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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규모 농장이 지켜온 토종 종자 이천 게걸무
이촌동에서 수퍼판을 운영하는 요리 연구가우정욱(왼쪽)과 마을 주민과 함께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게걸무를 키우고 있는 자채방아마을의 최영환 위원장. 경기도 이천시 대월면 군량1리에 위치한 자채방아마을에는 대대로 내려오는 독특한 무가 있다. 겨자처럼 쌉쌀하고 매우며 크기가 작고 단단한 게걸무가 그 주인공. 최영환 마을 위원장은 2013년부터 주민들과 함께 게걸무를 가공해서 다양한 상품을 생산하며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에는 토종 먹거리를 지키고자 애쓰는 소농의 열정이 담겨 있다.

이동촌에서 수퍼판을 운영하는 요리연구가우정욱(왼쪽)과 마을 주민과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게걸무를 키우고 잇는 자체방아마을의 최영환 위원장.
소농이 곧 농촌의 미래다
최근 2년간 많은 농부를 취재하면서 발견한 흥미로운 사실 하나. 국내에서 소농의 입지가 점점 커져가고 있으며, 토종 자원을 지키려는 농민의 실천이 뜻있는 소농 중심으로 다양하게 펼 쳐지고 있다는 것이다. 소농이란 쉽게 말해 본인이 소유한 비교적 작은 논밭에서 다품종 소규모 혼작이라는 영농 방식을 유지하며 스스로 이윤을 창출하는 농가를 말한다. 이러한 현상은 단지 우리나라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세계 5억 7천만 농가 중 소농의 수는 약 5억에 달한다. 소농의 대다수가 2헥타르 미만의 농지에서 일하며 한정된 자원에도 불구하고 높은 생산성을 유지하고 있다. 

무엇보다 소농은 전통적인 먹을거리를 보존하고, 더 나아가 농업 생물 다양성 증진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즉 미래 농업에서 결코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도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소농을 찾아볼 수 있다. 한국슬로푸드협회의 맛의 방주가 대표적이다. 맛의 방주는 문화와 전통을 지니고 있지만 사라질 위기에 처한 음식을 알리고 지켜나가는 프로젝트다. 맛의 방주에 등재된 음식이나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부는 대부분 소농이며, 다른 농작물과 달리 품질에서 각별한 차별성을 획득한 상품을 선보인다. 또 왜 토종 먹거리를 지켜야 하고 먹어야 하는지에 대한 타당한 이유를 설명하며 소비자와 특별한 신뢰 관계를 형성한다. 일반 마트가 아닌 도시 농부 장터에서 소농이 생산한 상품을 믿고 직거래하는 소비자가 느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일반 순무와 달리 게걸무는 잔털이 많고 크기가 확연히 작다. 조직감이 단단하고 쓴맛이 강해 짠지로 담가 먹었고, 무청은 말려서 무청김치나 시래기로 활용한다. 
이천시 대월면 군량1리에 위치한 자채방아마을도 중요한 소농중 하나다. 2002년에 농촌전통테마마을로 지정된 이곳은 이천의 특화 품목인 쌀을 이용해 쌀찐빵을 만들고 체험 관광산업을 활발히 하며 6차 산업을 준비해왔다. 최영환 위원장은 2012년 이곳으로 귀농하면서 주민들과 함께 마을 소득을 효과적으로 올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발견한 것이 바로 몇몇 농가에서만 재배해 오던 토종 채소 게걸무였다. 하지만 개개인이 소유한 작은 토지에서 소량으로 생산하다 보니 공급량을 충분히 확보하면서 판로를 개척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2015년 게걸무가 맛의 방주에 등재되고 게걸무의 효능이 알려지기 시작하자 최영환 위원장은 주민들과 함께 게걸무를 적극 활용하기로 결심했다.

“처음 귀촌을 결심할 때만 해도 텃밭을 가꾸며 조용히 살고 싶었어요. 평생을 체육 교사로 일해온 터라 타고난 농사꾼도 아니었어요. 이곳에 와보니 마을 어르신들이 특이한 무를 재배하시더군요. 그게 바로 게걸무였어요. 그 당시만 해도 콩밭이나 목화밭 사이에 조금씩 키우고 있었지요. 어느 날 TV에서 게걸무씨 기름이 폐 질환에 좋다는 뉴스가 보도되면서 인기가 높아졌어요. ‘게걸무라면 가능하겠다’는 확신을 갖고 게걸무를 재배하고 가공과 각종 체험 프로그램까지 마련한 겁니다.”

2013년 최 위원장은 마을 주민 열여섯 명과 함께 자채방아마을을 농업회사법인으로 탈바꿈했다. 열여섯 농가가 공동으로 재배하고 비회원 농가가 재배한 게걸무도 수매하는 식이다. 또한 게걸무를 농촌진흥청 브랜드화 사업으로 연결해 각종 가공 상품을 만들어내고 있으며, 토종 종자를 지키려는 노력을 다양하게 펼치고 있다.

최영환 위원장은 게걸무를 가마솥에 끓여 조청으로 만들어 판매한다. 가래떡에 곁들여 먹으면 겨울 주전부리로도 손색없다. 
식탁 위로 돌아온 토종 게걸무
“40년 전 이 마을로 시집온 어르신의 말씀에 따르면 그 당시 마을 어르신들도 게걸무를 조금씩 재배하셨다고 합니다. 조상들을 통해 전해 내려오면서 게걸무는 토종 작물로 자리 잡게 된 것이죠. 먹을 것이 부족하던 시절 ‘게걸스럽게 먹을 정도로 맛다’라는 뜻에서 게걸무라는 이름이 붙었고, 마을 주민들은 게걸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최영환 위원장에 따르면 게걸무는 이천 지역을 중심으로 오래전부터 갈산동과 대월면 군량리에서 주로 재배해온 토종 무를 말한다. 모양새부터 일반 순무와 다르다. 크기가 어른 주먹만하고 배추 뿌리처럼 뾰족하게 생겼으며, 육질이 단단하고 아래로 갈수록 가늘어지면서 잔털이 많다. 처음 게걸무를 보면 남다른 생김새에 놀라고, 그 맛에 한 번 더 놀란다. 순무는 단맛이 좋은 반면 게걸무는 쌉싸름하면서도 매운맛이 아주 강하기 때문이다. 씹을수록 개운하면서도 묘한 감칠맛이 느껴진다. 육질도 워낙 단단해 쉽게 무르지 않는다. 일반 개량 품종 무는 늦가을 김장을 담그면 3개월도 못 돼 무르는데, 게걸무는 조직이치밀해 이듬해 여름까지 먹을 수 있다. 마을 주민들은 소금에 절여 땅 속에 묻었다가 겨울이 지난 후에 꺼내 먹는다. 김치를 담글 때도 매운 맛이 강해 삭혀서 먹거나 여름에 짠지처럼 만들었다. 그런데 언제가부터 먹을거리가 풍족해지고 입맛이 현대화되면서 게걸무는 점차 잊혀졌다.

“세대를 걸쳐 재배해온 터라 토종 작물은 그 지역의 풍토와 기후에 이미 적응해 병충해에 강해요. 게걸무도 마찬가지예요. 따로 농약을 뿌리지 않아도 어찌나 강인하게 살아남는지 몰라요. 토종 종자를 연구하고 보존하는 토종씨드림의 안완식 박사와 한국슬로푸드협회의 김원일 사무총장과 함께 연구를 했고 2015년에 맛의 방주에도 등재됐지요.”

이천 자채방아마을은 게걸무로 무씨 기름, 무청 김치 등을 만들어 판매하며 그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앞장선다. 
최영환 위원장은 마을 주민들과 함께 김장철이 되면 게걸무를 뽑아 일부는 김치와 조청으로 만들고 나머지는 항아리에 넣은 뒤 땅속에 묻어 저장한다. 이듬해 봄에 게걸무를 꺼내 땅에 심는데, 이것이 곧 종자 역할을 한다. 보라색 장다리꽃이 올라오면서 씨가 맺힌다. 이 과정을 매년 반복하면서 열여섯 농가가 소유한 2천 평의 땅에 게걸무를 재배한다. 게걸무가 널리 알려진 이유에는 영양학적 가치도 있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게걸무는 순무에 비해 수분 함량이 낮은 반면, 단백질과 지방, 회분, 섬유소, 무기질 함량이 높다. 게걸무씨는 천식과 폐질환에 좋아 건강식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게걸무씨는 굉장히 딱딱해요. 일반 깨처럼 막대기로 털면 씨가 떨어지지 않아요. 그래서 옛날에는 돌절구에 넣고 찧어서 씨를 털어냈다고 합니다. 현재 자채방아마을은 기계로 씨를 떨어 기름을 짜고 있어요. 기름 색깔이 고운 황금빛을 띠지요. 게걸무 수확량도 적고, 씨를 많이 넣어도 기름이 워낙 적게 나오다 보니 한 병에 17만 원이나 해요.”

최영환 위원장은 마을 주민들과 함께 게걸무를 활용해 조청과 무청김치, 게걸무씨 기름 등을 선보이고 있다. 그뿐 아니다. 언젠가 이곳으로 돌아올 청년들에게 마을을 물려주기 위해서라도 게걸무김치 담기, 모내기 체험, 쌀찐빵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농가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겨자처럼 쌉싸름하고 매운맛
무는 비타민 C를 비롯해 각종 영양 성분이 풍부해 참으로 요긴하고 기특한 식재료다. 시원한 국물 맛을 내거나 아삭한 김치를 담글 때 유용하며, 생선조림의 달큼함을 담당하는 식재료도 무다. 한데 게걸무는 좀 다르다. 손맛 좋기로 유명한 요리 연구가 우정욱은 서울 이촌동에서 한식을 기본으로 하되 이국적 음식도 선보이는 식당 수퍼판을 운영한다. 수퍼판에서 손님들이 꾸준히 찾는 반찬이 바로 동치미와 물김치다. 달큰하면서도 아삭하게 씹히는 많이 좋아 메인메뉴 못지않게 인기가 높다. 식재료에 대한 고민도 남다른 그에게 게걸무는 어떻게 다가왔을까. 우정욱 씨는 게걸무로 동치미나 무청볶음을 만들면 일반 무와는 확연히 다른 맛을 즐길 수 있다고 조언한다.

“게걸무는 질감 자체가 단단하니 쉽게 무르지 않습니다. 동치미를 담가도 겨울 내내 먹을 수 있지요. 게걸무를 납작하게 썰어서 소금과 설탕을 넣은 물에 재운 뒤 배와 양파를 넣고 잘 익히는 것이 중요해요. 그래야 게걸무의 특유한 맛이 잘 들고, 국물에서 겨자같이 매운맛이 나지요. 무청은 살짝 데쳐서 조선간장과 들기름, 새우젓을 넣고 조물조물 무친 뒤 볶아보세요. 다진 마늘과 고춧가루를 살짝 뿌리면 매콤한 맛이 살아나 밥 한공기 금새 뚝딱하게 만드는 밥 도둑이 따로 없지요.

요리 연구가 우정욱 씨가 선보인 매콤한 게걸무구이와 무청볶음, 동치미.
우정욱 씨가 선보인 또 한 가지 요리는 게걸무구이. 더덕구이처럼 게걸무를 구워 매콤한 양념을 발랐다. 들기름에 구우면 게걸무의 질감이 연해져 씹는 식감이 훨씬 부드러워지는데, 매콤한 양념까지 곁들여 입맛 돋우는 별미로 탄생한 것.

“촬영 당일 아침 이런 무가 일본에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영상으로 보니 무는 버리고 펄펄 끓는 온천물에 무청을 데쳐서 피클을 담그더군요. 다음번에는 게걸무로 피클을 담가볼 생각이에요. 자채방아마을에서 생산하는 조청도 단맛이 굉장히 좋아요. 뜨겁게 데운 우유에 조청을 넣거나 구운 절편에 곁들이면 아이를 위한 건강 간식으로 참 좋습니다.”

사라져가는 것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결코 쉬운일이 아닌데, 이를 지키고자 하는 소농이 있기에 먹거리를 영위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최영환 위원장의 목표도 별다를 바없다. 게걸무를 통해 잊혀가는 토종 종자가 제자리를 찾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마을 주민과 손잡고 게걸무 재배에 노력을 기울일 예정이다.


요리 우정욱(수퍼판, 02-798-3848) 취재 협조 자채방아마을(031-634-4283)

글 김혜민 기자 사진 이경옥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7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