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해주세요.
본문 바로가기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사람들 新농·어부가, 가업을 잇다
강원도 영월군에서 시작해 전라남도 해남군으로 향하는 여정 속에서 보기 드문 청년들을 만났다. 그들은 땅을 일구고, 거센 바다와 맞서야 하는 일터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고 농부와 어부가 되었다. 제각기 사연은 다르지만 그들이 딛고 선 땅과 바다는 부모의 인생이 고스란히 담긴 위대한 유산이자 다음 세대를 위한 소중한 꿈이다.

아차수산 박승재・박일호 부자
3대째 이어온 지주식 김 양식

(왼쪽부터) 조용한 섬으로 유턴한 바다 사나이 박일호, 3.3톤 아라호 선장 박승재 
전국에서 귀어歸魚인이 가장 많이 정착하는 전라남도. 2015년 귀농어귀촌인 통계에 따르면 귀어 가구의 4.6%가 전라남도를 택했다. 40대가 가장 많지만, 20~30대 청년의 유입도 크게 증가해 어촌이 활기를 띠고 있다. 전라남도 신안군 압해읍 매화리 마산도는 무안군 운남면에 있는 신월항에서 철부선을 타고 30분 정도 가면 닿는 작은 섬이다. 고작 30여 가구밖에 살지 않아 적막감마저 감도는 조용한 섬에서 지주식 김 양식을 하는 박일호 씨는 젊은 귀어인 중 한 명. 목포시에서 직장을 다니던 그는 2014년 11월 고향 마산도로 돌아왔다. 건설업에 종사하며 잦은 출장과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일상을 버티면서 불확실한 미래에 불안감을 느꼈다.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한 끝에 아버지를 도와 김 양식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왼쪽) 칼바람이 부는 겨울이 되면 총 4회에 걸쳐 김 수확을 시작한다. 채취선에 가득 실은 원초를 수협에 판매해 1년을 살아간다. (오른쪽) 모무늬돌김이 자라 김발을 새카맣게 덮은 모습. 물이 빠질 때마다 햇볕에 김발이 노출되면서 살균 작용이 일어난다. 
전남에서 70%가량 생산하는 김은 바닷속 암초에 이끼처럼 붙어서 자라는 해초다. 김양식은 크게 부류식과 지주식으로 나눈다. 부류식은 부레에 발을 매달아 김이 항상 바닷물에 잠겨 있는 반면, 지주식은 갯벌에 지주(약 10m 길이의 플라스틱 재질을 덧씌운 대나무)를 박고 김발을 매단 후 김 포자(씨)를 뿌려 김을 양식한다. 채취 작업만 기계의 힘을 빌릴 뿐 지주를 세우고 김발을 매다는 작업은 수작업으로 일일이 해야 하므로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9월이 되면 부자는 박일호 씨 아내의 이름을 붙인 채취선 아라호를 타고 양식장으로 나간다. 모무늬돌김 포자를 배양한 패각(조개 또는 굴 껍데기) 주머니를 김발에 묶어 씨를 뿌리는 채묘 작업을 한다. “10월 말이 되면 김 포자가 김발에 달라붙습니다. 모무늬돌김은 활엽수처럼 이파리가 옆으로 퍼지는 김인데, 맛과 특유의 향이 좋아요. 12월 중순부터 총 4회에 걸쳐 원초를 채취하지요.” 일반적으로 김 양식을 할 때 유기산을 바다에 뿌려 김발에 묻은 이물질을 제거하고 인위적으로 성장률을 높이곤 하는데, 박일호 씨에겐 어림없는 소리다. 오로지 바닷물과 햇볕, 바람에 맡길 뿐이다. 밀물과 썰물의 차이로 김발이 바닷물에 잠기고 햇볕에 노출되기를 반복하면서 김이 자라고 김발은 새카맣게 변한다.

햇볕과 바람에 의해 광합성 작용이 일어나면서 살균과 건조 과정을 거치고, 고유한 맛과 빛깔을 지니게 된다. 이는 부류식과 차별화되는 지주식의 장점이기도 하다. 박일호 씨가 합류한 이후 김발 대수도 4백 대에서 6백 대로 늘어났다. “4월 말쯤 수확을 마무리하고 나면 김발을 거둬들이고 부러진 지주를 보수 하면서 다음 양식을 준비합니다. 그 과정도 만만치 않지만, 어느 정도 몸에 익으면 제 사업도 해보고 싶어요. 김을 햇볕에 말려 가공품으로 만들 계획이에요. 그래야 부가가치가 커지고 이 일을 계속해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문의 010-9102-1502


그래도팜 원건희・원승현 부자
유기 농법으로 키운 기적의 토마토

(왼쪽부터) 30년 외길 뚝심 정직한 농사꾼 원건희, 농업의 장인화를 꿈꾸는 아들 원승현
‘남들이 뭐라 해도 나는 유기 농법을 고수하련다.’ 농장 이름 ‘그래도팜’에 담긴 의미다. 원승현 씨는 2015년 초에 귀농을 결정하면서 방울토마토를 키우는 아버지의 농장을 그래도팜이라 이름 지었다. 30년 전만 해도 유기 농법에 아무도 관심 두지 않을 때라 유별난 놈이라는 냉대를 받으면서도 유기 농법을 고집해온 아버지의 진심을 농장 이름에 담아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버지 원건희 씨는 강원도 영월군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꽃사슴과 꿩을 키우고 온갖 작물도 다 길러본, 뼛속까지 농부다. 그도 처음부터 유기 농법으로 재배한 건 아니었다. 그는 밭에다 독한 농약을 뿌릴 때마다 ‘농사를 한두해 짓고 말 것도 아닌데, 시장에 내다 팔기도 전에 내가 먼저 죽겠구나’ 싶었다. 갑작스레 농약을 사용하지 않으면 토양이 좋은 균을 스스로 확보하지 못해 땅이 금세 망가지므로 서서히 바꿔나갔다.

처음 3년은 저농약을, 그 후 3년은 무농약을 그리고 금쪽같은 아들이 태어나던 해인 1983년부터는 완전한 유기 농법으로 바꾸었다. 당연히 퇴비와 액비도 직접 만들어 뿌린다. 참나무 껍질과 무항생제 인증을 받은 닭의 계분, 쌀겨, 미생물 등을 한데 섞고 뒤집는 작업을 반복하면서 6개월 동안 발효시킨다. 1천6백 평에 이르는 땅에 퇴비를 뿌리고 유기물 지수를 높여 토양 자체를 비옥하게 만든다. 매년 5월과 10월, 건강한 땅에서 자란 방울토마토는 다디단 맛으로 보답한다. 정성을 다해 농사짓는 아버지의 모습은 아들의 가치관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왼쪽) 10월 말부터 출하하는 기토가 초록색에서 빨간색으로 영글어가고 있다. 유기농 비트와 취나물도 소량 재배한다. (오른쪽) 참나무 껍질과 계분, 쌀겨, 미생물을 6개월 동안 발효시켜 만드는 퇴비. 이를 땅에 뿌리면 유기물을 풍부하게 함유한 비옥한 토양으로 거듭난다. 
홍익대학교에서 프로덕트 디자인을 전공한 원승현 씨는 농업의 가치를 알리고 특유한 브랜드의 농산물을 생산해보고 싶었다. 시판 방울토마토와 아버지가 키운 방울토마토의 맛을 비교해보면서 같은 작물이라도 농사법에 따라 맛과 향이 천차만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10년간의 도시 생활을 접고 영월로 돌아와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아버지가 키운 방울토마토에 ‘기토’라는 이름을 붙인 것. 그는 기토에 ‘기발한 기술로 기름진 토양에서 기차게 잘 자라 기똥찬 맛을 지닌 기적의 토마토’라는 의미를 담아 브랜딩에 성공했다. 도심 장터 마르쉐나 농부 시장에 나갈 때마다 단골손님들은 “기토 없어요? 기토 주세요!”라는 말부터 외친다고 하니 이보다 뿌듯할 수 있으랴!

“완숙 방울토마토만 수확해 판매합니다. 아버지의 재배 방식 덕분에 기토는 독특한 맛과 향, 식감을 지녔어요. 이에 대한 비교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사람들이 그 가치를 몰라주는것 같아 섭섭할 때가 많았어요. 잘 자란 작물에 장인 정신을 부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10년 계획을 잡고 아버지 밑에서 농사일을 배워나가고 있다. 목표는 당연히 그래도팜과 건강한 농산물의 가치를 널리 알리는 일이다. 문의 010-3457-6289 


은아목장 김상덕 ・조옥향 부부와 지은・지아 자매 
가족의 힘으로 일군 유럽형 목장

(왼쪽부터) 힘이 넘치는 말괄량이 보노. 아들 부잣집에 시집가 목장을 잇겠다는 꿈을 이룬 둘째 딸 김지아. 미술 학도의 꿈을 접고 파티시에로 전향한 첫째 딸 김지은. 은아목장의 여장부 조옥향. 엄마 껌딱지 쫑쫑. 가족의 든든한 버팀목 김상덕
언젠가 “딸은 엄마의 해피엔딩”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금이야 옥이야 키운 딸이 잘되길 바라는 건 세상 모든 엄마의 꿈일 것이다. 경기도 여주군 가남읍에 자리한 ‘은아 목장’의 안주인 조옥향 대표는 두 딸이 자신을 이어 소와 사람이 모두 행복한 목장의 주인이 되었으니 행복한 엄마임이 분명하다. 서울 토박이인 그가 남편 김상덕 씨와 경기도 여주군 가남읍으로 내려와 목장을 일구기 시작한 것은 33년 전 일. 남편과 둘이서 나무를 뽑고 땅을 다져 2만 7천 평의 친환경 목장을 만들었다. 어찌나 소를 잘 키웠는지, 낙농가의 꿈이나 다름없는 홀스타인 품평회에서 그랜드 챔피언상을 두 번이나 받았다. 게다가 이곳은 국내 몇 안 되는 체험형 목장이다. 2003년부터 생산 위주의 목장에서 체험이 가능한 목장을 만들기 위해 우사를 개조했고, 2006년 낙농진흥회에서 낙농 체험 목장 인증을 받았다. 2011년에는 축산물 해썹(HACCP) 목장 인증도 획득했다. 소젖짜기, 치즈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남보다 빨리 6차산업을 시도한 덕분에 연간 수천 명의 관광객이 은아목장을 다녀간다. 

두 딸은 부모님의 청춘이 오롯이 담긴 목장을 잘 꾸려나가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한다.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던 첫째 딸 김지은 씨는 그 꿈을 접고 숙명여대 르 꼬르동 블루에서 파티시에 과정을 수료했다. 프랑스로 연수를 다녀와 그가 하는 일은 우유로 가공품을 만드는 것. 자연 치즈와 버터, 요구르트 등 열네 가지 제품을 만들어 인터넷 쇼핑몰과 백화점에서 판매한다. “요구르트는 목장에서 갓 짠 신선한 우유를 살균한 다음 병에 넣어 유산균을 자가 배양시켜요. 24시간 저온 숙성시킨 후 판매하지요. 블루베리와 키위, 딸기 등으로 만든 콩포트가 들어 있어 달콤한 맛이 좋아요. 미술을 그만두고 이 일을 시작했지만 후회는 안 해요. 오히려 가공품과 관광, 교육 프로그램을 강화해서 다른 곳과 차별화되는 목장을 만들고 싶다는 꿈이 확고해졌어요.” 

(왼쪽) 우유의 진한 풍미가 느껴지는 요구르트부터 꽈배기 모양의 치즈, 스트링 치즈 등을 만들어서 판매한다. (오른쪽) 백마 벨라와 세 마리 양이 너른 초지를 운동장 삼아 거니는 풍경을 보면 마치 알프스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둘째 딸 김지아 씨는 어릴 때부터 낙농가의 꿈을 키워왔다. 그는 여주농고 축산과를 졸업하고 일본 홋카이도 낙농원대학교에서 학사 과정을 수료한 인재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아버지를 도와 착유를 시작하고, 언니와 함께 가공품을 만들고 체험 학습을 진행하다 보면 쉴 틈 없이 하루가 지나간다. 힘들 법도 한데 엄마의 여장부 기질을 그대로 물려받아 일에 대한 열정이 넘친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힘들어도 버틸 수 있다는 자매는 최근 동물 복지 목장을 준비하고 있다. 젖소와 양, 말 등 이곳의 모든 식구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목장을 준비하는 그들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문의 031-882-5868


수미다정 최수미・김대슬 모자
엄마와 아들이 만드는 건강한 뽕잎차

(왼쪽부터) 수미다정의 꽃미모 담당 채수미. 뽕잎차에 인생 건 아들 김대슬 
전라남도 해남, 해풍 맞고 자란 고구마만큼 명성 높은 것이 차다. 우리나라 최초의 차 관련 서적 <동다송>을 지은 초의선사는 해남에서 태어나 조선 후기 차 문화의 부흥을 이끌었고, 해남 대둔산 대흥사 일지암에 기거하며 차 문화를 전파했다. “‘수미다정’은 해남의 차 문화를 알리기 위해 시작했어요. 20년 넘게 차를 공부하며 차에 빠져 살던 어머니가 차공장을 운영한 지 10년째예요. 뽕잎을 뜯어 차를 만들었는데, 지인들의 반응이 좋아 사업화했어요.” 어머니 밑에서 차를 공부하는 김대슬 씨는 목포대학교 역사학과를 졸업하고는 여행사를 운영했다. 우연찮게 유기농과 관련한 교육을 받다“농사는 생명산업이다. 흙이 살아야 사람이 산다”는 말을 듣고 내가 할 일은 농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여행사를 폐업하고 스물여섯 살부터 어머니의 일을 돕기 시작했다. 채수미 씨 역시 먼저 동업을 제안한 아들에게 고마움을 느꼈다고.

(왼쪽) 뜨겁게 달군 솥에 뽕잎을 넣어 덖는 모습. 손으로 찻잎을 하나하나 만져보면서 골고루 덖는 것이 중요하다. (오른쪽) 구수한 향이 살아 있는 뽕잎차는 카페인과 타닌이 없어 맛이 씁쓸하지 않다. 루틴과 가바 성분이 풍부해 혈관을 튼튼하게 해주는 효과가 뛰어나다. 
두 모자는 ‘건강을 마십니다’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우엉, 여주, 작두콩, 초석잠, 민들레, 쑥 등으로 차를 만드는데, 대표 상품은 황금색을 띠며 구수한 향을 풍기는 뽕잎차다. 5천 평의 비닐하우스에는 뽕나무가 빼곡히 들어서 있다. 이미 제철이 지난 시기라 뽕나무의 싱그러움은 덜하지만, 무농약과 친환경 농법 따라 철저하게 관리한다. 땅은 진작에 유기농 인증을 받았지만 재작년에 뽕나무를 새로 심어 현재 유기 전환기에 접어든 상태. 매년 4월이 되면 어린잎을 따 뽕잎나물을 만들고, 조금 더 큰 잎은 장아찌를 담근다. 5월 초엔 까맣게 영근 오디를 판매한다. 뽕나무 전정 작업을 하는 6월이 되면 나머지 뽕잎을 모두 따서 세척한 후 얇게 채 썰어 250~300℃에 이르는 무쇠솥에 넣고 잎이 부서지지 않게 잘 저어가며 덖는다. 그런 다음 바람이 잘 드나드는 건조장에서 하루정도 말린 뒤 뜨거운 솥에서 한 번 더 덖어 구수한 향이 배게 만드는 가향 작업까지 마치면 진공포장해 손님에게 판매한다.

모든 과정을 수작업으로 하다 보니 힘에 부칠 때도 있지만 음식처럼 차 역시 손맛에 따라 달라지므로 허투루 만들 수가 없다. 1년 정도 지나면 차는 본연의 맛과 향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남은 물량은 전량 폐기한다. 그 마음을 알아주기라도 하듯 서울에서 차를 사러 손님이 찾아올 때 뿌듯함을 느낀다. “차 역시 기호 식품이라 트렌드에 민감합니다. 한동안 여주차가 인기를 끌다가 우엉차가 열풍을 일으키기도 했어요. 매년 20회 이상 시음회에 참여하면서 차 맛을 알리고 틈틈이 시장 조사를 합니다. 소농이지만 살아남으려면 탄력적으로 신제품을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직은 부족하지만 다양한 차를 만들면서 문화를 판매하는 기업으로 성장시키고 싶어요.” 문의 061-534-2434


글 김혜민 기자 사진 이경옥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6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