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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사는 건강하고 맛있는 삶 부산 뱅델올리브식 슬로 라이프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의 농장에서 갓 수확한 채소가 부산시 수영구에 있는 이탤리언 레스토랑 ‘뱅델올리브’에 도착한다. 진정한 미식은 건강한 먹거리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고희철 대표는 친환경 방법으로 농사지은 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식탁 위에 올린다. 이곳에서는 요리하는 사람도 먹는 사람도 모두 행복한 일상이 시작된다.



맛 좋고 건강한 음식 하나만을 바라보고 엘올리브팜을 만든 고희철 대표(왼쪽)와 농장에서 수확한 제철 식재료로 계절의 변화를 음식에 담는 박기섭 셰프. 
“잘 먹겠습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주인공 이치코가 이 한마디를 외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치코는 도시를 떠나 고향 마을 코모리로 돌아와 손수 농사를 짓고 밭에서 거둔 수확물로 밥상을 차린다. 모든 것을 자급자족으로 해결하다 보니 한 끼를 차리는 일이 수고스럽긴 하지만, 그의 식탁에는 언제나 계절의 변화가 풍성하게 담겨 있다. 봄에는 양배추로 오코노미야키를 만들어 먹는가 하면 여름에는 새빨갛게 영근 토마토를 한 입 크게 베어 먹고선 토마토 스파게티를 만든다. 화려하거나 거창하진 않아도 그가 정성껏 요리하는 모습을 보면 입안 가득 군침이 고인다. 그의 삶이 부럽지만 도시에서 슬로 라이프를 실천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런데 도심 한복판에서 제 나름의 방식으로 슬로 라이프를 추구하는 곳을 발견했다. 부산시 수영구 망미동에 위치한 레스토랑 뱅델올리브Vin d’el olive다. 이곳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농장에서 직접 기른 제철 식재료로 요리하며 느림의 미학味學을 실천해나간다.

자급자족 삶을 꿈꾸다

1, 3 삼각 지붕이 멋스러운 뱅델올리브. 건물이 주변 환경을 해치지 않고 잘 어우러지도록 디자인했고, 샹들리에는 버려진 유리잔으로 만들었다. 창가에 앉으면 나무 사이로 푸른 바다가 보인다. 2 박기섭 셰프는 당근과 토마토로 새콤한 가스파초를, 수미 감자로 부드럽고 담백한 감자 수프를 만들었다. 

“레스토랑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면 바다와 이어진 수영강 건너편 해운대가 보입니다. 고층 건물들의 화려한 스카이라인이 눈에 들어오지요. 빠르게 변해버린 해운대와 달리 이 동네는 여전히 옛 청취가 남아 있어요. 낮고 오래된 건물도 많고요. 미국 뉴욕의 브루클린처럼 트렌디하면서도 슬로 라이프가 가능한 문화를 정착시키고 싶었어요. 그러한 일환으로 프로젝트명을 ‘슬로디스트릭트’라 지었지요. 느리지만 천천히 진짜 음식이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목표입니다.”뉴욕 AIG 본사에서 일한 후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고희철
대표가 돌연 부산으로 내려와 레스토랑을 시작하고 농장을 꾸리게 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2010년 부산의 유명한 건축가 고성호 씨가 오픈한 이 레스토랑을 2014년 고희철 대표의 아버지가 인수하면서 그는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아버지를 돕기 시작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레스토랑을 이끌어나가면서 뱅델올리브는 부산을 대표하는 미식 공간으로 성장했다. 처음에는 레스토랑 건물 한 채가 전부였지만, 지금은 프라이빗 레스토랑을 비롯해 카페와 본사 건물이 들어서 있다. 슬로 디스트릭트라는 콘셉트에 맞게 모든 건물에 재활용이 가능한 벽돌을 사용하고 낮게 지어 주변 풍경과 어울리게 만들었다. 바쁜 도심 속에서도 쉼이 허락되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던 그는 레스토랑을 운영해나가면서 건강한 식재료에 대한 욕심도 생겼단다. “좋은 레스토랑의 기본은 정직한 음식입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신선한 재료를 공수해 오기 위해 노력했지만 무언가 아쉬웠어요. 건강한 식재료를 위해서는 농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러다 3년 전부터 집 근처 작은 텃밭에 상추와 감자를 키워봤어요. 따로 관리하지 않아도 잘 자라는 것이 신기하더라고요. 이참에 우리가 재배한 식재료를 활용해보자는 결론을 내렸어요. 텃밭을 확장하고 진짜 농사를 시작했지요.” 그의 말을 듣자마자 영화 속 이치코의 모습이 떠올랐다면 비약일까! 고희철 대표는 깨끗한 공기와 물, 토양을 갖춘 양산시에 뱅델올리브만을 위한 농장인 ‘엘올리브팜’을 만들었다. 갖가지 제철 채소를 길러 수확한 뒤 레스토랑에 보내면 셰프는 제철에 맞는 요리로 만들어 손님 식탁에 올린다.

태양광 발전기와 천연 암반수로 친환경 농장을 만들다
레스토랑과 불과 한 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엘올리브팜에 들어서면 예상치 못한 풍경에 놀라게 된다. 약 2900m2(8백80평) 면적에 각종 채소를 기르는 노지와 비닐하우스 두 동, 저온 저장고, 버섯 막사, 거름 창고 등이 자리한다. 여느 농장 못지않게 큰규모와 전문 시스템을 갖추어 작은 텃밭에서 시작했다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 친환경으로 농장을 운영하기 위해 태양광 발전시설을 통해 자체적으로 전기를 생산하며, 지하 150m 천연 암반수를 사용한다. 이 모든 것을 그저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만들기 위해 마련했다는 고희철 대표의 열정과 과감한 추진력이 부러워지는 순간이다. 게다가 그는 농장 관리팀을 따로 둘 만큼 엘올리브팜을 철저히 관리한다. 그래서일까, 이곳의 하루는 이른 새벽부터 분주하다. 아침 일찍부터 직원들은 비닐하우스에서 어린잎의 씨앗을 파종한다. 제각기 생육 속도가 다르고 필요한 양을 맞추려면 매일 3~5종의 씨앗을 파종해야 한다. 비닐하우스 안으로 들어서면 비타민, 비트, 딜, 타임, 오레가노 등 다양한 허브가 모여 만들어내는 싱그러운 초록빛이 감탄을 자아낸다. 노지의 경우 황토와 마사토, 버섯 배지를 섞어 전체적으로 깔아주는데, 이는 상추와 루콜라, 치커리, 당근, 호박 등 각종 작물이 건강하게 자라도록 돕는다. 친환경 퇴비인 유박과 해초박을 뿌리기 때문에 이곳의 모든 농산물은 안전하고 믿을 수 있다. 매실과 은행잎 효소, 목초액, 현미 식초 혼합액 등을 섞어 친환경 살충제도 직접 만들어 병해충을 박멸한다. 이렇게 정성껏 키우고 수확한 농작물은 저온 저장고에 보관한다. 품질별로 따로 분리해 신선도를 주기적으로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레스토랑과 직원 식당에서 사용하는 농산물 위주로 재배하고 있습니다. 총괄 셰프, 농장 관리팀과 꼼꼼하게 회의한 후 1년 내내 사용하는 채소와 계절별로 필요한 채소를 분류해요. 그런 다음 1년 동안 어떤 작물을 언제 심고 수확할지 계획을 세우지요. 레스토랑과 발주 담당 직원 식당 조리사가 품목별로 필요한 채소를 요청하면 농장에서는 품질이 좋은 것만 골라 취합한 후 물량을 확보해요. 이를 일주일에 두세 번씩 레스토랑으로 보냅니다. 집이 농장 근처라 갑자기 필요한 채소가 생기면 레스토랑으로 출근할 때 제가 직접 챙겨 가는 경우도 많아요.” 엘올리브팜에서 재배하는 작물은 계절별로 약 스물다섯 가지가 넘는다.과일과 버섯을 제외하고 농장에서 생산하는 채소의 약 80%를 레스토랑에서 사용한다. 당근과 고구마, 생강, 땅콩, 오이, 호박등은 12월 전후까지 계속 생산해 레스토랑에 공급할 계획이다. 내년부터는 버섯막사에서 재배한 표고버섯과 아스파라거스도 수확해 사용할 예정이라고. “물 좋고 공기 맑은 시골에 살면 사람도 건강해지잖아요. 식물도 마찬가지예요.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직접 채소를 길러보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직원들도 요리하면서 자긍심을 가지게 됐고요.”




믿음직스러운 한 끼를 위해

1 늦가을부터 수확하는 미니 당근을 뿌리채 뽑았더니 싱싱함이 느껴진다.필요한 양만큼 레스토랑으로 보낸 뒤 남은 것은 저온 저장고에 보관한다. 2 비닐하우스에는 영양분을 고루 갖춘 상토 위에 어린잎 채소를 심고 천연 암반수를 뿌려 키운다. 30~45일 정도 생육한 어린잎은 순차적으로 출하한다. 
잘 먹고 잘 사는 일에 정해진 답은 없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도시에서 구하기 힘든 식재료가 없다. 근처 마트에만 가도 사시사철 구할 수 있는 식재료가 지천으로 널려 있다. 바쁜 생활에 치여 인스턴트식품으로 허기진 배를 달래다 보니 한 끼 식사의 소중함도 사라진 지 오래다. 제철 식재료로 만든 믿음직스러운 한 끼가 그리운 것도 이 때문일 터. 고희철 대표 못지않게 식재료에 관심을 기울이고 신경 쓰는 이가 있으니 바로 뱅델올리브의 주방을 총괄하는 박기섭 셰프다. 그는 일주일에 한두 번씩 농장에 들러 관리팀 못지않게 꼼꼼하게 둘러보며 확인한다. “프롬 팜 투 테이블From farm to table은 모든 요리사의 꿈이나 다름없어요. 이렇게 큰 규모로 가까운 거리 안에 신선한 식재료를 공급하는 농장을 소유한 레스토랑은 흔치 않아요. 우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고 키운 농산물이라 마음 놓고 요리할 수 있어요. 손님들도 믿음을 가지고 제가 만든 음식을 즐기죠.” 박기섭 셰프는 제철 식재료를 가지고 어떻게 하면 자연의 맛을 그대로 살릴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그가 갓 수확한 토마토와 당근으로 만든 차가운 수프인 가스파초도 그중 하나다. “가스파초를 통해 농장을 축소해 담고 싶었어요. 새우 세비체를 넣어 시큼한 맛을 내는 토마토 수프의 색감은 토양과 닮아 있어요. 여기에 말린 버섯과 현미 팝콘을 자갈처럼 올렸지요. 갖가지 채소를 더해 마치 밭에 작물을 심어놓은 듯한 느낌을 냈어요.” 그의 말처럼 가스파초를 담은 그릇 한가운데에 아침에 갓 수확한 미니 당근이 놓여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부드러운 수프와 아삭하게 씹히는 당근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맛이 일품이었다. 그는 수미 감자로 따끈한 감자 수프도 만들었는데, 담백하면서 도 구수한 감자의 풍미가 입안 가득 퍼졌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 모든 것이 엘올리브팜에서 공수해 온 것들 아닌가. 게다가 제철 식재료를 활용하고자 노력하는 박기섭 셰프의 고민이 느껴지는 요리라 맛이 없으려야 없을 수가 없다. 뱅델올리브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을 경험하고 나니 우리나라에도 이런 식당이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반갑다. 도심 속에서 더없이 평화로운 슬로 라이프를 체험하고 온 기분이다.



취재 협조 뱅델올리브(부산시 수영구 좌수영로 129-1, 051-752-7309)

글 김혜민 기자 사진 이경옥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6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