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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갤러리 산책]조현화랑 대표 조현 씨 ‘브라보! 마이 아트 라이프’
언젠가부터 미술 시장에서 ‘부산을 잡아라’라는 말이 종종 들려왔다. 해운대 도심과 달맞이고개에 화랑이 잇따라 생기고 서울 메이저 화랑과 경매사들의 부산 진출이 가속화되던 즈음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서울만 하겠어?’라는 의구심이 든 게 사실이다. 부산 미술 시장의 터줏대감, 조현화랑의 조현 대표를 만나 속 시원히 물었다. “부산에서 갤러리스트로 산다는 것, 평안하신가요?”


달맞이고개에 있는 조현화랑. 신관 4층 그의 집무실은 아주 간결하고 편안한 집처럼 꾸몄다.
(아래) 다양한 분야에서 예술 작업을 해온 장민승 씨의 전시 <수성십경>이 오는 8월 21일까지 열린다. 그는 2009년, 철거가 진행 중이던 서울 종로구 옥인 시민아파트 중 10세대의 내부 모습을 외부의 자연경관과 함께 카메라에 담았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해운대 달맞이고개는 고급 빌라와 카페 등이 밀집한 소위 ‘잘나가는’ 동네였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조망권에 고급 주택이 모여 있었고 멤버십 클럽까지 존재했다. 하지만 그곳 부자들이 수영만 요트 경기장 근처의 신시가지로 옮겨가면서 전망 좋은 언덕길에는 빈집들이 생겨났고, 주택 부지에는 화랑이 하나 둘 들어서기 시작했다.

1990년 ‘갤러리 월드’라는 이름으로 개관한 조현화랑이 광안리에서 달맞이고개로 자리를 옮긴 것은 2007년. 외지 사람이 아닌, 부산 토박이다 보니 달맞이고개로 입성하는 것은 큰 모험이었다. 부산을 잘 알수록, 달맞이고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현화랑과 코리아아트센터 등이 들어서면서부터 변화하기 시작한 데다 때마침 미술 시장이 호황을 맞는다. 가나아트갤러리도 해운대 노보텔 앰배서더 부산에 지점을 오픈하고 서울 옥션은 파라다이스호텔 부산에 사무소를 열었다. 서울 청담동과 삼청동에 갤러리 거리가 형성된 것처럼 광안리부터 달맞이고개까지, ‘해운대’는 부산 및 경남을 대표하는 신흥 화랑가로 떠올랐고, 부산 사람들은 하나같이 조현화랑이 이 천덕꾸러기 언덕에 변화의 불씨를 마련해준 것이라 말했다.

해운대의 미술 시장은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진다. 이름 있는 갤러리는 서울 쪽 화랑과 동시 기획전을 열거나 외국 화가 초대전을 단독으로 개최하면서 삼청동 못지않은 전시 기획력을 자랑한다. 한편, 젊은 사진작가나 화가들이 오래된 연립주택이나 아파트를 빌려 하우스 전시를 열기도 한다. 모던 갤러리와 연립주택 쪽방 갤러리의 묘한 조화. 어느 쪽을 구경하든, 보는 사람들은 만족스럽다. 그 어디서 바다를 바라보며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겠는가. 어쨌든 운치는 이곳 부산을 따라올 수 없으니 말이다.

단순하고 중성적 내부 공간과는 대조적으로 건물 외부는 거친 콘크리트 벽면으로 조성해 주변 환경과 친화를 꾀하고 있다.

갤러리 문턱을 낮추다
주상복합 아파트, 센텀시티 등 해운대의 도심화가 가속화되면서 요즘 서울에서 원정 쇼핑을 나선 이들이 많다고 한다. 이 ‘쇼핑’ 목록에는 미술 작품도 포함되어 있다. 조현화랑 역시 서울이 본거지인 고객들이 종종 찾아온다. “부산은 아직 서울 미술 시장과 비교해 미흡한 점이 많습니다. 대신 소수지만 탁월한 안목을 가진 컬렉터들이 있지요. 이들은 또 다른 좋은 컬렉터를 만 들어냅니다. 미술에 눈뜨기 시작한 컬렉터에게 좋은 멘토가 되는 것이죠. 부산에는 유독 이우환 작가의 작품이 많은데, 이는 진득한 컬렉터들이 20년 전부터 그의 작품을 알아본 덕분입니다.” 그는 작품의 가치보다 작가의 지명도에만 매달리는 현상을 안타까워한다.

갤러리를 이전하면서 카페를 먼저 알아본 것도 그러한 연유이다. 광안리에 있던 조현화랑이 일반 시민들이 찾기에는 부담스러웠던 컬렉터들의 공간이었다면 달맞이고개의 조현화랑은 카페 반 Van 등 부대시설을 더해 미술의 대중화를 이끌었다고 볼 수 있다. 화랑은 카페 반(구관)과 갤러리(신관)로 구성된다. 카페 반은 곳곳에 작품을 전시하고 재즈 콘서트를 여는 등 복합 문화 공간의 성격을 띠고 있다.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공간에 가구와 작품을 매치해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화랑의 전시 스케줄에 따라 작품 또한 수시로 바꿔준다. 무엇보다 분위기에 압도되지 않고 작품을 자연스럽게 즐길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

(왼쪽) 부산에서 20여년 동안 화랑을 운영하고 있는 조현 대표.


1, 2 바다와 숲이라는 자연경관을 최대한 끌어 들인 갤러리 공간.


카페와 자연스럽게 연결된 갤러리는 자연을 받아들이고 소통하는 공간이다. 카페 반이 있는 원형 건물 옆 주차장에 네모 박스 건물을 지어 갤러리를 완성한 것. 미니멀하면서 따스함이 배어 있는 갤러리는 조현 대표가 직접 설계했다. 사진을 전공하고 20여 년 동안 갤러리를 운영한 그에게 작품이 설치되었을 때 돋보일 수 있는 공간감과 비례감을 찾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미술품에는 저마다 자리가 있다고 말하는 그.

그러고 보니 바다가 보이는 창문 프레임 쪽으로는 작품이 하나도 걸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자연보다 위대한 작품이 어디 있겠느냐는 설명. 갤러리 4층에 마련된 집무실은 무척 간결하다. 꼭 필요한 가구만 있다. 그림이 적재적소에 배치되었는데, 이는 집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다. “건축가나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아니니 외부 파사드 fasade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겠는 거예요. 아는 건축가에게 도움을 청했더니 가장 쉬운 방법으로 건물에 흠집을 내라고 하더군요. 아무 멋없던 콘크리트 건물 외벽을 정으로 일일이 쪼았죠.”

그 후 식물을 심어 담쟁이 넝쿨이 둘러싼 지금의 건물이 탄생했다. 카페와 화랑을 자연스럽게 연결하고, 그 공간에 있는 사람들이 숲 한가운데 있는 듯 편안함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조현화랑을 찾는 진득한 컬렉터들처럼, 잘 드러나진 않지만 어느 건물보다도 달맞이고개의 풍경과 잘 어우러지는 건물이다. 부산 사투리가 섞인 그의 호탕한 목소리와 표정을 대하고 나니 건물 외관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현 대표는 일주일에 3일은 서울에서 지낸다. 서울에도 조현화랑 분점이 있어서다. “서울에서 일을 마치고 부산에 내려서는 순간, 자유가 느껴져요. 저는 광안리에 살아요. 모두 해운대를 외칠 때 광안리의 산책길에 반해 광안리를 선택했죠. 해운대는 바라만 보는 ‘남의 바다’라면 광안리는 ‘내 바다’니까요.”


1
집무실 옆 다이닝 룸. 도자 조각품은 장리라 작가의 ‘바론 Baron’.
2 집무실 한켠에는 최병훈 작가의 아트 퍼니처가 설치되었다.

3 현대미술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느끼고자 카페 곳곳에는 작가의 설치 작품을 배치했다. 계단에 그려진 작품은 착시 현상을 촬영하는 사진 작가 조르주 루스의 도트 페인팅.
4 3층 미팅 룸. 테이블과 테이블이 그려진 페인팅을 함께 매치한 위트 있는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브라보, 부산 아트 라이프
“미술 작품을 살 때는 먼저 공부를 한 후 작가를 선택해야 합니다. ‘왜 비싸지?’ 하면서 그 작가에게 관심을 두기 시작하면 눈이 막혀버립니다. 외국인들은 페인트칠하는 것도 그 손길이 남다른데, 어릴 때부터 작품을 ‘보는’ 문화가 익숙해서죠. 그림을 생활로 받아들이세요.”

컬렉션을 보면 그 사람의 안목과 흔적, 길을 알 수 있다고 말하는 조현 대표. 그는 경남 출신 작가 전혁림의 개인전을 시작으로 한국 현대 추상회화의 대표 작가인 박서보, 윤형근, 정창섭, 이강소 등의 작품을 부산 지역에 소개해왔다. 백남준, 곽인식, 김기린 등 해외파와 김종학, 천경자, 오우암 등 구상회화의 수준 높은 작품도 전시. 피에르 술라주, 짐 다인, 장 피에르 레이노, 이토 다카미치, 조지 리키 등의 전시를 열었다.

그는 상업 화랑이지만 지역 작가들 정서를 읽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역 시장만 챙길 게 아니라 지역 작가들에게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 그다음은 소비층. 좀 더 다양한 니즈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부산과 서울 양쪽 전시 기획의 기본 틀은 같게끔 준비하고, 외국 작가 초대전의 경우는 서울과 부산에서 동시에 진행한다. 전시는 1년에 7~8회. 이번 여름에는 장민승 작가의 사진전 <수성십경>을 연다. 마침 화랑에 취재를 간 날은 장민승 작가의 전시 오프닝 일이었다. “장민승 작가는 작업을 하는 태도가 진지하고 상상력도 풍부합니다. 지난해 테이블 가구 전시를 위해 그의 작업실을 방문한적이 있는데 열정이 대단하더군요. ‘수성십경’은 자연 속에 드러난 사회의 단면을 비추는 거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화랑은 작가를 키울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조현 대표. 조현화랑은 종종 유망한 젊은 작가 전시를 기획한다. 갤러리에 당장 수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20년 전에 조현화랑에서 전시했던 김종학, 박서보, 고 故백남준 같은 작가가 지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가 되었듯이 20년 후에는 이들이 그렇게 되리라는 희망이 있다.

그가 인터뷰 말미에 해준 이야기가 재미있다. 안목에 관한 이야기다. 아무리 예쁜 옷을 사도 자꾸 교환하는 사람, 이는 바꿔 말하면 자신의 선택에 자신이 없다는 얘기다. ‘화상 畵商’의 생명은 안목. 여러 작가의 작품을 보는 안목이 있어야 하고, 화랑을 찾는 이들에게 그것을 전달해줄 수 있어야 한다. 미술계의 세계적 흐름에 둔감해서는 안목을 키울 수 없다는 그는 세계 아트 페어에 빠짐없이 참가한다. 미술계의 동향은 곧 사상의 동향이자 시대정신의 동향이기 때문이다. 우리 작가들을 세계 시장에 내놓고 우리 미술계의 수준을 알린다는 의미도 크다. 아트 페어를 통해 만난 세계의 작가들을 초대해 전시하는 일도 많이 해왔다. 조르주 루소, 필립 코네, 수잔 더저스 등 세계 시장에서 주목받는 작가들의 전시를 부산에서 펼쳤다.

부산과 서울 양쪽에 전시 공간이 있지만 조현화랑의 본령은 당연히 부산이라고 말하는 조현 대표. 부산의 문화 예술을 위해 조현 화랑이 할 수 있는 일은 앞으로도 무궁무진할 터. ‘부산에 이런 문화 공간이?’ ‘세계적인 수준의 이런 전시를 볼 수 있구나’ 하는 이야기를 듣는다면 그 이상 좋은 일이 있을까.

부산은 문화 예술을 즐기기에 턱없이 부족한 곳이라고 그랬던가! 해운대에서는 조현화랑을 비롯 김재선 갤러리, 맥 화랑, 부산시립미술관, 가나아트부산 등 10여 곳의 갤러리를 돌며 다양한 전시를 즐길 수 있다.
맥 화랑 2007년 개관한 현대미술전문 갤러리. 미술 대중화에 힘쓰고 있으며 8월에는 <10만원대 행복한 그림>전이 열린다. 문의 051-722-2201
가나아트부산 노보텔 앰배서더 호텔 부산 4층에 위치. 문의 051-744-2020
부산시립미술관 부산과 영남권 미술을 중점 수용하는 공간. 8월21일까지 부산미술대전이 열린다. 문의 051-744-2602
갤러리 몽마르트 재능은 있지만 기회가 부족한 젊은 작가들의 다양한 기획전을 펼친다. 7월 말까지 박용운 개인전이 열린다. 문의 051-746-4202



취재 협조 조현 화랑(051-747-8853)

글 이지현 기자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