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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 의사 임재양 씨 한옥 병원과 건강 빵집의 행복한 동거
<해피 해피 브레드>라는 일본 영화가 있습니다. 도시 생활을 접은 젊은 부부가 한적한 시골에서 맛있는 빵과 요리를 통해 이웃에게 행복을 전한다는 스토리로 나눔과 배려,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지를 유쾌하게 일깨워주지요. 영화처럼, 행복은 반드시 노력해야 하며 다른 누군가를 위해 노력한다면 더 빨리 행복이 찾아온다는 메시지를 담은 공간을 만났습니다. 한옥 병원과 빵을 굽는 한입 별당이 함께하는 대구 삼덕동의 ‘임재양외과’가 그곳입니다. “따뜻한 빵 만들고 있어요. 소풍 날 보물찾기처럼 행복을 찾고 싶다면 오세요, 한입 별당으로.”


한옥 병원과 일본식 주택이 마당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대구 삼덕동 임재양외과. 구가도시건축 조정구 소장이 설계한 이 병원은 2012년 대구시 건축상 금상을 수상했다. 기존 터에 자리한 한옥과 적산 가옥을 그대로 살려 켜켜이 쌓인 시간과 도시 역사를 존중했다는 데 의미가 깊다.


미국의 한 백만장자가 만성 두통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온갖 치료를 했지만 별 효과가 없자, 고민 끝에 두통을 치료하면 엄청난 돈을 지불하겠다는 광고를 냈습니다. 많은 의사가 도전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시골에서 한평생을 보낸 늙은 의사가 찾아왔습니다. 낡은 청진기 하나만 들고 온 의사는 한 달간 같이 생활하자고 합니다. 백만장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불만이 쌓여갔습니다. 매일 같이 밥 먹고 얘기하는 것이 치료의 전부였으니까요. 한 달 후 의사는 백만장자에게 셔츠의 단추를 한 개 풀라고 했습니다. 치료란 것이 참 어처구니없다 생각했지만 그대로 했지요. 시간이 지나자 거짓말처럼 두통은 사라졌습니다.


마당 쪽에 엔가와라는 일식 복도가 둘러진 별관 1층. 마당부터 복도, 거실, 방으로 층을 이루며 깊어지는 공감각이 드라마틱한 공간을 완성해준다.

병원 대기실인 대청마루에 오르면 대기 시간조차 치유의 시간이 된다.

1 유리창 너머 바라보이는 풍경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다.
2 야생화를 촘촘히 수놓은 모시 발이 인상적. 안주인의 정갈한 솜씨를 엿볼 수 있다.


꿈이 있습니다 유방암 클리닉의 권위자 임재양 씨를 만나니 이 일화가 떠오릅니다. 그는 외과 의사입니다. 의사가 된 지 32년, 개업한 지 23년 됐습니다. 그는 다시 태어나도 외과 2 3 의사가 되고 싶다고 말합니다. 의사로서 작은 꿈이 있는데, ‘하루에 많은 환자를 보지 않는다, 환자와 두런 두런 세상 이야기를 나눈다’이랍니다. 대개 난치병 환자들은 치료 과정에서 상처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 상처받은 마음을 다독입니다. 같이 웃고 같이 울면 그것으로 족하지요. 하지만 진료하다 보면 마음먹은대로 하는 것이 쉽지는 않답니다. 한 명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도 힘들고요. 그래서 그는 ‘껍질’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공간이 사유를 지배한다고 하지요? 환자가 병원에 와서 편안함을 느끼고, 의사가 환자에게 더욱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병원이라는 공간이 중요할 테니까요.

2012년, 대구시 삼덕동 한 골목의 유명한 한식당이 있던 자리에 새로 한옥이 올라가고 몇 달 뒤 그 한옥에 ‘병원’이 들어서자 동네 사람들이 수군거립니다. 한의원이면 어울릴 법도 하지만 외과 병원이랍니다. 대로변도 아니고 골목길에, 큰 간판도 없습니다. 의사나 환자가 편안해하고 건강한 건축물을 생각하니 자연히 한옥이 떠올랐다는 임재양 씨는 무려 5년이라는 기다림 끝에 한옥과 적산 가옥이 있던 이 집터를 갖게 되었답니다. 그는 그저 의사나 환자가 편안하게 건강에 대해 상의하고 만나는 병원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병원과 별채를 짓기 전 이재에 밝은 친구가 와서 물었습니다. “땅이 몇 평인가?” 2백 평이라고 말하자 건물을 몇 층 올릴 거냐고 묻더군요. 한옥은 그대로 1층, 건너편 적산 가옥은 그대로 2층 올릴 거라 했더니 “돈이 남아도는군” 하더랍니다. 은퇴할 나이에, 이제 노후를 준비해야 할 나이에 왜 이런 비효율적 병원을 짓느냐고요. 물론 경제적으로 보면 비효율적입니다. 하지만 두 가지를 생각했죠. ‘나는 은퇴가 없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환자를 볼 것이다.’

의사들 대부분은 진료실을 빨리 벗어나고 싶어 합니다. 그 역시 한때는 병원이 갑갑하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의사라는 직업은 무엇보다 ‘경험’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젊을 때보다는 환자보는 것에 훨씬 자신이 생겼으니까요. 일본은 깡 시골에서 평생 동네 환자만 본 의사가 죽으면서 소소한 자신의 경험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이 종종 있는데, 훗날 세계적 주목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역시 나이가 들어가지만 매년 학술 대회에서 조그만 주제를 발표할 생각입니다. 아마 병원 문 닫을 때까지 하겠지요?
그는 며칠 전 제주도에 다녀왔습니다. 매년 봄 제주에서 유방암학회가 있는데, 늘 직원들과 함께 참석합니다. 물론 관광도 하지요. 몇 년 전쯤인가, 같이 한라산을 등반하다 직원이 물었습니다.
“원장님은 언제까지 환자를 볼 거예요?” “평생 볼 건데.” “그럼 저희도 평생 근무해야겠네요.” 의사 나이 아흔 살에, 간호사 나이 일흔 살이라!


1 의사로서 치료만 할 것이 아니라 병의 원인이 되는 먹거리에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임재양 씨는 3년 전부터 현미 채식을 한다. 서울 손님들을 위해 특별히 닭 가슴살을 넣은 그린 샐러드와 미나리나물, 곤드레현미밥과 맑은 두붓국에서 건강한 맛이 전해진다.
2 사람들을 불러 모아 차 마시고, 빵 나눠주고, 현미 채식을 나누는 일이 행복한 부부는 대부분의 여유 시간을 별관 2층에서 보낸다. 거의 잠만 자는 근처 아파트에 있는 세간을 하나 둘씩 가지고 나와 이곳이 집처럼 편하다.

몸에 좋은 건강한 빵 만드는 일을 중심으로 한 별관 2층 공간은 가급적 가볍고 따듯한 느낌으로 완성하기 위해 경량식 목구조로 계획했다. 1층 천장의 높낮이가 다른 것을 반영해 테이블이 있는 다이닝룸과 맞은편 빵 만드는 주방에 단 차이를 두었다.


건강을 짓습니다 왜 하필 골목길이냐 물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근무하는 의사나 간호사가 편해야 환자가 편안함을 느낄 테니까요. 게다가 골목길은 똑같은 돈으로 마당을 가질 수 있습니다. 차들이 흘러가는 거리가 아니라 사람들이 모이는 병원, 마당이 있고 꽃이 있는 병원이니 이곳에 모인 이들의 사소한 이야기가 서로를 치유해준다고 할까요? 임재양외과는 검진만 하는 동네 의원이지만 원훈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환자에게 상처 주지 말자’. 환자를 보다 보면 의사로서 좀 더 신경이 쓰이고 같이 고민해주고픈 환자가 있는가 하면, 미운 환자도 있습니다. 후자일 경우 일장 연설만 하고 돌려보내진 않았는지 때론 후회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매일 아침 오늘은 환자들에게 상처를 주지 말자 다짐하고 하루를 시작합니다. 둘째는 ‘환자 몸에 상처 주지 말자’입니다. 과거에는 칼로 도려내는 것이 치료의 완결인 줄 알았습니다. 이제는 가능하면 수술은 미루고 다른 방안은 없는지 고민합니다. 약도 신중하게 처방합니다. 몸의 자연 치유력을 최대한 높이며 기다리자는 생각입니다. 이러한 생각을 실현하기에 별채는 아주 좋은 공간입니다.

많은 사람에게서 집을 지으며 고생한 경험담을 숱하게 들었지만 그는 집을 짓는 과정이 행복했다고 합니다. 전문가를 믿고 오롯이 맡겼기 때문이지요. 이는 병원 일을 하며 얻은 지혜입니다. 환자는 병을 진단받으면 허둥대기 마련입니다. 온갖 소문에 귀 기울이며 전문가가 조언을 해줘도 자기 나름대로 판단하고 만병통치약에 속고 판을 하기도 하지요. 그러다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정답은 ‘믿는 의사에게 일임하라’ 입니다. 믿는 의사를 어떻게 구할 것인가는 자신의 마음가짐과 노력에서 비롯됩니다. 건축가 조정구 씨는 그가 집을 짓기로 하고 3년 만에 찾은 파트너였습니다. 우스갯소리지만 아이가 넷이라는 말을 듣고 ‘이 사람이다’ 하는 확신이 들었다고 합니다. 퍽퍽한 경쟁 사회에서 아이를 넷이나 낳아 키우는 일은 인간미가 넘치는 만큼 순수하다는 뜻이니까요.

그는 집에 있는 것처럼 편안하게 해달라, 바람이 불면 정원 구석에 앉아 있기 좋은 자리를, 비가 오면 한없이 마당을 내다보면서 커피 한잔 마시고 싶은 자리를 마련해달라는 등 소소한 생각들을 허물없이 이야기했고, 조정구 씨는 자신의 한옥을 짓듯 그 생각들을 자연스럽게 구체화했습니다. “환자들은 병원에 들어서면 마당에 온실처럼 꾸며놓은 아트리움에서 접수를 하고 한옥에 올라서서 진찰복으로 갈아입은 뒤 대청마루에서 순서를 기다립니다. 그리고 한옥방에서 의사를 만나지요. 신기하게도 대기 시간이 길어도 불평하는 이 하나 없어요.”

임재양 씨는 어린 시절 한옥에서 살았는데, 그 추억은 그립지만 다시 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답니다. 춥고 불편했기 때문이죠. 한옥이지만 마당에 타일을 깔고, 대청마루에 소파를 두는 등 입식으로 꾸민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의학계에 부는 변화의 바람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입니다. “1970~1980년대는 현대 의학의 전성기입니다. 원인이 속속 밝혀지고 치료 기술도 발달하면서 세상의 모든 병이 완치될 것만 같았지만, 10% 부족함을 해결하지 못하는 한계에 부닥쳤습니다. 병만 보고 인간을 보지 못한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대체 의학, 보완 의학이고 결론은 통합 의학입니다. 균형적으로 인간을 보자는 겁니다. 이것이 제가 병원과 빵집, 한옥과 일본식 주택이 있는 복합 공간을 꿈꾼 궁극적 이유입니다.” 일본식 주택인 별관 1층은 침실 두 개와 거실, 욕실이 있고 마당 쪽으로 엔가와라는 일식 복도가 둘러져 있습니다. 휴식과 명상 공간, 게스트 하우스로 활용합니다. 2층엔 식이요법 강의와 요리, 식사를 하는 주방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아내 이현숙 씨가 빵을 굽습니다. 빵을 팔지는 않지만 이름도 지었답니다. ‘한입 별당’이라고요.


ㄷ자형 한옥과 일본식 주택이 마당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구조. 기존 터에 자리 잡은 한옥과 적산 가옥을 존중해 새로 지었음에도 늘 그 자리에 있던 것처럼 포근하다.

1
 한옥 병원의 진료실. 볕이 잘 들고 통풍이 잘되니 진료하는 의사는 마음이 넉넉해지고 진료받는 환자는 안정감을 느낀다.
2 임재양 씨의 점심 식사. 오트밀을 곁들인 견과가 밥이요, 삶은 감자와 연근, 토마토, 브로콜리가 반찬이다.
3 우리 통밀로 만드는 건강 빵. 아내는 보드라운 밀가루 반죽을 할 때 가장 행복하단다.
4, 5 곤드레나물을 볕에 말리는 모습, 창가에 툭 놓인 바구니 속 노각의 모습이 정겹다.


빵을 굽습니다 임재양 씨 부부는 빵을 좋아합니다. 일요일의 최고 행복은 아침 늦게 일어나 교회 갔다가 점심 무렵 들어오면서 빵집에서 갓 구운 빵을 사서 신선한 라테와 같이 먹고, 가까운 공원을 두어 시간 정도 산책하고, 저녁을 푸짐하게 먹고 <개그콘서트>를 보고 자는 것이라 말합니다. 하지만 상업 목적의 먹거리는 방부제, 식품 첨가제, 팽창제, 설탕, 소금 등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따끈한 빵을 먹고 싶다는 환자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통밀로 제대로 만든 빵을 먹어야 합니다. 2층 부엌은 더 건강한 빵을 먹고 싶어 하는 일반 사람들에게 건강 빵을 전파하는 장소입니다. 건강한 우리 통밀을 쓰고 버터는 생략하며 설탕 대신 꿀을 넣습니다. 일주일에 한두 번 많이 구워서 인연있는 사람에게 나눠주고, 병원에도 냅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환자에게 한 봉지씩 나눠주는데 현재 병원에서 제일 인기 있는 것이 바로 이 빵입니다. 그리고 그는 환자들보다 먼저 현미 채식을 시작했습니다. 3년이 지난 지금, 체중이 15kg 빠졌고 몸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가뿐해졌습니다. 별채 2층 부엌에서 재료를 가지고 실제 현미 채식을 하는 방법을 대중에게 쉽게 알려줍니다. 부엌은 사람들을 초대해서 같이 식사하며 노는 장소로 커다란 테이블을 두었습니다. 이 부엌에 60명까지 모인 적이 있답니다. 좋은 뜻을 가진 사람들은 누구나 와서 만날 수 있는 공간이지만 한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좋은 이야기만 하지 남의 말은 하면 안 된다’입니다.


안마당에서 바라보는 일본식 주택과 한옥 병원, 뒤편에 보이는 교회의 어우러짐이 묘하면서도 색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임재양외과의 식구들. 다섯 명의 간호사 중 병원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근무해서 20년이 넘는 이도 있다. 젊은 시절 병원에서 함께 꿈을 키운 가족이나 마찬가지라고.


또 꿈을 꿉니다 의사로서 그의 삶은 다른 의사들과 조금 다르다는 느낌이 듭니다. 1990년 개업한 후 골프 치고 놀 일만 남았을 때 그는 유방암만 진료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지금은 특정 장기 하나만 전문으로 보는 것이 보편화되었지만 그 당시는 이런 병원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또 다른 변화를 꿈꿉니다. “공학 분야에 메카트로닉스(mechanism + electronics)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결국 융합이란 이야기죠. 그러면 건축도 융합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반드시 한옥은 전통적 구조와 방법만 고집해야 할까요. 바깥은 전통 한옥인데, 내부 구조는 하이테크로 무장하는 것은 어떨까요. 병원이지만 바깥은 소담한 정원으로 꾸며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임재양외과는 집 대문에서 바라볼 때 안쪽으로 좁아지다 오른쪽으로 꺾여 깊어지는 마당에는 소담한 야생화 꽃밭이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마당을 거니는 환자, 대기실에 앉아 마당을 유심히 바라보는 환자들이 눈에 띕니다.

조경은 <정원 소요> <천리포수목원>의 저자이자 꿈꾸는 정원사로 통하는 이동협 씨가 도왔습니다. 이동협 씨는 임재양 원장을 <행복>에 소개해준 일등 공신이지만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두 사람의 인연에는 <행복>이 메신저 역할을 했습니다. <행복> 구독자인 부부가 천리포수목원 기사를 보고 이동협 씨에게 메일을 보냈고, 이동협 씨는 임재양 원장의 따뜻한 글을 읽고 기꺼이 천리포수목원에 동행해 친구가 됐으니까요. 임재양 씨는 글쓰기를 좋아합니다. <행복> 창간 24주년 기념호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통해 ‘행복 결심, 행복 훈련’이라는 주제로 독자 공모전을 제안했을 때 글을 응모해 그의 귀한 경험담을 소개하기도 했지요. “나 혼자 잘 살겠다는 생각을 버려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요즘 무척 행복 합니다. 걸으면서 자꾸 비우자고 생각하는 순간, 행복은 찾아왔습니다.”

<행복>에 소개한 글의 일부입니다. 한옥과 일본식 주택이 마주하는 독특한 병원, 빵 굽는 아내와 함께 건강한 주거 문화와 식문화를 전파하는 임재양 원장은 이런 모든 인연의 고리가 <행복>에 있다고 말합니다. 담벼락 아래 작은 벤치를 두었는데 지나가는 동네 사람들이 너럭바위에 앉듯 잠시 숨을 돌리는 모습을 보면서 오늘도 ‘행복’ 하다고요.

글 이지현 기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3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