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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가 지은 집]이재하 씨가 설계한 곤지암 전원주택 집, 추억을 담는 저장소
수많은 건축 중에서도 주택이 중요한 것은 바로 개인의 건강과 가족의 행복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자신을 ‘주택 전문’이라 소개하는 젊은 건축가 이재하 씨. 그가 설계한 집에는 언제나 사람 사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평생 도시에 살 두 아들 내외와 손자들에게 정겨운 ‘시골집’을 선물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지은 곤지암 전원주택. 사람 손 많이 타는 시골 주택이지만, 가족 모두 이사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행복해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으니 평생 이런 삶을 원한 게 아닐까 싶다.


집은 콘크리트 박스 형태의 이층집과 박공 구조의 단층집을 연결한 구조다. 외장재는 모두 적삼목을 사용했다. 적삼목은 벌레가 생기지 않는 대표적 목재로 물에 강하다.


(왼쪽) 현관 전실에서 바라본 거실 풍경. 소파는 패브릭으로 리폼 & 맞춤 제작한 것. 건축주의 검박한 취향이 드러난다.
(오른쪽) 천장에서 빛이 들어오는 구조. 전면 창을 통해 맞은편 산의 능선이 바라보인다.



서울에서 한 시간 남짓, 조금은 번잡한 풍경의 곤지암 리조트 입구를 지나 10분 정도 갔을까. 사뭇 한가한 풍경의 작은 마을이 산골짜기에 펼쳐진다. 산자락에서 뻗어나오는 작은 도랑을 옆에 두고 야무지게 포장한 도로를 따라 조성된 전원주택 단지 ‘시어골’. 기계는 헤아리지 못하는 주소의 굽이진 언덕길을 따라 오르니 새 둥지처럼 폭 파묻힌 이층집이 나타난다. 멀리서 보면 단순한 디자인의 콘크리트 박스 형태지만,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외장재를 모두 나무 패널로 마감해 마치 목조 주택 같은 느낌. 자칭 ‘주택 전문’ 신진 건축가 이재하 소장이 지난 4월 완공한 후 두 계절이 지나도록 꼼꼼하게 마무리 작업 중인 전원주택이다.
단순한 사각형 건물인 줄 알았던 집은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박공 구조의 1층 건물과 네모 박스의 2층 건물이 연결된 독특한 형태다. 외장재 역시 콘크리트가 아닌 목재를 사용했다. 적삼목(소나무의 한 종류)에 붉은 스테인 오일을 발라 마감하고, 테두리는 역시 적삼목에 화이트 칠을 해 컬러 대비가 색다르다. 현관 대신 거실과 연결되는 앞마당 덱을 통해 집 안으로 들어서니 파랑, 노랑 슬라이딩 도어가 경쾌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다이닝 룸과 세 계단 아래 아늑한 거실을 만난다. 비스듬한 거실 천장은 목재 패널로 마감해 마치 휴양지의 목조 주택에 와 있는 듯한 느낌.

(왼쪽) 마당 뒤편으로 돌아가면 정문과 집으로 들어가는 현관이 나오는 구조.

첫인상이 무척 젊고 경쾌하다는 말에 건축가는 건축주가 70대라는 의외의 대답이 돌아온다. “주택을 짓다 보니 소개로 연락이 오는 경우가 많아요. 오랫동안 수입 의류 사업을 하고 있는 건축주는 죽마고우의 어머니에게서 소개를 받았지요. 일정 기간 세컨드 하우스로 사용하다 노후 주택으로 활용 하겠다는 계획이었지요. 처음에는 부모님뻘 건축주를 만나 조심스러웠지요. 하지만 ‘집’에 대한 기대와 취향은 결코 나이가 제약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곧 깨달았습니다.” 설계 단계부터 1년여의 시공 기간 동안 건축가의 의견을 전적으로 믿어주었다는 건축주 부부. 그래도 고집한 것이 있다면 바로 박공 형태의 지붕과 목재 소재를 많이 사용해달라는 것이었다. 사실 박공지붕은 건축가들이 쉽게 접근하는 형태는 아니다. 옛날에는 기후 조건에 따라 지붕 모양이 가지각색이었지만(북유럽 국가의 목조 주택은 눈이 쌓이지 않도록 지붕을 무척 뾰족하게 디자인했다, 반면 바람이 많이 부는 제주도는 이엉을 꽁꽁 엮은 낮은 초가지붕이 일반적이다.), 모든 기후 조건에 적합한 철
근 콘크리트 구조가 나오면서부터 지붕 형태보다는 건축비, 용적률 등을 먼저 고려하게 된 것.

“지붕 형태는 건축주 부부에게 ‘추억’으로 작용합니다. 행복한 집의 풍경을 상상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세모 지붕은 도시 생활에 지친 부부가 은퇴한 후 로망이던 전원생활을 결심하고 머릿속에 처음 그려낸 집의 형태죠.” 집은 정제된 박스 형태를 기본으로 1층 거실 부분을 계단식으로 빼내는 변화를 시도했다. 집은 내부에서 보는 것만큼이나 멀리서 진입하며 주변 경관과 함께 바라보이는 풍광 또한 중요하기 때문. 이재하 소장은 자연 속에 펼쳐진 천장에서 빛이 들어오는 구조. 전면 창을 통해 맞은편 산의 능선이 바라보인다.

전원주택의 경우 이층집보다는 단층집이 매력적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건축주의 입장에서는 이층집 이상을 원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를 절충하기 위해 전면으로 보이는 거실 공간은 과감히 2층을 없애고 단층으로 설계했다. 덕분에 계단식으로 빠져나온 1층 거실 윗부분은 비스듬한 천장 구조를 완성할 수 있었다. 처마 또한 길게 뺐다. 목조 주택이나 한옥은 메주도 말리고 곶감도 걸어둘 수 있는 처마가 있었지만, 요즘 유행하는 정제된 박스 형태의 집에서는 좀처럼 처마를 보기 힘들다는 설명을 덧붙인다. 처마는 여름철 직사광선은 물론 비가 들이치는 것을 막아주며 문을 열고 빗소리도 들을 수 있는 낭만적 구조물이다. 처마가 있으면 집이 보호받는 느낌이 들지만, 1m 이상이면 건폐율에 들어가기 때문에 땅이 좁은 도시에서는 쉽게 시도할 수 없는 것. 강남에서 한 시간 남짓이지만 마치 휴양지에 온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은 위치 조건 뿐 아니라 박공지붕과 처마 등 독특한 구조의 영향이 크다. “좋은 건축물은 매개 공간이 풍부합니다. ‘매개 공간’은 복작복작한 도로에서 개인 공간인 집 안으로 들어갈 때 정서적 심리 상황을 완충해주는 역할을 하지요. 주택의 경우 대문에서 현관 사이의 마당이 그러한 역할을 합니다. 아파트에는 내부와 외부를 연계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베란다 공간이 있어 이곳에서 빨래를 말리고 바람을 쐬는 등 실내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경험을 하지요. 한옥의 처마 밑 또한 내부와 외부를 연계하는 중요한 공간입니다.”

(오른쪽) 사람 냄새나는 주택을 짓는 젊은 건축가 이재하 씨.

거실을 나가면 천연 오크 우드를 사용한 덱에 누워 길게 뻗은 처마 너머로 사계절 다른 풍광을 즐길 수 있는 편안한 휴식 공간. 지금은 세컨드 하우스로 이용하지만 빠르면 서너 달 후부터는 서울로 출퇴근을 감행할 예정이라고 하니 건축주에게 이 집이 얼마나 특별한지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휴양지처럼, 전원생활을 위한 소박한 집 짓기 현관은 마당 반대편에 위치한다. 집 구조를 살펴보면 현관을 지나 왼편은 침실과 드레스룸, 정면에는 거실과 다이닝 룸이 자리한다. 보통 침실은 사적인 공간이기 때문에 2층에 배치하기 마련이지만, 노후를 위해 지은 집이기 때문에 이동하기 편하도록 1층에 구성했다. 2층은 두 아들 내외가 언제든 와서 쉴 수 있도록 침실과 욕실 등으로 단순하게 구성하고, 3층은 손자 손녀들을 위한 작은 다락방을 마련했다. 이재하 소장은 현관에서 세 계단 정도 낮은 거실을 비스듬히 잇는 전실 복도가 가장 드라마틱한 공간이라고 설명한다. 그 사이에는 이동 가능한 벽이 있는데 이 벽을 막으면 독립 전실이 되고, 이 벽을 오픈하면 부드러운 레이어가 형성되는 계단 역할을 한다. 벽(슬라이딩 도어)은 보통 한쪽만 열고 사용하지만 양쪽 다 열고 닫을 수 있어 모두 오픈하면 거실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뒷면까지 볼 수 있고, 모두 닫으면 현관과 거실이 완벽하게 분리된다. 이는 난방을 좀 더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비책이기도 하다. 소소한 디테일도 돋보인다. 노후를 보내기 위한 공간이자 현재는 부부와 두 아들 내외, 손자들이 주말 휴식을 취하는 ‘전원주택’이기 때문에 마치 편안한 리조트에 도착했을 때의 설렘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는 이재하 씨. 현관 전실 경사로에 왕골자리를 깐 것은 집에 들어오자마자 발바닥에 전해지는 촉감으로 긴장을 풀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2층으로 오르는 계단 위 천장을 뚫어 채광을 충분히 끌어들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단, 통창은 거실 한 쪽에만 사용했다. 집은 남쪽을 바라보되 동쪽으로 창을 내어 거실에서 일출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한 것. 대신 완벽한 배산임수에 자리 잡은 침실은 꺾이는 두 벽면에 쪽창을 내고, 거실은 소파 위쪽으로 파노라마 창을 냈다. 이는 난방 효율성을 높이는 것은 물론 작은 창에 액자처럼 경치를 담는 것 또한 염두에 둔 것이다. 이 집의 또 하나의 백미는 바로 과감한 컬러 사용이다. 우선 외벽은 붉은 스테인 오일과 화이트 페인팅을 사용해 컬러 대비가 확실하다. 내부 인테리어에도 파란색, 노란색, 붉은색을 적재적소에 사용했다. 사실 컬러는 건축가가 쉬 도전하는 분야가 아니다. 미세한 톤 차이로 건축물을 망칠 수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도 있기 때문. 천장과 벽을 밝게 마무리하고 바닥은 톤 다운된 오크 컬러로 가라앉힌 뒤, 벽돌이나 나무 소재를 매치해 풍성한 느낌을 더했다.

(왼쪽) 전실과 거실 사이에 슬라이딩 도어를 설치해 가변적인 공간을 연출한다.
(오른쪽) 콤팩트한 공간에 지그재그로 연결되는 3단 계단을 시공했다.


“‘평면은 모험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건축물은 평면을 걸어가면서 놀라움과 풍요로움을 선사해야 한다는 뜻이지요.”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기대감과 변화를 주어야 한다고 말하는 그는 소재의 자유로움, 천장과 바닥 높이의 변화 등이 재미있는 집을 완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자녀들과 함께 즐기고자 하는 건축주 부부의 열린 생각 덕분이었다. 이처럼 자신과 가족을 위한 독립적 주택을 원하는 이들은 이미 지어진 공간에 자신의 삶을 맞추기보다 나와 가족을 위한 맞춤 건축 공간을 갖는 것이 행복한 삶을 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이가 ‘건축’ 하면 떠올리는 것은 대개 멋지게 지은 건물, 부동산, 그에 따른 재산 정도를 가늠해보는 일이 아닐까. 건축가 이재하 씨는 물질적 가치 위에 있는 정신적 부분을 간과한다면 제대로 된 건축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단언한다. “건축 원리는 무척 간단해요. 가족 구성원이 잘 살게 해주면 되는 것이죠. 집을 통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 건축의 중심은 사람이니까요. 주택이 중요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사실 건축가가 지은 건물에는 화려한 이름이 붙는 것이 많다. 이재하 씨는 자신이 지은 주택에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 퍼즐로 비유하자면 그 완성을 위한 마지막 조각은 화려한 미사여구의 이름이 아닌, ‘사람’이기 때문이다.

(왼쪽) 본 곤자암 주택의 평면도. 대지 600평, 건축 면적 75평으로 남은 여유 면적은 모두 자연이 펼쳐진다.

건축가 이재하 씨는 홍익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지난 2006년 이재하 건축사무소를 열었다. 2009년 태안반도 펜션 ‘마로니에’로 시카고 아테나움 국제건축상을 수상했다. 주요 작업으로는 노들섬 오페라 하우스, 3대가 함께 사는 내손동 주택, 가회동에서 주얼리 공방을 운영하는 ‘은나무 家’, 패션 디자이너 한혜자의 청담동 사옥 등이 있다.


(왼쪽) 전실과 거실 사이에 슬라이딩 도어를 설치해 가변적인 공간을 연출한다.
(오른쪽) 거실에서 바라본 주방과 다이닝 룸. 한 공간에서 펼쳐지는 평면의 높낮이 차이와 박공 지붕이 공간에 재미를 준다.

설계 및 시공 이재하건축사무소(www.leejaeha.com)

글 이지현 기자 사진 이우경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