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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미료가 아닌 천연 식품을 만드는 기름집 쿠엔즈버킷


생산자가 아닌 소비자를 위한 참기름을 만들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 아파트 단지가 줄지어 있는 골목길에 작은 기름집 ‘쿠엔즈버킷queens bucket’이 있다. 통유리를 통해 들여다보니 기름병으로 만든 샹들리에 조명등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커다란 기계 몇 대가 눈에 띈다. 시장통 방앗간에서 기름을 사던 지난날의 향수를 자극해 나이 지긋한 어르신에게 ‘강남 방앗간’으로 불리며 입소문 난 곳이다. 도심 속에 부활한 방앗간이라는 것만으로도 이슈거리가 되기에 충분하지만, 우리가 먹던 참기름이나 들기름과는 완전히 다른 식품을 만든다는 것이야말로 쿠엔즈버킷이 인기인 이유다.

이곳은 박정용 대표가 오랜 고민과 연구 끝에 완성한 공간이다.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좋은 농산물과 명인이 만든 식품을 찾아 상품화하는 일을 하던 박 대표는 참기름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따금 뉴스 사회면을 통해 보도되는 벤조피렌 참기름을 보며 ‘벤조피렌 걱정 없는 참기름을 만들 수는 없을까?’ 하고 생각한 것. “참깨는 열을 가해 볶는 과정에서 특유의 방향 성분이 생기는데, 고온에서 오래 볶을수록 고소한 풍미가 진해집니다. 참기름양도 많아지고요. 그러나 이 과정에서 발암 성분인 벤조피렌도 생성되지요. 벤조피렌이 검출되는 걸 뻔히 알면서도 많이 볶으면 기름양도 많아지고 풍미 또한 고소해지니 생산자 입장에서는 욕심껏 높은 온도에서 한껏 볶을 수밖에요.

참기름의 벤조피렌 허용치인 2ppb(2㎍/kg)를 초과하는 제품이 나오면서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데, 이럴 때마다 ‘내가 먹는 참기름은 과연 안전할까?’ 하는 걱정이 들었어요. 좋은 농산물을 찾는 일은 자신이 있으니 그럼 좋은 참기름을 직접 한번 만들어봐야겠다고 결심했지요. 그때부터 볶음솥과 착유기, 필터를 찾아 세계 구석구석을 헤매고 다녔습니다.” 독일에서 공수한 원적외선 볶음솥과 착유기, 의료용으로도 사용할 만큼 안전성을 인정받은 필터를 들여와 참기름과 들기름을 시판하기까지 3년여의 세월이 걸렸다. 그간 투자한 시간도, 비용도 전혀 아깝지 않을 만큼 맛과 풍미가 뛰어나면서도 벤조 피렌이 일절 검출되지 않은 기름을 세상에 선보일 수 있었다.

원적외선 솥에서 볶은 참깨는 바로 착유기로 옮겨 기름을 짜낸 뒤 필터링 과정을 거쳐 완성한다.
신선한 기름이 제일이다

쿠엔즈버킷을 준비하며 직접 시장통 기름집에서 일을 배우고, 설비부터 의학 서적까지 들춰가며 밤낮으로 참기름 공부에 매진한 박정용 대표는 참기름이 5천여 년 전부터 유래한 식품이라는 사실을 주목했다. 한식 요리에서는 조미료로 여기는 참기름이 이집트의 오랜 속담에서는 ‘약’으로 사용했다는 것. 실제로 참기름은 혈당과 혈압 저하, 동맥경화와 우울증 예방은 물론 방사능에 의한 DNA 손상을 방지하며, 암세포를 억제하는 데도 효과가 있다. 그뿐 아니라 입안의 독성 물질과 세균, 노폐물 배출 효과가 있어 새로운 건강 트렌드로 주목받는 오일풀링oil-pulling에도 적합하다.

이렇듯 조미료가 아닌 건강에 유용한 천연 식품으로 먹기 위해서는 기존의 참기름 착유 방식이 아닌 영양소 파괴 없는 새로운 착유법이 필요하다. 현재 쿠엔즈버킷의 참기름에 사용하는 참깨는 전라남도 해남과 고창 지역에서 수급한다. 참깨나 들깨는 고소득 작물이 아닌 탓에 넓은 면적에서 재배하는 농가는 드물지만, 별다른 관리를 하지 않아도 잘 자라므로 우리나라 전역에서 재배한다. 단, 기후에 따라 품질엔 차이가 있다. 고온 작물인 참깨는 따뜻한 남쪽, 저온 작물인 들깨는 북쪽에서 재배한 것이 좋다. 특히 들깨는 낙엽이 많이 쌓이는 산간 지역의 깨가 품질이 뛰어나다.

착유기를 비롯한 모든 기계는 잔여 기름에 의한 오염을 막기 위해 매일 세척해 사용한다.
“질소 비료를 사용하지 않는지, 농약 사용 여부 등 생육 환경을 살피고 알곡 상태와 향, 맛까지 일일이 검토ㆍ확인해 참깨와 들깨를 매입합니다. 들깨는 주로 충청북도 제천이나 강원도 원주 지역의 것을 사용해요. 참깨와 들깨는 수확한 후 전량을 들여오지 않고 저온 저장고에 두었다가 필요한 양만 받아 바로 착유합니다.” 수급한 깨는 세척 과정을 거치는데,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일일이 손으로 씻어 불순물을 거르고 자연 건조시킨다. 알곡이 물러 기계식 탈수기를 사용하면 표면에 상처가 나기 쉽고, 볶는 과정에서 열에 과다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두번 정도 세척하고 건조시킨 뒤에야 로스팅 작업에 들어간다.

기존의 기름 제조 공정에서는 강철 솥에 넣어 270℃ 이상의 고온에서 로스팅을 한다. 열전도율이 높은 강철 솥은 알곡 표면을 태우는 반면, 쿠엔즈버킷에서 사용하는 원적외선 솥은 빛이 곡물의 내부까지 투과해 내부와 외부를 동시에 가열해 탄화점이 발생하지 않으며 영양 성분도 유지할 수 있다. 뚜껑만 열어도 사방으로 퍼지는 진한 향의 참기름이나 들기름과 달리 160℃ 이하에서 볶아(들기름의 경우 이보다 더 낮은 온도에서 볶는다) 강한 향을 내지는 않지만 은은하고 고소한 풍미의 참기름을 맛볼 수 있다. 참기름과 들기름은 갓 짰을 때 맛과 향이 최고라 신선한 기름을 구입해 빨리 먹는 것이 좋다.

특히 쿠엔즈버킷의 제품은 유통기한이 6개월밖에 되지 않는다. 따라서 쿠엔즈버킷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소량씩만 기름을 착유, 판매해 하루나 이틀 전에 만든 기름을 소비자가 구입할 수 있도록 한다. “쿠엔즈버킷의 또 하나 차별점을 꼽자면 바로 두 번의 필터링 과정입니다. 높은 온도에서 볶지 않아 벤조피렌 등의 화학물질이 생성되지는 않지만, 착유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화학물질이나 기타 유해 물질을 거르는 것이지요. 제약 회사에서 사용하는 독일산 의료용 필터를 수입해 쓰고 있습니다.”

볶은 들깨로 착유한 들기름과 생들기름. 생들기름은 색이 훨씬 맑으며, 신선한 들깨의 향이 나는 것이 특징.
믿고 먹을 수 있는 식료품 가게

쿠엔즈버킷의 참기름과 들기름도 인기지만, 날로 높은 성장세를 보이는 제품은 생참기름과 생들기름이다. 곡물을 볶지 않고 그대로 기름으로 짜낸 것. 이를 콜드 프레싱cold-pressing이라 한다. 70℃ 이상의 열이 전해지지 않도록 압력을 가해 착유하는데, 열을 가해 볶아 착유하는 기름에 비해 착유율이 매우 떨어지지만, 재료의 속성을 그대로 담을 수 있다. 수차례 세척하고 서너 일간 펼쳐 깨를 말린 뒤 콜드 프레싱 기계에 넣고 착유한 다음 필터링해 바로 병입한다.

아이엔여기한의원 김수경 원장은 “생참기름과 생들기름은 그대로 마시거나, 드레싱, 나물무침 등 열을 가하지 않는 요리에 활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생들기름에는 두뇌 구성 성분 중 70%를 차지하고, 혈관 내 찌꺼기 지방도 청소해주는 오메가-3가 풍부합니다. 오메가-3는 성장기 어린이나 임산부에게는 꼭 필요한 성분인데, 열에 약해 쉽게 변성되는 단점이 있으니 생들기름을 통해 섭취하는 것이 좋은 방법입니다. 살짝 익힌 나물에 소금 간해 참기름 한 방울과 생들기름을 듬뿍 넣어 무쳐내면 영양 만점입니다”며 생기름을 섭취하길 권장한다.

생들기름과 생참기름을 만들고 남은 깻묵은 쿠키와 스콘으로 만들어 판매한다. 우유, 버터 등을 사용하지 않아 채식주의자도 먹을 수 있다.
생참기름과 생들기름을 착유한 깻묵은 비건 쿠키와 스콘으로 만들어 매장에서 판매하며, 들깨 가루처럼 요리에 활용할 수 있도록 고객에게 서비스로 주기도 한다. 소비자에게 신선한 기름을 전달하고픈 마음에 도심 속에 매장을 마련하며 박 대표가 또 하나 준비한 것은 수년간 발품 팔아 만난 좋은 농산물과 가공품을 소개하는 일이다. 그리 크지 않은 매장의 절반은 착유실로, 나머지 공간엔 진열대를 만들어 잡곡이나 미역, 김, 꿀 등도 판매한다.

“생참기름과 생들기름을 만들며 놀란 것은 깨의 미묘한 맛과 향이 그대로 기름으로 전해진다는 사실입니다. 깨가 싱거운 해에는 기름 맛도 싱겁고, 원산지에 따라 각기 그 맛이 조금씩 달라요. 올리브유도 품종에 따라 맛과 풍미가 달라 하나의 품종으로만 착유한 기름을 판매하는 것처럼, 언젠가는 산지별 참기름과 들기름을 만들어 판매해볼 계획입니다.” 참기름과 들기름은 조미료가 아닌 건강식품임을 세상에 알린 쿠엔즈버킷이 또다시 선보일 ‘새로운’ 참기름과 들기름을 만날 날도 기대해본다.


취재 협조 쿠엔즈버킷(02-538-0441)


글 박유주 기자 | 사진 민희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4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