 힘들지만 계단 아래 자투리 공간을 활용하면 충분히 아이들의 동심을 자극하는 공간을 만들 수 있지요.”

1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인 지하 놀이방. 담요 놀이를 좋아하는 명훈이를 위한 해먹, 그네 타기를 좋아하는 정훈이를 위한 샌드백 등 방 곳곳의 놀거리는 순전히 아이 입장에서 생각한 아이디어다. 
주거 공간을 설계할 때 틀에 박힌 고정관념을 버린다면 생활하기도 편하고, 특별한 디자인도 나온다고 신재호 대표는 조언한다. 현관 바로 앞에 식탁이 있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오히려 식탁과 주방, 세탁실, 외부 문이 연결되어 동선이 편리하다고.

지하 놀이방에 외장 마감재인 붉은 파벽돌을 쓴 것처럼 내부와 외부를 구분하지 않은 것 또한 특징이다. 벽면은 백시멘트에 규사를 섞어 미장 마감하고 몰딩과 석고보드 등 모든 과정을 생략했다. 바닥은 코르크를 압축해 코팅한 타일 형태의 마감재를 사용했는데, 약간의 쿠션감이 있어 아이들이 뛰놀다 넘어져 머리를 부딪쳐도 위험하지 않다. 코르크는 악취를 흡수하고 공기를 정화하는 효과도 있다. 계단은 외장재로 사용하는 고흥석을 사용했는데 발바닥으로 코르크, 돌 등 다양한 자연 촉감을 느낄 수 있어 더욱 좋다.

2층 개인 공간은 방과 방이 연결되는 동선이 재밌다. 계단에 올라 왼쪽으로 연결되는 첫째 정훈이 방을 지나 가운데가 두 아이의 욕실이고, 욕실 반대편 문으로 나가면 둘째 명훈이 방이다. 지하부터 2층까지 집 중앙을 관통하는 유리 터널을 두고 2층 복도에서 아이들 방이 모두 바라보이는 구조. 1층 역시 유리 터널을 사이에 두고 주방과 거실이 펼쳐진 구조로 현관에서 들어서면 유리 터널 너머 거실 풍경이 보인다. “퇴근 후 현관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아이들을 찾아요. 부엌 식탁에서 밥을 먹어도, 지하 놀이방에서 놀 때도, 또 2층 방에 있어도 어디서든 아이들 모습을 확인할 수 있죠. 이처럼 유기적으로 소통하는 공간은 가족 간의 친밀감과 교감을 높여줍니다.”

물을 받아 아이들 수영장으로, 또 프라이빗한 파티 장소로 활용하면 좋은 1010 빌딩 옥상.
총각 시절에는 커튼에 내려앉은 먼지조차 눈에 띌 정도로 차갑고 미니멀한 공간에 끌렸다는 신재호 대표. 디자인을 즐기려면 다소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는 철학 역시 결혼 후 완전히 바뀌었다. 디자인이란 기능과 실용성을 완벽히 충족한 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 요즘 그의 지론이다. 그가 집과 사무실 모두 벽돌을 고집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갈수록 자연적인 것은 없어지고 콘크리트가 지배하는 도시에서 현실을 거부할 수 없다면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콘크리트 건물 자체를 정서가 깃든 건물로 만든다면 그 삭막함을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어린 시절의 골목 문화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공통적으로 떠오른 물성이 바로 벽돌과 물이다. “건축가들이 때론 너무 어렵게 말해요. 모던 아키텍트 같은 사조가 뭐가 중요한가요? 전 제가 좋아하는 것만 얘기합니다. 벽돌이 좋으니 그저 벽돌을 쌓아서 짓는 거죠. 손맛을 더하고 싶어 파벽돌을 골랐고요. 철저히 나에게서 시작한 것이 바로 도시건축의 건축입니다.”

아빠의 사랑으로
1010 빌딩 후면에 배치한 건물 입구에는 작은 수로가 있다. 시골 마을 개울이 떠오른다. 주차장 바로 옆 화단에도 커다란 은행나무를 심었다. 건물 1층 가구 숍 ‘두닷’으로 들어서는 옆면 입구를 보면 2m 정도의 요철을 만들어 건물이 두 개 동으로 나뉜 것 같은데 이는 ‘골목’ 효과다. 자세히 보니 건물 외벽에도, 입구에도 간판이 눈에 띄지 않는다. 잔디 마당에서 나무처럼 불쑥 자란 유리 패널이 입간판이요, 이정표 역할을 한다. 스테인리스 몰딩을 땅속에 묻어 지지대가 밖에서 보이지 않아 깔끔하다. 그가 이렇게 디테일에 강한 이유는 10년간 건물 시공을 했기 때문이다. 옥상 수영장의 방수 문제도, 벽돌 사이사이에 건물의 숨구멍을 만든 것 역시 기술이 바탕이 되어 가능한 것이다. 건물 외벽에 작은 구멍을 뚫으면 물에 젖었을 때 건조 속도가 빨라져 벽돌의 내구성을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벽돌 건물을 지을 때 지켜야 할 가장 기본 방식이지만, 기본을 지키는 일이 힘든 요즘은 쉽게 간과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신 대표는 스무 살 때보다 돈을 잘 벌 자신은 없지만, 훌륭한 건축가로 남을 자신은 있다고 한다. 한정된 비용으로도 정직하게 잘 지은 집. 바로 아이가, 가족이 살 집이기 때문이다.

아이들 공간을 먼저 정하고 부부 침실은 맨 나중에 남은 방을 선택했다. 방 안쪽으로 드레스룸과 욕실이 연결되는 구조다. 
2 아이들 방 사이에 있는 욕실. 문이 양쪽에 있어 유기적으로 소통한다. 
3 2층에서 1층으로 내려오는 계단 입구에서 거실을 바라본 모습. 거실에 책상을 두어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을 최대한 확보했다. 
4 집은 2층에서 1층을, 1층에서 지하를 내려다 볼 수 있는 구조다. 이처럼 1층 바닥과 2층 천장을 뚫고 사각 유리 터널을 시공할 때는 무엇보다 안전하게 시공하는 것이 관건인데, 설계와 시공을 모두 알아야 디테일까지 꼼꼼하게 챙길 수 있다.

건축 철학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그의 육아 철학은 의외로 단순하다. 많이 놀아주는 것, 함께하는 것. 그래서 회사에도 늘 아이들이 있다. 옥상을 만든 것도 그러한 이유다. “요즘 생각하는 건 ‘아버지’ 역할이에요. 아빠와 아버지의 역할은 서로 다르다고 생각해요. 아이를 생각한다는 출발점은 같지만, 아빠는 아이에게 무한 사랑을 베푸는 역할이라면, 아버지는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이 중요하죠. 인생의 멘토가 되어주는 아버지 역할을 위해 오늘처럼 사무실에도 자주 데리고 나와요.”

1010 빌딩에 아이들이 많이 모이는 게 좋다는 신재호 대표. 1층에 두닷의 가구 쇼룸을 들인 것 또한 가족 단위의 손님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즘, 그가 생각하는 새로운 사업이 있다. 바로 태권도 학원. 태권도 정신을 가르치고 싶어 ‘태’와‘도’를 강조한 BI도 제작했다. 아이들이 좋은 환경에서 인성과 무술을 교육받을 수 있는 곳, 단순히 비즈니스가 아닌 아버지의 철학이 단초가 된 것이다. “여든다섯 살까지 현장에서 일할 거예요. 앞으로 35년 더 일하기 위해 건강관리도 잘하고요. 이유는 오직 하나, 아이들 때문이죠. 아버지는 정년퇴직이 없으니까요.” 남자는 누구나 아빠가 될 수 있지만 모두 아버지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 이제야 공감이 간다.

글 이지현 수석기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4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