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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이영조 씨의 제주 세컨드 하우스 뺄셈으로 지은 리틀 화이트
올봄 건축가 이영조 씨가 제주도에 집을 짓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넓은 대지에 여러 채의 건물을 한꺼번에 올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요즘 제주에 많이 들어선다는 근사한 세컨드 하우스나 감각적인 게스트 하우스를 상상했다. 하지만 몇 달 뒤, 집을 완공했다는 소식과 함께 휴대전화 메시지로 전송된 사진을 보니 예상한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초록 귤밭에 올망졸망 모여 있는 박스 형태의 하얀 집들, 그 모습은 영락없는 ‘귤 창고’ 다. 4.8평부터 19. 97평까지, ‘단출하고 유연하게 살고 싶다’는 그의 삶의 철학이 함축된 세컨드 하우스 ‘리틀 화이트’를 찾았다.


건축가 이영조 씨와 아내 정희경 씨, 딸 루이의 주말 주택 ‘리틀 화이트’ 3호. 방과 거실 겸 다용도 룸, 화장실, 수납장으로 구성한 본채와 침실, 화장실로 구성한 별채를 합해 70.97㎡ (21.47평)이다. 본채와 별채 사이 나무를 그대로 살려 지었더니 그림 같은 풍경이 연출되었다.

3호 본채의 침실에서 다용로 룸을 바라본 모습. 방에서 툇마루, 마당, 테라스로 확장되면서 바닥은 깊어지고, 천장은 높아져 다채로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3호 본채 침실에서 주방 겸 다용도 룸을 바라본 모습. 주방 벽면에는 추가로 선반이나 싱크대를 달 수 있도록 타일 마감을 최소화했다. 시선이 낮아지니 공간이 확장돼 보이는 효과가 있다.

철과 유리로 만든 단순한 건축물을 선보인 미스 반데어 로에의 ‘판스워스 하우스farnsworth house’는 그가 좋아하는 건축물 중 하나다.

포르투갈의 한 해변에 모여 있는 하얀 박스 형태의 마을과 제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귤 창고를 모티프로 지은 공동주택 리틀 화이트. 경사진 구조를 그대로 활용하기 위해 집의 일부를 지표면에서 띄워 시공하는 필로티 공법을 적용했다. 특히 5호 아래는 제법 넓은 공터가 생겼는데, 도자를 전공한 아내가 작업할 수 있도록 가마를 설치할까 구상 중이다.


“이곳은 11년 전 부모님이 제주로 이주하면서 마련한 귤밭이에요. 모든 은퇴 생활자가 그렇듯 부모님 역시 이곳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살고 싶어하셨죠. 하지만 제가 일 때문에 바쁘기도 했고, 또 부모님이 적응할 시간도 필요할 것 같아 적당한 때를 찾다가 작년 여름에서야 구체적으로 건축 계획을 세웠어요.” 그간 큰 규모의 빌라나 타운하우스 위주의 작업을 해오면서 ‘과연 살면서 이렇게 넓은 집이 필요할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는 이영조 씨. 입버릇처럼 40대에 은퇴하고, 제주에 내려가 살겠노라고 말해온 그는 계획 중 일부를 실행했다. 2012년 여름, 서울 반 제주 반의 이중 생활은 그렇게 시작됐다.


1 이영조 씨의 고정석. 사이드 테이블로 활용할 수 있는 디자이너 국종훈 씨의 스툴과 집게로 고정하는 아르테미데의 벽등은 작은 집에서 사용하기 좋은 아이템.
2 박공 구조의 천장 라인을 살린 3호의 별채. 창문 없는 화장실이 특징.
3, 아래 “완벽한 디자인은 그 이상 더할 것이 없을 때가 아니라 더 이상 제거해야 할 뭔가가 없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생텍쥐페리의 말이 떠오르는 5호 집. 박스 안, 또 하나의 박스로 구성한 공간이 특징으로, 손님들이 가장 좋아하는 방이기도 하다. 맑은 날은 멀리 마라도까지 조망할 수 있다.


하나면 충분하니까 제주 남쪽, 예래포구 앞 해안 도로에서 소나무 숲길을 따라 오솔길로 들어서면 귤밭 사이로 옹기종기 모여 있는 하얀 집들이 나온다. 보이는 모습 그대로가 이름인 ‘리틀 화이트’는 3호부터 7호까지 총 다섯 가구로 이루어졌다. 3호ㆍ6호ㆍ7호는 본채(16.7평)와 별채(4.8평)로 구성했고, 4호(19.97평)와 5호(16.7평)는 투룸과 원룸의 본채로만 구성했다. 현재 3호는 이영조 씨 가족의 세컨드 하우스, 5호는 부모님 집으로 사용할 예정이다. 중문의 한 빌라에 사는 부모님은 시험 삼아 이 집에서 한 달째 기거하며 서울에서 온 손님도 맞고, 소일거리 삼아 이곳 저곳을 손보는 중이다. 4호는 서울에 사는 한 가족의 세컨드 하우스로 분양했고, 5호와 7호도 분양할 예정이니 이곳은 작은 집과 멀티 해비테이션, 新공동체라는 최근 주거 문화의 화두를 모두 담고 있는 셈이다.

“제주 이민이라는 말이 생겼을 정도로 제주 이주를 꿈꾸는 이가 많은데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이 이웃이에요. 적응한다는 게 결국 마음 맞는 이웃을 만난다는 얘긴데, 생각만큼 쉽지 않죠. 저희 부모님도 10년을 살았지만 가깝게 지내는 분들은 거의 서울에서 내려오셨으니까요.”
시내에서 떨어진 독립된 지역의 집에서 살려면, 자체적으로라도 작은 커뮤니티가 형성되어야 한다고 판단한 그는 여러 가구가 공동체를 이루는 단지를 기본 개념으로 잡고 설계를 시작했다. 1천여 평의 대지는 바닷가를 바라보는 방향으로 높이가 점점 낮아지는 경사지로, 각 집들의 레벨이 달라 자연스럽게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다. 애초에 출발이 도시 생활자를 위한 세컨드 홈이기 때문에 굳이 크거나 디자인적 요소를 많이 적용할 필요는 없었다. 그는 땅의 상황에 어울리는 집의 형태와 최적화한 규모를 고민하던 중 문득 서귀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귤 창고를 떠올렸다. 귤밭의 면적에 정확하게 비례하는 귤 창고에서 모티프를 얻어, 기존 귤밭에 있던 귤창고 크기를 그대로 차용해 지은 집이 바로 3호의 별채다. 본채와 별채를 합쳐 70.97㎡(21.47평)인 3호는 한옥의 안팎 요소를 모두 내부 공간에 들인 것이 특징이다.

“방과 툇마루, 마당까지 한공간 안에 다 표현하고 싶었어요. 방은 크기가 가장 작고 천장도 낮아요. 방의 연장이자 원통형 기둥이 서 있는 복도는 툇마루 역할을 합니다. 소파처럼 걸터앉거나 간단한 다과를 즐길 수 있어요. 한 단 더 내려가면 부엌 겸 다용도 공간인데, 이곳은 마당을 형상화한 거예요. 평상 모양의 테이블, 무심하게 둔 낮은 나무토막 테이블, 필요에 따라 확장이 가능한 선반 시스템이 가구의 전부죠.”
딱 하나 욕심낸 것이 있다면 바로 천장고다. 겉에서 봤을 때는 무척 아담한 집이지만 들어서는 순간 개방감이 느껴지는 것은 높은 천장고 덕분. 층고와 천장고에 변화를 주고, 철제 투명 문과 기둥 등으로 공간을 분할하니 작은 집이라도 단조롭거나 답답해 보이지 않는다. 단, 박공지붕의 라인을 그대로 살리더라도 천장의 공기층은 충분히 확보해야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덥지 않다.


3호 집 다용도 룸에서 침실을 바라본 모습. 단 차이로 공간을 분할해 집이 작고 답답해 보이지 않는다. 바닥재는 티크 원목, 기둥은 삼나무를 사용했다.

귤밭에 지은 리틀 화이트는 귤나무 가 조경수요, 귤밭이 앞마당 정원이다. 가볍고 이동하기 편리한 아웃도어 가구도 이곳에 두니 한결 폼이 난다.

본채와 별채의 동선이 분리된 5호 집의 뒷모습.


뺄셈으로 완성하다 건축가이자 건축주인 그가 이 집을 설계하며 궁극적으로 실험하고 싶은 것은 실질적으로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적정한 집의 크기, 공간에 대한 정의다. 주말 주택이라고 말하지만 때론 장기간 머물 수 있고, 세간이 많지 않아 지인이 원하면 언제든지 잠깐 내주는 등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집. 침실도, 가구도 꼭 필요한 것 하나씩만 있으면 충분하단다. 하나의 공간을 여러 용도로 사용하는 건 집을 작게 짓기 위한 가장 기본 방법이다. 1년에 몇 번 제대로 쓰지도 않을 게스트룸이나 거실을 큰돈 들여 꾸미는 것보다는 하나씩 뺄셈을 해나가며 최상의 실용성을 갖춘 공간만 남기는 편이 낫다는 것. 그러다 보면 결국 남는 공간은 부엌, 욕실, 침실, 다양한 용도로 쓰는 ‘만능 방’ 하나 정도가 되게 마련인데, 만능 방은 거실도 되고 식당도 되고 작업실도 되고 손님방도 되고 때론 마당이 되기도 한다. 사실 큰 자녀가 있는 가족의 집으로 다소 구현하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그의 공간 철학은 참고할 만하다.
“서울에서 집 짓기 애매한 자투리 땅을 찾아 작은 집을 지으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강북의 구도시는 골목 안에 비뚤빼뚤한 집들이 아직 남아 있는데, 문제는 통으로 개발해서 떡하니 빌라나 아파트를 짓는다는 거예요. 건축가들이 각각의 콘셉트를 담아 작은 필지에 지은 집들이 늘어나면한 집만이 아니라 골목길도, 도시 풍경도 한결 다채로워질 텐데요. 이 집에 적용한 아이디어들을 적절히 구현한다면, 도심형 작은 집의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1 디터 람스가 디자인한 유니버설 선반 시스템 606은 영국에서 공수한 것. 가족이 내려왔을 때 여행 가방과 보스턴백, 간단한 옷가지를 수납하는 공간이자 자신의 컬렉션을 진열하는 쇼 케이스다. 벽면은 하늘색으로 도장했다. 이 집에는 낮은 테이블을 제외하면 가구가 거의 없다. 
2 툇마루에 앉거나 누웠을 때도 눈높이로 자연을 조망할 수 있도록 낮게 작은 창을 냈다. 철제 유리문에 데칼코마니처럼 비치는 창문이 인상적이다.
3 통나무를 잘라 무심하게 둔 로 테이블은 동네 목재소에서 쉽게 제작할 수 있다.


양보다 질, 작지만 강하다 이 집은 호불호가 극명하다. 일반 집을 생각한 대부분의 사람은 집 안에 들어서는 순간 “이게 방이라고?” 하며 반문한단다. 일부러 비워낸 것을 완성하지 않은 것으로 해석하고, 또 건축비가 너무 비싼 건 아니냐며 직언을 하기도 한다. 사실 기자를 포함해 대부분의 사람이 궁금해하는 부분도 바로 비용일 터. “평당 가격이라는 개념 자체가 작은 집과는 맞지 않는 것이에요. 평당 단가를 낮추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넓은 방을 많이 배치하면 되니까요. 작은 집의 경우 작은 공간에 여러 기능을 함축하게 마련이니 면적 대비 비용이 높을 수밖에요.” 그는 작은 집을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완성하는 상품에 비유한다. 그리고 리틀 화이트를 ‘보통 집과 똑같은 질적 수준을 갖춘 집’ ‘때로는 더 고급스러운 집을 짓기 위해 작게 지은 집’이라 역설한다. 창문이 스무 개 필요하면 싼 것을 선택해야 하지만 6~7개 필요하면 마음에 드는 것, 품질이 좋은 것을 고를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

“요즘도 제주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있어 최소 일주일에 한 번꼴로 내려와요. 혼자 내려올 때는 3호나 5호 툇마루에 앉아 제일 편안한 자세를 잡은 뒤 무념무상으로 고요를 즐기지요. 감각의 정점은 ‘어둠’이에요. 깜깜한 하늘, 당장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별들, 각종 풀벌레 소리…. 낮이든 밤이든 눈이 쉴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좋죠.”
그리고 그는 가장 높은 데 있는 3호에서 바닷가가 가장 가까운 7호로 이사를 준비하고 있다. 7호 별채에 오피스 겸 카페를 차릴 예정이다. 4평밖에 안 되는 작은 공간이지만 제주를 찾는 다양한 사람이 모여 사랑방처럼 활용했으면 하는 바람. 또 설치 미술가와 협업해 이 집을 배경으로 전시를 기획해보는 것도 구상 중이다. 자신과 가족만이 주말 주택으로 즐기기보다는 문화적으로 다양하고 재미있는 작업을 펼치고자 요리조리 궁리하는 그의 표정에 다시 생기가 돈다.
사실 작은 집에 대한 기준은 무척 주관적이다. 단순히 면적만으로는 판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감당할 수 있는 편안한 재료로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규모로 짓되 빼고 빼서 최소한만 남은 것”이라는 ‘리틀 화이트’의 콘셉트는 작은 집이 갖춰야 할 중요한 명제를 전하기 충분하다.

이영조 소장이 말하는 빼기 건축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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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들여놓는 물건은 적을수록 좋다. 쓸데없는 공간을 관리하는 일은 소모적이다. 이것도 저것도 필요하다며 원하는 걸 자꾸 보태고 늘리는 방식이 아니라, 먼저 적당한 집을 상상하고 거기에서 불필요한 설비나 공간을 제외해나가는 연습이 필요하다.
2 땅이 허용하는 한 최고치로 건폐율을 채우려 하지 마라. 가득 채워 짓 지 않으면 조금 더 큰 마당을 얻을 수 있고, 전체 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
3 처음부터 완벽하게 세팅하려 하지 마라. 살다 보면 라이프스타일 패턴이 바뀔 수도 있고, 필요한 제품이 더욱 명확해진다. 여지가 있어야 공간도 사고도 한층 유연해진다.

건축 설계 이영조(BP, 02-512-2945)
인테리어 설계와 시공 이영조, 로프트 디자인 랩(031-8017-2532)
건축 시공 해오름건설조경
설계와 시공비 평당 6백만 원(내부 인테리어, 가구 세팅 포함)
글 이지현 기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3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