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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은순 씨 가족의 다세대주택 ‘창조공간’ 사람을 닮은 곡선 집
전원주택도 단독주택도 아닌 도시형 생활 주택의 설계를 일본의 건축가에게 의뢰한 독특한 집이 있다. 노출 콘크리트를 고무 찰흙처럼 말랑말랑하게 빚어 완성한 U자형 집 ‘창조공간’. 창의적 설계, 친환경 자재, 새로운 이웃의 의미까지 다세대주택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다.

집 짓기 열풍은 여전하다. 그리고 한 단계 더 진화했다. ‘진화’라는 표현이 적당할지 모르겠지만 셰어 하우스, 원룸형 생활 주택 등 변화하는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집의 종류가 한층 다각화된 것은 분명하다. 집 짓기에 관한 관심이 높아진 만큼 “방 네 개, 남향으로, 최대한 모던하게 지어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은 이제 건축주의 직무유기다. <행복>은 보다 확고한 취향과 구체적 프로그램으로 집 짓는 과정 하나하나를 즐긴 준비된 건축주와 이를 200% 반영해 창의적 공간을 구현한 건축가의 건축 일지를 소개한다. 환상의 호흡으로 시너지 효과를 높인 건축가와 건축주의 합작품을 눈여겨보라.  


작품 이미지 제공 오제훈 ‘intended sight’ 연작, 63.5×48.3cm(왼쪽)ㆍ70×40cm(오른쪽), 혼합 재료, 2013.


한국 건축물을 보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어 좋은 결과물이 나왔다는 건축가 나카에 유지 씨와 건축주 허은순 씨. 나카에 유지씨는 지난해 모터사이클을 즐기는 이들의 셰어 하우스 ‘NE 아파트’로 도쿄 건축상을 수상했다.

네모, 네모, ㄷ자, 또 네모만 보다가 오랜만에 곡선형 집을 발견했다. 굽이돌아 흐르는 강처럼 옆구리를 파낸 U자형 집. 곡선 너머로 바라보이는 청명한 하늘이 꽤 드라마틱하다. 대체 뭐 하는 집인고? 견고함의 상징, 노출 콘크리트를 고무 찰흙처럼 말랑말랑하게 빚은 이는 또 누구인가? “일본의 건축가 나카에 유지 씨가 설계한 건물로 복층으로 지은 도시형 생활 주택, 쉽게 말하면 다세대주택이죠. 나카에 유지 씨는 2008년 굿 디자인상 수상, 2009년 도쿄 건축상 최우수상을 받은 실력 있는 건축가입니다. 집이 워낙 독특해 건축 허가가 나지 않아 건축가가 직접 해당 공무원을 만나 담판을 지었답니다….” 건축주가 보낸 이메일을 끝까지 읽지도 않고 회신 버튼을 눌렀다. “집, 구경 가도 될까요?”

당신의 출근길은 행복한가요?

반듯하게 잘 정리된 길을 따라 크고 작은 단독주택과 빌라가 조성된 광진구의 한 주택가. 지난 2007년 이 동네에 터를 잡은 건축주 허은순 씨는 동네에 재건축 바람이 분 2~3년 전부터 집 짓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집 짓기에 관심이 생기자 그간 눈여겨보지 않던 집의 형태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온 동네를 다 돌아봤는데 20~30년 전에도, 지금도 여전히 ‘집 장사’가 짓는 네모난 빌라가 대부분이었어요. 참을 수 없는 건, 외벽은 대리석으로 근사하게 둘렀지만 속은 싸구려 자재로 대충 마감했다는 것이죠. 그때부터 국내외 사이트에서 소형 주택과 마감재에 대한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죠.” 건축주의 집에 대한 철학은 매우 소박했다.

첫째, 건축 비용을 뽑기 위해 분양이나 임대 세대를 들여야 하는 집을 짓더라도 대충 짓지는 말자는 것. 둘째, 같이 살 이웃들이 충분한 햇볕과 바람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것. 하지만 건축주가 이런 생각을 실천하기까지에는 난관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여러 명의 건축업자를 찾았으나 설계는 늘 판에 박힌 듯 똑같았고, 자료를 모으고 공부한 것을 내밀며 의논할라치면 ‘나만 믿으라’는 도무지 신뢰가 가지 않는 말만 되풀이했다. 건축사무소에 맡겨볼까 했지만, 그 역시 녹록지 않았다. 일단 단순 상담은 해주지 않는다. 유료 상담을 하거나 정식 계약을 해야 구체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데, 초보 건축주라면 두 경우 모두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그러다 도시건축앤공감이라는 업체에서 지은 독특한 다세대주택을 발견했다. 1층부터 4층까지 돌출 창으로 처리한 점도 눈에 띄었고, 지면에서 띄워 짓는 필로티 구조면서 어엿한 빨간 대문이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힘들게 일하고 돌아왔는데, 컴컴한 복도에서 센서등 하나 의지하려면 쓸쓸하지 않겠어요? 아침에는 햇살 듬뿍 받으며, 밤에도 달빛 보며 퇴근하면 좋을 텐데요.” 허은순 씨의 이야기를 귀담아듣던 도시건축앤공감 이종선 본부장은 적격자가 있다며 나카에 유지 씨를소개해주었다. 나카에 유지 씨는 허은순 씨의 이야기를 듣고 많은 부분을 공감했고, 건물 가운데를 둥글게 파내고 외부로 계단을 내는 과감한 설계를 제안했다. 그가 설계해 도쿄 건축상 대상을 수상한 NE 아파트 역시 같은 구조인데,이미 일본에서는 큰 호응을 얻었다.


1 둥근 내벽의 상단은 유리로 마감해 채광과 조망을 보장해준다. 2 옥상에서 내려다본 모습. U라인과 외부 계단이 인상적이다.

건축 일지

건축가와 시공사 선정
2010년부터 건축업자와 건축가 물색. 사이트에서 발견한 도시건축앤공감에서 일본 건축가 나카에 유지Nakae Yuji 씨를 소개받았다. 시공은 흥해건설에서, 총괄 진행은 창조공간(1661-1706)에서 맡았다.
설계 및 공사 기간 2012년 4월~2013년 8월.
건축 구조 철근 콘크리트조, 필로티 구조.
외장재 노출 콘크리트, 더블 로이 유리.
건축 면적 대지 326㎡(98.62평), 연면적 465.68㎡(140.87평), 건폐율 59.66%(60% 이하).
시공비 평당 약 7백만 원(새시 추가 비용 별도).



1 4층 현관을 중심으로 오른쪽 공간에 자리한 허은순 씨의 서재. 한실 문을 완전히 닫으면 밀실이 된다. 2 주방 조리대에서 식탁 쪽을 바라본 모습. 오른쪽 한실 문 안쪽 공간이 허은순 씨의 서재다. 3 아일랜드 조리대는 천연 미송으로 제작한 뒤 KD우드테크의 코코넛 타일로 마감했다.


4 빨간색 도장으로 포인트를 준 침실. 천장에서 바닥까지, 기울어진 각도 그대로 세로로 길게 낸 창문이 인상적이다. 편백나무 온돌 침대는 맞춤 제작한 것. 5 첫째 아들 방. 방이 기울어져 일반 가구는 들어갈 수 없다. 목수에게 일일이 그림을 그려 기울어진 형태의 간이 옷장과 둥근 책상을 제작했다.

둥근 집에 사는 즐거움

이 집은 대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특이한 경험을 한다. 마치 작은 골목이 있고, 골목 사이로 집들이 숨어 있는 산토리니를 축소한 느낌이랄까. 어두컴컴한 주차장을 거쳐 좁은복도를 지나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밝은 빛과 시원한 바람을 느끼면서 집으로 들어간다고 상상해보라. 무엇보다 가장 큰 특징은 깊게 파인 곡선이다. 건축가가 시공상 어려움을 무릅쓰고 곡선을 택한 데는 까닭이 있다. 곡선이 자아내는 친숙함은 바람과 물에서 느끼는 자연스러움에서 비롯된다 해도 과언이 아닐 터. 아마도 사진 한 장만으로 이 집이 궁금해진 것은 바로 콘크리트와 대비되는 곡선의 부드러움 때문이리라. 게다가 이 곡선으로 파인 부분은 바로 채광과 바람길을 쥐고 있는 열쇠가 아닌가. 또 곡선 자재의 기본 물성을 뛰어넘는 모습, 즉 도전 의식을 보여준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허은순 씨는 골조를 세울 때, 둥근 거푸집을 만들기 위해 각목으로 세운 원통을 봤을 때 피사의 사탑보다도 아름답게 느껴졌단다. 

창조공간의 여덟 집은 복층 구조 5채, 단층 구조 2채의 분양 세대와 4층 건축주 세대로 이뤄졌는데 각기 생김새가 다르고 그 집만의 특징이 있다. 천장에서 바닥까지 세로로 길게 낸 창문, 집집마다 굽이돌아 흐르는 강처럼 둥근 구조가 편안하다. 유럽형 복층 스튜디오 구조는 생경하면서도 재밌다. 남들과는 다른 개성 있는 가구 배치도 가능하다. 4층은 허은순 씨 가족의 집이다. 역시 U자형 구조로 계단 현관을 중심으로 왼쪽은 프라이빗한 주거 공간, 오른쪽은 부엌과 작업 공간으로 나뉜다. 허은순 씨가 설계할 때 원한 것은 좀 더 실질적인 부분이었다. 안방은 침대만 들어가는 최소한의 공간, 작업실과 부엌은 가까울 것, 거실과 부엌을 완벽히 분리할 것, 간단한 손빨래를 할 수 있는 세탁실 마련, 거실 벽을 갤러리로 활용하기 등.

가족과 손님 공간을 분리하고 싶었다는 허은순 씨는 현관의 위치를 집 중앙으로 옮기고 엘리베이터에서 올라오는 입구와 연결해 양쪽에 중문을 달았다. 현관에서 왼쪽 중문으로 들어서면 갤러리처럼 비워둔 폭이 점점 좁아지는 복도를 지나 둘째 아들 방, 화장실, 부부 침실, 첫째 아들 방이 차례로 자리한다.“저는 어린이 책을 쓰는 사람이라(유명한 동화작가. 최근에 <아버지의 포도밭>(현암사)을 출간했다) 애들 같은 상상을 많이 해요. 구름다리 건너 집에 들어가면 재밌지 않겠느냐는 말에 나카에 씨는 바로 외벽을 타고 올라가는 계단을 구현했죠. 이 집은 2층에서 4층까지 계단이 모두 외부에 있어요. 가끔 아이들과 같이 집 보러 오는 가족이 있는데, 아이들은 어느새 계단에 자리 잡고 앉아서 까르르 웃으며 놀아요. 꼭 옛날 골목 풍경 같죠.”


현관을 중심으로 공간이 양쪽으로 나뉘어 생활이 완벽하게 분리되는 허은순 씨 가족의 집.

집도 속 보고 고르자

콘크리트 집의 시멘트 독은 쉽게 빠지지 않는다. 노출 콘크리트로 지은 ‘창조공간’도 피해갈 수 없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허은순 씨는 최선을 선택할 수 없다면 최악은 피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자재 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시멘트 독이 집 안으로 침투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벽에는 울트라 그립 ultra grip을, 바닥에는 덤프록damplock이라는 기능성 소재로 코팅을 하고, 던에드워드사의 친환경 페인트로 마감했다. 또 마루는 KD우드테크의 방습 마루라는 친환경 소재를 택했다. 이 집이 일반 주택에서 잘 쓰지 않는 수성 페인트나 방습 마루를 쓴 이유는 벽지나 바닥을 시공할 때 쓰는 본드를 쓰지 않기 위해서다.

외장재로 사용한 더블 로이 유리 시스템 창호는 유리에 얇게 은막을 입혀 바깥에서 들어오는 자외선은 차단하고 안에서 생긴 온기가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방지한다. “예비 건축주는 자재 공부부터 시작해야해요. 앞서 말했듯 바닥 시공은 자재보다 본드 시공이 문제죠. 난방을 하면 포름알데히드가 올라와요. 유럽은 실내 벽도 두께가 30cm 이상인데, 우리나라는 외벽도 그것보다 얇을 때가 있어요. 벽만 두꺼워도 에너지가 절약되고, 층간 소음 분쟁도 줄 텐데 말이죠.” 집을 지으려면 먼저 똑똑해져야 한다고 강조하는 허은순씨. U자형 곡선 너머 넘실대는 청명한 하늘, 바람과 물에서 느끼는 자연스러운 S자형 곡선이 연출해내는 가장 큰 장점은 아마 사람을 닮은 부드러움일 것이다. 창문을 열면 시원한 바람이 공간을 어루만지고, 시시각각으로 달라지는 빛의 풍경으로 더욱 따스해지는 이 집, 사람을 닮았다.


1 2, 3층에는 8가구의 분양&임대 세대가 있다. 유럽형 스튜디오 복층구조로 신혼이나 싱글세대가 살기 좋다. 분양문의는 010-5093-7708. 2 주차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필로티 공법으로 지은 창조공간. 1층은 주차장, 2,3층은 스튜디오형 주거 공간이다.

극성 건축주의 알토란 같은 노하우

어떤 업체에 맡겨야 하나?
건축 회사를 고를 때는 그동안 어떤 집을 지어왔는지, 얼마나 경험이 있는 회사인지, 그 회사가 지은 집을 가볼 수 있다면 직접 살펴보는 것이 좋다. 갈빗집 가서 자장면 찾으면 안 되는 것처럼 건축 회사를 선택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그 회사가 주로 잘 짓는 분야가 있다. 내가 짓고 싶은 집을 많이 지어본 회사를 선택하자. 설계와 시공을 같이 하는 회사는 피하는 것이 좋다. 또 시공과 감리는 같은 회사가 해서는 안 될뿐더러 그런 회사가 있다면 이 역시 피하는 것이 좋다. 감리란 설계대로 잘 지었는지 점검하는 일인데, 시공하는 회사가 감리까지 한다면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보다 그냥 덮을 수 있다. 만약 다음과 같은 말을 하는 업체가 있다면 주의하자. 1 나는 설계도 하고 시공도 한다. 2 설계는 설계방에 맡기면 된다. 3 일하다 보면 설계대로 시공할 수 없다. 4 무조건 평당 단가로 계산한다.

설계비를 아끼는 것이 정말 건축비를 절감하는 결과가 될까?
설계는 영화로 치면 시나리오와 같다. 시나리오가 잘되면 감독을 선정하고, 배우를 캐스팅하고, 많은 스태프가 움직여 영화를 만든다. 제아무리 잘난 배우라 할지라도 시나리오에 따라 연기해야 한다. 건축의 첫걸음은 설계일 것이다. 설계도가 완성되면 시공사가 설계도면에 따라 집을 짓는다. 제아무리 비싼 자재라 해도 설계도면에 따라 제자리를 찾아갈 뿐이다. 또 건축가는 집 장수처럼 평당 단가를 제시하기보다 건축주가 가진 돈이 얼마인가, 어느 정도 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가를 먼저 살피고, 형편에 맞게 방법을 제시한다. 엄밀하게 따지고 보면 건축비를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건축가가 가장 잘 알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설계비를 아껴 건축비를 줄여보겠다는 생각은 곧 시나리오 없이 영화를 찍겠다는 것과 같다. 초호화 캐스팅이라 할지라도 시나리오가 없다면 감독은 무얼 가지고 영화를 완성할 것인가? 괜히 설계비 아꼈다가 나중에 유지 보수비만 더 든다.

일반적인 철근 콘크리트 집이라도 새집 증후군을 막을 수 있는 대안이 있다
창조공간은 벽지 대신 던에드워드(나무와 사람들, 02-3679-0101) 실내용 수성, 무광 페인트로 마감했다. 주로 필름 코팅하는 기성 몰딩 대신 원목을 켜서 제작한 수제 걸레받이를 시공하고 던에드워드 내추럴 우드 스테인으로 마감했다(천장 몰딩은 생략). 마루의 경우 소재보다 시공 방법이 더 중요하다. 강화마루는 아주 잘게 자른 나무를 접착제와 섞어 압축한 다음 원목 무늬 필름을 입혀서 만든 마루다. 강마루는 합판 위에 무늬 필름을 입혀 만든 마루다. 원목 마루는 진짜 나무를 그대로 가공한 것이지만 문제는 강화마루를 제외하고는 모두 시공할 때 본드를 쓴다는 것이다. 창조공간은 현가식(floating) 공법으로 시공하는 KD우드테크(02-3401-5525) 방습 마루를 선택했다.


4층



설계 나카에 유지, 윤민환, scaf

글 이지현 기자 | 사진 박찬우, 사카구치 히로야스(외관)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3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